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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적 반로환동-59화 (59/250)
  • < [제19장] 혈교 3 >

    “후후후! 무정공자라고 했나? 죽기 전에 할 말이 있느냐?”

    송계가 절명비수를 겨누며 말했다.

    백자안은 그저 무심히 서 있을 뿐이었다.

    물론 그 역시 절명비수가 보통 무기가 아니며 암기처럼 발사 가능하다는 점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직 강력한 호신강기가 있었다.

    더군다나 무명심법은 짧은 순간에도 놀라운 회복력을 보여주는 심법이었다.

    혈마지를 검으로 쳐내다가 내상을 입은 것은 사실이지만 벌써 대부분을 회복한 것이다.

    송계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정작 대결 직전이 되자 혼동을 느끼고 있었다.

    백자안의 기세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내상을 입은 자의 기도가 아니었다.

    하지만 기호지세였다.

    이미 무형의 싸움은 시작되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절정비수에서도 살기가 뿜어 나오고 있었다.

    그 살기는 마치 그물처럼 상대를 옥죄고, 그 때문에 날아드는 비수를 막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지금 뭐 하는 것이오? 어서 비수를 던지시오.”

    백자안이 담담히 말했다.

    그 순간 송계가 절정비수를 날렸다.

    슈우욱.

    그야말로 빛의 속도였다.

    화살보다 빠른 비수 공격.

    특수 비수답게 자체 추진력이 있는 것 같았다.

    백자안이 가볍게 우수로 원호를 그렸다. 순간 절정비수가 허공에서 파르르 떨리더니 그대로 방향을 바꿔 송계의 목을 향해 날아갔다.

    푹.

    목에 비수가 박힌 송계가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그대로 쓰러져 즉사했다.

    “놈!”

    기회를 노리던 혈귀노인이 장풍을 날렸다.

    바로 혈귀장(血鬼掌)이란 것으로 보기에는 간단히 보이나 필생의 공력이 담긴 공격이었다.

    게다가 이 혈귀장은 날아오는 도중 열 개의 장력으로 분화하는 특징이었다.

    그런데도 그 위력은 변함이 없었다.

    다시 말해 열 명의 혈귀노인이 장력을 날리는 것과도 같았다.

    백자안이 무명보를 밟아 장세를 피했다.

    휙휘휙.

    마치 곡예를 하듯 열 개의 장력을 피하며 혈귀노인에게 다가갔다. 백자안이 주먹을 날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육합권이었지만 그 강함이 태산이라도 무너뜨릴 정도였다.

    혈귀노인이 매우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백자안의 주먹은 더욱더 빨랐다.

    아까 살인혈객이 위험에 처했을 때와 상황이 비슷했다.

    혈귀노인은 목숨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광세혈신의 도움을 기대했다.

    그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광세혈신은 수수방관했고, 백자안의 주먹이 그의 목을 강타했다.

    우지직.

    목뼈가 부러지며 혈귀노인이 즉사했다. 너무 강한 공격에 목이 절반쯤 떨어져 나갔다.

    쿵.

    혈귀노인의 시체가 바닥에 쓰러졌다.

    광세혈신이 무심히 말했다.

    “혈귀노인 저자는 역심을 품고 나 몰래 사사천교와 연락을 취하고 있었소. 또한 감히 나의 지시를 어기고 천마석실 안으로 들어가려 했으니 죽어 마땅하지 않겠소? 그대가 나 대신 처리해줘서 고마울 따름이오.”

    “그랬소?”

    백자안이 무심히 물었다.

    광세혈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사실 이곳에 오기 전에 새 태상장로를 임명해 총단을 맡겨 두었소. 이제 정말 우리 두 사람이 겨뤄야 할 때가 된 것 같구려.”

    광세혈신이 허리에 찬 검을 풀었다.

    바로 혈마검(血魔劍)이었다.

    죽은 혈마의 애검으로 아들인 자신이 물려받았다.

    살인혈객이 말했다.

    “교주님. 제가 다시 한번 놈을 상대하겠습니다.”

    “아니오. 그대는 내상이 깊으니 쉬고 있으시오. 내가 질 경우는 없을 것이오.”

    광세혈신이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어느 정도 백자안의 무공수위를 파악한 것으로 보였다.

    “고수는 일초에 만초를 담는 법. 가볍게 일검을 승부를 보겠소.”

    “좋소. 나 역시 일장으로 응수하겠소.”

    백자안이 육합장을 준비했다.

    광세혈신은 자신이 연마하고 있던 삼대신공 중 하나인 혈마검법(血魔劍法)을 펼칠 준비를 했다.

    “후후후! 역시 강하군. 만에 하나라도 내가 지게 되면 약속을 지켜야 하니 미리 이 천마장보도를 꺼내 놓겠소.”

    광세혈신이 양피지 한 장을 꺼내 조금 떨어진 옆에 놓았다.

    “천마장보도?”

    백자안이 양피지를 유심히 봤다.

    죽은 혈귀노인과 송계의 대화를 통해 천마장보도 안에 천마마비류의 해약 제조 방법이 있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원본을 갖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걱정하던 차였다.

    한데 광세혈신이 직접 천마장보도를 내놓자 안심이 되었다.

    “아는지 모르겠지만 이 천마장보도에 천마마비류를 미리 방비하는 방법과 해소하는 방법이 모두 적혀 있소. 그 원리는 매우 간단해 삼매진화처럼 내공을 특이하게 응용하면 가능할 것이오. 비법을 알게 되면 삼만 군웅들 모두를 천마마비류에서 해방시켜주는 것도 한순간에 가능할 것이오. 해약을 내공으로 연기처럼 만들어 퍼뜨리면 될 테니까. 물론 그대가 천마장보도를 볼 수 있을 기회가 없을 것 같지만 말이오.”

    광세혈신이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의 말은 백자안이 자신의 상대가 안 된다는 뜻 같았다.

    “그대의 말을 믿겠소. 바로 시작합시다.”

    백자안이 극한의 내공을 끌어올렸다.

    팔대무공 중 하나인 무명장을 펼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아직 일성도 연마하지 못 했다.

    팔대무공 중 지금 가능한 것은 무명보뿐이었다.

    하지만 무명보 일성만으로 광세혈신 같은 절세고수와의 싸움에서 승기를 잡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아예 육합장을 전력으로 날려 승부를 보기로 한 것이었다.

    광세혈신 역시 속으로는 여간 초조한 것이 아니었다.

    그 역시 송계와 마찬가지로 직접 무형의 기세 대결을 펼쳐보니 예상과 다른 게 많았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백자안의 내공이었다.

    자신보다 우위이긴 하나 얼마 차이가 나지 않으리라고 봤지만 지금 보니 그것은 오산이었다.

    ‘가히 절대 내공을 지닌 자다. 내 편으로 만들지 못하면 반드시 죽여야 한다. 혈마검법을 대성하지 못하고 온 것이 아쉽구나.’

    광세혈신이 뒤늦은 후회를 했다.

    하지만 그는 혈교 교주였다.

    수하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대결을 물릴 수도 없었다.

    ‘그자들의 제의를 받아들였어야 했나.’

    광세혈신이 문득 며칠 전 자신을 찾아온 세 명의 노인을 떠올렸다.

    그들은 자신들을 중원삼성(中原三聖)이라고 했다.

    광세혈신은 혈비동에서 신공 수련에 매진하다가 그들의 방문을 받고 깜짝 놀랐다.

    혈비동 입구에는 가공할 절진이 펼쳐져 있어 아무도 자신의 허락 없이는 출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중원삼성의 무공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는 것을 의미했다.

    광세혈신은 그들에게 적의가 없음을 깨닫고 자신을 찾은 이유를 물었다.

    그들은 중원무림을 대신 다스려줄 대리자를 찾고 있다고 했다.

    자신들의 제의를 받아들이면 절대무공을 전수해줄 것이며 중원무림 정복도 도와줄 것이라고 했다.

    광세혈신은 거절했다.

    그는 천하제일을 꿈꾸는 사람으로 대리자 역할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러면서 중원삼성을 공격할 의사를 보이자, 중원삼성은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다시 올 것이라는 말을 남긴 채.

    중원삼성이 사라진 후 광세혈신은 마치 꿈을 꾼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무공 수준이 자신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후로 마음이 불안해졌다. 무공에 대한 확신이 많이 없어져 처음 생각과 달리 천마동으로 다시 오게 된 것이었다.

    물론 그 전에 혈귀노인의 배신 움직임도 간파했지만, 어서 빨리 천마의 무공을 익히고자 하는 욕구가 더 강했다.

    한데 지금 뜻밖에도 무명소졸에 불과한 자와의 대결에 앞서 패배의 그림자를 짙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시오? 정말로 시작하겠소.”

    백자안이 육합장을 날렸다.

    쏴아아.

    보기에는 평범한 장력이었지만 백자안의 내공이 모두 담긴 공격이었다.

    광세혈신이 정신을 차리고 혈마검법을 펼쳤다.

    그 역시 겉보기에는 검을 앞으로 간단히 찌르는 동작에 불과했다.

    하지만 어느새 자신감이 넘치는 그였다.

    백자안이 날린 장력이 육합장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안 때문이었다.

    그랬다.

    광세혈신은 자신이 잘못 판단한 것을 깨달았다.

    사전 기세 싸움에서는 내공이 강한 백자안이 유리하지만, 실전 무공을 겨룰 때는 자신이 훨씬 유리하다는 것을 몰랐다.

    그가 익힌 혈마검법은 상승검법이었다.

    처음 그 사실을 알고 백자안의 무공을 정확히 평가했음에도, 순간적으로 그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꽈앙.

    천마광장이 떠나갈 듯한 폭음과 함께 대결의 결과가 나타났다.

    두 사람은 공언대로 일초의 승부를 겨뤘고 더 이상의 대결은 필요하지 않았다.

    쓰러져 있는 사람은 백자안이었다.

    어깨에 검을 맞은 그는 피를 흘리고 있었다.

    광세혈신은 처음 자세 그대로였다.

    “교주님!”

    와아아.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관전하던 살인혈객을 비롯한 이백여 혈교 무사들이 환호성을 터뜨렸다.

    그때였다.

    멀쩡하게 서 있던 광세혈신이 허리를 숙이며 피를 한 사발 정도 토했다.

    “우웩!”

    비틀거리며 쓰러지려는 그를 살인혈객이 부축했다.

    살인혈객은 짧은 시간이지만 회복운공을 통해 어느 정도 기력을 회복한 상태였다.

    백자안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것은 그 직후였다.

    그는 어깨에 검상을 입었으나 건재했다.

    정신을 잃기 직전인 광세혈신과 비교되는 모습이었다.

    “그대가 졌소.”

    백자안이 담담히 말했다.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지만, 안색은 나쁘지 않았다.

    “으으······ 네놈이······.”

    광세혈신이 모멸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패배는 패배였다.

    지금 백자안이 다시 공격을 가하면 그의 목숨은 끝장이었다.

    “내가······ 졌다. 천마장보도는 네 것이다.”

    “고맙소. 확인해보겠소.”

    백자안이 천천히 걸어가 천마장보도를 집었다.

    그때였다.

    백자안이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며 비틀거리는 것이 아닌가.

    광세혈신이 껄껄 웃었다.

    “하하하. 어리석은 놈. 내가 천마장보도를 순순히 내줄 줄 알았느냐?”

    “으으······ 네놈이 약속을 지키지 않다니······.”

    백자안이 분노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천마장보도에 극독이 묻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독불침인 그가 중독된 것은 의외의 일이었다.

    “후후후! 나는 몇 달간 회복운공을 하면 완쾌되겠지만, 너는 이제 죽음뿐이다.”

    광세혈신이 품속에서 환약 하나를 꺼내 입에 넣었다.

    백자안의 장력에 의해 내장이 상한 그가 임시 처방으로 혈마단(血魔丹)을 복용한 것이었다.

    이 혈마단은 죽은 혈마가 남긴 것으로 기사회생의 묘약이었다.

    한 알밖에 없어 그동안 아까워서 복용하지 않았다. 지금 그는 목숨이 위태로웠기 때문에 급히 복용한 것이다.

    그 결과 광세혈신의 안색이 조금 돌아왔다.

    “후후후! 네가 당한 독은 무형지독(無形之毒)으로 아무리 만독불침의 몸이라도 막지 못한다. 천마가 직접 제조한 독으로 오직 무형검의 신체만이 영향을 받지 않지. 나는 네가 의심을 할까 봐 진짜 천마장보도에 그 독을 묻혔다. 천하에 한 방울 남은 마지막 무형지독이었지. 무형지독은 천마장보도와 함께 발견한 것으로 사실 나 또한 진짜라고 확신은 못했었다. 여봐라. 무엇하느냐? 어서 저놈을 죽여라.”

    광세혈신이 수하들에게 명을 내렸다.

    자신은 겨우 고비를 넘긴 터라 백자안을 공격할 능력이 없었다.

    살인혈객은 유사시 자신을 데리고 도주해야 했다.

    남은 것은 혈교 무사들로 이백여 명이면 충분히 백자안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존명!”

    “존명!”

    혈교 무사들이 일제히 공격을 가해왔다.

    백자안이 무명폭잠공을 일으킨 것은 그 직후였다.

    무형지독에 중독되어 내공 발현이 중지되자, 최후의 수단으로 이전처럼 무명폭잠공을 일으킨 것이었다.

    후유증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무형지독의 위력은 대단했다.

    무명폭잠공이 제대로 펼쳐지지 못하고 오히려 주화입마 현상이 발생했다.

    백자안은 단전에서 악마의 불꽃 같은 것이 타오르는 것을 느끼고 사자후를 터뜨렸다.

    뱃속에서 끓는 뜨거운 기운을 분출하기 위해서였다.

    “우우우!”

    혈교 무사들이 벼락을 맞은 듯 떨며 칠공에서 피를 뿌린 후 쓰러졌다.

    절대음공과 유사한 사자후에 당해 이백여 명의 혈교 무사들이 심맥이 끊겨 그 자리에서 즉사한 것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백자안의 가공할 사자후 때문인지 천마광장 전체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살인혈객이 광세혈신을 안고 도주한 것은 그 직후였다.

    백자안의 사자후 공격은 자신을 공격했던 혈교 무사들에게만 향한 것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그런 조절이 가능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망부석이 된 삼만 군웅들 역시 즉사를 면치 못했을 것이었다.

    백자안의 가공할 사자후에 놀란 광세혈신은 천마광장이 무너지자 급히 도주를 명했고, 살인혈객이 이에 따른 것이었다.

    그 바람에 백자안이 떨어뜨린 천마장보도를 회수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혈강시로 만들 삼만 군웅들도 아까웠지만, 탈출이 우선이었다.

    “크하하하! 아무래도 좋다. 네놈을 제거한 것으로 만족하겠다!”

    광세혈신이 살인혈객의 품에 안겨 동굴 안쪽에 있는 비밀통로 쪽으로 가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다.

    또한 그는 확실히 하기 위해 탈출 직전 천마동 전체를 무너뜨리는 기관까지 작동시켰다.

    혹시나 백자안이 살아남을까 걱정해서였다.

    우르르릉.

    천마광장을 포함해 천마동 전체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온몸이 붉은 기운에 휩싸인 백자안이 무시무시한 혈광을 뿜어냈다. 실성한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그가 광장 벽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장력을 퍼부었다.

    콰콰콰쾅.

    < [제19장] 혈교 3 > 끝

    ⓒ 행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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