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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적 반로환동-57화 (57/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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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장] 혈교

저벅저벅.

백자안이 붉은 광채가 우러나오는 동굴을 향해 걸음을 걸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혹시 모를 암습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절대 고요는 여전히 지속 중이었다.

천마마비류 역시 여전했지만 백자안의 몸에 어떤 영향도 주지 못했다.

‘신기하군. 저 동굴 속에 설마 천마의 유물이라도 있단 말인가.’

백자안이 눈을 빛내며 좀 더 동굴 쪽으로 다가갔다.

그때였다.

그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망부석이 되었다.

아니 일부러 온몸이 굳은 척한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놀랍게도 동굴 안에서 한 떼의 무리가 나오고 있었다.

모두 삼백여 명 정도였다.

“하하하! 성공했구나. 태상장로님. 축하드립니다. 삼만 구의 혈강시를 확보했으니, 교주님께서 큰 상을 내리실 겁니다.”

“하하하! 이 모두가 송 부군사 그대의 계책 덕분이오. 사람들은 우리 혈교가 복수를 위해 화산파를 총공격하려 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우리 목표는 혈강시 재료로 쓸 삼만 군웅들이었지. 삼만 혈강시가 실제 만들어진다면 사사천교의 삼만 생강시 못지않은 위력을 보일 것이오.”

“당연합니다. 한데 놈들이 어떻게 독지네 공격을 막아냈을까요?”

“나도 모르겠소. 어차피 목표는 동굴 밖에 있던 삼만 군웅이었으니 결과는 마찬가지요. 독지네로 지휘부 고수 삼백여 명을 죽인 후 군웅들을 이곳으로 유인하려 했었지. 뜻하지 않게 독지네가 몰살당해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소.”

말을 한 사람은 노인으로 붉은 수염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혈교의 태상장로 혈귀노인(血鬼老人)이었다.

십년 전 죽은 혈마 때부터 혈교의 태상장로 직을 맡아온 그는 혈교 부활의 핵심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최근 혈마의 아들이 새 교주로 정식으로 취임한 후에도 여전히 태상장로 자리를 맡고 있었다.

그의 옆에 있는 사람은 혈교 부군사 송계(松溪)란 자였다.

송계가 말했다.

“저도 뜻하지 않은 변수에 놀랐었습니다. 어느 놈이 독지네를 몰살시켰는지 모르겠지만 필경 이곳에 있을 겁니다. 가능하면 지금 이 자리에서 목을 쳤으면 하는데, 누군지 알 수 없는 게 아쉬울 따름입니다.”

“그 정도 무공을 지닌 자라면 앞으로 만들 혈강시 부대의 대장을 맡기면 되지 않겠소? 문제는 이놈들을 모두 총단으로 데려가는 것인데, 마차들이 준비되겠소?”

“네. 명을 전달하면 총단에서 마차를 보내올 겁니다. 문제는 이곳 천마동입니다. 비록 교주님이 혈비동에서 천마장보도(天魔藏寶圖)를 발견하셔서 이곳을 우리가 거점으로 삼을 수 있었으나, 정작 천마시(天魔匙)가 없어 천마석실 안에는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혈강시로 만들 삼만 군웅을 데리고 가는 것만으로는 너무 아쉽습니다.”

“천마석실 문제는 교주님께서 해결할 문제요. 조만간 교주께서 신공을 대성하시면 분명 천마시가 없어도 천마석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오. 그때가 되어 교주님이 천마의 무공을 연마하게 된다면 마교 역시 우리가 접수할 수 있을 것이오. 우리는 이곳의 상황을 교주님께 그대로 보고 드리면 될 것이오.”

“알겠습니다. 하기야 천마장보도 덕분에 우리가 천마동 내부의 기관 조종 방법을 알 수 있었지만 다른 놈들은 어림없지요. 물론 암기 기관과 독지네들은 모두 파괴되었지만, 자동 설계에 따라 몇 달 안에 다른 살인 기관으로 바뀔 겁니다. 무엇보다 이곳 천마광장에 천마마비류가 깔려 있으니 아무도 들어올 수 없지요.”

“물론이오. 함부로 들어왔다간 아무리 천하의 고수라도 망부석이 되고 말 테니까. 사실 우리 역시 천마장보도에 적힌 대로 미리 해약을 만들어 복용했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이놈들처럼 모두 망부석이 되었을 것이오. 이대로 두면 사흘이면 모두 사망하게 되는 것이오?”

“네. 우리 혈강시는 굳이 생강시 상태가 필요하지 않으니 이놈들이 죽든 말든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어차피 혈강시 제조과정에서 독물주입으로 죽게 될 테니까요.”

“그렇군.”

혈귀노인이 득의한 미소를 지었다.

비록 유인 작전이었지만, 고작 삼백 명의 인원으로 삼만이 넘는 무사들을 제압한 것이었다.

삼만 군웅 중에는 특히 화산파 병력의 팔 할 정도가 포함되어 있었다.

혈교 측의 의도대로 군웅들이 모두 죽게 된다면 화산파는 거의 멸문 수준에 달할 것이 분명했다.

그때 삼백여 혈교 무사 중 한 명이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그는 살인혈객(殺人血客)이란 자로 혈교에서 길러낸 특급 살수였다.

그의 손에 화산파 고수 열 명이 암살을 당했다. 악미미 또한 그에게 당한 바 있었다.

살인혈객의 나이는 올해 백세로 십 년 전 혈교와 무림맹의 전쟁 중에는 폐관 중이라 참전하지 못했다.

“저들 중 만박서생과 매화검선, 그리고 장대선생 세 사람은 지금 바로 죽여야 합니다. 허락해주십시오.”

“으음, 살인혈객 그대의 말도 일리가 있소. 하지만 천마마비류에 당하면 아무리 천하의 고수라도 꼼짝할 수 없소. 물론 지금 죽여도 혈강시 제조가 가능하긴 하지만, 특수 독물을 주입해 죽이는 것이 최적의 혈강시 제조의 비법이라고 들었소. 이는 교주께서 최근에 혈비동에서 우연히 발견한 혈강시 제조술이 적힌 비급에 적혀 있던 내용이오. 그러니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오.”

“죽여야 합니다. 특히 만박서생 저자는 만만히 볼 자가 아닙니다. 화근의 싹을 잘라야 합니다.”

살인혈객이 내공을 끌어올렸다.

혈귀노인이 안색을 굳혔다.

자신이 비록 나이도 많고 지위도 높지만, 살인혈객이 충성을 바치는 사람은 바로 혈교주뿐이었다.

‘이놈이 나를 우습게 보는구나. 교주님의 신임을 독차지하고 있는 놈이니 이만한 일로 척을 질 필요는 없겠지.’

혈귀노인이 안색을 폈다.

“하하하. 그렇게 하시오. 살인혈객 그대는 역시 철저하다니까.”

“감사합니다.”

겉으로는 사십 대로 보이는 살인혈객이 고개를 조금 숙인 후 우수를 뻗었다.

순간, 장대선생과 만박서생, 매화검선 세 사람의 신형이 둥둥 허공에 떠올랐다.

세 사람은 일자로 모여 허공에 정지했다. 살인혈객은 혈옥수로 이들의 심장을 정지시킬 생각이었다.

그의 좌수가 붉게 물들었다.

혈옥수를 대성한 사람답게 붉은 색깔이 선명했다.

그때였다.

만박서생, 매화검선, 장대선생 세 사람의 신형이 한 차례 꿈틀거린 후 뒤로 날아갔다.

살인혈객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웬 놈이냐?”

송계가 소리쳤다.

하지만 삼만 군웅 중 움직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조금 전의 조처는 백자안이 한 일이었다.

만박서생 등 세 사람의 죽음을 그대로 두고만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지금 급선무로 여기고 있는 것은 천마마비류의 해약을 확보하는 일이었다.

혈교 놈들의 음모를 파악한 지금 당장에라도 공격을 가할 수 있지만, 이후의 일까지 대비해야 했다.

하지만 만박서생 등이 죽음의 위기에 처하자 그의 계획도 어그러졌다.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휴우! 역시 혈교의 짓이었군.”

백자안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삼만 군웅 속에서 움직인 사람은 그 혼자뿐이었기에 표시가 확실히 났다.

“네놈은?”

송계가 눈짓하자 혈교 무사 삼백여 명이 재빨리 움직여 백자안을 포위했다.

천마마비류에 당하지 않은 사람이라 처음부터 전력을 기울인 셈이었다.

포위망에 참가하지 않은 사람은 혈귀노인과 살인혈객, 송계 세 명뿐이었다.

“혹시 네놈이 독지네 떼를 몰살시킨 놈이냐?”

혈귀노인의 물음이었다.

백자안이 담담히 말했다.

“그렇소. 본인은 영웅무관의 사범 무정공자라고 하오.”

“무정공자?”

“그렇소. 무정 사범이라 부르면 될 것이오.”

백자안이 여유 있는 태도로 말했다.

“무정공자든 무정 사범이든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네놈이 제 무덤을 팠다는 것이지. 어떻게 천마마비류에 당하지 않을 수 있었느냐?”

“본인은 만독불침의 몸이오. 좋은 말할 때 어서 군웅들을 회복시키시오. 그러면 이번 한 번 만은 그냥 보내주겠소.”

백자안이 내공을 끌어올렸다.

이왕 이렇게 된 이상 적들을 무력으로 제압하는 길밖에 없었다.

그러는 과정에 지휘부 고수들에게 섭혼술을 펼치든지 해서 천마마비류의 해독 방법을 알아낼 생각이었다.

“하하하. 일개 무관 사범이 우리 혈교의 행사를 막아서다니. 가소롭구나. 선천적으로 독이 통하지 않는 신체 같은데, 그렇다고 네놈이 우리 상대가 된다고 생각하느냐?”

혈귀노인이 가소로운 표정을 지었다.

처음에는 그 역시 제법 놀랐다. 하지만 무정공자라는 별호를 듣고 안심을 놓았다.

처음 들어보는 별호였다.

물론 독지네 떼를 거의 혼자서 제거한 장본인이긴 하나, 자신을 비롯해 이번에 화산에 파견 온 혈교 무사들은 하나같이 일당백이었다.

화산파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소수 정예 삼백 명만 왔을 뿐이지, 그 전력은 화산파 전체를 멸문시킬 정도였다.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하지 않겠소? 사실 이미 그대들은 화산파 고수들을 암살하는 죄를 저질렀소. 천마마비류의 해약을 내놓지 않는다면 강제로 찾아낼 수밖에 없소.”

백자안이 무심히 말했다.

그때였다.

송계의 눈짓에 따라 혈교 무사 두 명이 빠르게 다가왔다.

스스슷.

눈 깜박할 사이에 백자안 앞까지 온 두 사람은 검을 뽑아 그대로 휘둘렀다.

쐐액. 쐐액.

양 측에서 단순하게 검초를 날린 것이지만 당사자인 백자안으로서는 피하기 힘든 공격이었다.

사실 이번에 온 혈교 무사들은 혈교의 전투조직인 혈검대(血劍隊) 소속으로, 정예 중의 정예였다.

백자안이 양손으로 두 검을 옆으로 쳐낸 후 손바닥을 뒤집어 무사들의 목을 가격했다.

매우 단순한 동작.

하지만 공격을 가해온 혈교 무사들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다른 혈교 무사들이 부축했으나 이미 목뼈가 부러져 즉사한 후였다.

“쳐라!”

송계가 노성을 터뜨렸다.

삼백 혈검대 무사들이 일제히 공격을 가해왔다.

백자안이 신형을 솟구치며 검을 뽑아 그대로 수평으로 휘둘렀다.

순간, 앞서 달려오던 혈교 무사 다섯의 목이 날아갔다.

목을 잃은 다섯 육신이 서너 걸음 더 걷다가 썩은 짚단처럼 쓰러졌다.

그 후는 일방적인 도살이었다.

백자안이 팔대무공 중 하나인 무명보를 펼치며 검을 계속 휘두른 결과였다.

백자안은 삼만 군웅들을 혈강시로 만들려는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 생각이 전혀 없었다.

마치 양 떼 속의 호랑이처럼 혈교 무사들 속을 누비며 무차별적으로 검초를 뿌렸다.

한 번에 어김없이 대여섯 개의 목이 떨어졌다.

설마 하던 혈귀노인, 송계 등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삼백 명의 검수가 한 명에게 합공을 가하고 있던 터라 처음엔 조금 미안한 생각도 들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스스슷.

스팟!

흡사 환영처럼 백자안의 신형이 이곳저곳에서 나타났다. 그의 모습이 보일 때마다 어김없이 검광과 함께 혈교 무사들의 목이 우수수 떨어졌다.

그렇게 일각도 채 되지 않아 혈교 무사 백 명이 주검으로 변했다.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었다.

혈교 무사들은 백자안의 옷깃 하나 건드릴 수 없었다.

살인혈객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소리쳤다.

“모두 뒤로 물러나라. 저놈은 내가 상대하겠다.”

혈교 무사들이 급히 물러나자, 살인혈객이 검을 수직으로 세운 채 무릎을 구부리지 않고 미끄러지듯 나왔다.

백자안의 무공을 봤지만, 전혀 기죽은 모습이 아니었다.

백자안 역시 검을 비스듬히 든 채 태산같이 우뚝 섰다.

“귀하가 화산파 고수 분들을 암살했다고 했소?”

“그렇다. 그놈들은 약했다. 그래서 내 손에 죽은 것이다. 물론 전대 교주님을 시해한 놈들 중에 화산파 전대 장문인도 있어 복수를 겸한 것이다. 문제가 있느냐?”

“없소. 귀하의 무공이 무척 강해 보이니 한 번의 대결로 승부를 겨룹시다.”

“좋다. 바로 시작하지. 두 사람 중 강한 자가 살아남을 것이다.”

< [제19장] 혈교 1 > 끝

ⓒ 행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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