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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적 반로환동-50화 (50/250)
  • < [제16장] 무자천서 4<2권끝> >

    “너희 신입 3반을 맡아줄 담임 사범님이 정해졌다. 무정공자님이시다.”

    짝짝짝.

    백여 명의 영웅무관 신입 관원들이 일제히 박수를 보냈다.

    입관식이 끝난 지도 벌써 열흘째.

    무관 규율 등 기초수업을 마친 그들이 마침내 담임 사범을 맞이하게 된 것이었다.

    박수를 보내는 관원 중에는 백소영과 백리설아의 모습도 보였다.

    한편 그들이 수업을 받는 곳은 잠룡각(潛龍閣) 대청으로 주로 신입관원들이 수업을 받는 장소였다.

    “무정공자라고 한다. 앞으로 무정 사범님이라 부르면 될 것이다.”

    소개를 해준 총집사 영웅객이 나가자, 홀로 대청에 남은 무정공자, 즉 백자안이 담담히 말했다.

    그의 눈길은 자연스럽게 백소영과 백리설아에게 가 있었다. 아직 두 사람은 자신의 정체를 모르고 있었다.

    숙고한 결과 당분간 아무에게도 정체를 알리지 않기로 한 것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무림맹 지휘부의 압박이 실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지난 열흘가량의 시간 동안 백자안, 김지혜, 철혈객 세 사람은 곧바로 수업에 투입되지 않고 기초 사범 교육을 받았다.

    그 주된 내용은 바로 관원들에게 가르칠 육합 계열 무공이었다.

    물론 사범 시험에 합격할 수준이라면 육합 계열을 모두 익혔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실제 세 명의 합격자 모두 육합 계열 무공을 알고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영웅무관이 육합 계열 무공을 잘 가르치는 것으로 유명했기 때문이었다.

    백자안은 직접 배웠으니까 말할 필요도 없었고, 김지혜 역시 의외로 상당히 많은 중원 무공을 알고 있었다.

    문제는 철혈객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영웅무관 사범에 지원하기 전 육합계열 무공을 스스로 연마한 바 있었다.

    육합 계열 무공이 수록된 비급은 고서점 등에서 비싸지 않은 돈으로 팔고 있었다. 중소 무관에서도 얼마든지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영웅무관에서 가르치는 육합 계열 무공은 특별함이 있었다.

    그 특별함을 지난 며칠간 기초 사범 교육에서 배운 것이었다.

    물론 아무리 사범이라도 그 특별함 모두를 며칠 만에 완벽히 깨우치는 것은 무리였다.

    하지만 신입 관원들에게 가르칠 수준은 충분했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세 명 모두 각 반의 담임 사범으로 투입된 것이었다.

    참고로 사범들은 육합 계열 무공과 같은 기초 무공을 공통과목으로 가르치기도 하지만, 따로 수업을 개설할 수도 있었다. 자신이 익힌 여러 무공을 가르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공통과목보다는 수업료가 많이 차이가 났다.

    특히 한 번씩 장로급 고수의 특강이 있기라도 하면 수업을 들으려는 관원들이 폭주하기도 했다.

    영웅무관 내에서는 그러한 수업을 모두 특강이라 불렀다.

    하지만 특강은 수업료가 매우 비쌌다.

    집안 형편이 어려운 관원들은 특강을 듣기 어려웠다.

    백자안의 경우만 해도 관원이던 시절 단 한 번도 특강을 들은 적이 없었다.

    형편도 형편이었지만 육합계열 무공만 깊이 있게 연마해도 무림맹 무사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를 비웃는 관원들도 무척 많았으나, 백자안은 그런 자들보다 앞서 무림맹 입맹 시험에 합격하는 쾌거를 거두었다.

    하지만 그것이 한계였다.

    제대로 된 내공심법을 배운 적이 없는 그는 실전에 약할 수밖에 없었다.

    입맹 시험에서 꼴찌를 했고,  입맹 이후 있었던 정기평가에서도 겨우 낙제를 면할 정도였다.

    그렇게 별 발전 없이 경계 근무만 서다가 첫 휴가를 가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지난 며칠간 백자안이 생각한 것이 바로 심법의 창안이었다.

    육합심법(六合心法).

    미리 이름을 정해두었지만, 그가 연마하고 있는 무명심법의 원리를 이용해 육합계열 무공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기초심법을 만들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육합심법을 창안하게 되면 이를 공통과목에 넣어 금전적인 추가 부담이 없게 할 계획이었다.

    백자안이 담담히 말했다.

    “오늘부터 너희들을 맡게 된 것을 좋은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르칠 무공은 육합계열 무공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육합계열 무공은 우리 영웅무관이 자랑하는 공통 수업과목이다. 관례로 담임 사범은 육합계열 무공을 모두 가르치게 된다. 질문이 있는 사람은 해라.”

    “내공심법은 언제 배우나요?”

    스무 살가량의 잘생긴 청년 관원이었다.

    이름은 원천강(元天姜)으로 신입 3반의 반장이었다.

    이미 사전 조사를 통해 신입 3반 관원들의 이름과 얼굴을 모두 알고 있는 백자안이 미소를 지었다.

    “네가 반장 원천강이냐?”

    “네. 무정 사범님.”

    원청강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을지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하하하. 그렇게 놀랄 것 없다. 나는 너희들의 이름과 얼굴을 모두 알고 있으니까. 어디 그것뿐이겠냐? 생활기록부를 통해 집안 상황까지 대충 알고 있다. 물론 내일부터 조금씩 개별 면담을 진행하겠지만,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든 내게 상의를 하도록 해라. 알겠느냐?”

    “네.”

    “네.”

    관원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하지만 아직 불만 어린 표정이 다 가신 것은 아니었다.

    가장 큰 불만은 백자안의 무공이 신입 사범 중 가장 약하다는 것이었다.

    자신들의 실력은 생각 안 하고 사범의 무공부터 평가하려는 태도였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었다.

    수련비는 1, 2, 3반이 모두 동일하기 때문이었다.

    백자안 역시 그 점을 알고는 있었다.

    그래서 점차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특히 그가 창안할 예정인 육합심법은 일단 자신이 맡은 반에게만 가르쳐 줄 계획이었다.

    “으음, 먼저 천강의 질문에 대해서 답해야겠구나. 아는 사람은 잘 알겠지만, 내공심법은 공통과목에 없다. 심법을 배우고 싶은 사람은 특강을 신청해서 따로 배워야 할 것이다. 다만 조만간 너희에게 먼저 내가 따로 내공심법을 전수해줄 생각이니 그렇게 알고 있어라. 내가 가르칠 심법은 육합계열 무공에 특화된 것으로 그 이름은 육합심법이라 한다. 아직 미완성이지만 곧 완성이 되면 본격적으로 전수해주겠다.”

    와아아.

    처음으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게 정말인가요?”

    백소영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그녀는 백자안을 통해 내공심법을 배우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돈이 많이 드는지 알고 있었다.

    “물론이다. 하지만 너무 기대는 하지 마라. 아직 육합심법을 창안한 것은 아니니까.”

    “그건 좀 그렇긴 하네요. 혹시 그냥 말로만 그러시는 것은 아닌가요? 내공심법을 창안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그것도 꼴찌로 합격한 사범님이 가능한 일이 아니지요.”

    백소영의 말에 몇몇 관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백자안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백소영이 심술을 부릴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대담하게 담임 사범을 비꼴 줄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백소영은 그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내심 수업 전에 자신을 따로 언급해주리라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백자안은 관원들을 똑같이 대우해주리라 생각했기에, 일부러 백소영과 백리설아를 지목해서 말을 건네지 않았다.

    옆에 있던 백리설아가 백소영에게 눈짓했다.

    더는 무례를 범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백소영 역시 실수를 했다고 생각했는지 더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백자안이 이제는 그녀를 놔두지 않았다.

    이번 기회에 버릇을 좀 고쳐줄 생각이 든 것이었다.

    “백소영이라고 했나?”

    “네. 저에 대해 아시나요?”

    “물론이다. 네 오라비가 무림맹에서 쫓겨난 백자안이냐?”

    “흥! 아시고 계셨군요. 한데 아무리 사범님이라 하셔도 너무 말씀이 심하시네요. 자안 오라버니가 억울하게 추방령을 당한 것은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에요. 솔직히 말해서 사범님하고 제 오라버니는 비교도 할 수 없잖아요?”

    “무슨 비교 말이냐?”

    “무공 말이에요. 그러니까 다른 말씀은 다 괜찮지만 제 오라버니를 비웃는 말씀만은 말아주세요. 안 그러면······.”

    “안 그러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냐? 지금 네 오라비를 믿고 내게 협박을 하겠다는 것이냐?”

    “······.”

    백소영이 당황하며 얼굴을 붉혔다.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상황이 점점 안 좋아지고 있었다.

    사실 그녀는 표현과 다르게 담임 사범을 좋게 보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눈빛이 백자안과 많이 닮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주목을 받고 싶어 하는 주목병이 이번에도 문제였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심술이 나서 한마디 했을 뿐인데, 백자안이 그걸 걸고넘어진 것이었다.

    “백소영. 지금 보니 네가 오라비 명성을 믿고 어깨에 힘이 들어간 것 같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 실력이란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특히 백소영 너의 입관 성적은 이반에서도 꼴찌다. 실력자가 되려면 겸손한 마음이 필수이니, 앞으로 교만한 마음을 버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알겠느냐?”

    “네.”

    백소영이 기죽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더는 백자안에게 대들 배짱은 없어 보였다.

    백자안이 기가 죽은 백소영을 보고 아차 싶어 다시 말했다.

    “백소영. 사실 너의 자질은 이반에서 일, 이등을 다툰다. 내 말만 잘 들으면 장차 여협으로 대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정말인가요?”

    백소영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렇다. 너와 백리설아 두 사람의 자질이 매우 좋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은 자질이 아무리 좋아도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노력은 모든 것을 정복한다. 그 노력에 겸손까지 더해지면 그 사람의 발전은 끝이 없을 것이다. 괜히 노겸군자(勞謙君子)란 말이 있는 게 아니지. 모두 알겠느냐?”

    “네.”

    관원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이제 남은 것은 백자안이 실력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진정한 실력을 보여주는 것.

    그것은 가장 확실히 관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길이었다.

    백자안이 검을 뽑아 들었다.

    대청에는 수업용으로 사용하는 바위들이 십여 개 있었다.

    백자안은 그중 한 개를 손으로 가리켰다.

    대문짝만한 크기로 그 무게만 해도 사람 서너 명을 합쳐야 할 것 같았다.

    한데 백자안이 손으로 가리키자마자 바위가 데굴데굴 굴러왔다.

    와아아.

    관원들이 신기해하는 가운데, 백자안이 육합검법을 펼쳐 바위를 그대로 잘랐다.

    댕강.

    마치 무처럼 둘로 갈라진 바위가 그 속을 드러냈다.

    놀라운 광경은 이후 나타났다.

    분명히 둘로 갈라졌던 바위가 다시 네 조각으로 나뉘는 게 아닌가.

    와아아.

    짝짝짝.

    관원들이 탄성과 함께 박수를 보냈다.

    사실 아무리 꼴찌반이라고 하나 이미 기초 무공을 어느 정도 습득한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그들 눈에도 백자안이 검을 한번 휘두르는 것밖에 보지 못한 것이다.

    “육합검법은 육합 계열 무공의 꽃이라 할 수 있다. 육합검법을 달통한 사람을 육합검신(六合劍神)으로 부르기도 하지. 일단은 내일부터 육합보부터 시작할 것이니 그렇게 알고 있도록!”

    “네.”

    관원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역시 조금 전 한 수 보여준 것이 통한 것 같았다.

    그때였다.

    대청 문이 열리며 영웅객이 다시 들어왔다.

    굳은 안색으로 봐서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았다.

    그가 두리번거린 후 백소영을 발견하고 다가갔다.

    “백소영 관원.”

    “네. 총집사님.”

    “백자안 대협은 집에 계신가?”

    “아뇨. 오늘 중요한 일이 있다며 장원을 떠났어요. 한두 달 걸릴 수도 있다고 하던데요.”

    “아! 어디 간다고 말씀은 없으셨나?”

    “화산 쪽으로 간다고 했어요.”

    백소영의 말에 백자안이 눈을 빛냈다.

    사실 오늘 아침 장원에서 나오면서 가족들 모두에게 일이 있어 당분간 집에 오기 힘들다고 말한 것이다.

    그 이유는 조금 전 백소영이 한 말대로 사범 일을 하면서 도중에 휴가를 받아 화산에 가보기 위해서였다.

    지도에 그려져 있는 동굴을 찾아가 무엇이 있는지 확인할 생각이었다. 물론 당분간 영웅무관에 기거를 하면서 업무에 숙달하려는 이유도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신규사범은 첫 수업 후 최소 한 달간 숙식을 무관에서 해결해야 하는 불문율이 있었다.

    “으음, 이미 소식을 듣고 가신 것인가.”

    영웅객의 말에 백소영이 물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건가요?”

    “조금 전 들은 소식에 의하면 화산옥녀 악 소저가 암습을 당해 유명을 달리했다고 하는구나. 혈교의 소행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하니 보통 일이 아닐 듯하다.”

    <제2권 끝>

    < [제16장] 무자천서 4<2권끝> > 끝

    ⓒ 행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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