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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적 반로환동-49화 (49/250)
  • < [제16장] 무자천서 3 >

    내상을 이유로 연회 도중 영웅각에서 나온 백자안은 서둘러 풍운장원으로 돌아갔다.

    가족들이 이미 도착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백소영 혼자 있었을 뿐 아직 아무도 오지 않았다.

    백자안은 실망스러우면서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안도한 것은 자신이 늦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었다.

    “오라버니. 어딜 갔다가 온 거야? 무슨 바쁜 일이 있는 거야? 어제 나 입관식 때도 말도 없이 사라졌다가 돌아오더니, 오늘도 그러네.”

    “미안하다. 바쁜 일이 있었다. 아직 아버지, 어머니, 룡이, 곽 선생님은 도착하지 않았느냐?”

    “응. 나도 걱정이 돼서 사범 대회 끝나고 바로 왔는데, 아직 안 오셨네.”

    “사범 대회?”

    백자안이 짐짓 모르는 척 질문을 던졌다.

    백소영이 웃음을 지으며 오늘 대회에서 있었던 일들을 알려주었다.

    대회 결과에 대해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주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매우 뜨거웠다는 점을 강조했다.

    “호호. 글쎄 사람들이 내 미모에 대해 많이 놀라더라고. 오늘 첫 수업 때도 남자 관원들이 나에게 찝쩍대는 경우가 많았고 말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평범한 용모로 역용이나 할 것 그랬어. 안 그래도 오라버니 때문에 주목을 받고 있는데 미모까지 겹쳐서 영 불편해.”

    “하하하. 자랑도 여러 가지다. 역용술이 얼마나 어려운 데 그렇게 말을 쉽게 하느냐? 그래 너보다 아름다운 관원이 없었다는 말이냐?”

    “호호. 글쎄. 아, 맞다. 내가 말 안 했구나. 오늘 백리 소저가 특별 관원으로 들어왔어.”

    “특별 관원?”

    백자안이 다시 모르는 척 물었다.

    자신 역시 대회장에 있어 다 알고 있었지만, 백소영을 속여 먹는 것이 매우 재미가 있었다.

    물론 특별 관원의 의미까지 그가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라버니는 영웅무관 출신이면서 그것도 몰라? 하기야 이번에 새로 생긴 제도라고 하더군. 처음엔 나도 잘 몰랐는데, 특별 관원은 대체로 일반적인 무공을 배우기 힘든 사람이 특별 수련비를 내고 사범 한 분에게 일대일로 지도를 받는 것을 말한다고 하더군. 오라버니가 더 잘 알지만 백리 소저가 절맥을 앓고 있잖아. 한데 저번에 악양 전투에서 무공의 필요성을 많이 느꼈던 모양이더라고. 국주님께서도 당분간 표행을 쉬고 무공을 배우라고 적극적으로 추천하셨다고 하더군.”

    “설아를 직접 만나봤느냐?”

    “응. 대회 끝나고 대회장 정리할 때 내가 가서 인사를 나눴지. 오늘 부모님과 동생이 장원에 도착할 거라고 말해주니, 내일 저녁에 꼭 방문하겠다고 하더군.”

    “그랬구나. 그래 수업을 받을 만하더냐?”

    “오늘 첫날인데 뭐 알겠어. 게다가 마침 사범 대회가 열리는 날이라 아직 담임 사범님이 정해지지도 않았어.”

    “담임 사범이라······.”

    “응, 원래 바로 담임 사범을 정해야 하는데 오늘 새로 세 분의 사범이 뽑힌다고 기다리라고 하셨어.”

    “누가?”

    “누구긴 누구야. 총집사님이지.”

    “새 사범 중 한 분이 담임 사범이 되겠군.”

    “그럴 가능성이 높을 거야. 그래서 오늘 눈에 불을 켜고 사범 대회를 구경했지.”

    “그 결과는?”

    “재수 더럽게 됐어. 내가 속한 반은 신입관원 중에서도 가장 무공이 약한 관원들이 속한 꼴찌 반인데, 아무래도 그 무정공자란 사람이 담임 사범을 맡을 것 같아.”

    “무정공자라······.”

    백자안이 속으로 뜨끔했다.

    담임 사범까지 맡게 된다면 백소영에게 사실대로 말해줘야 할지 고민되지 않을 수 없었다.

    “설아도 너와 같은 반이냐?”

    “응. 일단은 특별 관원도 우리 반에 속해 기초를 배우게 되지. 그러다가 백리 소저의 몸 상태에 맞게 지도해주실 특별 사범을 찾게 될 거야. 물론 무정공자 그자가 잘 가르쳐주면 계속 그 자에게 가르침을 받겠지.”

    “사범님에게 그자가 무슨 말버릇이냐?”

    “호호. 오라버니가 왜 흥분해? 오라버지가 무정공자라도 돼? 난 그냥 인상이 안 좋아서 그래. 하지만 아무리 안 보는 자리라도 담임 사범님이 될 분에게 그자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됐네. 그분이라고 하면 되지?”

    “그래. 어찌 될지 모르겠지만 무정공자란 분에게 지도를 받게 되면 최선을 다하도록 해라. 수련비가 비싸니 게으름 피울 생각은 하지 말고.”

    “알았어. 피.”

    백소영이 혀를 쭉 내미는 바로 그 순간.

    대문 쪽에서 인기척이 나며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오셨나 보다.”

    백소영이 얼른 뛰어나갔다.

    백자안 역시 매우 기뻐하며 대문 쪽으로 갔다.

    진법을 설치해뒀기 때문에 대문 두드리는 소리는 어느 전각에서도 크게 들을 수 있었다.

    잠시 후 문을 열자 백자안과 백소영 두 사람 모두 깜짝 놀랐다.

    문 앞에는 애타게 기다리던 가족들과 곽 선생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기습을 당했는지 옷이 찢기고 군데군데 피가 묻어 있었다.

    특히 곽휘의 상태가 매우 심했다.

    곳곳에 상처가 생겨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자안아!”

    어머니 유씨부인을 부축한 백청이 힘겹게 말했다.

    백자룡을 등에 업고 있는 곽휘가 말했다.

    “백 공자. 오는 도중 기습을 당했네. 어서 안으로 들어가지.”

    “네.”

    * * *

    풍운장원의 전각 중 가장 큰 곳인 풍운각(風雲閣)에는 밤늦도록 불이 밝혀져 있었다.

    백자안이 부모님과 백자룡, 곽휘 네 사람을 치료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진찰 결과 다행히 백청과 유씨부인, 백자룡의 상처는 깊지 않았다.

    검상이 몇 개 가볍게 있었으나, 큰 상처는 아니었다.

    다만 괴한의 기습을 받아 놀란 상황에서 급히 풍운장원까지 오느라 기진했을 뿐이었다.

    백자안은 매우 안도했다.

    치유력이 강한 내공으로 그들 세 사람을 한 시진 만에 거의 완쾌시켰기 때문이었다.

    다만 곽휘의 부상은 매우 심해 최소 열흘 정도의 회복운공이 필요해 보였다.

    그나마 이전처럼 백자안의 내공 치료 덕분에 혼자서 회복운공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다행이었다.

    “휴우! 고맙네. 이번에도 자네 신세를 지게 되는군. 며칠 치료하면 나을 수 있을 것 같네.”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백자안이 백소영과 함께 앉아 곽휘에게 물었다.

    백청과 유씨부인, 백자룡 세 사람은 백자안이 치료 후 일부러 수혈을 짚어 편히 잠을 자고 있었다.

    그들 세 사람은 잠을 푹 자고 난 후 완쾌가 되어 있을 것이라 큰 걱정은 없었다.

    문제는 기습 공격을 한 놈들의 정체였다.

    곽휘가 말했다.

    “낙양성에 거의 도착했을 때였네. 성 밖 천년죽림(千年竹林)이란 곳에서 잠시 쉬고 있을 때였지.”

    “그때 기습을 당한 겁니까?”

    “그러하네. 놈들은 백 명 정도였네. 복면을 쓰고 있었는데, 내가 놈들의 독에 당한 것이 화근이었네.”

    “알고 있습니다. 내공을 흩트리는 성분이 든 독이더군요. 제가 말끔히 제거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놈들의 무공은 사실 그다지 높지 않았네. 하지만 내가 내공 발현이 제한된 상태라 크게 불리한 싸움이 시작되었지. 게다가 놈들이 자네 부모님과 룡이를 자꾸 죽이려 하기에 내가 집중을 더 못했네. 결국 나 혼자 놈들 스무 명 정도를 죽이고 놈들에게 혈도를 찍히고 말았지.”

    “아!”

    “아!”

    백자안과 백소영이 동시에 탄성을 터뜨렸다.

    상황이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던 것이다.

    “내가 혈도를 찍히자, 놈들이 여유를 찾았는지 자네 부모와 룡이 역시 혈도를 찍고 말았네. 이전에 마적 떼에게 당했을 때와 마찬가지였지.”

    “혹시 놈들이 천년색문의 잔당들이었습니까?”

    “그러하네. 놈들이 최후로 남은 천년색문 잔당이었네. 스스로 밝히더군. 그들은 자네에게 복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가족들을 대신 죽이려고 했던 것이지.”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외부 도움을 받은 겁니까?”

    “물론이네. 놈들이 나부터 참수하기 직전, 귀면탈을 쓴 소녀 한 명이 나타났네.”

    “아! 그녀가 혹시 흡수대법을 사용했습니까?”

    “그걸 어떻게 알았나? 귀면탈 소녀가 갑자기 나타나 손짓을 몇 번 하니까 놈들의 머리가 납작해지며 그대로 터지고 말았네. 대단히 무서운 무공이었지.”

    “그 소녀는 저도 몇 번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다음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녀는 우리의 혈도를 풀어주고 그냥 갔네.”

    “남긴 말은 없었습니까?”

    “있었네. 그 말 때문에 그녀가 어린 소녀란 것을 알았지.”

    “무슨 말이었습니까?”

    “백 공자 자네에게 전하라고 하더군. 나중에 자기 부탁을 하나 들어줘야 한다고.”

    “아, 혹시 말을 짧게 하지 않았습니까?”

    “처음에 나타났을 때 한마디 하긴 했네. 지랄하네라고 하더군. 천년색문 잔당들을 보고 한 말 같았네. 하지만 이후에 한 말은 정상적이었네. 말을 짧게 하는 것은 장난 비슷했네. 습관 같기도 했고.”

    곽휘가 당시 상황을 좀 더 설명해주었다.

    결론은 간단했다.

    백자안의 가족과 곽휘가 천년색문 잔당의 공격을 받았고, 죽음 직전 귀면탈 소녀의 도움을 받아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는 것이었다.

    ‘내가 그녀에게 빚을 졌구나. 도의에 어긋나지 않은 일이라면 설사 내 능력이 닿지 않는 일이라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백자안이 눈을 빛냈다.

    “이제 곽 선생님도 쉬십시오. 천년색문의 마지막 잔당을 제거했으니 후환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오히려 잘 되었습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사사천교 쪽인데, 그쪽 역시 잠잠하니 당분간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알겠네.”

    그때였다.

    잠을 자던 백청과 유씨부인 그리고 백자룡이 깨어났다.

    회복이 생각보다 빨라 예상보다 훨씬 일찍 일어난 것이었다.

    “어떠십니까?”

    “나는 괜찮다.”

    “나도 다 나은 것 같구나. 상처도 다 아물어 흔적도 거의 없구나.”

    “형. 나도 멀쩡해.”

    “다행입니다.”

    백자안이 안도하며 다시 세 사람의 몸 상태를 점검했다.

    “안심해도 될 것 같습니다.”

    “우리보다 곽 선생님이 많이 다치셨다.”

    “하하하, 저는 괜찮습니다. 백 공자의 내공이 특효약이라 며칠 쉬면 완쾌될 겁니다.”

    곽휘가 껄껄 웃었다.

    목소리에 힘이 담겨 있어 그의 말이 사실인 것 같았다.

    백소영이 마침 미리 준비해둔 새 옷을 가져왔다.

    새 옷을 갈아입은 네 사람은 식사하며 백자안, 백소영과 함께 이야기꽃을 피웠다.

    다행히 이전에 마적 떼의 습격을 받은 후 적응이 되었는지 정신적인 충격은 크지 않은 것 같았다.

    “우리는 너희를 보지 못하고 꼭 죽는 줄 알았다. 그 귀면탈 소녀와는 아는 사이냐?”

    “그건 아닙니다. 마교 쪽 사람으로 추정이 되는데 그동안 적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그녀를 최소한 세 번은 도와줄 생각입니다. 저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가족을 지켜주었으니까요. 이제 이곳에 온 이상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백자안이 풍운장원에 설치한 진법을 이용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이후 백소영이 영웅무관에 입관한 일도 이야기해주었다. 그 일도 큰 화제가 된 것은 물론이었다.

    그렇게 밤이 깊어갔다.

    얼마 후 모든 사람이 한방에서 잠을 청했다.

    백자안은 가부좌를 한 채 눈을 감고 조용히 경계를 섰다.

    예상대로 적의 침입은 없었다.

    ‘장기적으로 고수들을 장원에 좀 더 배치해야겠다. 그 방법은 좀 더 고민해봐야겠군.’

    백자안이 다시 한번 놀란 마음을 다스리며 깊은 묵상에 들어갔다.

    < [제16장] 무자천서 3 > 끝

    ⓒ 행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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