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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적 반로환동-47화 (47/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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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장] 무자천서

둥둥둥.

“두 번째 관문은 바로 경공입니다. 1차 예선을 통과한 응시자들은 모두 비무대 위로 올라와 주시오.”

와아아.

짝짝짝.

함성과 박수 소리와 함께 백자안, 김지혜 등 1차 관문 통과자 스물두 명이 비무대 위로 올라왔다.

앞서 1차 관문 때 내공종이 가루로 변해 큰 소동이 일었으나, 지금은 깨끗하게 청소가 된 후였다.

사실 치울 것도 없었다.

먼지가 된 내공종의 잔해가 바람과 함께 흩어졌기 때문이었다.

영웅객은 그 이유가 그동안 누적된 타격이라 단정 지었다.

마침 무림맹 측에서 내공종 관리 담당자가 와 있었기 때문에 그 문제는 잘 해결된 것 같았다.

이제 관심은 다시 응시자들에게 쏠렸다.

어떤 식으로 경공을 측정할 것인지 궁금한 표정들이었다.

“방식은 간단합니다. 응시자 모두 비무대 위 삼장 높이 허공에 떠 있는 겁니다. 최종 결선에 오를 여덟 명이 남을 때까지 이번 시합은 진행될 겁니다. 사실 다른 예선 시합도 준비가 되어 있었으나, 시간 관계상 이번 관문을 최종 예선으로 정하게 되었음을 미리 알립니다. 몸을 삼장 높이에 띄운 상태에서 절대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는 안 됩니다. 몸을 가볍게 하는 것이라 전체적으로 경신법(輕身法)을 측정하는 것이라 보면 될 겁니다. 북소리가 울리면 시작합니다. 모두 준비하시오.”

영웅객의 말에 응시자들이 내공을 끌어올려 공중부양을 할 준비를 했다.

사실 이 공중부양은 매우 어려운 것이었다. 특히 이번 관문은 일반 경공처럼 계속 진기를 발출해 날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허공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라 더욱더 어려웠다.

내공이 일갑자 이상이라고 해도 일각 이상 버티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시합은 상대적인 것이었다.

스물두 명의 응시자 중 마지막 팔 인에 들기만 하면 합격이었다.

‘재미있는 방식이군.’

백자안이 미소를 지었다.

그때였다.

둥둥둥.

북소리와 함께 응시자들의 몸이 삼장 높이까지 떠올랐다.

“정지!”

영웅객이 높이를 정하자 모든 응시자의 몸이 허공에서 멈췄다.

와아아.

군중들이 환호성을 터뜨리며 열광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응시자들은 죽을 맛이었다.

공중부양 후 정지 상태 유지는 막대한 내공을 소모했다.

허공을 마음대로 걸어 다니는 허공답보 수준의 경공술을 가지지 않는 이상 잠시 버티는 것도 쉽지 않았다.

차라리 비무대 위를 원형으로 계속 날아가는 것이 훨씬 쉬웠다.

백자안은 허공에서 가부좌를 한 채 조용히 있었다.

김지혜 역시 가부좌를 한 채 떠 있었다.

가부좌를 한 사람은 그들 두 사람뿐이었다. 나머지는 떨어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두 발을 휘젓고 있었다.

그렇게 일각도 채 되지 않았을 때.

더는 버티지 못하고 낙하하는 사람이 줄줄이 나왔다.

쿵쿵.

진기가 갑자기 끊어져 비무대 위에 나뒹구는 사람도 있었다.

그 모습이 웃기는지 웃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응시자들은 필사의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제 남은 사람은 열 명.

백자안과 김지혜는 여전히 가부좌를 틀고 조용히 떠 있었다. 나머지는 다들 불안했다.

하지만 역시 끝은 있는지 두 사람이 더 탈락하고 말았다.

“최종 결선 진출자 여덟 분이 결정되었습니다.”

영웅객이 소리쳤다.

그의 말과 함께 가장 먼저 비무대 밑으로 내려온 사람은 바로 백자안이었다.

합격했음에도 서로 자존심 싸움이 붙었는지 나머지는 좀 더 버티다 내려왔다.

가장 마지막에 내려온 사람은 김지혜였다.

영웅객이 말했다.

“반 시진 후 최종 결선이 있을 겁니다. 저녁 식사 후 다시 모여 주십시오. 합격자들 역시 식사를 해주시오.”

“네.”

백자안과 김지혜를 비롯한 여덟 명의 최종 결선 진출자들이 대기막사로 가서 준비된 식사를 했다.

최종 결선은 아무래도 비무 방식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 전에 충분히 먹어두는 것이 좋았다.

백자안은 옆에서 조용히 식사하고 있는 김지혜에게 말을 걸었다.

“내공이 놀랍더군요. 아마도 오늘 일등 하실 것 같습니다.”

“과찬이에요. 제가 보기에는 무정공자님이 더 여유가 있던데요.”

김지혜가 미소를 지었다.

최종 결선에 함께 올라왔기 때문인지 백자안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려져 있었다.

사실 그녀는 동방에서 홀로 왔기 때문에 응원 온 사람도 없었다.

이는 백자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역용을 했던 터라 그 역시 혼자였다.

반면 다른 합격자들은 가족과 친지, 친구의 축하를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주최 측에서 식사 시간 동안 잠시 만남을 허용한 때문이었다.

“저야 동방에서 홀로 와서 아무도 없지만, 무정공자님은 왜 혼자 오셨나요?”

“하하하. 홀로 왔다가 홀로 가는 게 인생이니 뭐가 그리 대수겠습니까? 그리고 이제 우리 두 사람 모두 혼자가 아니잖습니까?”

“네?”

“하하하. 제 말뜻은 우리 두 사람이 서로 응원하자는 겁니다. 어차피 동기 사범이 될 것 같은데, 미리 친해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요.”

“호호. 그래요. 잘 부탁드려요. 처음에는 조금 오해가 있었지만, 무정공자께서는 별호와 반대로 정이 많으신 분 같네요.”

김지혜가 미소를 지었다.

중원 영웅에 대한 동경심이 다시 살아나는 순간이었다.

김지혜가 내친 김에 궁금한 것 하나를 물어봤다.

“혹시 백자안 대협에 대해서 알고 계신 게 있나요? 다른 분께 여쭤보니 다들 백 대협께서 풍운장원에서 칩거하며 무공을 수련하고 계시다고 하던데, 그게 정말인가요?”

“백자안 그 친구 말입니까?”

“아! 백 대협과 친구가 되시나요?”

“네. 막역지우라 할 수 있지요. 나이는 제가 훨씬 많지만 우리는 서로 뜻이 통해 벗이 되었지요. 백자안 그 친구에게 관심이 있습니까?”

“그건 아니에요. 다만 동방 무림까지 소문이 나서 어떤 분인가 궁금해서 여쭤본 거예요.”

“하하하. 그렇군요. 하지만 여자들을 돌같이 보는 친구라 만나기가 어려울 겁니다.”

“그렇겠지요. 무림삼미 모두 백 대협을 흠모하고 있다고 하니 당연하겠지요. 저는 다른 뜻은 없고 한번 얼굴이나 봤으면 하는 겁니다.”

“얼굴만 보면 무적세가 대공자 독고준 그 친구가 절세미남이지요.”

“저는 너무 잘생긴 사람은 별로예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백 대협을 한번 소개해주시겠어요? 개인적인 바람이기도 하지만 혹시나 나중에 우리 동방 무림에 도움을 주실 수도 있으니 친분을 쌓고 싶어요.”

“솔직하시군요. 그렇게 하지요. 하지만 저보다 백자안 그 친구 여동생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여동생요?”

“네. 자안 그 친구 여동생이 이번에 신입 관원으로 들어왔거든요. 백소영이라고 나중에 사범이 되면 한번 알아보십시오.”

“아! 감사해요. 그게 좋겠네요. 아무리 동기 사범이라고 해도 남자 소개로 백 대협을 뵙게 되면 저에 대한 인상이 나빠질 수 있으니까.”

김지혜가 기뻐했다.

백자안 역시 미소를 지었다.

‘나에 대한 소문이 동방 무림까지 퍼졌다니 놀랍군. 뭐 그렇게 큰 공을 세운 것 같지는 않은데, 독고준과 싸워 이긴 것이 컸던 것 같군.’

* * *

식사가 끝난 후 백자안은 다른 응시자들과 함께 측간을 다녀왔다.

사실 볼일이 급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내공종 안에 들어 있었던 비급을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무자천서(無字天書)라······.’

무자천서는 비급의 제목이었다.

하지만 글자가 없다는 뜻이라 혹시나 하면서 책장을 넘겼다.

“아, 역시······.”

백자안이 탄식했다.

예상대로 비급에는 아무 글자도 적혀 있지 않았다.

백자안은 이 무자천서 비급의 재질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삼매진화로 태워버린 무명비급과 유사한 것을 느낀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비급 역시 태워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할 수 없구나. 인연이 있다면 나중에 그 내용을 알 수 있는 날이 오겠지. 너무 초조해 말자. 하기야 팔대무공도 아직 초보 수준인데 내가 다른 것을 욕심낼 처지가 아니지.’

백자안이 씁쓸해하며 무자천서 역시 무영신투술로 피부 속에 감춰두었다.

그때 대연무장에서 북소리가 들렸다.

둥둥둥.

“자, 이제 곧 결선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백자안이 서둘러 대기 막사로 향했다.

대연무장 쪽을 보니 곳곳에 횃불이 밝혀져 대낮과도 같았다.

군중 수 역시 두 배로 늘어나 이만여 명 가까이 되었다.

낙양의 인구가 무척 많기도 하지만 그만큼 이번 대회에 몰린 관심이 뜨겁다는 증거였다.

“무정공자. 어서 오시오. 또 늦는 것이오?”

영웅객이 다시 재촉했다.

백자안이 합류하자, 영웅객이 결선 진출자 모두에게 말했다.

“결선전에는 관장님은 물론이고 성내 유명 인사들이 대거 참석하실 예정이니 그렇게 알고 최선을 다해주길 바라오.”

“네.”

백자안, 김지혜를 비롯한 팔 인의 응시자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영웅객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그는 총집사가 되기 전에 오래도록 사범을 맡아왔다.

비록 총사범 자리까지는 올라가지 못했지만, 무공이 고강하기로 유명했다.

그의 명성을 아는 응시자들이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얼마 후 응시자들이 비무대에 오르자, 귀빈들이 속속히 도착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번 사범 공개 모집 대회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었다.

그중 하나는 바로 낙양 무관들의 단합이었다.

그 결과 십대무관 중 여섯 곳의 관장이 참석했다. 그 외 무관의 관장들과 합치면 모두 서른 명 가까이 되었다.

백자안이 백여 명이 앉아 있는 귀빈석을 보고 가볍게 놀랐다.

다름 아니라 백리설아 때문이었다.

그녀 역시 영웅무관의 초빙을 받고 온 것이었다.

‘표행을 마치고 돌아온 모양이군.’

백자안이 미소를 지었다.

사실 석 달 전 무림맹에서 추방된 후 가장 많이 풍운장원에 온 사람은 바로 백리설아였다.

악미미는 와룡대에 들어가는 바람에 와룡곡에서 신입 교육을 받고 있었다. 단목수련 역시 남해기인의 급한 부름을 받고 남해검파로 다시 돌아갔다. 그 때문에 두 사람은 오고 싶어도 올 수 없었다.

그러던 차에 얼마 지나지 않아 백리설아 역시 강남에 표행을 떠나자, 백자안은 무공 수련을 이유로 손님을 받지 않았던 것이다.

“대륙표국의 소국주 백리설아 소저이십니다. 어제 표행을 무사히 마치고 복귀를 하셔서 바쁜 와중에 참석하셨습니다.”

짝짝짝.

박수소리가 유난히 컸다.

몇 달 보지 않은 사이에 백리설아는 더욱더 아름다워져 있었다.

‘내일쯤 장원에 오겠군.’

백자안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사실 그가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가족이었다.

부모님 두 분과 백자룡이 밤늦게 도착한다는 전갈이 인편을 통해 아침에 전달되었다.

그래서 마음은 지금 장원에 가 있는 게 사실이었다.

‘무사히 도착하셔야 할 텐데······ 그나마 곽 선생이 함께 오셔서 다행이다.’

백자안이 곽휘를 떠올렸다.

그는 백자안 가족이 낙양으로 상경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함께 하기로 했다.

상의 결과 앞으로 백자룡을 지도하면서 풍운장원에 함께 지내기로 했다. 그 소식을 듣고 백자안과 백소영 역시 매우 기뻐했다.

곽휘의 무공이 뛰어나기 때문에 혹시 모를 적의 침입에 어느 정도 대비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백자안 역시 나름대로 만반의 준비를 해둔 바 있었다.

그것은 장원 전체에 방어진을 쳐둔 일이었다. 무명부록 상에 있는 진법을 응용한 것으로 외부 적의 침입을 막을 수 있었다.

“먼저 관장님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영웅무관 관장 위지경덕입니다. 먼저 바쁘신 와중에 이렇게 많은 분이 참석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무쪼록 좋은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부족하지만 간단히 술과 떡을 준비했으니 맛있게 드시기 바랍니다. 총집사. 음식을 나눠드리시오.”

“네.”

영웅객이 고개를 돌려 손짓하자 천여 명이 넘는 영웅무관 관원들이 음식을 든 쟁반을 들고 나타났다.

그들은 군중 속으로 들어가 술과 떡을 나눠주었다.

백자안은 관원들을 보다가 한 사람을 보고 놀랐다.

백소영이 그 안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관 안에 하인들도 있긴 있었으나, 오늘 같은 날에는 관원들이 손님들을 접대하는 게 관례였다.

백의무복을 입고 한껏 멋을 낸 백소영의 미모 역시 매우 뛰어났다.

원래 잘 안 꾸미고 다녀서 그렇지 화장을 가볍게 한 그녀의 미모는 백자안 역시 놀랄 정도였다.

‘소영이 미모가 무림삼미나 김 소저에 못지않구나. 너무 기고만장해지면 안 되는데······.’

아닌 게 아니라 그녀를 알아보는 사람이 제법 되었다.

“저 소저는 백자안 대협의 친동생 되는 분이 아닌가. 언제 영웅무관 관원이 되었지?”

“아! 정말 미인이군. 무림삼미 못지않은 미인이 왜 이렇게 많지? 결선에 오른 김지혜 소저의 미모도 대단했는데······.”

“내 말이 그 말일세. 조만간 무림삼미가 아니라 무림오미가 되겠군.”

백소영은 자신을 칭찬하는 말을 듣고 모른 척 다소곳이 음식을 나눠줬다.

백자안이 씁쓸해했다.

‘평소에 저래야지. 참느라 힘들겠군.’

음식 제공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결선이 시작되었다.

“결선 진행 방식은 일대일 비무입니다. 호명되는 응시자는 비무대 위로 오르시오.”

< [제16장] 무자천서 1 > 끝

ⓒ 행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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