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적 반로환동-46화 (46/250)

< [제15장] 영웅무관 3 >

둥둥둥.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응시자들은 접수번호 순으로 줄을 서 주십시오. 첫 관문은 내공을 심사하는 것으로, 우리 영웅무관 사범의 경우 최소한 일갑자의 내공을 필수로 합니다. 물론 내공의 질이 우수하다면 꼭 일갑자가 아니더라도 똑같은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겁니다. 반대로 일갑자가 넘더라도 질이 나쁘다면 통과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시험 방식은 내공종(內攻鐘)을 장력으로 쳐서 울리는 겁니다. 응시자들은 반드시 일갑자 이상의 내공으로 내공종을 타격하시기 바랍니다. 단 한 번의 기회밖에 없으며 곧바로 합격과 불합격이 결정될 겁니다. 응시자 수가 많기 때문에 열을 셀 정도의 시간 안에 시도하지 않으면 곧바로 탈락처리가 됩니다. 이상입니다. 내공종을 비무대 끝에 놔두어라.”

영웅객의 말에 관원들로 보이는 청년 수십 명이 거대한 종 하나를 수레에 실은 채 가져왔다.

바로 내공을 측정하는 특수한 효력을 지니는 내공종이었다.

원래 무림맹 비고에 있던 것인데, 이번에 특별히 영웅무관 측에서 빌려온 것이었다.

무관들과의 교류를 중시하는 무림맹 측에서 빌려주는 것을 흔쾌히 수락했다.

군중들이 거대한 내공종을 보고 술렁인 것은 물론이었다.

“정말 대단하군.”

“저게 그 유명한 내공종인가?”

내공종은 그 부피만 해도 작은 집 한 채 정도였다.

그 때문일까.

영웅객은 응시자들로 하여금 열 명씩 내공종 주위에 서게 했다.

시간 단축을 위해 열 명이 빠른 속도로 종을 치게 하기 위함이었다.

“일 번 응시자부터 차례대로 종을 치시오. 북소리가 울릴 때마다 시작하면 될 것이오. 참고로 북이 두 번 울릴 때까지 시도하지 않으면 바로 탈락이오. 자, 바로 시작하시오!”

둥.

팍! 하는 소리와 함께 첫 번째 응시자가 힘껏 내공종을 후려쳤다.

지척 거리에 있었기에 굳이 벽공장력을 날릴 필요가 없었다.

그는 사십 대 사내였는데 보통 사람 두 배 정도의 체구였다.

손의 크기도 보통 사람 두 배였다.

하지만 종은 울리지 않았다.

타격과 동시에 종이 울려야 했기에 그는 곧바로 탈락 처리되고 말았다.

“일 번 응시자! 탈락!”

탈락 처리가 되고 얼마 후 다시 북소리가 들렸다.

두 번째 응시자가 내공종을 후려쳤다. 그 역시 탈락이었다.

그렇게 첫 번째 도전을 했던 일조 전원이 탈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시험은 계속되었다.

이미 또 다른 열 명이 한 조를 이뤄 기다리고 있었다.

백자안은 김지혜와 함께 마지막 조에 속해 있었다.

‘효율적인 것은 확실하군. 언제쯤 첫 합격자가 나오려나.’

백자안이 느긋하게 기다렸다.

첫 합격자는 세 번째 조에서 나왔다.

때애앵.

북소리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맑은 종소리였다.

와아아.

짝짝짝.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단지 합격을 축하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처음으로 내공종 소리를 들어본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 내공종 소리는 마음을 안정시키는 효력이 있었다.

참고로 내공종은 상고시대부터 내려오는 법보 중 하나였다. 전설에 의하면 원래는 다른 용도로 만들어졌다고 전해졌다.

내공종을 만든 사람은 천계에 살고 있는 대장장이 신선인데, 누군가 절대 내공으로 종을 치게 되면 그 진정한 효험을 볼 수 있다고 했다.

누가 그러한 말을 퍼뜨렸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내공에 자신 있던 고수들은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그때부터 수많은 고수가 자신이 지닌 내공으로 종을 쳐보기 시작했다.

물론 대부분 자신의 내공을 극한까지 올려 종을 쳤다.

그 결과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갑자 이상의 내공으로 쳐야만 종이 울린다는 것을.

하지만 아무리 많은 내공을 지닌 자라 해도 그 이상의 변화는 끌어내지 못했다.

심지어 일갑자나 이갑자나 그 소리는 동일했다.

하지만 이갑자가 절대 내공은 아니었기에 더 많은 내공을 보유한 자의 시도는 계속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삼백 년 전 정마대전을 이끌었던 당시 무림맹주 천의검제(天意劍帝) 역시 내공종의 비밀을 풀려 했다. 하지만 결국 실패했다고 했다.

천의검제의 내공은 최소 삼갑자 이상이었기에 그 이후로 내공종의 진정한 가치를 밝혀내려는 시도는 거의 없어졌다.

그래서 이후에는 일갑자 이상 내공을 측정하는 도구로 종종 사용되었던 것이다.

백자안 역시 무관에 다닐 때 내공종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바 있었다.

당시 사범들은 수업 도중 관원들이 지루할 때마다 재미있는 무림의 전설을 한 가지씩 이야기해 주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내공종이었다.

당시 어린 마음에 백자안 또한 나중에 내공이 많아지면 한번 내공종의 비밀을 파헤쳐 봐야지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어차피 일갑자 이상으로 쳐도 종소리는 같으니, 최대의 내공으로 한번 쳐보는 게 좋겠군. 지금 나의 내공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나 역시 정확하게 모르고 있으니 재미가 있겠군. 최소한 십갑자는 넘는 것 같은데······.’

백자안이 기다리는 시간을 이용해 자신의 몸속에 있는 내공의 양을 측정해봤다.

하지만 마치 끊이지 않고 솟아나는 샘물처럼 정확한 양을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이미 불가사의할 정도로 높은 내공을 소유하고 있었다.

마치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앞으로 얼마나 더 알을 낳을지 모르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내공이 만능은 아니었다.

무공이 높을수록 내공보다 깨달음이 중요했다.

이 점을 백자안은 최근 석 달간 절실히 깨닫고 있었다.

아무리 내공이 많아도 팔대무공을 익히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그것은 아무리 좋은 무기가 있다고 해도 그 무게가 엄청나다면 어린아이가 그것을 휘두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나도 내공이 근본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더욱더 근본이 되는 것은 깨달음이란 걸 알게 되었지. 깨달음, 즉 마음이야 말로 그릇이 되고, 그 그릇이 넓어야 내공과 무공을 담을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무형검에 있어서는 더욱더 그러하다. 그 때문에 깨달음이 궁극에 달하면 내공 역시 필요가 없게 된다고 하는 게 아닐까.’

백자안이 눈을 빛냈다.

내공종 시험을 앞두고 집중력이 생겨 새로운 깨달음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은 극에 달하면 하나로 되돌아온다. 그렇다면 그 하나는 대체 무엇일까. 본래 있던 것일까. 아니면 없던 것일까.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백자안의 눈빛이 깊어졌다.

가끔 내공종이 울리며 군중들의 함성이 들렸다. 그는 그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은 바로 자신의 마음이었다.

지금 속도라면 팔대무공을 대성하는 것은 몇 십 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 연마 속도를 당길 수 있는 것은 이제 내공이 아니라 깨달음이었다.

진정한 도인은 저잣거리에서 깨달음을 깨우치듯 그 역시 이 혼란한 와중에 진정한 내면을 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김지혜가 문득 고개를 돌려 그의 눈빛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심유한 백자안의 눈빛은 신비스러움 그 자체였다.

‘이런 면도 있네. 재미있는 사람이군. 실력자라는 느낌이 드는구나. 어쩌면 동반 합격할지도 모르겠다.’

김지혜가 미소를 지었다.

사실 그녀가 중원에 온 것은 할아버지의 부탁도 있었지만 자신의 의지가 컸다.

더욱 넓은 무림세계를 경험함으로써 자신을 발전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백자안은 지금 무아지경에 빠져 있었다.

바로 본래무일물 때문이었다.

화두를 하나 꽉 잡고 나자 깊은 깨달음의 세계로 빠져든 것이다.

물론 겉으로는 아무 표시도 나지 않았다.

눈빛만 고요하게 바뀔 뿐이었다. 김지혜 외에 그를 주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내공종 시험에 몰두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본래무일물이란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청정한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우주만유는 본래 거짓 존재이고 실재하는 것이 없기에 아무것에도 집착할 필요가 없다고 했던가.’

백자안의 참구는 계속되었다.

팔대무공의 구결에 대한 이해도 점점 깊어져 갔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깨달음의 벽 하나를 무너뜨리려 할 때.

영웅객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지막 조 준비하시오! 내공종 주위에 서시오.”

백자안이 흠칫했다.

“하아!”

중요한 시기에 방해를 받은 것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길을 만들어놨기 때문에 다음에 다시 도전할 때 발판이 될 것은 확실했다.

‘너무 욕심내지 말자.’

지금까지 합격자는 스무 명 정도.

백자안은 내공종 앞에 서서 내공을 끌어올렸다.

비록 완전 청정의 마음 상태는 깨어졌지만 지금 그의 내공 상태는 어느 때보다 깨끗했다.

내공과 독 기운의 충돌 덕분에 일시 이뤘던 질적 내공 정화가 전체 내공으로 완전히 확대되어 있었다.

백자안은 담담한 마음으로 그 모든 내공을 하나의 기운으로 모았다.

무명심법으로 그 기운을 오른손 장심에 보내자, 순간적이지만 그의 우수가 금빛으로 물들었다.

지금 그의 우수에 담긴 힘은 산이라도 무너뜨릴 수 있을 정도였다.

이는 깨달음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이었다. 당분간 이 정도의 내공을 한꺼번에 발출하기는 어려울 것이었다.

그러는 가운데 마지막 조 응시자들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모두 탈락이었다.

남은 사람은 이제 김지혜와 백자안 두 사람뿐.

북소리가 울리자 김지혜가 일장으로 내공종을 쳤다.

바로 태극문 절기인 태극장(太極掌)이었다.

때애앵.

맑은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와아아.

짝짝짝.

이미 김지혜의 미모에 넋이 반쯤 나갔던 군중들이 기뻐하며 함성과 박수를 보냈다.

“삼백구 번 응시자! 합격!”

김지혜가 미소를 지으며 합격자석으로 갔다.

이제 남은 사람은 백자안 한 사람.

모든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둥.

북소리가 울리자, 그의 우수가 가볍게 내공종을 건드렸다.

지금까지 삼백 명이 넘는 응시자 중 가장 살살 친 것으로 보였다.

사람들이 어이없어할 때.

내공종이 종소리를 냈다.

때애앵.

이전 합격자들의 종소리와 똑같았다.

백자안은 그저 담담한 표정이었다.

속으로는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조금 전 일장에 그야말로 모든 내공을 담았던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다른 합격자와 다르지 않았다.

‘절대 내공은 아직 아니었던가. 내공만큼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백자안이 합격자석으로 가려 할 바로 그때.

내공종에서 금빛이 우러나며 표면이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백자안의 타격과 약간의 시간 차이가 있었기에 그 이유는 확실하지 않았다.

타격이 누적되었기 때문인지, 백자안의 타격 때문이지 명확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무림맹으로부터 빌린 법보가 깨어지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공종의 파괴를 막을 수 없었다.

쏴아아.

금빛이 마치 폭죽처럼 쏟아져 나오며 내공종이 꽝 소리와 함께 한 줌 먼지로 변해버렸다.

그 먼지는 내공종 주위를 감쌌다.

공교롭게도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백자안이었기에 그의 모습도 시야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백자안은 지금 수북한 내공종의 잔해 속에서 한 가지 물건을 보고 있었다.

내공종 속에 있었던 것 같았다. 그것은 바로 한 권의 책자였다.

이미 무명비급을 삼매진화로 태우면서 천상여의주를 얻은 바 있었던 그였다.

백자안이 자신의 공격으로 내공종이 파괴된 것을 깨닫고 그 비급을 얼른 주워 갈무리했다.

비급에 대한 욕심이 생겨서가 아니라 분란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이윽고 먼지가 걷히자 백자안의 담담한 모습이 보였다.

내공종이 재로 변했지만, 합격은 합격이었다.

“삼백십 번 응시자! 합격!”

< [제15장] 영웅무관 3 > 끝

ⓒ 행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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