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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적 반로환동-42화 (42/250)

< [제14장] 상소 2 >

재판은 계속되었다.

백자안을 공격하는 영호광, 황보생 두 사람 측과 변호하는 백리설아, 단목수련 등의 싸움이었다.

백자안의 공이 모두 인정된 마당에 관건은 당연히 무단이탈죄 인정 여부였다.

만박서생이 물었다.

“자료에 의하면 총순찰은 비상령 발동 당일 백자안을 전혀 만난 적이 없다고 적혀 있는데 그게 사실이오?”

“네. 전혀 만난 적이 없습니다.”

“좋소. 여봐라. 당일 총순찰 거처에 경계를 섰던 무사들을 대령하라.”

“네.”

군사부 무사들이 순찰당 무사 두 명을 데려왔다.

그들은 당일 총순찰 거처를 지키고 있던 경계무사들이었다.

만박서생이 백자안의 주장을 단목수련을 통해 접하고 이들부터 확보한 것이었다.

“묻기 전에 확실히 해두겠다. 만약 거짓을 말한다면 중벌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알겠느냐?”

“네.”

“네.”

“비상령 발동 당일 아침 백자안이 총순찰을 찾아왔느냐?”

“본 적이 없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사람의 증언에 장내가 술렁였다.

백자안에게 매우 불리한 진술이었기 때문이었다.

“좋다. 그럼 백자안 그대에게 묻겠다. 총순찰을 만날 때 저들을 본 적이 있는가? 총순찰을 아무도 모르게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잘 모르겠습니다.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흥! 자기에게 불리한 것은 무조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는군.”

황보생이 코웃음을 쳤다.

그는 만박서생이 백자안의 공을 모두 인정하자 심기가 불편해져 있었다.

“총군사님. 백자안 저자가 무단이탈을 한 것은 명확합니다. 저기 두 사람의 증언으로도 확실히 알 수가 있지요. 무단이탈이 확실하다면 상관무고죄 역시 성립이 되지요. 어떻게 보면 상관무고죄가 더 중한 범죄일 수도 있으니, 처음 말씀드린 대로 사형 판결을 내려주십시오. 더 이상의 재판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하지만 아직 재판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일각 동안 백자안 그대에게 시간을 주겠다. 반박할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무단이탈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물론 그렇게 되면 상관무고죄까지 인정하는 셈이 되겠지.”

만박서생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공을 인정해 사형 판결은 면하게 할 수 있지만, 배심단의 양형 결정까지 그가 막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상황은 백자안에게 매우 불리했다.

무단이탈죄는 물론이고 생각지 않았던 상관무고죄까지 인정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영호광은 총순찰이지만 맹주의 대제자이기도 했다.

맹주의 적전제자를 모함하는 것은 맹주의 위신까지 훼손하는 의미가 되어 가중처벌하게 되어 있었다.

배심단의 양형이 무기징역에 무공 폐쇄라는 최악의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지는 이유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단목수련과 백리설아 역시 속수무책이 되었다.

총순찰 처소 경계무사들의 증언이 결정적이었다.

이제 모든 시선은 백자안에게 쏠렸다.

일각이란 시간은 그에게 마지막 기회라 할 수 있었다.

백자안이 난감해했다.

어제부터 곰곰이 생각했지만, 그 역시 별다른 수가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천상여의주에게 자문해봤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의 염려대로 절실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하지만 그때 상황과 지금은 또 달랐다.

절실함이 최고조에 달했다.

‘그래 한 번 더 물어보자.’

백자안이 천상여의주가 들어가 있는 피부 바깥에 손을 대고 의념을 일으켰다.

‘조금 전 증언을 한 두 사람을 과연 만난 적이 없었는지 알고 싶다.’

순간, 저번처럼 머릿속으로 한 광경이 떠올랐다.

바로 총순찰 처소로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대문 앞을 지키고 있던 경계 무사들과 자신이 대화를 나누고 있던 모습이었다.

그 대화는 다음과 같았다.

<무슨 일이오?>

<순찰당 구급무사 백자안이라 합니다. 휴가 문제로 총순찰님을 뵙고자 왔습니다.>

<휴가라니. 모든 휴가 일정이 비상령 발동으로 인해 중지되었음을 모르시오?>

<알고 있습니다. 사실 오늘 휴가를 가기로 예정되어 있었지요. 하지만 상황이 급해서 그럽니다. 제가 어젯밤 제 고향 마을이 마적 떼에 의해 쑥대밭이 되는 꿈을 꾼지라, 그 예지몽을 총순찰께 말씀드리고 집에 가보려는 겁니다.>

<개꿈을 꾼 것이로군. 어서 돌아가시오. 총순찰님이 한가한 분인지 아시오?>

<천년색마와 관련된 꿈이었습니다. 나중에 실제 꿈대로 사건이 발생하면 두 분이 책임지시겠습니까?>

<으음, 천년색마라면 무림공적이 아닌가. 좋소. 들어가 보시오.>

<감사합니다.>

의념은 여기까지였다.

백자안은 총순찰 처소 경계 무사들이 의도적으로 거짓말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지금 그들을 추궁해도 영호광처럼 발뺌을 할 게 분명했다.

백자안은 자신이 총순찰 처소에 들어갈 때 경계무사들이 방문장부를 작성했던 것에 유의했다.

자신의 이름과 소속, 그 사유를 세세히 적는 모습 역시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방문장부만 확보할 수 있다면······.’

천상여의주에게 다시 도움을 요청했지만 이번에는 답이 없었다.

만박서생이 물었다.

“일각이 다 되어 간다. 그대는 할 말이 없는가?”

“있습니다. 다행히 조금 전 그때 일이 불현듯 생각났습니다. 말씀드리지요.”

백자안이 머릿속에 떠올랐던 광경과 대화를 자세히 설명했다.

경계무사들이 흠칫한 것은 물론이었다.

만박서생이 그들의 그런 변화를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으음, 그럼 그때 기록한 장부만 확인하면 되겠군. 여봐라. 어서 순찰당 본당에 가서 장부를 가져오너라.”

“네.”

군사부 무사들이 재판정을 나갔다.

영호광은 여전히 태연한 표정이었다.

‘후후후! 그럴 줄 알고 그때 기록을 모두 지워놓았지. 특수 약물로 지운 것이라 전혀 알 수 없을 것이다.’

영호광이 경계무사들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자신과 미리 말을 맞춰놓은 그들이었다.

방문장부 기록 삭제 역시 함께 행한 일이었다.

백자안이 귀맹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을 불러 치밀하게 작전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물론 위증의 대가로 진급과 출세를 약속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드디어 군사부 무사들이 방문장부를 가져왔다.

만박서생이 확인 결과 그날 기록에는 백자안과 관련한 내용이 전혀 없었다.

단목수련이 장부를 넘겨받아 확인에 들어갔다.

하지만 역시 허사였다.

공백이 발견되긴 했으나 아무 내용도 적혀 있지 않았다. 그것이 기록 삭제의 증거라고 주장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백자안이 말했다.

“제가 볼 수 있겠습니까?”

“여기 있어요.”

단목수련이 장부를 주자, 백자안이 살폈다.

그 결과 의도적으로 기록을 지운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무명부록 상에도 글자를 지우는 비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로 피 같은 것을 지워 흔적을 지우는 용도였으나, 글자를 지우는 것도 가능했다.

그리고 그 반대로 기록을 복구하는 것도 가능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기록을 지운 것 같습니다. 특수 약물을 사용한 것 같은데, 그 방면에 전문가를 불러 확인을 해주시겠습니까?”

백자안이 기록 복원 전문가를 요청했다.

물론 직접 자신이 비술을 통해 복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속임수를 썼다는 의심을 다시 살 수 있었다.

만박서생이 눈을 빛냈다.

조금 전 증인으로 선 무사들의 동태가 수상하다는 것을 느낀 그였다.

백자안의 주장을 무시하지 않았다.

“좋다. 약물로 글을 지웠다는 주장인데, 그렇다면 약물에 대한 전문가를 데려와야겠군. 이럴 때 생사신의께서 계시면 좋을 텐데······.”

생사신의는 자타가 공인하는 신의이자, 의술과 독술의 대가였다.

당연히 모든 약물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단목수련이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마침 신의께서 총단에 와 계셔요.”

“그게 정말이오?”

“네. 제가 치료받을 게 조금 있어 신의께서 제 처소에 와 계시지요. 비밀로 해달라고 하셔서 아무에게도 말씀드리지 않았는데, 지금 바로 가서 모셔오겠어요.”

“그렇게 하시오.”

“네.”

단목수련이 서둘러 재판정을 나갔다.

영호광의 안색이 굳어진 것은 물론이었다.

‘큰일 났구나.’

그가 서둘러 증언을 한 경계무사 두 명에게 동시에 전음을 날렸다.

「만약에 기록이 복구되면 네놈들 선에서 정리를 하도록 해라. 그러니까 일단 백자안 그놈에 대해 기록은 했지만, 비상령 발동 상황임을 고려해 그냥 돌려보냈다고 말이야. 그리고 그 때문에 나중에 삭제를 했다고 말하면 될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어떻든 나는 백자안 저놈을 만난 적이 없는 것이다. 아니다. 신의가 오기 전에 장부를 없애는 것이 확실하겠다.」

영호광이 무형지기를 발산해 장부를 불태우려 했다.

장부가 지금 백자안 손에 있었기 때문에 기회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백자안이 이를 감지하고 똑같이 무형지기로 이를 막았다.

영호광이 자신의 기가 밀리는 것을 느끼고 비틀거렸다.

‘어찌 이런 일이······.’

그렇게 대치가 이어지고 얼마 후.

단목수련이 백의노인 한 명을 데려왔다.

바로 생사신의였다.

이전에 설중화가 백자안에게 소개해주겠다고 한 신의이기도 했다.

은자림에 있던 그가 이곳에 나타난 자체만 해도 놀랄 일이었다.

“하하하. 어서 오십시오. 오랜만에 뵙습니다.”

만박서생이 자리에서 일어나 생사신의를 반겼다.

생사신의가 미소를 지었다.

“반갑소이다. 오면서 이야기를 들었소. 장부는 어디 있소?”

“여기 있습니다.”

백자안이 방문장부를 건네자 생사신의가 껄껄 웃었다.

“자네가 바로 백자안이었군. 치료를 요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지금 보니 스스로 해결을 했군. 대단한 내공일세.”

생사신의가 고개를 끄덕이며 장부를 살펴봤다.

“삭제되었군.”

생사신의가 품속에서 약병을 꺼내 물약을 조금 뿌리자, 장부에 글자가 다시 나타났다.

그 내용은 아까 백자안이 말한 그대로였다.

“저럴 수가!”

사람들이 그 내용을 확인하고 다들 놀랐다.

만박서생이 엄중한 표정으로 물었다.

“총순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 백자안을 만난 적이 없다고 하지 않았소?”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이자들에게 물어보십시오.”

영호광의 말에 증언했던 경계무사들이 해명을 했다.

해명이라고 해봤자 조금 전에 영호광이 시킨 대로였다.

하지만 논리가 빈약한 것은 물론이었다.

“너희들이 굳이 그 기록을 삭제한 이유가 무엇이냐? 그러니까 오긴 왔는데 총순찰 처소로 들여보낸 적이 없다는 말이냐?”

“네. 원래 거절했다가 천년색마 이야기를 듣고 장부에 기록한 후 들여보내려 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런 꿈을 꿨다는 것이 황당한 일이라 되돌려 보낸 겁니다. 이후 약물을 구해 기록을 삭제한 것이고요.”

“그럼 처음부터 그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냐?”

“사실대로 밝히면 백자안 저자가 그 것을 구실삼아 총순찰님의 허락을 받았다고 꾸며댈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예 만나지 않은 것으로 말씀드린 겁니다.”

“이놈들! 그럼 진작 그렇게 말할 것이지.”

영호광이 손을 들어 경계무사들의 뺨을 후려쳤다.

철썩. 철썩.

“네놈들 때문에 나만 오해를 받지 않았느냐?”

영호광이 분노한 척했다.

황보생이 그를 말렸다.

“고정하시오. 총순찰. 수하들이 제멋대로 하는 경우가 종종 있소. 저자들이 총순찰을 번거롭게 만들지 않으려고 한 것 같으니 그만하시오.”

“알겠습니다.”

영호광이 만박서생에게 말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저는 백자안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제 처소 앞까지 온 것이 인정된다고 해도, 만난 적이 없는데 무슨 허락이 있었겠습니까? 백자안 저자가 무단이탈한 결론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무림맹주 절대검신 단목군(端木君)이 재판정에 나타난 것은 바로 그때였다.

“맹주님을 뵙습니다.”

“맹주님을 뵙습니다.”

< [제14장] 상소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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