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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적 반로환동-39화 (39/250)
  • < [제13장] 금마옥 2 >

    금마옥(禁魔獄).

    무림맹 지하에 있는 감옥이었다.

    무림맹의 특성상 각종 전투를 통해 붙잡은 포로나 죄수 등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 포로나 죄수들을 가두는 곳이 바로 금마옥이었다.

    물론 감옥에 들어온 사람들은 통칭 죄수로 불렸다.

    누구든 상관없이 일단 금마옥에 들어왔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증거였다.

    각 죄수의 형기는 죄질에 따라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전투에서 붙잡힌 사마의 무리는 형기가 따로 없었다.

    무기수라 할 수 있었다.

    반면 포로 교환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어 오히려 일반 죄수보다 빨리 석방되는 경우가 많았다.

    전투 외의 경우는 대부분 죄를 지은 경우였다.

    그 죄 역시 가지각색이라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였다.

    살인마도 있고, 색마도 있었다.

    그 죄를 저지른 자가 무림인이라면 관부보다 무림맹에서 붙잡아 금마옥에 가두는 것이 관례였다.

    참고로 금마옥의 죄수는 수천 명이 넘는다고 했다.

    그런 금마옥에 어제 또 한 명의 죄수가 수감되었다.

    큰 공을 세우고 개선한 사람이라 모든 이의 예상을 뛰어넘는 조처였다.

    그 죄수는 바로 백자안이었다.

    무림맹에 도착하자마자 집법장로 황보생에 의해 전격적으로 체포된 것이었다.

    죄목은 무단이탈죄였다.

    그러니까 백자안이 휴가를 받아 정식으로 집에 간 것이 아니라 비상령 발동으로 대기 상태에 무단히 총단을 이탈했다는 것이었다.

    백자안은 그 말을 듣고 순간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로환동하여 과거로 돌아왔었다. 집으로 갔을 때 다행히 마적 떼들이 아직 마을을 덮치기 전이었다.

    한데 알고 보니 비상령 발동 상황에서 무단으로 총단에서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은 비교적 늦게 밝혀졌다.

    순찰당 무사들이 백자안을 보호하기 위해 일부러 밝히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황보생의 눈을 피하지 못했다.

    수사가 본격화되자 백자안의 무단이탈 사실은 낱낱이 밝혀졌다.

    그 사실을 숨긴 무사들은 일제히 감봉 조치를 받았다.

    그들에 대한 벌이 약했던 것은 황보생이 선처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목표는 바로 백자안이었다. 순찰당 무사들의 증언이 필요했고, 이제 그 죄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백자안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과거로 돌아오면서 어떻게 총단에서 나왔는지는 그 역시 알 수 없었다.

    ‘아무래도 내가 무단이탈한 것은 사실이었던 것 같다. 하기야 그렇지 않았다면 때에 맞춰 집에 갈 수 없었겠지. 하지만 실은 나는 계속 무저곡에 있었지 않은가. 실로 불가사의한 일이구나.’

    독방에 갇힌 백자안이 생각에 잠겼다.

    무단이탈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그에 대해서는 조금의 후회도 없었다.

    가족들과 마을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문제는 자신이 어떤 벌을 받게 되는지였다

    다행히 그에게는 공이 있었다.

    바로 천년색마를 제거한 일과 장강수왕을 죽이고 악양을 수복한 일이었다.

    ‘상벌위원회의 결정을 그대로 따를 수밖에.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탈옥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 생각도 못 한 변수를 만나 일이 이렇게 꼬이다니.’

    백자안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중벌을 받을 가능성도 있었다.

    무단이탈죄, 특히 비상령 발동 상황에서 무단으로 총단을 이탈한 죄는 전쟁 중 탈영한 것과 비슷했다.

    그에 대한 무림맹 규율은 매우 엄격했다.

    아무리 백자안의 공이 크다고 해도 쉽게 사면될 성질이 아니었다.

    ‘무단이탈죄를 짓게 되면 전장에서는 즉결 처형으로 다스리게 되지. 비상령 발동 상황은 준전시 상태이니 무공을 폐쇄하는 벌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공도 있으니 그걸 참작해준다면 좀 더 가벼운 형을 받게 되겠구나. 마음을 비우고 기다릴 수밖에. 죄를 지은 게 사실이니 어쩔 수가 없구나.’

    백자안이 자신의 몸을 살폈다.

    체포와 동시에 혈도가 제압당했다.

    하지만 무명심법 칠성에 달한 지금 언제든 해혈이 가능했다.

    정식 명칭은 이혈대법(移穴大法)이었다.

    비록 혈도를 찍혔다고 해도 그 위치를 옮김으로써 해혈을 할 수 있었다.

    지금 백자안은 이미 해혈을 한 경우였다.

    다만 겉으로는 혈도를 제압당한 척했다.

    체포 후 수감 전에는 소지품 압수도 있었는데, 그가 숨겨야 할 것은 무명비급뿐이었다.

    그래서 무명비급을 압수 전에 미리 비술을 통해 몸속에 감춰두었다.

    무명부록 상의 무영신투(無影神偸)라는 비술이었다.

    이 비술은 다른 사람의 물건을 소리 없이 훔칠 수 있는 기술이었다.

    그리고 그 반대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물건을 몸속에 숨길 수도 있었다.

    그 물건을 순간적으로 축약해서 피부 안에 넣는 기술인데, 겉으로는 아무 표시가 나지 않았다.

    백자안은 무명비급이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순간적으로 무영신투술을 펼친 것이었다.

    ‘숙부님과 소영이가 소식을 듣게 되면 매우 놀라겠구나. 집에까지 이 소식이 들어가면 안 되는데······.’

    백자안이 안색을 굳혔다.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이미 수감된 지 하루가 지나 곧 상벌위원회에 출석해 재판을 받게 될 가능성이 컸다.

    그 예감은 바로 적중했다.

    “상벌위원회가 열리니 갑시다.”

    간수들이 와서 백자안을 부축했다.

    간수 두 명이 양쪽에서 잡고 번쩍 들어 집법당에 끌고 갔다.

    백자안으로서는 그대로 몸을 맡길 뿐이었다.

    ‘될 대로 되겠지. 내게 책임이 있다면 그 대가를 치르면 되는 것이다. 물론 과도한 벌을 내린다면 참기 어렵겠지만.’

    백자안이 상황에 따라서는 반발을 할 생각도 했다.

    예를 들어 바로 사형 판결이 내려진다면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분명 그에게 공이 있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기에.

    문제는 그를 변호해줄 사람이 과연 있을지 여부였다.

    바로 떠오르는 사람은 백리설아와 단목수련 정도였다.

    두 사람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려 할 것 같았다.

    두 사람 중 입김이 셀 사람은 당연히 단목수련이었다.

    ‘부디 공정한 재판이 열리기를······ 내가 몰락하면 우리 가족 모두 힘들어진다.’

    * * *

    “죄인 백자안 대령입니다.”

    털썩.

    백자안이 재판정 의자에 앉혔다.

    “오라버니!”

    관람석에 앉아 있던 백소영이 소리쳤다.

    그녀 옆에는 백풍과 백리설아도 있었다.

    다들 초조한 표정이었다.

    “정숙하라!”

    상벌위원회 위원장이자 재판장인 황보생이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상벌위원회에서 죄가 있다고 생각되면 곧바로 재판이 열리게 되어 있었다.

    재판이 열리는 이곳은 집법당의 대청이었다.

    관람석에는 백소영과 백풍, 백리설아 외에 악미미도 와 있었다.

    그녀는 굳은 안색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일단 지켜보려는 것일까.

    그 외 재판 실무자와 간수로 보이는 십여 명이 있었다. 기대했던 단목수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증인으로 총순찰 영호광이 와 있었다.

    참고로 총순찰은 순찰당주도 겸임하고 있어 백자안의 직속상관 중 총책임자라 할 수 있었다.

    땅땅땅.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총순찰께서 저자의 죄를 말씀해주시겠소?”

    “네. 백자안은 우리 순찰당의 구급무사로 지난번에 마교의 발호 움직임으로 인해 비상령 발동 시 무단으로 총단을 이탈했습니다. 이는 무단이탈죄에 해당합니다. 집법장로님의 엄격한 판단을 바랍니다.”

    “백자안 자네는 따로 할 말이 있는가? 무단이탈죄를 인정하는가?”

    “여러 사람의 증언이 있었다면 그게 사실이겠지요.”

    “인정한다는 이야기로군. 좋네. 그럼 바로 판정을 내리겠네.”

    “그게 무슨 소린가요? 오라버니는 큰 공을 세웠어요. 무림공적 천년색마를 제거했고, 장강수왕을 죽여 악양을 수복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어요. 그러한 공을 참작해 방면해드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요.”

    백리설아의 말이었다.

    말주변이 좋은 백리설아가 대표 변호인 역할을 맡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따로 변호인석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재판정에는 원칙적으로 죄수의 친인척이나 정혼자 등 가까운 사람만 참석이 가능했다. 다만 한 사람 정도만 예외가 인정되었다.

    이 사람이 대개 변호인 역할을 하게 되는데, 백리설아가 그 임무를 맡은 것이다.

    “공을 세웠다고 해서 그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오. 지금도 천하 각 곳에서는 많은 무림맹 무사가 밤낮으로 임무에 매진하고 있소. 일단 비상령이 발동되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함부로 거주지를 이탈하지 못하는 것이 맹의 규율이오. 아무리 큰 공을 세웠다고 해도 죄에 대한 엄격한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오.”

    “정말 공을 참작하지 않을 건가요?”

    “물론 참작할 것이오. 다만 죄가 너무 엄중하다고 말하는 것이오. 그럼 바로 판결을 내리겠소. 이미 어제 하루 동안 신중하게 생각했소. 그 판정을 발표하겠소. 백자안 그대는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는가?”

    “없습니다.”

    백자안이 담담히 말했다.

    황보생은 이미 작정하고 온 것으로 보였다.

    분위기를 봐서 맹의 지휘부와도 의견 교환을 한 것 같았다.

    “죄인 백자안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무단이탈죄는 극형으로 다스리는 것이 우리 무림맹의 규율이다. 비상령 발동 상황은 전시와 마찬가지이며 아무 이유 없이 임무지를 이탈한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죄다. 물론 백자안이 큰 공을 세운 것을 인정하나, 그 죄가 너무 무거워 이를 감쇄할 수 없다. 특히 그 공이란 것도 조사 결과 명백하지 않다. 천년색마를 제거한 것도 본인의 실력에 의한 것인지 명확하지 않고, 악양 전투에서도 사사천교 일당과 공모했다는 의혹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 때문에 공으로 죄를 감면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죄인의 실력이 아깝기는 하나,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일벌백계를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마음대로 무단이탈죄를 저지를 무사들이 속출할 터. 이는 맹의 기강을 어지럽히게 될 게 분명하다. 이상이 죄인 백자안을 사형에 처하는 이유다. 사형 집행은 내일 정오다. 이상 재판을 마친다.”

    탕탕탕.

    “말도 안 돼!”

    백소영이 울부짖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백자안은 의외로 담담한 표정이었다.

    백리설아가 항의했다.

    “자안 오라버니가 차기 맹주 감으로 거론되니 구파일방에서 미리 싹을 자르려 한다는 소문이 사실이었군요. 맹주님도 아시나요?”

    “일개 구급무사 재판에 맹주님이 관여할 이유가 있겠소? 근거 없는 이야기는 그만하는 게 좋을 것이오. 여봐라. 어서 죄인을 다시 금마옥에 가둬라.”

    “존명!”

    간수들이 백자안을 끌고 재판정 밖으로 나갔다.

    백자안은 담담한 표정 그래도 아무 반항도 하지 않았다.

    그 역시 충격을 받은 것은 사실이었다.

    무림맹에 기득권 세력이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그 희생양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게다가 무공 폐쇄도 아니고 사형이라니.

    공을 세우지 않았다 해도 무공 폐쇄 정도가 최고형이었다.

    하지만 비상령 발동 시를 전시와 동일시한 해석 역시 반드시 틀렸다고는 할 수 없었다.

    ‘일단 내일까지 시간이 있으니 좀 더 상황을 지켜보자. 지금으로서는 단목 소저의 도움을 기다릴 수밖에 없겠구나. 상소가 꼭 필요하다.’

    무림맹 재판은 2심제였다.

    1심 결과에 불복하면 상소를 해 2심 재판을 받을 수 있었다.

    2심 재판의 재판장은 총군사였다.

    하지만 실제 2심이 열리는 것은 극히 드물었다.

    그 이유는 2심을 신청할 수 있는 사람은 무림맹에서 오급 이상 지휘부 고수여야 한다는 조건 때문이었다.

    백자안은 끌려나가기 전 백소영과 백풍, 그리고 백리설아 세 사람에게 동시에 전음을 날렸다. 그 내용은 단목수련에게 도움을 요청하라는 것이었다.

    “알겠어요.”

    백리설아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악미미는 굳은 안색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손이 떨리고 있는 것이 그녀 역시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백자안이 끌려나가자 백리설아가 말했다.

    “악 소저. 혹시 맹에 오급 이상 화산파 고수분이 계신가요?”

    “네. 본파 출신 장로님이 계세요. 그분께 도움을 요청하면 되나요?”

    “네. 그분께 상소해달라고 부탁드려 보세요. 저희는 단목 소저께 부탁드려 볼 테니까요.”

    “알겠어요. 지금 당장 가보겠어요.”

    악미미가 서둘러 재판정을 떠났다.

    뭔가 자신이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자 즉시 행동에 옮기려는 것 같았다.

    백리설아와 백소영, 백풍 세 사람은 잠시 남아 의견을 교환한 후 단목수련의 처소로 향했다.

    사실 단목수련 역시 재판을 보려고 했으나 규정 때문에 들어오지 못했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백리설아가 백소영, 백풍과 함께 찾아가 상소 문제를 의논하려는 것이었다.

    상소는 처형 직전까지 할 수 있지만, 내일 정오 처형이라 시간이 얼마 없었다.

    물론 단목수련을 만나지 못해도 악미미에게 기대를 걸 수도 있었다. 하지만 화산파 역시 구대문파 중 한 곳이었다.

    만약 구대문파 모두 담합을 했다면 도움을 받지 못할 수도 있었다.

    사실 재판 결과가 이렇게 참담하게 나온 것은 어제 낮부터 돌기 시작한 소문 때문이기도 했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백자안과 사사천교의 공모 사실을 흘린 것이다.

    아까 황보생이 판결문에서도 언급했지만, 그 주된 내용은 백자안이 일부러 적들을 보내줬다는 것이었다.

    당시 백자안이 충분히 사천사자들을 죽일 수 있었는데, 그들과 단합하여 강시들과 함께 보내줬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 이유가 바로 백자안이 무림맹주 자리를 노리기 때문이라는 내용까지 있었다.

    십 년 전 무적세가주 독고승의 무림맹주 추대를 막은 바 있던 구파일방이었기에, 그러한 소문을 무시할 그들이 아니었다.

    사실 절대검신 이후의 맹주 자리는 구파일방에서 십 년씩 차례로 맡기로 자기들끼리 내부 단합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휘이잉.

    어느새 텅 비어 버린 대청에 한줄기 싸늘한 바람이 들어왔다.

    < [제13장] 금마옥 2 > 끝

    ⓒ 행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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