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3장] 금마옥 1 >
[제13장] 금마옥
낙양.
고도 중 하나로 무림맹 총단이 있는 것으로 유명한 도시였다.
당연히 무림인이 대단히 많았다. 중소문파 수만 해도 수천 개가 넘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유명한 것은 수백 개가 넘는 무관이었다.
무림맹 정식무사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천하 각지에서 올라온 젊은이들이 밤낮으로 무관에서 무공을 닦고 있었다.
무림맹 총단에서는 미래의 동량인 그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맹 차원에서 후기지수들을 육성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신입무사는 항상 보충되어야 했다.
지금도 천하 곳곳에는 크고 작은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파견해야 할 무사들이 늘 모자랐다.
물론 각 지부에서도 자체 모집을 하기는 하나 사람들이 잘 모이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총단 자체에서 선발하는 시험에 합격해야만 정식무사로 인정받기 때문이었다.
지부 모집에 응해 들어간 사람들은 비정규직으로 평생 그 지부에서 벗어나기가 힘들었다.
반면 총단 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은 일시 각 지부로 순환 근무를 떠나더라도 나중에 다시 총단 복귀가 이루어지는 게 보통이었다.
그것은 바로 출세의 발판이기도 했다.
물론 백자안처럼 아무 배경 없는 무사들은 출세가 난망했지만, 그렇다고 그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큰 전쟁이 일어나면 말단 무사들도 차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말단 무사 중에는 이처럼 공을 세워 진급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한번 무림맹 지휘부에 들어가면 다시 내려가는 경우는 드물었다.
하지만 정식무사라 해도 대부분은 칠급이 한계였다.
백자안은 구급무사였다.
지부 자체 모집 무사들은 비정규 무사로 취급되어 십급무사로 불리기도 하나, 공식적인 최하 계급은 엄연히 구급이었다.
일반적으로 승급과정은 다음과 같았다.
구급무사가 십 년을 복무하면 팔급이 된다.
팔급무사가 다시 십 년을 복무하면 칠급이 된다.
칠급무사는 특별히 큰 공을 세우지 않는 한 평생 칠급으로 머무르는 게 일반적이었다.
간혹 매우 특별한 경우에는 육급으로 진급이 되기는 했다. 하지만 무림맹 지휘부의 최소 등급인 오급무사가 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오급 이상 무사가 되는 것은 대체로 와룡대원들의 몫이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칠급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이십 년만 지나면 오급무사가 될 수 있었다.
오급부터는 작전회의에 참여해 자신의 의견을 낼 수도 있었다.
이번에 와룡대주가 된 단목수련 역시 오급이었다.
‘드디어 돌아왔구나.’
단목수련이 낙양성 내 관도에 말을 타고 입성하며 눈을 빛냈다.
그녀 옆에는 백자안과 백소영, 백풍, 백리설아, 악미미 등이 있었다.
물론 삼백여 명의 와룡대원들도 함께 총단으로 향하고 있었다.
단목수련이 고개를 돌려보니 백자안은 백소영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말을 타고 있었다.
“오라버니. 이제 상금으로 은자 천 냥 받는데 문제없겠지? 아니 이번에 또 공을 세웠으니 돈을 더 주려나?”
“공은 무슨 공이냐. 수적들이 강시로 변했다고는 하나 놈들을 모두 놓쳤거늘. 벌을 내린다고 해도 달게 받아야 할 것이다.”
“벌은 무슨? 오라버니 아니었으면 모두 끝장났을 거야. 좋아. 그건 그렇다고 쳐도 천년색마를 제거한 공은 살아 있잖아. 오라버니 무공도 입증이 되었고. 아무 문제 없이 은자 천 냥을 주겠지?”
“녀석, 장사성주님께 받은 은자 오백 냥으로도 모자라는 것이냐?”
“그게 아니고 이참에 부모님을 낙양으로 모셔오려고 그래. 룡이도 함께 말이야. 백리 소저. 낙양에 괜찮은 장원 한 채 사려면 얼마 정도 있어야 해요?”
백소영이 옆에 있는 백리설아에게 물었다.
“낙양 물가는 매우 비싸요. 집값 역시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지요. 괜찮은 장원 한 채를 살려면 최소 은자 삼만 냥은 있어야 할 거예요.”
“삼만 냥?”
백소영과 백자안 두 사람 모두 놀랐다.
시골에서 은자 천 냥이면 매우 넓은 집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비싸요? 보통 사람은 평생 가도 집 한 채 마련하기 힘들겠네요.”
“그렇죠. 아예 가족 전체가 이사 오실 생각인가요?”
백리설아가 관심을 표명했다.
붙임성이 좋은 그녀는 이곳으로 오면서 백자안과 백소영 두 사람과 더욱더 친해져 있었다.
“네. 사실 고향 집은 이제 우리 집이 아니거든요. 월세를 주고 살고 있는데 저까지 낙양으로 온 마당에 부모님과 동생도 올라오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너 혼자 생각이냐? 두 분께서도 그걸 원하시는 것이냐?”
“숙부님께 여쭤봐. 제일 먼저 제안하신 분이 숙부님이니까.”
조용히 듣고 있던 백풍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영이 말이 맞다. 집이 넘어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가 형님께 서신을 보냈었지. 마침 표국에 서기 자리가 하나 나서 말이야. 하지만 낙양에 거주할 곳이 없어서 유야무야 되었지.”
“아! 서기 자리는 아직 비어있나요?”
백자안이 안색을 상기시켰다.
이렇게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는데도 자신이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부끄러운 마음이 든 것이었다.
“아쉽게도 새 서기가 들어왔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서기 충원은 늘 있으니까요. 아버님을 모셔오면 제가 책임지고 자리를 알아봐 드릴게요.”
백리설아가 웃으며 말했다.
백풍이 말했다.
“그렇게만 해주시면 정말 감사할 겁니다. 사실 형님께서 나이가 좀 있으시지만, 학문이 대단해 서기 일을 하는데 전혀 무리가 없을 겁니다.”
“나이가 뭐 그리 중요한가요? 우리 대륙표국의 총서기께서는 올해 연세가 칠십이잖아요? 자안 오라버니 아버님 연세가 올해 환갑이라고 들었으니, 앞으로 십 년은 끄떡없을 거예요. 오히려 오라버니 명성을 생각하면 우리가 영광이지요.”
“고맙다. 우리 가족이 함께 낙양에서 살게 되면 모두 설아 너 덕분이다.”
백자안이 감사를 표했다.
사실 부모님과 룡이를 계속 선인촌에 남겨두는 것이 많이 걱정되었던 그였다.
혹시 자신 때문에 가족을 해코지하려 한다면 그것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곽 선생이 보호해준다고 약속을 했으나, 자신이 가까이서 돌보는 것보다는 못했다.
특히 무림맹 무사들은 비상령이 떨어진 경우를 제외하고는 맹의 밖에 사택을 얻어 생활할 수 있었다.
물론 팔급부터 그런 특혜가 주어지지만 이번에 공을 인정받아 백자안의 등듭이 최소 칠급으로 수직 상승할 거라는 것이 지배적 의견이었다.
이는 단목수련이 직접 예상한 것으로 총군사의 재가만 있어도 가능했다.
물론 그전에 상벌위원회가 열리게 될 것이었다.
백자안의 경우는 살펴볼 것이 많아 맹에 복귀 후 곧바로 상벌위원회가 열려 그 공과를 판정받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상벌위원회의 위원장인 집법장로가 황보세가 출신이라는 점이었다.
일전에 와룡대원이었던 황보충이 백자안에 의해 중상을 입은 적이 있었는데, 그는 지금 황보세가로 돌아가 치료 중이라고 알려졌다.
만약 그 일로 황보세가에서 앙심을 품고 있다면 집법장로가 어떤 꼬투리를 잡을지 모르는 것이다.
“총단에 복귀한 후 상벌위원회 결정이 내려지면 시간을 내서 직접 대륙표국에 갈 테니 그때 그 일을 의논하도록 하자.”
“좋아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백리설아가 미소를 지었다.
일단 그녀와 백풍은 무림맹 총단이 아니라 대륙표국 총단으로 복귀해야 했다.
이번에 대륙표국의 피해가 극심했기 때문에 그 수습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 먼저 가볼게요. 나중에 봬요.”
갈림길에 들어서자 백리설아와 백풍이 대륙표국 총단으로 가려 했다.
백자안이 말했다.
“소영아. 너도 숙부님을 따라가거라. 필요한 일이 있으면 내가 부르마.”
“알겠어. 원래 내가 마적 떼들 공격 상황에 대해 증언을 하려 했는데, 이제 뭐 그럴 필요도 없어진 것 같으니까. 상금 받게 되면 빨리 연락해. 돈은 내가 보관하고 있어야 가장 안전하니까.”
“그건 뭐 또 엉뚱한 소리냐? 표국에 가서 얌전히 있어라.”
“응.”
백소영이 웃으며 백리설아, 백풍과 함께 대륙표국 총단으로 향했다.
그들이 떠나자 단목수련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미리 연락을 취했으니 곧바로 상벌위원회가 열릴 거예요. 그렇게 알고 계세요.”
“네. 대주님.”
백자안이 고개를 숙였다.
이곳까지 오면서 느낀 것이지만 단목수련의 분위기는 설중화와 매우 닮아 있었다.
은근히 자신을 배려해주는 것까지 똑같았다.
‘설 대원이 빨리 회복해서 맹에 복귀해야 할 텐데······ 중상을 입어서 약혼 일정에 변화가 있겠구나.’
백자안이 설중화를 생각하고 있을 때.
일행은 마침내 무림맹 총단에 도착했다.
가히 한 성을 방불케 하는 엄청난 규모였다.
외성 대문 앞에는 백여 명의 무림맹 무사들이 도열해 있었다.
백자안은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무저곡에 있을 때 무척 그리워했던 동료들이 그들 속에 있었던 것이다.
순찰당 경계 무사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성곽에 있는 초소에서 근무를 서야 했다.
물론 그렇다고 딱히 총단을 공격하는 세력이 있었던 곳도 아니었다.
암살이 횡횡하는 무림이었지만, 아직 무림맹 총단만큼은 안전지대였다.
그도 그럴 것이 무림맹 총단은 이중 삼중의 경계망이 가동되고 있었다.
일단 외성에서 일차로 경계를 서며, 내성, 그리고 전각별로 다시 경계 무사들이 있었다.
특히 무림맹주와 그 가족들이 기거하는 지존각(至尊閣)에는 지존수호대(至尊守護隊) 무사 천 명이 상주하고 있었다.
이들 지존수호대 무사들은 맹의 각 조직에서 엄선된 자들로 하나같이 무공이 뛰어났다.
그런 의미에서 마교의 천마수호대(天魔守護隊) 무사들과 자주 비교되기도 했다.
백자안이 동료 무사들을 보다가 한 가지 사실을 깨닫고 안색을 굳혔다.
표정이 밝아야 할 그들이 하나같이 어두웠다.
특히 백자안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그랬다.
‘무슨 일일까? 예감이 좋지 못하구나.’
백자안이 천천히 말에서 내렸다.
구급무사 신분으로 말을 타고 총단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그때였다.
대문 안에서 일단의 무사들이 다시 나왔다.
모두 백여 명으로 바로 집법당 무사들이었다.
그들의 선두에는 집법당주를 겸하고 있는 집법장로 황보생(皇甫生)이 있었다.
그는 전대 황보세가주의 친동생으로 일찍이 무림맹에 투신했었다.
가주 자리 대신 무림맹에서의 출세를 택한 것이었다.
그 결과 무림맹의 실세 자리라 할 수 있는 집법장로가 될 수 있었다.
“아가씨께서 오셨군요.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황보생이 단목수련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집법장로님이 직접 마중을 나오신 건가요? 영광이에요.”
“아닙니다. 공무를 집행해야 할 일이 있어서. 아, 마침 총순찰도 나오는군요.”
황보생의 말에 사람들이 대문 안을 보니 비범한 청년 한 명이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준수한 외모도 외모지만 걸음걸이가 매우 안정적이었다.
바로 무림맹주 절대검신의 대제자이자 단목수련과 약혼이 예정된 영호광이었다.
그의 무공은 매우 높으며 무적세가의 독고준보다 훨씬 고수로 알려져 있었다.
“사매!”
영호광이 단목수련을 보고 기뻐했다.
그녀를 사매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은 그 외에 사제 두 명뿐이었다.
단목수련은 남해검파의 제자이기도 하지만 부친으로부터도 기초 무공을 배웠다.
이제 맹으로 돌아온 이상 본격적으로 부친의 무공을 전수할 계획이었다.
“대사형도 마중 나오신 건가요? 한데 공무 수행이라니 뭐죠?”
단목수련이 의아해했다.
영호광이 무심히 말했다.
“집법장로께서 알아서 처리하실 거야. 사매는 신경 쓰지 않아도 좋아.”
이제 모든 사람의 이목이 황보생에게 쏠렸다.
그가 백자안을 가리키며 수하들에게 명을 내렸다.
“저자를 체포하라!”
< [제13장] 금마옥 1 > 끝
ⓒ 행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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