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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적 반로환동-37화 (37/250)
  • < [제12장] 군자환 3 >

    토벌군의 진입으로 악양의 치안은 빠르게 안정되어갔다.

    그 결과 불과 사흘 만에 이전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다.

    물론 사망자만 수천 명이 넘었기 때문에 그 후유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인근 성의 지원이 이어지고 무림맹 총단에서 정예 무사 오천 명이 도착해 당분간 상주할 것을 약속하자, 백자안 역시 더는 머무르지 않고 떠날 결심을 하게 되었다.

    “정말 떠날 건가?”

    우문호의 물음에 백자안이 대답했다.

    “네. 이제 제가 없어도 될 것 같습니다. 사천사자들과 강시들이 어디에 있는지 아직 파악되지 않았습니까?”

    “그러하네. 놈들이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네. 남쪽으로 갔다는 것만 파악된 셈이지. 놈들이 총단 위치를 철저히 숨기려 하지 않겠나?”

    “그렇겠지요. 정식으로 무림에 발호하기 전까지는 총단을 드러내려 하지 않을 겁니다.”

    “그건 그렇고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바로 낙양으로 갈 것인가? 예정대로 화산에 들를 것인가?”

    “시간이 지체되었으니 곧바로 총단에 복귀할 생각입니다.”

    “하기야 이제 매화검선의 추천장은 필요 없을 것일세. 자네의 명성이 이번 일로 더욱 높아졌을 테니까.”

    “과찬의 말씀입니다. 수적들을 제대로 제거하지도 못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아직 설 대원 소식은 없습니까?”

    “그러하네. 자네 말을 들으니 토벌군 진영 쪽으로 오다가 중상을 입은 것 같은데, 우리 쪽에는 오지 않았네. 나도 걱정이 되긴 마찬가지네.”

    “저 역시 걱정입니다. 무사들을 풀어서 계속 찾아봐 주십시오. 어디선가 혼자 치료하고 있을 수도 있을 테니까요.”

    “물론이네. 마침 와룡대원들이 어젯밤 도착했으니, 그들 역시 적극적으로 찾아볼 것이네.”

    “와룡대원들도 왔습니까?”

    “그러하네. 무림맹 총단 정예무사 오천 명과 함께 왔지. 안 그래도 이번에 새로 임명된 와룡대주가 자네를 한번 보고 싶어 하던데, 한번 만나보고 가지 않겠나?”

    “신임 와룡대주라면 맹주님의 여식이자 설 대원의 사매가 아닙니까? 남해검파 제자이기도 하고.”

    “맞네. 설 대원의 행방을 아가씨도 찾고 있더군. 지금 무사를 보내 모셔오도록 할까?”

    “네. 원래는 제가 찾아가야 하지만 그렇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설 대원과 관련해서 제가 직접 설명해 드려야 할 것 같군요.”

    “그렇게 하지.”

    우문호가 무림맹 무사를 시켜 무림맹주 여식 단목수련(端木睡蓮)을 데려오게 했다.

    백자안은 어제 내상 치료를 하느라 나가보지 못했지만, 무림맹 총단 무사 오천 명이 입성하면서 단목수련의 미모는 대단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야말로 천하제일미라는 호칭에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날씬하고 아름다웠다.

    특히 침착하면서도 지혜로운 눈빛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없게 했다.

    물론 이전 담대선생의 말대로 순수 미모만 따지면 악미미와 백리설아 역시 뒤처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단목수련에게는 나이에 비해 성숙하고 신비스러운 느낌이 있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러한 성스러움이 그녀를 무림삼미 중 으뜸으로 손꼽히게 하는 바탕이 되고 있었다.

    게다가 무림맹주 여식이라는 최고의 배경까지 있었다. 그녀가 무림삼미 중 으뜸이라는 말에 토를 달 사람은 이제 거의 없을 것 같았다.

    오죽하면 한번 얼굴을 보려고 벼루던 악미미조차 그녀를 질투하기는커녕 친해지려 했겠는가.

    백리설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악미미에게 뒤지는 것은 참을 수 없어도 단목수련에게는 그런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세 사람 모두 같은 나이지만 단목수련은 마치 언니처럼 포용력이 있었던 것이다.

    그 예로 어제 악미미와 백리설아 두 사람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그녀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악미미와 백리설아의 미모가 쌍벽을 이루고 있으며, 자신은 세 번째라고 스스로 선언한 것이다.

    그 말 한마디로 악미미의 기운이 부드러워졌다.

    백리설아 역시 호감을 드러냈다.

    단목수련의 친화적인 성격 때문일까.

    세 사람은 어제 밤새 이야기를 나누며 친분을 쌓았다.

    특히 주목할 것은 악미미와 백리설아 사이 역시 처음보다 훨씬 좋아졌다는 것이다.

    하기야 이번에 위기를 함께 겪으며 동질감을 느낀 이유도 컸다.

    특히 백자안이 화약 폭발로 인해 죽었다고 생각했을 때 잠시나마 인생무상을 느꼈던 그녀들이었다.

    물론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몰랐다. 지금도 그들 세 사람은 아침부터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런 차에 단목수련이 우문호의 부름을 받았다.

    단목수련은 악미미와 백리설아를 데리고 대청으로 왔다.

    우문호와 백자안이 세 사람을 맞이했다.

    백자안 역시 악미미에게 할 말이 있었던 터라 잘 되었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놀란 것은 단목수련의 미모였다.

    특히 그 눈빛이 설중화의 것과 많이 닮아 있었다.

    ‘역시 남해검파 동문이라서 그런 것인가. 그나저나 가히 천하제일미인이라 할 수 있겠구나. 순수 미모는 세 사람 모두 비슷하지만, 기품에서 앞선다. 물론 악 소저와 설아 역시 경험이 쌓이면 기품 역시 좋아지겠지만, 아직은 조금 부족하다고 할 수 있지.’

    백자안이 담담히 말했다.

    “백자안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단목수련이라고 해요.”

    백자안과 단목수련이 인사를 나눴다.

    백자안이 바로 설중화 이야기를 꺼냈다.

    단목수련이 담담히 말했다.

    “저도 사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거예요. 단명할 분은 아니니까. 아마 어디에선가 치료 중일 거예요.”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모두 저의 불찰입니다. 혼자 성 밖으로 보내는 것이 아니었는데······.”

    “아니에요. 곧 소식이 올 거예요. 제 예감은 틀린 적이 거의 없거든요.”

    단목수련이 미소를 지었다.

    사내라면 아찔하게 느껴질 정도로 매혹적인 미소였다.

    그동안 담담한 모습만 보여줬던 그녀였기에 다른 사람들도 놀라는 표정이었다.

    가만있을 때는 잘 몰랐다.

    하지만 미소를 짓게 되자 그 미모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 보이는 게 아닌가.

    ‘무림삼미 중 으뜸이라고 사람들이 말하는 이유를 알겠군.’

    백자안이 눈을 빛냈다.

    하지만 그는 백오십 살까지 살아봤기 때문에 비교적 미색에 강한 편이었다.

    단목수련의 미소에 잠시 마음이 흔들렸지만, 곧바로 본래 안색으로 돌아갔다.

    그때였다.

    단목수련이 뭔가를 느낀 듯 우수를 들었다.

    순간 창문이 열리며 비둘기 한 마리가 들어왔다.

    전서구였다.

    단목수련이 비둘기 발목에 묶인 서찰을 읽어보고 표정이 밝아졌다.

    “아! 설 사저예요. 중상을 입었으나 사부님을 만나 남해로 돌아가 치료 중이라고 하네요. 몇 달 정도 요양하면 나을 수 있다고 하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달라고 하셨어요.”

    “잘 되었습니다.”

    “잘되었군요.”

    백자안과 우문호, 악미미, 백리설아 모두 기뻐했다.

    특히 백자안은 마음의 짐을 던 것 같아 매우 기뻤다.

    ‘만약 설 대원이 세상을 떠났다면 나 또한 무척 상심이 컸을 것이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처음부터 자신에게 잘 대해줬던 설중화였다.

    그 보답은 다음에 다시 만나게 되면 해주리라 다짐했다.

    우문호가 물었다.

    “아가씨. 아니 이제 단목 대주라고 불러야 하나요? 제가 듣기로 곧 맹주님 대제자인 영호공자와 약혼을 한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입니까?”

    “네. 조만간 하게 될 것 같아요.”

    단목수련이 안색을 조금 굳혔다.

    순간, 악미미와 백리설아의 표정이 밝아졌다.

    아무리 친해졌다고는 하나 그들 역시 여자였다.

    특히 조금 전 단목수련의 매혹적인 미소를 보고 자연스럽게 질투심을 느꼈다.

    하지만 무림맹주 절대검신의 대제자이자 무림맹 총순찰인 영호광(令狐光)과 곧 약혼한다고 하니 그러한 경계심이 사라졌다.

    “축하드립니다.”

    “축하해요.”

    축하의 말이 쏟아졌다.

    백자안 역시 웃으며 축하해줬다.

    하지만 왠지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었다.

    ‘첫눈에 호감이 갔었는데, 헛물을 켠 셈이로군.’

    그래도 일찍 알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단목수련이 다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백 공자 역시 악 소저와 정혼한 것으로 들었어요. 그게 사실인가요?”

    “네. 안 그래도 그 문제로 악 소저께 말씀드리려 했습니다.”

    “제게요?”

    악미미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네. 생각해본 결과 화산에 들르지 않고 곧바로 총단에 복귀하기로 했습니다. 이곳 악양에서 너무 오래 머문 것 같습니다.”

    “그럼 우리 두 사람 관계는 지금 그대로인가요?”

    “그런 셈이지요. 저번에 말씀드린 대로 제가 먼저 파혼을 요구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렇게 아버님께 말씀드려주시겠습니까?”

    “아버지께서 화를 내고 바로 파혼 선언을 하실지도 몰라요.”

    악미미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백자안이 화산파로 가는 게 좋을지 안 가는 게 좋을지 판단이 바로 서지 않았다.

    ‘내 마음을 나도 잘 모르겠구나. 백 공자에게 갈수록 마음이 끌리는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우리 두 사람이 서로 애타게 좋아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악미미가 아미를 찡그렸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백자안의 불확실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흥! 혼인하자 하든지, 아니면 파혼하자 하든지 확실히 해줘야지 나도 마음을 정하지. 물론 내가 먼저 모호한 태도를 취하긴 했지만······.’

    악미미가 백자안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려 할 때.

    단목수련이 말했다.

    “제 생각에 매화검선께서는 절대 파혼을 결정하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악 소저께서는 염려하지 않으셔도 돼요.”

    “제가 왜 걱정하나요? 정말 아버지께서 파혼을 결정하지 않으실까요?”

    “당연하지요. 듣자 하니 저번에 백 공자가 무적세가 독고 공자와 대결해 승리를 거두었다지요? 게다가 지금 백 공자는 이번에 악양성 무인들로 구성되었던 복악양회 회주까지 맡았을 절도로 활약이 대단했어요. 앞으로도 마음만 먹으면 군웅들을 모을 수 있을 거예요. 게다가 비록 수적들이 강시로 변해 사라졌지만 그 후환을 다들 걱정하고 있지요. 하지만 백 공자는 가공할 무공을 지닌 그 사천사자들 백 명의 합공을 받고도 오히려 우세를 점하셨지요. 이제 백 공자의 명성은 무림에서 따를 자가 없을 거예요. 독고 공자가 아무리 무적세가 대공자라고 해도 이제 백 공자를 넘어서기 힘들 거예요. 갈수록 그 차이가 벌어질 것이고요. 매화검선께서도 백 공자를 사위로 두는 것이 화산파 안위에도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아시지 않겠어요?”

    “과찬이십니다. 아무런 배경도 없는 제가 어찌 독고 공자를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그는 단신으로 적진으로 들어와 악 소저를 구하고자 한 용기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저와 악 소저 두 사람 모두 당분간 혼인할 생각이 없으니, 모든 것은 순리대로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남녀 사이에 굳건한 믿음이 있다면 설사 양가 부모님에 의해 파혼이 된다고 한들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순수한 마음으로 다시 시작해 서로 백년가약을 맺을 수도 있겠지요.”

    “백 공자 말씀은 마음이 제일 중요하다는 건가요?”

    단목수련의 물음에 백자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비단 혼사뿐만이 아니라 무공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이야 말로 대도(大道)의 근본이지요. 사람이 그 마음의 주인이 될 때 진정한 무도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백자안이 일부러 무공에 관한 이야기로 전환했다.

    혼사 이야기는 낯 뜨거운 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악미미가 말했다.

    “잘 생각하셨어요. 저 역시 화산으로 돌아가지 않고 총단으로 가서 와룡대에 지원할 생각이었으니까요.”

    “호호. 그럼 두 분 모두 낙양으로 가시는가요? 저 역시 돌아가야 하니 함께 가도록 해요.”

    백리설아가 웃음을 터뜨렸다.

    단목수련 역시 미소를 지었다.

    “저 역시 바로 복귀해야 해요. 이곳은 청룡당 무사들에게 맡기고 바로 복귀하라는 명을 받았거든요. 잘됐네요. 그럼 내일 모두 총단으로 함께 가도록 해요. 백 공자도 괜찮겠지요?”

    “물론입니다.”

    < [제12장] 군자환 3 > 끝

    ⓒ 행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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