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적 반로환동-36화 (36/250)
  • < [제12장] 군자환 2 >

    악양성 관아 대연무장.

    날이 밝아오자 삼만여 수적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백자안의 명으로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였다.

    특히 성곽 방어 병력도 참가했는데, 최소 병력도 남기지 않고 모두 철수해 이곳으로 왔다.

    채주들이 의문을 제기했으나, 백자안은 토벌군의 방심을 유도한다는 이유로 둘러댔다.

    하기야 먼 거리가 아니라서 내공환만 받고 곧바로 돌아가면 되었다.

    백자안은 백여 수채 지휘부 고수들과 함께 단상 위에 앉아 있었다.

    백풍과 백리설아, 악미미 역시 백자안과 함께 있었다. 그들 또한 백자안의 휘하에 들어왔음을 조금 전 공포한 바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내공환, 아니 백자안이 만든 군자환을 복용하는 것이었다.

    백자안이 말했다.

    “이 자리에서 내공환을 모두 복용한 후 곧바로 토벌군을 공격하러 성 밖으로 나갈 것이오. 놈들은 지금쯤 성곽 방어 병력이 철수한 것을 알고 방심하고 있을 터. 백 배 넘게 강해진 우리가 일제히 공격하면 섬멸할 수 있을 것이오.”

    와아아아.

    수적들이 환호했다.

    수룡채주 수룡객이 말했다.

    “총채주님. 어서 복용시키지요. 저 또한 준비되었습니다. 총채주님도 복용하실 겁니까?”

    “나는 이미 복용했소. 그 결과 무한대의 내공을 보유하게 되었소. 물론 아무런 부작용도 없었소.”

    백자안이 연무장 한구석에 있던 거대한 바위를 우수로 가리켰다.

    순간, 바위가 그대로 가루가 되어버렸다.

    멀쩡하던 바위가 폭음도 없이 그대로 먼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실로 놀라운 무공이 아닐 수 없었다.

    와아아아.

    수적들의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사실 급속도로 인기가 높아져 가던 용왕채주 박무가 백자안과 함께 동귀어진했다는 소식에 다들 아쉬워하고 있던 차였다.

    물론 독고준을 이긴 박무는 실제 백자안이었으나, 수적들이 그 사실을 알 리 없었다.

    이미 백자안이 명을 내려 수적들 모두에게 군자환이 제공된 상태.

    복용하기만 하면 되었다.

    백자안이 말했다.

    “우리의 단합을 상징하는 의미에서 나의 지시가 있으면 모두 한꺼번에 복용하도록 하시오. 그런 후 곧바로 성 밖으로 나갈 것이오.”

    백자안의 계산으로 성문에 도달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반 시진 정도.

    그때까지가 문제였다.

    내공 발현이 제한된 수적들이 동요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 경우를 대비해 백자안이 미리 설명해주었다.

    “이번 내공환은 아까 말했듯이 백 배 더 강해지는 강력한 효력이 있기 때문에, 처음 복용하고 반 시진 정도는 마치 군자산을 먹은 것처럼 내공이 느껴지지 않을 것이오. 하지만 우리가 성문에 도달할 때쯤에는 원래의 공력을 회복하는 것은 물론이고 백 배 이상의 내공을 보유하게 될 것이오. 아쉬운 점은 이번에 백배 이상으로 강해지는 것은 순수 내공 분야에 한정되오. 하지만 이미 무공 자체가 열 배 이상 높아졌기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오. 자, 이제 내공환을 모두 높이 드시오.”

    “존명!”

    “존명!”

    수적들 모두가 군자환을 높이 들었다.

    단상에 있던 지휘부 고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군자환을 들고 있지 않은 사람은 백자안을 비롯해 백풍, 백리설아, 악미미 네 사람뿐이었다.

    “북을 쳐라! 북소리가 울리면 곧바로 복용하시오!”

    백자안이 소리쳤다.

    역시 군자환을 왼손에 들고 있던 수적 한 명이 북을 치기 위해 봉을 휘둘렀다.

    북소리가 울리려던 찰나.

    그의 손이 멈췄다.

    백 명의 노인, 즉 사천사자들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멈춰라!”

    내공환을 제공해준 사람들이 바로 사천사자들이었다.

    사실 그들이 돌아갔다는 말에 수적들 또한 의문을 품고 있었다.

    한데 그들이 나타나니 다들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약은 가짜다! 우리는 내공환을 다시 준 적이 없다!”

    사천특사자의 말에 수적들이 군자환을 든 손을 내렸다.

    미련이 남아 버리지는 않았지만, 진실을 가리는 것을 보기로 한 것이다.

    당연히 다들 백자안의 반응을 기다렸다.

    백자안은 의외로 태연했다.

    물론 속으로는 매우 놀랐다. 하지만 순간적이지만 사천사자들이 자신의 역용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을 안 것이다.

    “총채주! 이 무슨 짓이오? 우리가 언제 이 약을 줬소?”

    사천특사자가 따졌다.

    백자안은 여전히 태연했다.

    “사자분들께서 오셨군요. 녹림왕을 만나러 간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화약 폭발 소리를 듣고 급히 돌아왔소. 이 약의 정체가 무엇이오?”

    “제가 직접 제조한 약입니다. 성분은 군자산처럼 보이나 백 배 이상 내공이 강해지는 효력을 지니고 있지요. 수하들이 믿지 못할 것 같아서 사자님들이 만든 내공환이라 말했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그게 정말이오? 이 약은 어떻게 제조하였소?”

    “백자안 그놈과 동귀어진한 박 채주가 갖고 있던 내공환을 분석해 만들었지요.”

    “한번 봐도 되겠소?”

    “그렇게 하십시오.”

    백자안이 한 알 갖고 있던 것을 사천특사자에게 주었다.

    군자환의 제조비법은 매우 오묘했다. 사천특사자라 해도 바로 알아차리지 못할 거란 자신이 있었다.

    “특사자께서 먼저 한번 복용해보시겠습니까? 죽은 박 채주 것으로 딱 한 알 남은 것인데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으음······.”

    사천특사자가 안색을 굳혔다.

    자신의 능력으로 군자환의 성능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다른 수적으로 하여금 우선 복용하도록 할 수도 없었다.

    아까 들었지만 백자안이 실제 효력은 반 시진 후에 나타난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천사자 한 명이 급히 사천특사자에게 전음을 날렸다.

    「특사자님. 장강수왕 이 자가 우리가 준 내공환이 강시환이란 사실을 알아낸 것일까요?」

    「그럴 리는 없다. 우리가 강시피리를 불지 않는 이상 강시로 변하지 않는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장강수왕 이자를 죽이고 수적들을 강시로 만들어 데려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럴 수는 없다.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토벌군과 싸우게 해야 한다. 무적세가 놈들의 힘을 지금 기회에 빼야 하지 않겠느냐? 내공환의 위력도 시험해봐야 하고. 물론 그러다가 수적들이 몰살당하게 되면 생강시로 만드는 것은 어려워지나, 사강시로 만들 수 있으니 최악의 결과는 면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이 정체 모를 약을 복용하는 것을 지켜보실 생각입니까?」

    「그렇지는 않다. 보류를 시켜야겠지. 솔직히 나는 이 장강수왕이 진짜인지 의심스럽다. 역용 흔적은 없으나 이놈이 토벌군 쪽 고수라면 수적들이 일거에 독약을 먹고 몰살당하게 될 테니까.」

    「토벌군 쪽 고수라면 혹시 백자안 그놈을 의심하는 겁니까?」

    「그렇다. 지금 생각해보니 용왕채주 박무 그놈 역시 백자안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백자안 그놈이 박무와 장강수왕 두 사람을 죽이고, 차례대로 두 사람의 행세를 하고 있을 수도 있지. 하지만 증거가 없으니 나의 유보 지시를 어기면 곧바로 죽이겠다.」

    사천특사자가 전음을 날린 후 백자안에게 말했다.

    “총채주. 잠시 이 약을 보니 문제가 많은 것 같소. 토벌군 놈들을 제거하는 데는 지금 무공 수준으로도 충분하니, 이 약을 먹는 것은 유보하시오. 자칫 부작용을 일으켜 무사들이 주화입마될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 같소.”

    “하하하. 그렇게 하겠습니다. 다만 총공격 시기는 좀 더 미루겠습니다.”

    “아니오. 바로 총공격을 가하시오. 우리가 도와주겠소.”

    사천특사자가 압박을 가했다.

    백자안이 잠시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든 둘러대기는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천특사자 말대로 총공격을 가할 수는 없었다.

    “총지휘권은 제게 있습니다. 더는 강요하지 마십시오. 자꾸 이러시면 사사천교와 관계를 끊겠습니다. 녹림왕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셨으니 이만 돌아가 주시지요. 안 그러면······.”

    “안 그러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오?”

    사천특사자가 내공을 끌어올렸다.

    대답에 따라 백자안을 일장에 쳐 죽일 생각이었다.

    백자안을 죽인 후 수적들을 생강시로 만들어 버리면 간단한 문제였다.

    문제는 사사천교 교주가 직접 창안한 강시대법이 미완성이란 점이었다.

    강시로 만들어도 일단 총단에 데려가 보완을 해야 했다.

    그래서 일단 수적들의 세력을 강화해준 후 무림맹과 정의련 세력을 약화할 계획이었던 것이다.

    물론 수적 세력이 강해져 수적들이 더 불어나면 그들 역시 내공환을 복용시켜 잠재적 강시로 만들 계획도 있었다.

    “누구든 강시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지요. 모두에게 명한다. 즉시 내가 준 내공환을 복용하라. 그러지 않으면 사천사자들의 흉계에 빠져 강시가 될 것이다.”

    “이놈이! 네놈은 장강수왕이 아니다!”

    사천특사자가 오른 주먹을 뻗어 백자안의 머리를 후려쳤다.

    하지만 백자안은 여유 있게 이를 피했다.

    자신감을 가진 백자안이 소리쳤다.

    “어서 복용해라. 이자들은 지금 우리를 강시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수적들이 당황하며 군자환을 먹으려 했다.

    사천특사자가 급히 소리쳤다.

    “강시피리를 불어라!”

    사천사자들이 일제히 품속에서 피리를 꺼내 불기 시작했다.

    그들이 최우선 목표로 하는 것은 생강시였다. 그 때문에 수적들이 그대로 죽는 것을 막아야 했다.

    물론 이는 백자안이 제조한 군자환이 독약이라고 착각한 탓이었다.

    삘리리리.

    피리 소리가 흘러나오자, 수적들이 벼락을 맞은 듯 몸을 떨었다.

    눈동자 색이 잿빛으로 바뀌더니 뭔가에 홀린 듯 멍청히 서 있었다.

    “생강시 제조에 성공했다! 하하하!”

    사천특사자가 껄껄 웃었다.

    하지만 아직 보완이 필요해 보였다.

    우려한 대로 직접 적을 공격하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그때 백자안이 무형의 공력을 일으켜 사천사자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대단한 압박이었다.

    놀란 사천사자들이 합공을 가해 대항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백자안에게 밀리는 것이 아닌가.

    사천특사자가 소리쳤다.

    “일단 강시들을 데리고 총단으로 철수한다.”

    “존명!”

    사천사자들이 일제히 강시피리를 불며 남쪽으로 날아갔다.

    생강시가 된 삼만여 수적들이 일제히 그들을 따라 날아갔다.

    백자안은 그들을 쫓지 않았다.

    조금 전 사천사자들과의 기세 대결에서 내상을 입은 탓이었다.

    “악 소저. 어서 가서 성문을 여시오.”

    “네.”

    악미미가 고개를 끄덕인 후 성문 쪽으로 날아갔다.

    백자안은 그 자리에 앉아 회복운공에 들어갔다.

    ‘내 추측이 맞았구나. 생강시 삼만 구를 만들어 데려갔으니 앞으로 무림의 화근이 될 것이다. 지금 당장 저들을 쫓아가도 별수가 없다. 강시술을 펼쳐서 강시들을 조종할 수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고. 장기적 대책을 세울 수밖에 없겠구나. 더 이상 생강시를 만들 수 없어야 할 텐데······.’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정오 무렵이 되자 토벌군이 서서히 입성하기 시작했다.

    수적들이 모두 사라진 것을 알고 성안 백성들이 모두 나와 환영했다.

    백자안 역시 백풍, 백리설아와 함께 그들을 맞이했다.

    물론 백자안은 역용을 풀고 자신의 본 얼굴로 돌아온 상태였다.

    자초지종을 들은 우문호가 탄식했다.

    “사사천교 그놈들이 그 많은 강시를 만들어 데려갔으니 앞으로 무림에 큰 화가 미칠 것 같네. 그래도 강시가 불완전해 보였다고 하니 대비할 시간은 있을 것 같군. 아무튼 수고 많았네. 자네가 아니었다면 큰 피해가 있었을 것이네. 그놈들이 하는 짓으로 봐서 여차하면 성안 백성들을 몰살하고도 남음이 있었으니까.”

    “과찬이십니다. 사천사자들이 오기 전에 수적들을 모두 제거했어야 했는데, 그게 아쉽습니다.”

    “아닐세. 어차피 죽여도 사강시로 만들었을 테니까. 그래도 음모를 알았으니 앞으로 함부로 놈들이 주는 약을 먹을 사람이 없을 걸세. 그것만으로도 큰 공을 세운 것이지. 이제 좀 쉬게.”

    “네.”

    백자안이 고개를 숙인 후 기다리고 있던 백소영을 만났다.

    백풍과 백리설아, 그리고 악미미도 함께 모였다.

    다들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이었다.

    백자안이 사천사자들과 생강시들이 사라진 남쪽을 쳐다봤다.

    ‘사사천교 총단이 남쪽에 있는 것 같구나. 이번 일로 무림맹에서 대비를 할 것 같군. 나로서는 계속 나의 길을 걸어가야겠지.’

    < [제12장] 군자환 2 > 끝

    ⓒ 행호사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