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0장] 백리설아 2 >
관아 대연무장.
지금 내공수 보급을 받기 위해 수많은 수적이 모여 있었다.
성벽 방어를 위한 병력도 일부 와 있었다. 그들은 내공수를 받아 성곽에 가져갈 예정이었다.
장강수왕을 비롯한 지휘부도 단상 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에는 백자안도 있었다.
백리설아와 백풍 두 사람을 용왕채 지휘막사에 남겨 두고 혼자 나온 것이었다.
동정수로채주 원보가 단상 위에 올라가 소리쳤다.
“조금 있으면 사천사자들께서 내공수를 가져오실 것이니, 모두 정숙하도록 하시오. 오늘은 특별히 사자들께서 모습을 보이는 날이니 경거망동해서 실수하는 사람이 없어야 할 것이오.”
원보의 말에 수적들이 웅성거렸다.
이제까지는 미리 가져다 놓은 내공수를 받아 갔을 뿐이었다.
한데 직접 사천사자들이 모습을 보인다고 하니 평소와 다른 일이 있을 것 같았다.
백자안 역시 의아해했다.
‘내공수 제공 방식을 변경하려는 것일까. 두고 보면 알겠지.’
그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백여 명의 노인이 대연무장에 나타났다.
손에는 작은 병 하나씩을 들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 안에 내공수가 들어 있는 것 같았다.
삼만 수적들에게 모두 나눠주기에는 적어 보이긴 했지만, 한 방울씩만 먹으면 된다고 생각하니 충분할 것 같았다.
산술적으로 한 병당 삼백 명만 먹으면 되기 때문이었다.
“사천사자님들이십니다.”
원보의 말에 수적들이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사천사자들은 장강수로채 수적들의 스승으로 떠받들어지고 있었다.
장강수왕 역시 일어나 그들을 영접했다.
“사자들께서 직접 오셨군요. 이제 전면에 나서시는 겁니까?”
“하하하. 그건 아니오. 다만 내공수를 환으로 만들어 왔기 때문에 직접 나눠주고 설명해주기 위해 온 것이외다.”
사천사자 중 수장격인 사천특사자(邪天特使者)가 말했다.
참고로 사천특사자는 휘하에 백 명의 사자를 거느리고 있었다.
이러한 사천특사자가 몇 명이나 있는지는 아직 모를 일이었다.
“환으로 만들었다 하심은?”
“다들 느꼈을 것이오. 매일 내공수 한 방울을 먹는 것이 꽤 번거롭다는 것을. 물론 내공수도 등급이 있어 총채주를 비롯해 지휘부 고수들께는 상등품을 제공했소. 하지만 사실 일반 내공수와 큰 차이는 없소. 다만 내공이 고강한 분들에게는 그에 맞게 좀 더 정제된 내공수를 제공했을 뿐이오.”
사천특사자의 말에 지휘부 고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품질이 좋은 내공수를 먹긴 했지만, 일반 수적들과 마찬가지로 무공이 열배 정도 늘어난 게 사실이었다.
다만 흡수 속도가 빨랐다.
하지만 그럴수록 중독 현상이 더 느껴지는 단점도 있었다.
“사실 지금까지는 실험적인 면이 컸소. 하지만 그동안의 경과를 보고 내공수 복용에 큰 무리가 없다고 판단했소. 그래서 오늘 드디어 영구적인 효과를 보는 내공환(內攻丸)을 제공하게 된 것이오.”
“아!”
수적들이 탄성을 터뜨렸다.
사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매일 내공수를 복용하는 것이 번거롭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최소 한 달 이상의 효력을 가지는 내공수를 먹기를 바랐던 것이다.
특히 지금처럼 토벌군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더 비효율적이었다.
한데 영구적 효력이라니.
귀가 솔깃할 만했다.
“이 내공환은 내공수를 삼백 년 간 매일 먹은 효과와 비슷하니 가히 영구적이라 할 것이오. 영구적인 효력을 지니기 때문에 당연히 금단현상도 없소. 내공환의 효력은 모두 알고 있을 것이오. 내공을 열 배로 증강해주며, 본신 무공 또한 열 배로 높여주는 효력이 있소. 무공까지 높여주는 것은 정신을 맑게 해 구결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때문이오. 모두 삼만 개의 내공환을 만들어 왔으니 가져가서 한 사람도 빠짐없이 복용하도록 하시오.”
사천특사자가 약병을 앞에다 놓았다.
나머지 사자들 역시 병을 놓았다. 모두 백 개였다.
장강수왕이 말했다.
“더 하교하실 말씀이 없으십니까?”
“총채주. 아직 우리가 전면에 나설 상황은 아니나 우리 사자들의 사문을 이야기해도 좋을 것 같소. 장강수로채가 본교 휘하에 들어갔다는 것을 정식으로 공포해도 좋다는 말이오. 그렇게 되면 다른 곳 역시 본교의 휘하에 들기를 바랄 것이오.”
“명을 받들겠습니다. 내공수, 아니 내공환을 원하는 무림인이 대단히 많을 겁니다.”
장강수왕이 안색을 굳혔다.
내공환을 다른 곳에도 나눠 줘 사사천교의 세력을 확장하겠다는 계획이 마음에 걸린 것이다.
‘다른 놈들도 강해지면 우리 장강수로채의 영향력이 떨어질 것이 아닌가. 하지만 내공환이란 것을 그렇게 많이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 후후후! 지금은 비록 사사천교 휘하가 되어 머리를 숙이지만, 언젠가는 우리 장강수로채가 천하에 우뚝 설 것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인원이 많은 우리가 유리하지.’
장강수왕이 미소를 지었다.
그랬다.
그는 종국에는 사사천교까지 장악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아무리 사사천교 휘하 세력이 되었다고는 하나 현장 지휘권은 여전히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었다.
“총채주. 뭘 하고 있소? 어서 공포하시오.”
“네. 사자님.”
장강수왕이 고개를 돌려 수적들에게 말했다.
“사천사자들님은 바로 사사천교 분들이다. 지난 백 년 동안 힘을 기른 사사천교 휘하에 우리 장강수로채가 들어갔음을 정식으로 선언하니, 모두 어딘가에 계실 교주님께 예를 올리도록 하라.”
“존명!”
“존명!”
수적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하하하! 교주님께서도 기뻐하실 것이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따로 없소. 내공환을 복용하여 영구적으로 힘이 강해진 후 본교의 무림일통 대업에 장강수로채가 힘을 보태주길 바랄 뿐이오. 그렇게만 해주면 고도의 자치권을 인정해줄 것이니 안심해도 좋을 것이오.”
“감사드립니다. 모두 내공환을 복용하라.”
장강수왕이 기쁜 표정으로 소리쳤다.
그때였다.
잠자코 있던 백자안이 말했다.
“잠깐만. 총채주님. 제가 먼저 내공환을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박 채주. 이 무슨 무례한 짓이오? 지금 사자님들을 못 믿겠다는 것이오?”
장강수왕이 호통을 쳤다.
“그게 아니라 조금 이상해서 그러는 겁니다. 저 내공환이란 것을 복용하고 혹여 부작용이라도 생긴다면 큰일이 아닙니까?”
백자안이 물러서지 않고 말했다.
생강시 문제를 언급할 생각도 있었으나 아직 증거가 없어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장강수왕이 다시 호통을 쳤다.
“부작용은 무슨 부작용이란 말이오? 지금까지 내공수를 먹고 탈이 난 사람은 없었소. 다만 금단작용이 있어 내공수를 계속 먹지 못하면 기혈이 조금 흔들리는 느낌은 있었소. 사자들께서 그 점을 걱정해 금단 작용을 없앨 수 있도록 내공환을 만들어 주셨는데,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실례가 될 것이오. 한 번 더 사자님들을 의심한다면 총채주의 권한으로 죄를 묻겠소.”
“알겠습니다. 하지만 내공환을 복용하는 것은 개인의 판단에 맡겨주십시오.”
“그 말은 박 채주는 복용하지 않겠다는 것이오?”
“일단 받아 간 후 나중에 복용하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먹고 부작용이 없는지 보고 먹겠다는 이야기로군. 그렇소?”
“네. 그렇게 해도 되겠습니까?”
“의심이 나면 그렇게라도 하시오.”
장강수왕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잘 됐다. 안 그래도 네놈을 최대한 빨리 죽이고 백리설아 그 계집을 빼앗아 오려 했는데, 내공수 효력이 오늘 정오 때는 완전히 사라질 것이니 그때 조용히 불러서 죽이면 되겠군. 네놈은 지금 무덤을 판 것이다.’
장강수왕이 백자안을 죽일 결심을 한 후 수적들에게 내공환을 받아 갈 것을 명했다.
수적들이 급히 내공환을 받아 복용하기 시작했다.
성벽 방어 병력에게 나눠주기 위해 왔던 수적들도 일만 명 분량의 내공환을 받은 후 돌아갔다.
장강수왕을 비롯한 수적 지휘부도 내공환을 받아 각자 복용했다.
먹지 않은 사람은 백자안뿐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내공환 한 알을 확보할 수 있었다.
사천특사자가 말했다.
“효과는 바로 나타날 것이오. 이제 우리는 돌아가야 하니 그렇게 알고 원래 계획대로 호남성 전체를 장악하기 바라오.”
“정말 돌아가실 겁니까?”
장강수왕이 흠칫하며 물었다.
사천사자들의 존재는 수적들에게 있어 든든한 버팀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소. 녹림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소. 잘만 되면 녹림칠십이채 병력도 이곳으로 합류할 수 있을 것이오. 성 밖의 토벌군은 여러분 힘만으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니, 자신감을 가지시오. 다시 말하지만 본교는 휘하 문파의 일에 지나친 개입을 하지 않을 것이오.”
“하지만 백자안 그놈이 아직 살아있습니다. 사자님들께서 그놈이라도 죽여주고 가시면 안 되겠습니까?”
“백자안이라. 아, 그놈이 있었군. 좋소. 놈을 죽일 때까지 우리가 남아 있어 주겠소. 물론 우리가 알려준 유인작전은 계속 시도하시오.”
“알겠습니다. 뇌옥에 갇힌 놈들을 저잣거리에 데려가 처형하는 것은 며칠 미루겠습니다.”
“잘 생각했소. 놈은 반드시 걸려들 것이오. 아, 그리고 한 가지 총채주에게 알려줄 것이 있소. 다른 게 아니라 어제 한 계집이 성 밖으로 나가는 것을 우리 사자 한 명이 발견했소. 일장을 맞고 도주를 했는데 아마 지금쯤은 죽었을 것이오. 혹시 짐작 가는 계집이라도 있소?”
“어떤 계집이었습니까?”
“무공이 매우 높았다고 하오. 뚱뚱한 계집이었다고 하오.”
“뚱뚱한 계집이라면 아마도 백자안 그놈과 함께 있던 계집 같습니다. 토벌군 쪽에 갔던 것 같은데 잘하셨습니다. 계속 성벽 방어에 도움을 주십시오.”
“알겠소.”
“감사드립니다.”
장강수왕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어찌 되었든 사천사자들을 붙잡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꼭 백자안을 상대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수적들의 피해를 줄이고 확실한 승리를 거두기 위해 사천사자들의 힘이 필요했다.
‘최대한 사자들을 이용해 우리 힘을 아껴야 한다. 사사천교주가 누군지 모르겠으나 나를 잘못 봤다. 나는 네놈들 밑에 있을 사람이 아니다. 일단 백자안 그놈을 죽일 때까지만 고개를 숙여주지.’
장강수왕이 눈을 빛냈다.
백자안은 뚱뚱한 여자가 중상을 입었다는 말을 듣고 매우 놀랐다.
‘설 대원 같구나. 중상을 입고 지금쯤 죽었을 거라니 걱정이다. 무사해야 할 텐데······.’
설중화가 죽었다면 그 역시 상심이 클 것이었다.
‘그래. 설 대원에게 회심단이 있으니 목숨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다. 나중에 만나면 치료해줘야겠군.’
백자안이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마음을 달랬다.
생각 같아서는 이 자리에서 수적들을 모두 제거하고 싶었다. 하지만 사천사자들의 기도가 상상 이상이었다.
사천사자들의 말대로 그들 열 명을 상대하게 되면 자신 역시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내공수에 변형을 가해 수적들의 내공을 무력화시키려는 방안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남은 것은 지급받은 내공환을 분석해 그 대처방안을 마련하는 것뿐이구나. 아무래도 강시술을 좀 더 연구해봐야 될 듯하다. 그나마 공개처형을 며칠 더 미룬다니 그 점은 다행이군.’
백자안이 계획을 정리할 때.
연무장에 수적 한 명이 급히 나타나 장강수왕에게 보고했다.
“총채주께 아룁니다. 무적세가 대공자가 고수들을 이끌고 나타나 토벌군 쪽에 합류했습니다. 곧 공격을 가해 올 태세입니다.”
“뭐라고? 무적세가가? 모두 성문으로 간다.”
< [제10장] 백리설아 2 > 끝
ⓒ 행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