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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적 반로환동-29화 (29/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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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장] 백리설아

    백자안과 백리설아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서로의 이야기를 하며 신뢰도를 높였다.

    특히 설명을 주로 한 사람은 바로 백자안이었다.

    일말의 의심이라도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백리설아는 몇 가지 질문을 한 후 확신을 가지는 것 같았다.

    “백리 소저. 몸은 괜찮습니까? 충격이 커서인지 안색이 창백하군요.”

    “저는 괜찮아요. 저보다 저와 함께 끌려온 백 표사님이 걱정이에요. 저를 보호하려다가 중상을 입으셨어요. 치료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다가 잘 못 되기라도 한다면······.”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사실 아까 이곳으로 오면서 진기를 넣어드렸습니다. 무엇보다 백풍 표사님의 몸 상태에 대해서는 제가 더 염려를 해야 할 상황입니다.”

    “백 표사님의 성함까지 아세요?”

    백리설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백 표사님은 제 숙부님이랍니다.”

    “아! 그게 정말인가요? 그러고 보니 두 분이 성도 같네요.”

    “네. 저도 숙부님을 이곳에서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아마도 한숨 푹 주무시고 일어나면 많이 좋아지실 겁니다. 깨어나신 후 제가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겠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네. 백 대협을 믿겠어요.”

    “대협이란 호칭은 과분합니다. 백 무인으로 불러주십시오.”

    “네. 백 무인님. 하지만 제 마음속에는 영원히 대협이실 거예요. 그보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건가요? 아까 들으니 뇌옥에 화약이 매설되어 있고, 내공수 공급도 막아야 한다면서요?”

    “생각 중입니다. 일단 내공수 문제부터 해결해볼 생각인데, 일단 내공수를 받고 분석해보려 합니다.”

    “내공수를 사천사자란 자들이 배급해주고 있다고 하셨죠?”

    “네. 놈들이 진정한 배후인 것 같습니다. 무공도 무척 고강하며 그 수는 백 명 정도이지요. 더는 정보가 없습니다. 좋은 생각이라도 있으십니까?”

    백자안이 기대감 어린 표정을 지었다.

    백리설아가 매우 총명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기 때문이었다.

    “제 생각에 내공수를 만드는 물건이 따로 있을 것 같아요. 삼만 명에 달하는 수적들에게 매일 내공수를 공급해야 하는데, 비록 한 방울이라 해도 원액 그대로 가져오지는 않을 거예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어떤 식으로 내공수를 주는지는 나중에 봐야겠지만 말입니다.”

    아쉽게도 내공수의 모양과 먹는 모습에 대한 기억은 파악하지 못한 그였다.

    “수적들의 무력을 약화하기 위해서는 내공수를 단순히 차단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역이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만일 내공수 제조 과정을 볼 수 있다면 역이용하여 우리가 만든 내공수를 수적들에게 먹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

    “내공수를 독약으로 바꾸자는 겁니까?”

    “독약을 사용하면 금방 탄로가 날 것이니, 군자산같이 내공수와 정반대 효력을 지니는 물로 바꾸면 금상첨화겠지요. 제가 무공은 몰라도 의술과 독약에 대해서는 조금 아니 돕겠어요. 일단 내공수부터 확보하세요.”

    “알겠습니다. 계획대로 수적들이 내공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면 토벌군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할 겁니다. 화약 문제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그건 백 무인께서 생각하고 계신 방안이 있을 것 같은데요.”

    “저는 일단 장강수왕 그자를 제거하면서 섭혼술을 펼쳐 화약을 제거할 방법을 알아볼 생각입니다. 하지만 놈의 무공이 매우 높고 사천사자들이 방해를 놓을 것 같아 조금 걱정이 됩니다.”

    “그럼 일단 뇌옥에 계신 분들을 구출하는 일은 뒤로 미루세요. 내공수부터 해결한 후 추진하도록 하죠. 일단 수적들의 내공을 막아둔 후 총공격을 가해야 할 테니, 그때 장강수왕을 제압해 화약을 안전하게 제거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문제는 사천사자들이에요. 그들이 정말 다른 차원의 무공을 지니고 있다면 백 무인 혼자만의 힘으로 힘들 것이니까요. 그자들이 사천사자 열 명으로 백 무인을 죽일 수 있다고 했다면서요?”

    “그렇습니다. 아직 제 무공이 완성된 것이 아니라서 어쩌면 그 말이 사실일지 모릅니다.”

    백자안이 안색을 조금 굳혔다.

    사실 내공이 강한 것이 곧 무공이 강한 것은 아니었다.

    절정급 미만의 고수들에게는 내공과 무공이 정비례할 가능성이 높지만, 절정고수급 그것도 상급 절정고수와의 싸움에서는 생각보다 비중이 작았다.

    비록 무형검의 경지에 들지는 못해도 그 경지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양보다는 질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백자안은 질적인 면에서도 진보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찌 될지는 몰랐다.

    ‘사천사자들과 실제 겨뤄봐야 알겠구나. 하기야 내공수 때문이라도 그들과 부딪히지 않을 수 없겠군.’

    백자안이 생각을 정리하며 다시 백리설아를 봤다.

    자세히 보니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매우 약했다.

    선천적인 것 같았다.

    “백리 소저. 실례가 안 된다면 진맥을 조금 해봐도 되겠습니까?”

    “네.”

    백리설아가 얼굴을 조금 붉히며 손을 내밀었다.

    아무리 부인해도 남녀 둘이 밤을 새우는 셈이라 그녀 역시 긴장되지 않을 수 없었다.

    “으음······ 역시 제 생각이 맞았군요. 혹시 태어날 때부터 절맥을 앓으셨습니까?”

    “네. 백 무인께서는 의술에도 고명하시군요. 그래요. 저는 사실 칠음절맥을 지니고 있어요. 원래는 칠음절맥을 앓게 되면 스무 살을 넘지 못하게 되지요. 아직 이년 정도 남았지만 저는 죽지 않을 자신이 있어요.”

    “아! 역시 칠음절맥이었군요.”

    백자안이 탄식했다.

    무명부록에는 의술도 수록되어 있었다. 그중에는 절맥을 치료하는 방법도 있었다.

    ‘칠음절맥은 무형검의 고수만이 완치시킬 수 있다고 적혀 있었지. 내가 무명심법을 팔성까지 익히면 치료가 가능하겠지만, 무형검 연마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우니 상당히 어렵겠구나.’

    백자안이 애써 표정을 밝게 하며 물었다.

    “스무 살을 넘어서도 살 수 있다고 한 데는 다른 이유라도 있습니까?”

    “네. 제게는 치유옥(治癒玉)이 있답니다. 어릴 적 한 오라버니가 주신 것인데, 그 옥을 목에 걸고 다닌 후 절맥 증상이 사라졌지요. 의원들 말로는 무공은 익힐 수 없지만 이제 죽지는 않는다고 하네요.”

    백리설아가 미소를 지었다.

    옛날 일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백자안이 한 가지 일이 생각나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혹시 옥패에 봉황 문양이 새겨진 것이 아닙니까?”

    “아! 그걸 어떻게 하세요? 부모님 외에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준 적이 없는데······.”

    백리설아가 자신도 모르게 목에 걸려 있는 옥패를 꺼내 들었다.

    백자안이 탄성을 내었다.

    잊고 있었다.

    하지만 봉황옥패는 분명 자신이 준 것이었다.

    십일 년 전 대륙표국 안에서 길을 잃은 백자안은 매우 당황했었다.

    길을 가르쳐준 백리설아에게 고맙다는 말만 하기에는 너무 부족했다.

    그래서 가지고 있던 봉황옥패를 그녀에게 준 것이었다.

    그 옥패는 산속 바위틈에서 주운 것으로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것이었다.

    어린 마음이지만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나면 주려고 했었다. 그래서 따로 줄 게 없어 준 것이었다.

    그리고 옥패에 대해선 완전히 잊고 있었다.

    한데 오늘 백리설아를 다시 만나게 되어 옥패까지 다시 보게 된 것이었다.

    “이거 참······ 어떻게 말해야 할지······.”

    백자안이 난감해했다.

    백리설아가 자신을 기억 못한다면 굳이 밝힐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옥패의 효능을 보고 있다고 하니 망설여졌다.

    ‘그래 밝히자. 지금은 아니지만, 나중에라도 무명심법을 연마하게 되면 무공을 익힐 수 있을 것이다. 무명심법은 절맥에 관계없이 연마할 수 있으니까, 어쩌면 완전한 치료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일성만 달해도 충분할 것이다.’

    “무슨 말씀인지? 어서 말해보세요. 그 오라버니와 아는 사이인가요?”

    “그 친구 얼굴을 기억 못 하고 있습니까?”

    “네. 그 다음날 무척 아팠거든요. 그래서 그 오라버니 얼굴을 기억 못해요. 안타깝기 그지없죠. 사실 그때 절맥 증상이 처음으로 발현된 날이었는데, 옥패의 기운 덕분에 좋아질 수 있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몸이 조금 약하긴 하지만 건강한 편이지요. 어서 말씀해보세요. 그 오라버니를 정말 아세요?”

    “믿기 어렵겠지만 그 녀석이 바로 접니다.”

    백자안이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백리설아가 무척 놀라면서 눈물을 흘렸다.

    “백 무인께서 그 오라버니셨군요. 이렇게 만날 줄이야. 아, 그러고 보니 아까 본 얼굴을 보고 뭔가가 떠올랐어요.”

    기억이 되살아난 것일까.

    직접 얼굴을 보게 되니 한 장면이 그림처럼 떠올랐다.

    열두 살 어린 소년이 불쑥 옥패를 주던 모습을.

    고맙다는 말과 함께 그는 가버렸다.

    이후 볼 수 없었지만 백리설아는 옥패를 볼 때마다 그 소년을 떠올렸다.

    얼굴까지 기억났으면 얼마나 좋을까 했다.

    하지만 그 소년이 누군지는 알 수가 없었다.

    대륙표국 총단은 무림맹 총단과 비슷한 규모였다.

    표사나 표두의 가족 중에 어린 소년도 무척 많았다.

    표국 내 전각도 수백 채가 넘었다. 그 전각 중 상당수가 사택으로 제공되었다.

    “하하하! 정말 인연이군요. 백리 소저와 제가 다시 만나다니. 사실 저도 가끔 백리 소저를 보고 싶은 적이 있었습니다. 뭐 딴 뜻은 아닙니다만······.”

    백자안이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위험한 때에 재회한 것이 의외였지만, 그만큼 극적이었다.

    “자안 오라버니라고 불러도 될까요?”

    백리설아가 얼굴을 조금 붉혔다.

    “물론입니다.”

    “정말요? 이제 말씀을 낮추세요. 오라버니.”

    “그래. 설아 동생.”

    백자안이 다시 미소를 지었다.

    백리설아가 기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금세 다시 눈물을 글썽였다.

    “표국 분들이 너무 많이 돌아가셨어요. 모두 제 잘못이에요. 상황 파악을 좀 더 확실히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설아 잘못이 아니야. 자책할 필요가 없어. 대륙표국에는 아직도 수천 명의 표사가 있잖아? 모두 설아를 염려하고 있을 거야.”

    “네. 알겠어요. 이제 울지 않겠어요. 놈들에게 반드시 복수할 거예요. 오라버니가 도와주실 거죠?”

    “물론이다. 최선을 다하마. 일단 숙부님을 모셔와야겠다. 여기서 좀 기다려라.”

    “네.”

    백자안이 데려온 백풍의 상태는 매우 양호했다.

    중상을 입은 사람답지 않게 혈색도 좋았다.

    한눈에 봐도 치료가 많이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백자안은 백풍이 놀라지 않게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자신의 본 얼굴을 보여주었고, 자초지종을 세세히 설명했다.

    백리설아 또한 부연 설명을 해주자 백풍은 감격한 표정이었다.

    “자안아. 네 소식은 나도 들었다. 네가 천년색마를 제거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임을 알고 무척 기뻤단다. 이곳에서 이렇게 만나다니 기쁘기 그지없구나.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백리 아가씨의 안전이다.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

    “명심하겠습니다. 숙부님.”

    “백 표사님도 참. 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돼요. 자안 오라버니가 얼마나 신경을 써주시는데요.”

    백리설아가 미소를 지으며 어릴 때 백자안과 있었던 일을 설명해주었다.

    백풍이 놀란 것은 물론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일을 계속 거론할 여유가 없었다.

    “이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일단 숙부님과 설아 모두 저의 휘하에 든 것으로 하겠습니다. 숙부님은 전향해서 용왕채의 수적이 되신 것으로 하고, 설아 역시 제 여자가 된 것으로 하지요. 그래도 되겠습니까?”

    “나는 상관없다.”

    “저도 괜찮아요.”

    백리설아가 다정스럽게 말했다.

    백풍은 백리설아의 신분 때문에 우려하면서도 기뻐했다.

    백자안이 백리설아와 가깝게 지내는 것이 나쁘지 않은 것이다.

    ‘그래. 이제 자안이도 명성이 높아졌으니 잘만하면 두 사람이 맺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소국주님도 자안이를 보는 눈빛이 남다르구나. 하지만 자안이에게 아무 배경이 없어 국주님의 눈에는 절대 차지 않을 것이다.’

    백풍이 잠시 생각에 잠길 때.

    막사 밖에서 나팔 소리와 함께 수적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공수 복용 시간입니다. 모두 모이십시오.”

    < [제10장] 백리설아 1 > 끝

    ⓒ 행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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