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적 반로환동-24화 (24/250)
  • < [제8장] 절대 내공 3 >

    백자안과 설중화가 악양 성안으로 잠입한 것은 정오 무렵이었다.

    점심때라 관도에 사람이 북적여야 했다.

    하지만 거리에 보이는 사람은 평소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그들 역시 대부분 긴장된 표정이었다.

    표정이 밝은 사람은 흑도 무사들이었다. 그들은 병장기를 손에 든 채 마치 점령군처럼 의기양양했다.

    문제는 무림과 관계없는 사람들조차 압박을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원래는 무림과 관부의 불간섭 원칙 때문에 일반 백성들의 삶은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수적들이 관아를 점령하고 관군 대신 치안을 담당하기 시작하자 실제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무엇보다 수적들에 대해 불평불만을 하면 안 되었다.

    수적들의 귀에 그런 말이 들어가면 무조건 잡혀갔다.

    반항하는 경우에는 즉결 처형이 이루어졌다.

    그렇게 죽은 사람만 수천 명이었다.

    “저기 좀 보세요.”

    설중화가 관도 양옆 군데군데 꽂혀 있는 긴 작대기를 가리켰다.

    백자안이 보니 작대기 위에 사람 수급이 달린 게 아닌가.

    수적들의 통치에 저항하던 사람들의 머리였다.

    놀랍게도 그 수급들이 길가에 버젓이 걸려 있는 것이었다.

    물론 이전에도 효시된 사형수들의 수급이 관아 근처에 가끔 걸려 있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대규모의 경우가 아니었다.

    ‘지난 사흘간 극도의 공포 정치가 자행되고 있구나. 죄 없는 백성들까지 핍박하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백자안의 양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작대기 위에 걸린 수급들은 관아 쪽으로 갈수록 많아졌다.

    거의 삼장 거리마다 양쪽에 하나씩 있었다.

    그 수급 역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노인의 것도 있었고, 어린아이의 것도 있었다.

    그 수급들을 본 설중화 역시 매우 분노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단 참아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성내 곳곳에 수적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대여섯 명씩 무리를 지어 순찰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몸을 웅크리며 그들을 피해 빠른 걸음을 걸어갔다.

    다행인 점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검문하지는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 의미는 벌써 성내 저항 세력을 거의 진압했다는 뜻이었다.

    다만 예외는 있었다.

    바로 병장기를 차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무림인일 가능성이 높아 확인이 필요했다.

    흑도 인물이라면 통과가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체포가 원칙이었다.

    백자안과 설중화 역시 그 점을 우려했지만 검을 계속 차고 있었다.

    흑도 인물로 행세하기로 두 사람이 의견의 합치를 본 것이었다.

    좀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객잔 쪽으로 가던 두 사람에게 수적 순찰대가 다가왔다.

    “잠깐! 소속이 어디냐?”

    우락부락하게 생긴 수적의 물음이었다.

    수적들은 모두 여섯 명.

    그중 조장으로 보이는 사내가 백자안과 설중화를 저지한 것이었다.

    객잔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조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흑천방 소속입니다. 장강수로채 영웅들이십니까?”

    “그렇다. 흑천방 사람이라고? 명패를 보자.”

    “명패라니요?”

    “흑천방 방도를 증명하는 신분패가 있다고 알고 있다. 그걸 보자는 것이다.”

    “깜박 잊고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백자안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급히 성안으로 들어오느라 확실한 준비를 하지 못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양민으로 행세할 걸 그랬나.’

    백자안이 어쩔 수 없이 무공을 사용해 수적들을 제거하려던 찰나.

    설중화가 품속에서 은자 여섯 냥을 꺼냈다.

    “저희가 흑도 인물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렇게 검을 차고 다닐 수 있겠어요? 사실 저희는 장강수로채에 가입하려고 온 사람들이랍니다. 흑도 경력이 있어야 가입이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흑천방 사람으로 행세하려 했던 것이지요.  한 번만 모른체 해주세요.”

    “후후후! 진작 그렇게 말할 것이지. 뚱뚱한 년이 제법 눈치가 빠르구나.”

    수적들이 은자를 받고 즐거워했다.

    나중에 술 한잔하려고 했는데, 마침 수중에 돈이 다 떨어졌던 때문이었다.

    설중화가 품속에서 은자 열 냥을 다시 꺼내 수적들에게 주며 물었다.

    “어떻게 하면 수채에 가입할 수 있습니까? 흑도 경력이 없어도 가능한가요?”

    “물론이다. 내공수만 먹으면 누구나 고수가 되지. 진짜 수채에 들어올 생각이 있다면 관아로 오면 된다. 보아하니 뒷골목 패거리 같은데, 요즘엔 덩치 큰 여건달도 많이 있다며?”

    “네. 바로 저 같은 계집이지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설중화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백자안 역시 덩달아 고개를 숙였다.

    “그래, 객잔 안에 들어가서 요기나 하고 가라.”

    “감사해요.”

    “감사드립니다.”

    설중화와 백자안이 고개를 다시 숙인 후 객잔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때였다.

    다시 한 무리의 순찰대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오십 명 정도로 제법 많았다.

    그들은 내공수 때문인지 하나같이 태양혈이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부대주님!”

    설중화로부터 은자를 받고 좋아하던 수적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새로 나타난 수적 중 흑의중년인을 향해 예를 표한 것이었다.

    그는 장강수로십팔채에서 공동 차출되어 편성된 장강순찰대의 부대주 해삼객(海蔘客)이란 자였다.

    낭인 출신으로 수년 전 수적이 되었는데, 무공이 높아 이번에 순찰대 부대주를 맡게 되었다.

    참고로 장강순찰대는 모두 천 명이며, 대주 밑에 세 명의 부대주가 있었다.

    순찰대의 임무은 성내 질서를 유지하고 저항세력을 축출하는 것이었다.

    특히 해삼객이 직접 데리고 다니는 수적들은 수적 중에서도 고수들이었다. 지난 사흘간 성내 정파 무림인들을 대거 잡아들인 공을 세운 바 있었다.

    “무슨 일인가? 이자들은?”

    “우리 수채에 가입하려는 자들입니다. 뒷골목 패거리 출신 같은데, 용기가 가상해 나중에 관아로 가보라고 했습니다.”

    “멍청한 놈! 사내놈은 몰라도, 저 계집은 보통 고수가 아니다. 모두 저놈들을 포위해라.”

    해삼객이 호각을 불었다.

    삐이이익.

    설중화의 기도가 범상치 않음을 간파하고 수적들을 소집한 것이었다.

    설중화의 안색이 굳어진 것은 물론이었다.

    자신의 무공을 간파할 능력을 갖춘 자를 바로 만날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백자안의 무공은 겉으로 전혀 드러나지 않았으나, 그녀의 무공은 달랐다.

    사실 조심한다고 하긴 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기를 감추는 능력이 그녀에게도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거리에 걸린 수급들을 보고 분노한 것이 문제였다.

    그때 자신도 모르게 기가 외부로 발출된 것이 해삼객의 기감에 걸린 것이었다.

    스스스슷!

    수적들답지 않게 움직임이 대단히 빨랐다.

    병장기를 뽑고 백자안과 설중화를 포위하는데 걸린 시간은 눈 깜박할 사이였다.

    무공이 열 배 이상 높아졌다는 말이 실감 났다.

    백자안과 설중화는 그대로 서 있었다.

    어차피 싸움을 피할 수 없는 형국이었다.

    그러는 동안 인근에 있던 수적 백여 명이 빠르게 몰려왔다.

    “후후후! 네놈들은 독 안에 든 쥐다. 어서 정체를 밝혀라. 네놈들도 복악양파(復岳陽派) 놈들이냐?”

    “복악양파?”

    설중화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그녀와 백자안은 지금 상황을 그렇게 위기로 느끼고는 있지 않았다.

    수적들의 무공이 열 배 이상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절정고수급이기 때문이었다.

    해삼객 한 명 정도만 주의하면 나머지는 크게 위협이 되지 않았다.

    물론 전부 다 죽이려면 무리가 따를지 몰라도 도주하는 것 정도는 자신이 있었다.

    “흥! 일부러 모른 척하는 것이냐? 복악양파는 네놈들 정파 나부랭이들이 만든 조직이 아니냐? 어서 네놈들의 본거지를 말해라. 본거지만 실토하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해삼객이 내공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악양성내 정파 무림인들을 대거 살해하고 체포하는 데 성공했지만, 아직 그 뿌리를 뽑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 본거지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모른다. 우리는 장사성에서 온 무림맹 무사들이다.”

    설중화가 소리쳤다.

    대담하게 신분을 밝힌 것이었다.

    그 바람에 객잔 안에 있던 사람들이 대거 몰려나왔다.

    대부분 흑도 인물들이었다.

    개중에는 수채에 이미 가입한 사람도 있었고, 아직 눈치를 보는 사람도 있었다.

    백자안은 급히 설중화에게 전음을 날렸다.

    「정체를 밝혀 복악양파 사람들을 만나보려는 겁니까?」

    「네. 객잔 안에 한 명이라도 정보를 얻기 위해 잠입한 정파 고수가 있을 거예요. 특히 벌써 저항단체까지 만든 것으로 봐서 가능성이 높아요. 우리가 저놈들을 모조리 제압하면 연락을 취해오지 않겠어요?」

    「좋은 생각입니다. 복악양파 사람들을 만나서 물어보면 성내 사정을 가장 확실히 알 수 있을 겁니다.」

    백자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남은 것은 자신들을 포위한 수적들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물론 객잔에서 나온 흑도 무사 중 일부도 포위망에 가세하고 있었다.

    하지만 설중화의 기세가 만만치 않음을 느낀 것일까.

    해삼객의 공격 명령이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 바람에 인근을 지나가던 사람들도 모이고 있었다.

    화가 미칠 것이 두려워 가까이 오지는 못했지만, 먼 거리에서 구경했다.

    설중화가 다시 소리쳤다.

    “옆에 계신 이분이 누군지 아느냐? 바로 얼마 전 천년색마를 비롯해 천년색문 고수 백여 명을 일 검에 황천에 보낸 백자안 대협이시다. 장강수왕의 목을 치러 오셨으니 어서 길을 비키지 못하겠느냐? 열을 살릴 때까지 비키지 않으면 일 검에 모두 목이 달아날 것이다.”

    “앗!”

    “헉!”

    수적들이 하나같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백자안에 대한 소문은 이곳까지 난 모양이었다.

    천년색마의 악명은 수적들에게는 반대의 의미가 있었다.

    무림공적으로 선포되어도 마음껏 활개 치는 천년색마를 우러러보던 수적들이 매우 많았다.

    한데 그를 죽인 사람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해삼객의 안색이 굳어졌다.

    호각을 다시 여러 번 세게 불었다.

    삐이이익.

    총동원령이었다.

    ‘사천사자님들이 오셔야 안심할 수 있다.’

    해삼객이 초조해했다.

    설중화가 다시 소리쳤다.

    “어디 색마들뿐이었겠느냐? 소문을 들었겠지만 흑천방에서 고용한 살수 백 명도 백 대협께서 모두 황천으로 보냈다. 이제 진짜로 살리겠다. 열을 살릴 때까지 비키지 않으면 정말 죽는다. 한 놈도 예외가 없을 것이다. 하나, 둘, 셋······.”

    설중화가 거침없이 숫자를 세었다.

    수적들의 안색이 다들 굳어졌다.

    무공이 열 배 이상 강해졌다고는 하나 아직 정신은 이전의 일반 수적 수준이었다.

    무림의 강자를 만나면 도주하는 게 상책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실제 수적 십여 명이 슬그머니 뒤로 물러났다.

    포위망에서 이탈한 것은 아니지만 뒤쪽으로 가서 혹시 모를 재앙을 피하려 한 것이었다.

    “이놈들이!”

    해삼객이 분노했다.

    설중화가 열을 다 살리려 하자, 그 역시 공격 명령을 내리려 했다.

    그때였다.

    구경하던 사람 중에서 십여 명이 앞으로 나왔다.

    “정말 백 대협입니까? 저희는 복악양파 무인들입니다. 악양성 정파 무인들이 외부 지원을 애타게 기다리며 수적 놈들에게 저항하고 있습니다.”

    숨겨둔 병장기를 꺼내든 그들은 모두 열 명이었다.

    설중화의 예상과 달리 객잔에서 나온 사람들이 아니라 지나가던 일반 사람들이었다.

    백자안은 그들의 용기에 감명을 받고 즉시 소리쳤다.

    “네. 제가 바로 백자안입니다. 성 밖에 토벌군이 왔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수적들은 곧 소탕될 겁니다.”

    백자안이 말을 마친 후 곧바로 검을 뽑아 수적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바로 육합검법이었다.

    휘이익.

    내공이 담긴 검에서 검기가 벼락같이 뻗어 나왔다.

    동심원 모양으로 퍼져 나간 검기의 파동이 수적들을 휩쓸어갔다.

    백자안의 몸속에 있던 내공이 전부 실린 공격이었다.

    무명검법이 아니라 어떤 위력이 나타날지 몰랐다. 하지만 백자안이 복악양파 무인들이 혹여 다칠까 봐 최선을 다한 공격이었다.

    “헉! 모두 피해라! 검강이다!”

    검기가 뭉쳐 파괴적인 위력을 보이는 것을 검강이라 한다.

    이 검강은 호신강기와 마찬가지로 아무나 펼칠 수가 없었다.

    백자안은 단지 검기를 뿜어냈을 뿐이었는데, 그게 너무 강해 검강으로 오인한 것이었다.

    “크윽!”

    “으윽!”

    수적들의 비명이 잇달아 터져 나왔다.

    하지만 날카로운 검기에 닿은 그들의 몸뚱이는 즉시 두 동강 나고 있었다.

    얼마 후 나타난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왼팔을 잃고 겨우 살아난 해삼객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백자안과 설중화를 포위했던 이백 명 가까운 수적들이 모두 죽어 있었다.

    “어찌 이런······ 일이!”

    해삼객이 몸을 부르르 떨 때.

    복악양파 무인 중 한 명이 빠르게 다가와 그의 목을 베었다.

    댕강.

    해삼객의 수급이 떨어졌다.

    그제야 사람들이 함성이 터졌다.

    성내 백성들의 환호성이었다.

    억압에 눌렸던 것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이었다.

    “백 대협! 놈들이 곧 다시 올 겁니다. 저희를 따라오십시오.”

    복악양파 무인의 말에 백자안과 설중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백자안과 설중화, 그리고 복악양파 무인들이 사라지자, 양민들도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 [제8장] 절대 내공 3 > 끝

    ⓒ 행호사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