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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절대 내공
늦은 밤.
관아에서 무림맹 장사지부로 돌아온 백자안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동정수로채 수적들의 악양성 점령으로 다음 날 새벽 전격적으로 출정이 결정된 때문이었다.
장사성 관군들과 무림맹 장사지부 무사들의 공동작전이었다.
전령의 보고에 의하면 악양성 관아는 동정수로채 수적들에 의해 장악되어 있다고 했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동정수로채 수적들의 노략질이 극심해 악양성주 지휘하에 토벌 작전이 예정되었다. 이를 눈치챈 수적들이 기습을 가해 관아를 점령한 것이었다.
이 과정에 관아에 있던 악양성주와 관군 수백 명이 죽임을 당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긴급 지원 요청을 받고 출동한 무림맹 악양지부 무사들 역시 대패를 당했다고 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성내 치안이 무너져 양민들에 대한 살인, 방화, 약탈이 횡횡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장사성주 유관성이 진노한 것은 물론이었다.
악양은 호남성의 중요 도시로 장사에서 낙양으로 가는 길목에 있었다.
동정호가 한눈에 보이는 악양루로도 유명했다. 그 때문에 사시사철 관광객이 모여들었다.
호남성의 성도인 장사를 다스리는 유관성으로서는 자신의 관할에 있는 곳인 것이다.
한데 수적들의 무공이 매우 뛰어난 것이 문제였다.
동정수로채 배후에 거대세력이 있다고도 했다.
그래서 무림맹의 지원을 요청했고, 우문호는 당연히 받아들였다.
이미 무림맹 무사들이 큰 피해를 봤기 때문에 개입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출정 준비에는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었다.
그래서 밤늦게까지 그 준비를 했다. 어느 정도 준비가 끝나자 체력 보충을 위해 무사들에게 새벽까지 잠시 자게 했다.
백자안 역시 늦게까지 준비 작업에 참여했다. 그리고 얼마 전에야 객방에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출정 결정으로 인해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 어차피 못 잘 것 같으니 무명심법이나 운공하자. 그러고 보니 운기토납지기를 빼앗긴 후 몸 상태를 제대로 점검하지도 못했구나.’
백자안이 몸을 일으켜 가부좌하고 앉았다.
심호흡을 한 후 천천히 무명심법을 운공했다.
새로 만든 무명진기를 돌려 조금이라도 더 불리려는 생각이었다.
한데 일주천을 한 후 뭔가 조금 이상한 점을 느꼈다.
기존 내공과 독 기운의 충돌 현상이 완화된 것을 느낀 것이다.
그 말은 독 기운 일부가 내공으로 변환되었다는 뜻이었다.
꿈쩍도 안하던 충돌 상태가 개선되고 있었다. 이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었다.
‘어찌 된 일이지?’
백자안이 큰마음을 먹고 기존 내공을 조금씩 운공해봤다.
원래는 독 기운과의 충돌 때문에 곧바로 극심한 통증을 느껴야 했다.
하지만 전혀 통증이 없는 것이 아닌가.
오히려 독 기운의 내공 변환속도가 급속도로 빨라졌다.
조금씩 배어나던 물이 제방이 무너지듯 한꺼번에 쏟아진다고나 할까.
독 기운이 매우 빠르게 내공으로 변환되어 갔다.
마치 흡수대법에 당할 때처럼 제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꿈에도 바라던 일이라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독 기운만 모두 내공으로 변환하면 곧바로 무명심법 칠성을 회복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 이상이 기대되었다.
변환된 내공이 기존 내공과 맞먹을 정도였기에 양적으로 두 배의 내공을 얻게 되는 것이었다.
변화는 그것에 그치지 않았다.
새롭게 형성된 얼마 안 되는 무명진기 역시 반응을 보였다.
질적으로 우수한 내공의 특성이 몸속에 있는 모든 기운으로 퍼진 것이었다. 사실 그 특성은 충돌 현상이 없었다면 생기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백자안의 몸은 방바닥에서 한 자 정도 떠올라 있었다.
머리에서는 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백자안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무명심법 칠성을 회복했다. 이제 팔대무공을 펼칠 수 있겠구나. 독 기운이 모두 내공으로 변환되어 기존 내공과 합쳐졌다. 또한 질적으로 우수한 무명진기의 특성이 전체 내공의 특성으로 확대되었다. 이제는 신구 무명진기의 구별 없이 단일 무명진기가 되었으니, 질적으로 뛰어나면서도 막대한 내공을 계속 일으킬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계속 운공함으로써 그 양과 질을 더욱 발전시킬 수도 있겠지.’
백자안의 온몸에 은은한 금빛이 발하고 있었다.
‘호신강기 또한 거의 완벽해졌다. 무형검의 고수만 만나지 않으면 그 누구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것 같군.’
백자안이 다시 바닥으로 내려오며 숨을 골랐다.
곰곰이 변화의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그래, 어쩌면 운기토납지기가 사라진 때문일 수도 있겠구나. 불순물이 사라지게 되면 물이 맑아지듯이, 그 운기토납지기가 대하로 흐르는 길을 막았을지도 모른다.’
백자안이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밖은 어느새 조금씩 밝아오고 있었다.
벌써 새벽이 된 것이다.
그때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뿌우우.
출정식을 알리는 나팔이었다.
백자안은 새롭게 받은 검 한 자루를 허리에 차고 방에서 나왔다.
내공이 극한에 달한 느낌이 들어서인지 자신감이 솟아났다.
다만 아쉬운 것은 팔대무공을 제대로 연습해 보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무명검법 중 일초식인 무명천하를 한번 펼쳐본 적이 있긴 했었다.
하지만 그때는 검이 산산조각이 났었다. 그 파편이 자신에게 위협이 되었다.
‘가히 절대 내공이 형성되었으니 무리하지 말자. 일단은 육합계열 무공을 사용해도 충분할 것이다. 팔대무공을 아무 준비 없이 펼치면 오히려 내가 다칠 수도 있으니 신중해야 한다.’
백자안이 대연무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출정식이 열리는 대연무장은 천여 명의 지부 무사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도열해 있었다.
다들 우문호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
우문호는 내상 회복이 덜 되어 무공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음에도 직접 무사들을 이끌고 가기로 했다.
하지만 고수 부족이 염려되어 백자안과 설중화를 대동하게 된 것이었다.
또 한 명의 고수라 할 수 있는 악미미에게도 부탁했다. 실전 경험이 필요했던 그녀는 흔쾌히 수락했다.
문제는 백소영이었다.
백자안이 그녀에게 장사지부에 남아있으라고 했으나, 그녀는 어차피 가야 할 길이라는 이유로 함께 간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래서 타협을 본 것이 절대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막사에 머물겠다는 약속이었다.
어차피 본진은 악양성 밖에 쳐놓고 기회를 노릴 생각이었다.
성문 역시 관부 관할이라 수적들이 장악했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백소영과 설중화, 악미미 세 사람 모두 지금 백자안 옆에 서 있었다.
백소영이 신난 듯 말했다.
“그까짓 수적 놈들이야 한 번에 쓸어버리면 끝장이 날거야. 안 그래요? 설 언니?”
“그렇게 만만히 볼 게 아니야. 관군들은 그렇다고 쳐도 지부 무사들이 패했다는 것은 놈들 중에 분명 고수가 있다는 이야기야. 수적들의 무공이 이전보다 훨씬 강해졌다는 보고도 있고 말이야. 아마도 상당히 무공이 뛰어난 절정고수가 있을 가능성이 높아.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닌 여러 명이······.”
“하기야 조금 이상하긴 했어요. 배후에 있는 놈들이 누굴까요? 제가 알기로 지금까지 관아를 공격한 수적은 없는 것으로 아는데······.”
“가보면 알겠지. 소영이 말대로 의문점이 많아. 아무리 관군이 토벌 계획을 세웠다고 해도 이렇게 선수를 쳐서 성을 빼앗는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니까. 악 소저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 역시 같은 생각이에요. 설마 혈교는 아니겠죠?”
“혈교? 혈교라면 십 년 전에 사라졌잖아요? 물론 다시 세력을 키우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는 있지만, 이렇게 갑자기 나타날까요?”
“혈교가 아니라면 큰 걱정은 안 해도 될 거예요. 마교는 신강 쪽에 있어 아닐 것이고. 남은 거대세력은 사사천교 정도인데, 무려 백 년이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으니 말이죠. 사실 아버지께서 혈교에 대한 경계심이 워낙 강하셔서 저 또한 지레 염려를 한 것 같네요.”
“화산파와 혈교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
“네. 세간에 잘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십 년 전 무적세가주 독고 대협께서 혈교주 혈마를 죽일 때 본파 전대 장문인께서 합공을 하셨어요. 원래 혈마와 독고 대협의 무공 수위는 비슷했지요. 전대 장문인께서 그 균형을 깨트린 셈이지요. 혈교의 잔존세력이 있다면 그 일에 대해 앙심을 품고 복수를 해올 가능성이 높다는 게 아버지 생각이세요. 전대 장문인께서 그때 부상으로 삼년 전 돌아가신 것을 생각하면 우리 역시 피해가 큰 데 말이죠.”
“아, 그래서 무적세가와······.”
설중화가 혼사 이야기를 꺼내려다가 그만두었다.
백소영과 백자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아직 악미미와 어색한 사이였기 때문이었다.
백소영이라도 악미미와 잘 지내면 백자안 역시 한두 마디 건네 볼 텐데, 두 소녀 사이는 여전히 냉랭했다.
그때 이번 출정에 역시 참여하게 된 담대선생이 소리쳤다.
“지부장님께서 나오십니다.”
무사들이 일제히 우문호를 향해 고개를 조금 숙였다.
상기된 표정의 우문호가 단상 위에 올라가 검을 뽑았다.
“총단에 계신 맹주님으로부터 정식 명령이 하달되었다. 지금 즉시 악양성으로 가서 수적 놈들을 토벌할 것이다. 모두 출발하라!”
와아아.
엄청난 함성과 함께 일천여 무사들이 대오를 재정비했다.
백소영은 우문호의 배려로 지휘마차에 그와 함께 탈 수 있었다.
백자안과 설중화, 악미미 세 사람에게는 지부 무사들처럼 말이 한 필씩 제공되었다.
세 사람은 지휘마차 앞에 나란히 서서 말을 달려 나갔다.
일종의 선봉인 셈이었다.
뒤따르는 무사들 역시 각자의 말을 타고 진군했다. 새벽안개를 뚫고 천여 명의 무사들이 지부를 빠져나가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라 할 수 있었다.
설중화와 악미미의 중간에서 말을 달리는 백자안은 묵묵히 나아갔다.
세 사람 모두 고수라 할 수 있었기에 마상 대화도 충분히 가능했다. 하지만 백자안이 침묵을 지키자 대화가 끊어졌다.
설중화가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
“백 무인! 간밤에 무슨 좋은 일이 있었어요? 안색이 너무 좋아 보여요. 악 소저! 그렇게 보이지 않나요?”
악미미가 코웃음을 치려다 갑자기 옥비녀 생각이 떠올라 안색을 가다듬었다.
아직 백자안에게 옥비녀를 찾아달라고 말을 못 했기 때문이었다.
당장 귀면탈 소녀의 행방을 찾아 나설 수는 없지만, 왠지 그녀가 다시 나타날 것 같았다.
그때를 대비해 미리 말해둘 필요가 있었다.
악미미가 넌지시 백자안에게 전음을 날렸다.
「백 공자께 물어볼 말이 있어요.」
「아, 말씀하시오.」
백자안이 깜짝 놀라며 전음을 보냈다.
전음 역시 파동과 방향이 있어 그는 악미미가 전음을 보낸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정말 일부러 정혼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린 게 아닌가요?」
「그렇소이다. 나는 다만 화산파 장문인께 볼일이 있어 간다고 한 것뿐이오. 한데 내 동생이 실수로 정혼 사실을 밝히게 된 것이오. 실례가 되었다면 용서하시오.」
「흥! 또 대단하신 동생 때문이군요. 좋아요. 백 공자가 직접 밝힌 게 아니라는 말을 믿지요. 하지만 이대로 넘어갈 수 없어요. 제 부탁을 하나 들어주시면 용서해드리도록 하지요.」
「무슨 부탁이오?」
「먼저 승낙해주세요. 도의에 어긋나지 않고 백 공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에요. 물론 매우 위험한 일이에요. 겁이 나면 거절해도 좋아요.」
「알겠소. 수락하겠소.」
「고마워요. 다른 게 아니라 귀면탈 그 계집이 빼앗아간 제 옥비녀를 꼭 찾아주세요. 물론 지금 바로 찾아달라는 것은 아니에요. 그 계집이 나타나면 무슨 수를 쓰든지 도로 빼앗아 주세요. 그럴 수 있겠어요?」
「알겠소.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하겠소.」
「좋아요. 생각보다 사내답군요. 너무 서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도 그러니까 조금씩 대화를 나누도록 해요. 사람 일은 어찌 될지 모르니까.」
악미미가 전음을 날린 후 말했다.
“설 대원의 말씀대로군요. 백 공자 피부가 무척 좋아졌어요. 간밤에 깨달음이라도 얻은 건가요?”
“약간의 성과가 있었소.”
백자안이 화답했다.
설중화가 웃음을 터뜨렸다.
“호호! 두 분! 이제 화해하신 건가요? 보기 좋아요. 이제 목숨을 건 전투가 시작될 텐데 서로 협력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설중화가 문득 고개를 돌려 먼 하늘을 바라봤다.
순간 그녀의 표정이 조금 쓸쓸해 보였다.
‘잊자. 어차피 인연이 없는 사람이다. 이번 전투가 끝나면 다시 본래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 같구나. 그때는 설중화라는 이름도 영원히 사라지게 되겠지. 저 흩어지는 구름처럼······.’
< [제8장] 절대 내공 1 > 끝
ⓒ 행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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