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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적 반로환동-21화 (21/250)

< [제7장] 화산옥녀 3 >

“흥!”

악미미가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싫지는 않은 표정이었다.

사실 그녀 역시 자신의 아름다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무공 수련 때문에 남자에 관해 관심이 없었던 게 사실이지만 그녀 역시 여자였다.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무림삼미에 포함한 것을 늘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과연 무림삼미 중 누가 가장 아름다운가 하는 것이었다.

악미미는 다른 두 명을 보지 못했다.

초상화 역시 그녀의 것만 세간에 돌고 있었다.

사실 초상화를 그리는 데 응했던 것도 매화검선의 뜻이었다.

화산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강력한 사돈을 구하기 위한 그의 노력은 집요했다.

무적세가 총관이 화산파로 혼담을 넣기 위해 온 것도 미리 매화검선이 언질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초상화 역시 그 전에 매화검선이 무적세가 쪽으로 보냈었다. 예상대로 무적세가 대공자가 악미미의 초상화를 보고 한눈에 반하고 말았다.

이처럼 그녀의 미모는 가히 천하제일이라 할 수 있었다.

한데 의외로 천하제일미의 영예는 다른 사람에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 점이 악미미를 속상하게 했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한번 보고 싶었다.

무림삼미는 모두 세 사람.

한 명은 당연히 악미미였다.

또 다른 한 명은 대륙표국주의 여식이었다.

대륙표국은 백자안의 숙부가 표사로 있는 곳으로, 전통적으로 무림맹과 굳건한 협력관계를 맺고 있었다.

무림맹의 특성상 군량미나 병장기 등 물자를 먼 거리까지 운반할 경우가 무척 많았다. 그 모두를 맹 자체에서 해결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래서 대규모 수송이 필요한 경우에는 대륙표국에게 일을 맡기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물론 대륙표국은 무림맹에서 의뢰한 표물만 운송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의 의뢰도 받았다.

천하삼대표국 중 하나로 천하 각 지역에 지부가 있는 곳이었다. 그야말로 전 대륙에 걸친 거대표국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 대륙표국의 국주에게 딸이 하나 있었다. 아들이 없는 그는 가업을 딸에게 물려줄 생각이었다.

그 딸이 지혜로운 것은 물론이고 천하절색이었다.

그 미색이 악미미와 쌍벽을 겨룰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녀 역시 천하제일미란 영광은 얻지 못했다.

당금 무림에서 천하제일미로 가장 많이 불리는 사람은 바로 마지막 무림삼미였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악미미가 억울해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대륙표국주의 여식은 그래도 간접적으로 그 미모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천하제일미라 불리는 그녀는 그마저도 없었다.

하지만 무림인이라면 그녀를 천하제일미로 손꼽기에 주저함이 없었다.

그 이유는 바로 그녀의 부친이 무림맹주이기 때문이었다.

무림맹주의 여식.

무림삼미 중 배경만 따진다면 가히 최고라 할 수 있었다.

나이는 무림삼미 세 명 모두 열여덟 동갑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하하! 백 무인께서 악 소저에게 단단히 반하신 것 같구려. 아무쪼록 잘 되기 바라오.”

유관성이 껄껄 웃었다.

귀빈들 역시 웃음으로 축하를 해주었다.

두 사람 모두 먼저 파혼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의미를 좋게 생각한 것이었다.

백소영이 코웃음을 쳤다.

“흥! 자타공인 천하제일미는 따로 있는데 무슨 천하제일미인이지? 맹주님의 여식이 무림삼미 중 으뜸이라고 하잖아요? 안 그런가요?”

“으음······ 백 소저의 말씀이 맞긴 하오. 하지만 무림삼미의 아름다움은 각각 특징이 있어 그 우열을 가르기 힘들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오. 맹주님의 여식이 천하제일미라 불리는 것 역시 그 배경 때문이라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가장 정확한 것은 직접 그분을 본 사람이 내린 평가이겠지요. 혹시 여러분 중에 맹주님의 여식을 본 분이 있습니까?”

말을 한 사람은 담대선생이었다.

정보 수집을 담당하고 있어 미인에 대한 평가 또한 제법 객관적인 것 같았다.

“제가 봤어요.”

한 소녀의 목소리에 모든 시선이 쏠렸다.

한데 그녀는 바로 설중화가 아닌가.

“아! 설 대원! 그게 정말이오? 혹시 맹주님 여식께서도 남해기인 문하이시오?”

담대선생의 말에 좌중이 술렁였다.

설중화가 남해기인의 제자라는 사실은 어제 귀면탈 소녀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설중화는 나중에 이를 시인했다. 당연히 우문호를 비롯해 많은 사람이 놀란 바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남해기인은 무림맹주 절대검신(絶對劍神)과 더불어 무림십대고수 중 한 명이기 때문이었다.

“네. 그녀는 저와 동문이에요. 제가 입문이 빨라 사저가 되지만 나이가 같아 친하게 지냈지요.”

“아! 그랬었구려. 그 미모는 어떠하오?”

담대선생이 급히 물었다.

생각 같아서는 악미미와 그녀 중 누가 더 미인이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실례가 될 수 있어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설중화가 미소를 지었다.

“사매의 얼굴에 대해서 제가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것 같군요. 다만 조만간 사람들 앞에 모습을 공개할 거예요. 맹에 복귀해서 임무를 맡게 될 거라고 알고 있어요. 그때 보시면 될 거예요.”

“무슨 임무인지 알 수 있겠소? 맹주님의 여식이라면 분명 중요한 직책을 맡을 것 같은데······.”

“그것 역시 제가 말씀드리기 곤란하군요. 추측을 하셔서 맞추시면 제가 확인은 해드릴 수 있겠지만 말이에요.”

“우 대협께서는 혹시 짐작 가는 것이 있으십니까? 근자에 중요 보직이 공석인 자리가 있었습니까?”

“으음, 그러고 보니 한 자리가 생각나는군요. 와룡대주 자리가 비어 있고, 조만간 새 대주가 취임한다고 알고 있소이다.”

“아!”

“와룡대주!”

사람들이 탄성을 내었다.

모두 설중화의 확인을 기다렸다.

“호호! 제가 졌네요. 맞아요. 일전에 대원들 앞에서 제가 신임 와룡대주님을 알고 있다고 했는데, 그 말이 벌써 지부장님께 들어간 것인가요?”

“하하하! 어떻게 그걸 알았나? 신비에 쌓인 아가씨께서 와룡대주가 되신다니 기대가 크군.”

우문호가 미소를 지었다.

관례적으로 무림맹주의 여식은 맹내에서 아가씨로 불리기도 했다.

악미미의 안색이 조금 굳어졌다. 누가 더 미인인가에 대한 결론이 난 것이 아니라 기분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사실 그녀는 미모보다 무공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았다.

그래서 은근히 무림삼미 중 무공이 가장 강하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하지만 무림맹주 여식이 남해기인의 제자라고 하자 불안감이 생겼다.

그녀의 마음을 알아차린 것인가.

누군가 한 가지 제의를 했다.

“무림삼미 중 무공이 가장 강한 사람이 누군지는 지금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륙표국주의 여식은 무공을 모른다고 알려졌으니, 여기 계신 악 소저와 설 대원이 비무를 벌인다면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그것참 기발한 생각이오. 하지만 두 분께서 승낙하시겠소?”

유관성이 흥미를 보였다.

하지만 절대 강요할 일이 아니었다.

악미미가 먼저 의사를 밝혔다.

“저는 찬성이에요. 이 기회에 남해검파(南海劍派)의 무학을 견식할 기회가 되었으면 하네요. 설 대원의 생각은 어떤가요?”

“제 무공은 사매보다 훨씬 약해요. 저를 이겨도 그것이 사매를 이긴 것으로 인정되기는 어려울 거예요. 정중히 사양하겠어요.”

“설 대원. 그러지 말고 한 번 겨뤄보게.”

우문호의 권유가 있자, 설중화가 그제야 수락했다.

“알겠습니다. 지부장님의 명이라면 따라야 하겠지요.”

설중화가 자리에서 일어나 대청 중앙으로 향했다.

악미미 또한 무심한 표정으로 나갔다.

뜻하지 않은 대결이 벌어지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전력을 기울여야 할 상황이었다.

단순히 사적인 대결이 아니었다. 화산파와 남해검파의 명예가 달려 있었다.

관전자 입장이 된 백자안이 안색을 굳혔다.

악미미와 설중화 두 사람 모두 자신과 관련이 깊은 사람이었다.

한 명은 정혼녀이고, 나머지 한 명은 줄곧 자신에게 도움을 준 사람이었다.

‘악 소저가 비록 강하지만 설 대원을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설 대원이 귀면탈 소녀에게 일시적이지만 위협을 준 것을 생각하면······.’

설중화의 우세를 점쳤지만, 결과는 어찌 될지 몰랐다.

악미미의 투지 또한 강력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가 말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사실 누구 편을 들기도 어려웠다.

“적수공권으로 하되 먼저 쓰러지거나 혈도를 제압당한 사람이 패한 것으로 하겠습니다. 친선비무이니 서로에게 중상을 입히는 것은 피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럼 시작하십시오.”

담대선생이 비무 개시를 알리며 뒤로 물러났다.

악미미와 설중화는 삼장 거리를 두고 서로를 주시했다.

먼저 기세 대결을 펼치고 있는 것 같았다.

기세 대결은 그야말로 무형의 기운으로 상대를 기선 제압하는 싸움이었다.

절대고수는 기세 대결만으로 상대를 쉽게 죽일 수 있었다.

절대고수의 눈빛만 봤는데 심장이 멈춰 죽었다는 이야기가 바로 그 경우였다.

특히 이런 무형의 기세 대결은 무형검 고수간의 대결에 있어 더욱 위력을 발휘하는데, 그때는 대결이 오히려 매우 단순해진다.

서로 가만히 쳐다보다가 한 사람이 갑자기 쓰러지는 경우가 바로 그것이었다. 물론 이와 같은 때에도 보통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수많은 기의 충돌이 있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선공을 가한 사람은 설중화였다.

그녀는 우수를 가볍게 내밀었다.

바로 남해기인의 절학 중 하나인 남해신장(南海神將)이었다.

사실 그녀는 어제 귀면탈 소녀에게 당하면서 느낀 바가 컸다.

상대가 강할수록 처음부터 강한 무공을 구사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당시 그녀가 검을 날릴 때 사용한 무공은 어풍비행검으로 전력을 다했어야 했다.

하지만 자칫 상대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삼 푼의 여지를 주었다.

물론 전력을 기울였다고 해도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상대를 너무 배려하는 게 실책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배운 것이었다.

쏴아아아.

장력이 엄정하면서도 무겁게 날아갔다.

악미미 역시 장력으로 맞받아쳤다.

장세 대결이야말로 가장 간단하면서도 우열을 가릴 수 있는 방식이었다.

그녀가 날린 장법의 이름은 옥녀신장(玉女神掌).

옥녀비급 안에 수록된 무공으로 이 역시 옥녀심공의 부록이라 할 수 있었다.

꽈앙.

대청 전체가 흔들리는 폭음과 함께 한 소녀가 쓰러졌다.

“으음······.”

사람들이 급히 보니 놀랍게도 그녀는 바로 악미미였다.

내력에 있어 밀린 것이었다.

설중화는 태연했다.

사실 그녀는 간밤에 깨달음을 얻어 무공이 한 단계 더 상승한 상태였다.

고수와의 실전 대결을 펼치면서 부족함이 일부 채워진 결과였다.

악미미가 곧바로 일어났으나 이미 승부는 결정 난 이후였다.

설중화가 말했다.

“악 소저께서 오늘 대회를 치르시느라 아직 회복이 덜 되었으니, 무승부로 하고 다음 기회에 다시 겨루는 것이 좋겠어요.”

짝짝짝.

설중화가 승리를 주장하지 않았지만, 그녀에게 박수가 쏟아졌다.

악미미가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무공에 대한 열망이 큰 만큼 그녀 역시 치졸한 변명은 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에요. 제가 졌어요. 역시 와룡대원이군요. 저 역시 기회가 된다면 와룡대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와룡대에 들어가면 많은 무공을 접할 수 있다던데 그게 사실인가요?”

“네. 조만간 특별 와룡곡(臥龍谷) 수련이 있을 거예요. 그 전에 입대하게 되면 참가하실 수 있을 거예요.”

설중화가 미소를 지었다.

악미미가 깨끗이 승복하자 그녀의 표정도 밝아졌다.

“감사해요. 하지만 다음에 겨룰 때는 제가 반드시 승리할 거예요. 그때 도전을 받아주실 거죠?”

“네. 기꺼이 그러죠.”

설중화와 악미미 두 사람이 포권을 한 후 대결을 마쳤다.

짝짝짝.

다시 박수가 쏟아졌다.

서로 감정이 상할까 봐 우려되었지만, 비교적 훈훈하게 끝난 셈이었다.

백자안 역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게 연회가 파할 무렵.

대청 안으로 관군 한 명이 급히 들어왔다.

연회 참석 중이던 장사성 대장군 이장락(李長樂)이 인상을 찡그렸다.

“무슨 일이냐?”

“큰일 났습니다. 동정수로채 수적들이 악양성을 점령했다고 합니다.”

< [제7장] 화산옥녀 3 > 끝

ⓒ 행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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