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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적 반로환동-20화 (20/250)

< [제7장] 화산옥녀 2 >

“저런!”

“아!”

귀면탈 소녀의 공격 대상이 된 악미미를 향해 안타까운 탄성이 쏟아졌다.

하지만 자신도 흡수대법의 대상이 될 것을 염려해 아무도 그녀를 돕지 않았다.

정작 당사자인 악미미는 다소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그녀 역시 흡수대법의 무서움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다.

흡수대법에 당하면 그동안 쌓아 올린 옥녀진기를 모두 빼앗기게 될 것이었다. 설사 살아난다 해도 그것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으로 다가오게 될 게 분명했다.

백자안처럼 별 필요가 없어진 운기토납지기를 빼앗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그냥 당할 수만은 없었다.

흡수대법에 저항하기로 했다.

하지만 의지와 달리 그대로 끌려가고 말았다.

내공으로 계속 저항했지만 마치 혈도를 제압당한 것처럼 힘을 쓸 수 없었다.

이미 끌려가는 순간 속박을 당하게 되는 게 흡수대법의 특징이었다.

‘위험하다!’

백자안이 자신도 모르게 신형을 날려 악미미 뒤로 갔다. 어깨를 잡았다.

순간, 악미미의 신형이 멈췄다.

백자안의 힘이 작용한 덕분이었다.

사실 원래는 백자안이 악미미의 어깨를 잡는 순간 함께 끌려가야만 했다.

하지만 이제 백자안의 내공은 흡수대법이 통하지 않았다.

“흥! 또 네놈이구나!”

귀면탈 소녀가 좌수를 흔들었다.

순간, 악미미의 머리에 꽂혀 있던 옥비녀 하나가 빠져나가 귀면탈 소녀의 손에 들어갔다.

“역시 예쁜 비녀군.”

귀면탈 소녀가 옥비녀를 들고 신형을 돌려 사라졌다.

“휴우!”

“돌아갔다!”

숨죽이며 상황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상황으로 봐서 귀면탈 소녀가 악미미의 목숨을 노린 게 아니라 비녀를 가지고 싶어 했던 것 같았다.

“괜찮으시오?”

백자안이 손을 놓으며 물었다.

악미미가 잠시 백자안을 쳐다보더니 말없이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백소영이 말했다.

“도와줬으면 고맙다고 한마디라도 하는 게 예의가 아닌가요?”

“······.”

악미미가 그녀의 말까지 무시하며 별말을 하지 않았다.

아예 상대를 하지 않겠다는 의사로 보였다.

그러는 동안 사태는 빠르게 수습되었다.

천혈객의 시체가 옮겨졌다. 그 과정에서 그의 품속에 있던 미혼약이 발견되어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그 미혼약은 천혈객이 옛날부터 사용하던 것으로, 약병에는 천혈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우문호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죽은 비정객이 사실은 살인도적으로 유명했던 천혈객인 듯합니다. 그러고 보니 역용한 흔적도 있군요.”

우문호가 터진 머리 한 부분을 가리켰다.

머리가 터져 즉사했지만, 얼굴 가죽은 일부 남아 있었다.

한데 그 모습이 비정객과는 완전히 다른 게 아닌가.

아무래도 흡수대법으로 온몸의 진기가 빠져나가면서 원래 얼굴로 돌아온 것 같았다.

다만 얼굴 가죽 역시 쪼그라들어 있어서 확실히 구분되지는 않았다.

그때 군중 속에서 한 사람이 나와 우문호의 말에 신빙성을 더했다.

“천혈객이 확실합니다. 뺨에 나 있는 칼자국이 그 증거입니다. 놈이 이십 년 전 제 벗을 살해한 적이 있어 그 얼굴을 확실히 기억하고 있지요.”

“으음, 역시 천혈객이었군요. 그러고 보니 귀면탈 소녀가 죽어 마땅한 자만 노리는 것 같습니다. 일단은 다행이군요.”

우문호의 말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논란이 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이미 천혈객이 죽은 마당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보다 일단은 대회를 잘 마무리해야 했다.

귀면탈 소녀의 등장으로 매우 당황했던 유관성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입상자에게 상금을 전달했다.

공동 3위를 한 은하검객과 우문석에게 은자 백 냥씩을 준 것이었다.

그러고 나니 상금 중 준우승자인 천혈객에 줄 은자 오백 냥이 남았다.

“으음, 우 대협. 남은 상금은 어떻게 하면 좋겠소?”

“최근 양민들을 위해 공을 세운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주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우문호가 살짝 고개를 돌려 백자안을 쳐다봤다.

백자안에게 상을 내리라는 뜻 같았다.

사실 그는 어제 백자안으로부터 치료를 받은 이후 무척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가 고목노인에게 당한 독이 생각보다 위험했기 때문이었다.

상대적으로 귀면탈 소녀에게 당한 내상은 그렇게 깊지 않았다.

만약 백자안의 뛰어난 해독술이 아니었다면 상당한 후유증을 남겼을 가능성이 컸다.

유관성이 껄껄 웃었다.

“하하하. 무슨 뜻인지 알겠소. 사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었소. 백 무인은 앞으로 나오시오.”

“네. 성주님.”

백자안이 유관성 앞으로 갔다.

악미미가 옆으로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녀는 여전히 싸늘한 표정이었다.

‘흥! 날 도와줬다고 내 마음이 달라질 줄 안다면 오산이다. 어차피 귀면탈 그 계집이 처음부터 날 죽일 생각은 없었던 것이었어. 하지만 옥비녀를 빼앗겨서 어떻게 하지.’

악미미가 안색을 굳혔다.

그녀가 빼앗긴 옥비녀는 보통 비녀가 아니었다.

단순히 예쁜 물건이 아니라 옥녀심공을 대성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었다.

옥비녀를 만든 사람은 옥녀심공을 창안한 사람으로, 그녀 역시 여자였다.

그녀는 후인이 옥녀심공을 대성하기 어려울 것을 알고 죽기 전 자신의 내공을 옥비녀에 넣어놓았다.

그래서 옥녀심공을 익히는 사람이 옥비녀를 꽂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옥녀진기가 보충되는 효과가 있게 되는 것이다.

악미미가 삼 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옥녀심공을 칠성까지 익힌 비밀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사실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그녀의 부친인 매화검선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매화검선은 화산장문인이 되자 장문인만이 들어갈 수 있는 화산비동에서 옥녀비급을 발견했다. 이후 자연스럽게 자신의 딸에게 수련할 것을 권했다.

악미미는 매우 기뻐했다.

그녀는 수련 효과를 높이기 위해 옥녀담이 있는 옥녀봉을 수련장소로 삼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옥녀담 밑바닥에서 옥비녀를 발견한 것이다.

‘반드시 찾아야 한다. 아, 아까 그 계집을 쫓아갔어야 했는데······.’

악미미가 분한 마음에 눈물을 글썽였다.

사실 아까 무기력하게 귀면탈 소녀에게 끌려갈 때 그녀 역시 공포를 느꼈던 것이다.

절정고수급의 무공을 익혀 자신감이 넘쳤던 그녀였다.

그 증거로 용봉대회 우승까지 차지했던 그녀가 아니었던가.

화산파의 명예를 높였다. 자신의 명성 또한 크게 올라갈 게 확실했다.

그 때문에 자신 있게 면사를 벗어 얼굴까지 공개했던 것이다.

하지만 곧바로 귀면탈 소녀에게 끌려가는 수모를 당하고 말았다.

백자안의 도움을 받은 것 역시 고마움을 느끼기보다 수치로 여겨졌다.

백자안은 무심결에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힌 것을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

하지만 애써 모른 체했다.

그녀와 파혼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으나,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유관성이 말했다.

“백 무인은 천년색마를 제거해 부녀자들의 근심을 없애주었소. 그에게 성주의 권한으로 은자 오백 냥을 주겠소.”

짝짝짝.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상이라 할 수 있었다.

가장 기뻐한 사람은 백자안이 아니라 백소영이었다.

‘저 돈은 내 거야.’

* * *

용봉대회가 끝난 후 밤에 유관성 주최로 연회가 열렸다.

연회 장소는 장사성 관아였다.

악미미를 비롯해 본선 진출자 일곱 명 모두 초대를 받았다. 우문호, 백자안, 설중화, 백소영 등도 참석했다.

“하하하. 오늘 불상사가 있긴 했으나 대체로 성공적인 대회였다고 생각하오. 무엇보다 대회 우승자가 강호에 유명한 화산옥녀 악 소저로 밝혀졌으니 무척 기쁘오. 악 소저께서도 한 말씀 해주시겠소?”

유관성이 밝은 표정으로 물었다.

백여 명의 귀빈만 앉아 있는 연회석 상석에 자리한 악미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성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부족한 실력이지만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앞으로 우승자로서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악미미가 귀빈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짝짝짝.

박수가 쏟아졌다.

그때 누군가 물었다.

“악 소저께 궁금한 것이 많습니다. 특히 저기 계신 백 무인과의 관계에 대해 말들이 많습니다. 이 자리에서 분명하게 밝혀주시겠습니까? 불필요한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해라니요?”

악미미의 표정이 조금 싸늘해졌다.

대회장에서부터 단체로 이곳 관아까지 오면서 백자안과는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그녀는 온통 옥비녀를 찾을 방법에 관한 생각뿐이었다.

백자안 역시 말을 건네지 않았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그녀가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그 때문에 당사자끼리 파혼이 결정된다면 굳이 화산파에 갈 필요가 없다고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부모님 때문에 추천장을 받겠다고 했으나 그 역시 자존심이 있었다.

게다가 뜻하지 않은 상금을 유관성으로부터 받게 되어 한결 여유가 생겼다.

이자 문제가 해결된 후 가장 큰 걱정이 백소영에게 들어갈 돈이었는데, 그게 한 번에 해결된 것이었다.

무림맹에서 받을 수 있는 은자 천 냥 역시 이제는 굳이 집착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주면 받는 것이고 안 주면 그만인 것이지. 빚이 없고 소영이를 무관에 보낼 수 있다면 더는 욕심을 낼 필요가 없다. 이제 남은 것은 부모님이 무척 바라시고 나 또한 아직 미련이 있는 무림맹에서의 성공이다. 그러다 나이가 들면 낙양에 작은 무관을 하나 차려 제자를 받고 조용히 살아가는 것이 소박하나마 내 꿈이다. 물론 그러려면 무공 역시 진보가 있어야겠지.’

대강 이런 생각을 하면서 백자안은 연회석에 앉아 있었다.

자신의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서라도 어서 빨리 악미미와의 관계를 정리하는 게 필요했다.

그래서 그 역시 악미미의 답변을 기다렸다.

“하하하. 오해란 게 별거 있겠습니까? 소문에 의하면 천하제일가 대공자와 혼담이 있다던데 그게 사실인지요? 아니면 이곳에 계신 백 무인과 혼인하실 것인지 여쭤보는 겁니다. 아, 물론 그전에 백 무인과 정혼한 사실이 정말 있는지 밝혀주시겠습니까? 실례가 되었다면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아니에요. 저도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밝히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말씀드리지요.”

악미미가 한숨을 돌린 후 백자안을 쳐다봤다.

백자안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잠시 마음이 혼란스러웠지만 무명심법 덕분인지 금세 안정이 된 것 같았다.

악미미가 아미를 찡그렸다.

초조해하는 표정을 기대했기 때문일까.

악미미가 잠시 고민에 빠졌다.

백자안이 일부러 정혼 사실을 퍼뜨려 자신과 혼인하려고 했다면 보다 적극적이어야 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그 역시 자신에게 그렇게 집착하지 않는 게 아닌가.

그 점이 오히려 마음을 흔들었다.

‘귀면탈 그 계집에게서 옥비녀를 되찾아올 수 있는 사람은 지금 백 공자가 유일하다. 흡수대법이 통하지 않으니까. 옥비녀를 찾을 때까지는 잘 대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악미미가 미소를 지었다.

나름대로 핑계를 만들자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어른들끼리 저와 백 무인이 태어나기도 전에 혼약하신 것은 사실이에요. 한 달 전 무적세가 총관께서 본파로 찾아와 혼담을 넣은 것도 사실이에요. 저로서는 아직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았어요. 다만 백 무인께서 먼저 파혼을 원하시면 저도 이 자리에서 받아들이도록 하겠어요.”

“아!”

탄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생각보다 백자안에게 유리한 답변이었다.

백자안과 악미미의 사이가 좋지 못하다는 것은 대부분 잘 알고 있었다.

좌석도 멀리 떨어져 있는데다가 서로 한마디도 나누지 않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공은 백자안에게 넘어갔다.

백자안으로서는 악미미의 반응이 예상 밖이라 잠시 당황했다.

듣기에 따라서 자신에게도 기회가 있다는 뜻이 아닌가.

‘아직 누구와도 혼인할 생각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구나. 그렇다면 체면을 세워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백자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세상에 어떤 바보가 천하제일미인에게 파혼을 먼저 요구하겠습니까? 제가 먼저 파혼하자고 하는 경우는 절대 없을 겁니다.”

< [제7장] 화산옥녀 2 > 끝

ⓒ 행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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