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적 반로환동-19화 (19/250)

< [제7장] 화산옥녀 1 >

[제7장] 화산옥녀

“매화선자의 승리요!”

담대선생이 악미미의 승리를 선언했다.

옆구리를 살짝 베인 은하검객은 침통한 표정이었다.

백여 합을 겨뤘지만 마지막에 악미미의 검초를 피하지 못했다.

검초 자체는 평범했다. 하지만 옥녀심공의 기운이 평범함을 비범함으로 바꿔주었다.

짝짝짝.

우레와 같은 박수에 악미미가 포권으로 답례한 후 대기석으로 돌아갔다.

은하검객은 일류고수로 후기지수 중에서 그 명성이 매우 높은 자였다.

그런 자를 이겼기에 그녀의 명성 또한 높아질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녀의 목표는 우승.

다음 대결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두 번째로 결승에 오른 사람은 비정객(非情客)이란 자였다.

상대는 우문세가의 대공자였다. 하지만 일검에 어깨를 찔러 승리를 거두었다.

첫 승을 거둘 때 상대와 백여 합을 겨룬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 싱겁게 이긴 셈이었다.

‘고수다. 그동안 실력을 숨기고 있었구나.’

악미미가 안색을 굳혔다.

비정객에게 패한 우문세가 대공자 우문석(宇文石)은 은하검객과 비슷한 무위였다.

‘어쩔 수 없이 옥녀검법(玉女劍法)을 펼쳐야 한단 말인가.’

그녀가 익힌 옥녀심공은 그 부록에 검법이 있었다. 이를 옥녀검법이라 했다.

옥녀심공을 익혀야만 터득할 수 있는 검법이었다. 그 위력은 가히 무림일절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뛰어났다.

‘일초 승부다. 옥녀검법으로 승부한다.’

결승전을 치루기 위해 비무대에 오른 악미미가 검을 수평으로 들었다.

옥녀검법 중 옥녀전일(玉女專一)이란 초식을 펼칠 계획이었다.

옥녀전일은 옥녀검법의 열두 초식 중 제 칠초. 옥녀심공이 칠성에 달한 그녀가 펼칠 수 있는 최고의 검초였다.

팔초부터는 아직 옥녀심공이 받쳐주지 못해 펼치고 싶어도 펼칠 수 없었다.

비정객이 기이한 미소를 지으며 검을 비스듬히 들었다.

“시작하시오!”

담대선생의 말이 떨어진 바로 그 순간.

먼저 검초를 뿌린 사람은 바로 악미미였다.

쐐애액.

파공성과 함께 악미미의 검에서 눈부신 검광이 발출되었다.

그 빛의 파동이 마치 천상옥녀(天上玉女)가 춤을 추듯 현란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 모든 힘이 하나로 집중되고 있었다. 초식 명처럼 전일(專一)이었다. 검기와 함께 검이 힘차게 일직선으로 뻗어나갔다.

“아!”

“저것은?”

검술을 오래 연마한 사람들이 탄성을 터뜨렸다.

비록 한 초식에 불과하지만 그 초식에 무려 서른 여섯 가지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절정고수다!’

백자안이 눈을 빛냈다.

범상치 않으리라 생각했던 악미미의 무위가 생각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절정고수라 함은 일류를 넘은 경지를 말한다.

절정 위에는 초절정이란 말을 붙여 다시 단계를 나누기도 하지만, 대체로 절정고수라고 하면 차원이 다른 무공을 구사하게 된다.

그 때문에 수백 명이 공격해도 절정고수 한 명을 당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무림에서는 무림백대고수라 하여 따로 절정급 이상 고수 중에서 뛰어난 자들을 분류해놓기도 했다.

악미미는 아직 백대고수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그 무위를 선보이고 있었다.

비정객은 당황하지 않고 자신의 검초를 뿌렸다.

사선으로 검을 내리치는 평범한 초식이었다. 하지만 절대 밀리지 않는 기세였다.

그도 절정고수였던가.

물론 절정고수 사이에서도 그 실력 차이는 분명 존재했다.

예를 들어 절정고수 한 명이 다른 절정고수 수십 명을 일 검에 베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들은 절정고수 중에서도 상급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상급 절정고수 중에서도 최고의 무위를 지녀 심검의 단계만이 남았을 때 그들을 초절정 또는 최절정 고수라 부르게 된다.

초절정 고수가 되면 일반 절정고수 수백 명도 일 검에 죽일 수 있었다.

당금 무림의 절대강자인 불패마왕이 바로 그 초절정 고수로 알려져 있었다.

까아앙.

악미미의 검과 비정객의 검이 부딪히며 불꽃이 튀었다. 검광이 난무했다.

순간적으로 두 사람의 신형이 빛에 가려 흐릿해졌다.

백자안은 두 사람이 극히 빠른 동작으로 순식간에 백여 초를 교환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사실 그의 무공 수위를 생각할 때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상대의 무공을 보는 안목만큼은 무명심법 칠성을 달성했을 때의 깊이를 유지하고 있었다.

차차차창!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가 이어지며 악미미와 비정객이 급히 서로 떨어졌다.

사람들이 보니 악미미의 소매가 조금 잘라져 있었다.

비정객은 멀쩡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승부가 결정지어졌다고는 할 수 없었다.

악미미가 두 팔을 벌린 후 천천히 신형을 솟구쳤다.

이번 승부에 화산파, 그리고 자신의 명예가 걸려있었다. 최후 무공을 펼치려는 것으로 보였다.

지면에서 삼장 높이까지 떠오른 그녀가 좌장으로 장력을 날리며 동시에 오른 손에 들고 있던 검을 날렸다.

노리는 부위는 비정객의 어깨부위였다.

쏴아아.

휘이익.

장력과 검이 쏘아진 화살처럼 날아갔다.

비정객이 흠칫하며 검으로 원호를 그려 검기방패를 만들었다.

검기방패는 일종의 검기막이었다. 일반적으로 호신강기보다 월등한 위력을 발휘했다.

악미미의 공세가 너무 강해 일단 방어에 치중한 것이다.

그러면서 비정객은 양 소매를 흔들어 그 속에 감춰뒀던 암기를 날렸다.

우모침을 특수 개량한 것으로 상대의 호신강기를 뚫을 수 있었다.

꽈아앙.

비무대가 흔들릴 정도로 강한 충격파가 발생했다.

“으윽!”

악미미가 날린 옥녀신장(玉女神掌)에 담긴 칠성의 옥녀진기에 기혈이 흔들린 비정객이 비틀거렸다.

검을 막는데 치중하느라 검기방패 사이로 진기가 침투한 때문이었다.

“계집!”

한 마디도 안하던 비정객이 소리치며 자신 역시 들고 있던 검을 던졌다.

악미미의 가슴 쪽이었다.

“앗!”

“저런!”

사람들이 다급성을 터뜨렸다.

상황에 따라 생사결도 허용되는 대회이긴 하지만 그래도 지켜야 하는 기본이 있었다.

무엇보다 관례상 직접적으로 상대의 목숨을 노리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물론 대결을 하다보면 서로 흥분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뜻하지 않은 사망자가 나오기도 한다.

이번 용봉대회 예선에서도 사망자가 세 명이나 발생했다.

그것은 모두 사고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누가 개입할 상황도 아니었다.

심사위원장인 우문호가 강제로 대결 종료를 선언할 수 있긴 했다. 하지만 대부분 승기를 잡은 악미미가 잘 방어할 것으로 여겼다.

그 기대는 충족되었다.

“흥!”

악미미가 코웃음을 치며 신형을 비틀었다. 검을 피한 후 두 발을 휘저으며 빠르게 날아가 비정객의 왼쪽 어깨를 후려쳤다.

파팍.

“으윽!”

비정객이 피를 한 모금 토한 후 뒤로 밀려갔다. 악미미가 그림자처럼 따라가 정권으로 복부를 한 대 쳤다. 비정객이 외마디 비명과 함께 허공에 붕 뜨더니 비무대 밑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와아아.

짝짝짝.

악미미의 승리가 결정되자,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초반의 불리함을 딛고 결국 승리를 거둔 것이라 더욱더 열렬했다.

백자안 역시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투지가 대단하군. 여자지만 배울 점이 있다. 화산파 제자 같은데 역시 대문파라 다르구나. 화산옥녀 외에 저런 고수가 있었단 말인가. 아니다. 저런 여고수는 한 사람밖에 없다. 설마 화산옥녀란 말인가.’

백자안이 눈을 빛내며 악미미를 쳐다봤다.

격렬한 비무로 인해 면사가 반쯤 찢어져 있었다.

그것도 바람에 날려가기 직전이었다.

언뜻 보이는 얼굴은 예상대로 경국지색이었다.

싸움에서 보여준 강력함에 비해 얼굴은 오히려 청순했다.

“매화선자의 승리요. 이로써 이번 대회 우승자가 탄생했습니다.”

담대선생의 선언에 군중들이 다시 한번 함성을 질렀다.

비정객은 내상이 그렇게 깊지 않은 듯 곧바로 일어났다. 하지만 이미 승부가 끝난 후였다.

사실 그는 녹림 출신으로 신분을 감추고 낭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낭인무사로 활동하면서 다른 정파 무공도 익히게 되었던 그는 자기 나름의 무공을 완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도벽이 심했다. 빚을 지게 되어 은자가 급히 필요해지자 이번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이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그의 실제 나이는 올해 오십으로 현재 역용한 상태였다.

진짜 별호는 천혈객(天血客). 녹림도로 있을 때 약탈 도중 무수히 많은 양민을 죽여 공분을 산 바 있었다.

‘매화선자란 저 계집! 내 반드시 기회를 봐서 죽여주마. 왕년에 사용하던 미혼약이 있으니 내친 김에······ 후후후!’

비정객, 아니 천혈객이 패배의 분함을 씻기 위해 즐거운 상상을 했다.

그는 똑똑히 봤던 것이다.

악미미의 얼굴을.

‘대단한 미색이었다. 나중에 패배를 깨끗이 인정하는 척하며 접근하면 술 한잔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때 해치운다. 물론 그전에 처녀귀신을 면하게 해주어야겠지.’

천혈객이 복수를 다짐할 때.

유관성이 직접 상패와 상금을 악미미에게 주고 있었다.

“우승을 축하하는 바이오. 실례가 안 된다면 얼굴을 보여줄 수 있겠소? 매화검법을 펼쳤던 것으로 봐서 화산파 제자 같은데······ 하하하! 물론 뒤에 펼친 무공은 잘 모르겠지만 말이오.”

유관성이 자신이 마치 무림인이 된 것처럼 즐거워했다.

악미미가 고개를 한 번 숙인 후 면사를 벗었다.

순간, 군중들의 엄청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난생 처음 보는 미인이었던 것이다.

그때 누군가 소리쳤다.

“화산옥녀다! 초상화에 그려진 얼굴 그대로다!”

놀라움의 물결이 연무장 전체를 휩쓸었다.

그중 가장 놀란 사람은 바로 백자안이었다.

예상은 조금 했었지만 정말 자신의 정혼녀라니.

귀면탈 소녀가 다시 나타난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녀는 말없이 우수를 들어 한 사람을 가리켰다.

그 사람은 바로 조금 전 악미미에게 패한 천혈객이 아닌가.

천혈객의 신형이 어제 왕해처럼 끌려간 것은 그 직후였다.

내공으로 버텨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흡수대법!”

우문호가 다시 소리쳤다.

모든 사람들이 경악할 때.

귀면탈 소녀의 손아귀에서 천혈객의 머리가 쪼그라들며 그대로 터져버렸다.

퍽.

잠시 적막이 흘렀다.

어제처럼 사람들이 단체로 무릎을 꿇고 비는 장면은 없었다. 하지만 극한의 공포가 대부분의 가슴에 닿고 있었다.

근처에 실제 불패마왕이 와 있을 가능성도 배제 못했다.

사실 당금 무림에 있어서 무림맹과 마교는 대립하고 있었으나 서로 자제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양패구상을 우려한 때문이었다.

물론 소소한 갈등은 끊임이 없었다.

그 때문에 주요 인사들의 납치와 암살이 지금도 계속되었다.

하지만 지휘부 차원의 충돌은 지난 십년 간 없었다.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십년 전 불패마왕이 돌연 폐관수련에 들어간 일 때문이었다.

십년 기한으로 신공을 완성하기 위해서였다.

문제는 한번 폐관에 들어가면 끝을 보기 전애는 멈추지 않는 게 불패마왕의 성격이었다.

이를 노린 것이 바로 혈교였다.

힘을 축적하면서 중원 제패를 노리고 있던 혈교는 불패마왕의 부재를 알고 전격적으로 침공을 가해왔다.

그것이 바로 혈교와 무림맹의 전쟁이었다.

전쟁은 혈교주 혈마의 죽음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혈교의 세력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혈마의 아들이 새 교주가 되어 다시 힘을 비축하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무림맹 지휘부는 어떻게 해서든 마교를 이용해 혈교를 견제하고 싶어 했다.

원래 혈교는 마교의 한 지류였다. 그 이유로 인해 서로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았다.

“귀하는 불패마왕과 무슨 관계요? 비정객을 죽인 이유가 무엇이오? 대회 참가자를 이렇게 무참히 살해하다니 우리를 우습게 보는 것이오?”

우문호가 물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귀면탈 소녀에게 이런 질문을 할 사람은 그뿐이었다.

“꼴값하네.”

귀면탈 소녀가 한 마디 내뱉은 후 천천히 한 사람에게 다가갔다.

천혈객 다음으로 죽일 대상인가.

한데 그 사람은 바로 악미미가 아닌가.

귀면탈 소녀가 우수를 들어올렸다.

“예쁘네.”

< [제7장] 화산옥녀 1 > 끝

ⓒ 행호사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