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6장] 흡수대법 2 >
다음 날 아침 무림맹 장사지부는 몰려드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오늘 장사성주 주최 용봉대회가 대연무장에서 열리기 때문이었다.
오래도록 준비한 행사이기에 겉으로는 순조로워 보였다.
무림맹 지부 무사들과 성주 휘하 호위무사들이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다.
구경하러 온 사람의 수는 대략 만 명에 가까웠다.
연무장이 비록 크지만, 귀빈들이 앉는 단상과 원형 비무대를 제외하고는 빈자리가 거의 없을 정도였다.
지금은 모든 준비가 끝나고 성주와 우문호 등 단상에 앉을 귀빈들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
군중들이 대회 시작을 기다리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느라 저잣거리를 방불케 했다.
그중 단연 화젯거리는 바로 어젯밤 흑천방 장사지부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백자안이 천년색문 잔당으로 위장한 살수 백여 명을 죽인 일이 벌써 알려진 것이었다.
하지만 최고의 화제는 단연코 흡수대법을 펼친 귀면탈 소녀였다.
그녀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왜 왕해를 죽였는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특히 오늘 대회에 온 사람들 대부분은 정파 소속이거나 친 무림맹 경향이었기에 흑천방에 대한 성토가 대단했다.
“왕해 그놈 참 잘 죽었다! 귀면탈 소녀의 정체는 모르겠지만 불패마왕과 관련 있는 것 같은데, 아마 죽을 짓을 해서 죽였겠지?”
“당연하지. 왕해 그놈이 얼마나 간사했나? 흑천사걸 문제만 해도 그래. 자기가 다 시켜놓고 문제가 되자 관련 없다고 발뺌이나 하고 말이야.”
“어디 그뿐인가? 백자안 대협을 죽이려고 살수를 사주한 자가 그놈이라고 하지 않나? 살수 우두머리를 죽여 입을 봉한 게 바로 그 증거가 아니겠나?”
“물론이지. 아무튼 이 기회에 양민들을 착취하고 괴롭히는 흑천방 놈들을 모두 제거해야 해. 맹에서 무슨 움직임이 있을 것 같은데······.”
“무슨 움직임 말인가? 혹시 흑천방을 공격할 거라는 말인가?”
“충분히 가능성이 있지. 두고 보면 알겠지만 말이야. 그나저나 우 대협께서 부상이 심하다고 하던데 오늘 대회 관람을 하실 수 있을지 모르겠군.”
“백 대협도 걱정이야. 듣기로 귀면탈 소녀에게 내공을 모두 빼앗겼다고 하더군. 백 대협도 흡수대법에 당한 셈이지.”
“하기야 아무리 백 대협이라도 흡수대법을 당할 수는 없지. 아무도 막을 수 없어. 그래도 아직 쓸 수 있는 내공이 있다고 하더군.”
“내공을 모두 빼앗긴 게 아닌가?”
“백 대협 몸에 여러 종류의 내공이 있는데, 이번에 빼앗긴 내공은 일반적인 것이라고 하더군. 자세히는 나도 모르겠네. 가장 궁금한 것은 바로 귀면탈 소녀의 정체가 아니겠나? 혹시 불패마왕의 딸이 아닐까?”
“불패마왕에게 딸이 있었나? 워낙 신비에 쌓인 인물이라 가족 관계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 흡수대법을 연마했으니 딸이 아니면 제자겠지.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전수하지 않았을 테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아, 저기 성주님이 나오시는군. 우 대협과 백 대협도 보이는군.”
와아아.
군중들의 함성이 터져 나오며 장원 깊숙한 곳에서 한 무리가 나왔다.
백여 명 정도였다. 바로 장사성주 유관성(柳慣成)과 우문호, 백자안, 설중화, 백소영 등이었다.
나머지는 장사성 내 무림방파의 주요 고수들이었다.
정파 성향이며 대부분 무림맹에 형식적이나마 가입한 상태였다.
형식적이라는 것은 무림맹에 가입한 문파가 너무 많기 때문이었다.
실제 무림맹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총단에 무사들을 파견하는 문파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중심으로 명문정파로 분류되는 백여 곳이 대부분이었다.
반면 무림맹에 가입한 문파는 수천 개가 넘었다.
정확하게 그 수가 파악되지 않을 정도였다.
물론 의무가 약한 반면에 보호받는 정도도 달랐다.
자신의 문파가 외부 공격을 받더라도 무조건 무림맹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게 아닌 것이다.
무림맹의 중추를 이루는 핵심문파가 아닌 한 기본적으로 스스로 방어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다만 마교나 혈교의 공격 등 무림 전체의 안위와 관련된 경우에는 빠른 지원이 이루어졌다.
기타 사소한 분쟁이나 세력 싸움 같은 것에 맹이 일일이 간섭할 의무도 그럴 여유 자원도 없었다.
그런 면에서 이곳 장사성에서는 우문호의 재량권이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한편 우문호와 설중화의 상태는 비교적 양호해 보였다.
설중화는 거의 완쾌된 것으로 보였다.
다만 우문호는 안색이 창백한 것이 아직 회복이 덜 된 것으로 보였다.
사실 한 달은 더 요양해야 할 상처였다. 하지만 큰 행사를 앞두고 성주의 체면을 세워주어야 하므로 억지로 나온 것이었다.
무공을 사용하지 않고 관람만 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에 그 역시 여유가 있어 보였다.
사실 돌발 변수가 나올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만약 긴급사태가 발생한다 해도 대처할 만한 충분한 병력과 고수들이 있었다.
“하하하! 정말 많이 모였군요. 우 대협께 감사드리오. 원래는 관부에서 개최해야 하는 대회인데······.”
장사성주 유관성이 껄껄 웃었다.
우문호가 미소를 지었다.
“아닙니다. 용봉대회는 관례로 우리 지부에서 개최되고 있었지 않았습니까? 이것은 전대 성주님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전통이니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감이오. 무림과 관의 불간섭이 원칙이라 하나, 어찌 그렇게 완전히 단절할 수 있겠소? 특히 공공연히 역심을 드러내고 있는 녹림 놈들은 관과 무림의 공통적인 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오.”
“역도 성향을 보이는 녹림은 녹림 전체 중 일부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놈들은 본맹에서도 주시하고 있으니, 양민에 대한 수탈이 노골화되면 공동토벌도 가능할 겁니다.”
“그렇게만 되면 오죽이나 좋겠소? 한데 이분이 바로 천년색마를 제거한 신진영웅 백자안 무인이시오?”
“네. 대단한 무공을 지니고 있습니다. 어제 흡수대법에 당하고도 여전히 강한 무공을 사용하고 있지요.”
우문호가 백자안을 소개했다.
그러는 동안 지휘부 일행은 중앙 단상에 위치했다.
군중들의 함성은 계속되었다.
소개를 받은 백자안이 유관성에게 고개를 숙였다.
“무림맹 순찰당 무사 백자안입니다. 성주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전부터 양민들을 친자식처럼 보살피신다고 백성들 사이에서 칭찬이 자자하더군요.”
“하하하. 과찬이오. 나로서는 최선을 다할 뿐이오.”
유관성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그는 그렇게 청백한 관리는 아니었다.
다만 조정의 권력 다툼에서 밀려나 이곳 장사성의 성주로 부임한 후 백성을 수탈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가 지금 바라는 것은 장사성 내의 무림인들과 친분을 유지해 성내 치안을 더욱더 완벽히 하는 일이었다.
그런 면에서 그가 지금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역심을 품은 녹림도들의 공격이었다.
예를 들어 녹림칠십이채와 장강수로십팔채의 경우 그 위세가 대단해 언제 성을 공격할지 몰랐다.
물론 그들이 궁극적으로 황궁까지 뒤엎을 마음을 갖고 있을지는 모를 일이었다. 그래도 성 전체가 함락되면 양민들의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지게 마련이었다.
둥둥둥!
사회를 맡은 장사성 총관 담대선생(膽大先生)이 소리쳤다.
“용봉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와아아!
군중들의 함성이 절정에 달했다.
담대선생이 두 손을 들어 군중들을 진정시켰다.
“그럼 먼저 성주님의 인사 말씀이 있겠습니다.”
짝짝짝.
박수 소리와 함께 등장한 유관성이 단상 앞으로 나왔다.
그는 매우 들뜬 표정이었다.
자신이 주관한 용봉대회만 벌써 세 번째였다.
지난 십오 년간 장사성을 다스려 오면서 그의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은 이 용봉대회가 유일했다.
사실 그는 어릴 때부터 강호를 동경했다.
그래서 무공을 배워 무림인이 되고자 했다. 하지만 대대로 높은 벼슬을 해온 가문의 반대가 심했다.
그래서 과거를 통해 조정에 출사했고 나름대로 고관이 되었다.
하지만 천성적으로 재물에 대한 탐심이 적어 뇌물을 바치고 뇌물을 받는데 비교적 무관심했다.
그래서 더 높은 고관들의 미움을 받아 이곳 장사성으로 오게 된 것이었다.
‘한때 나도 천하제일 무공을 연마해 무림을 질타하고 싶었지.’
유관성이 눈을 빛냈다.
하지만 이제 그의 나이 육십을 넘어 새로운 꿈을 꾸기에는 너무 늦은 감이 있었다.
그래서 백자안 같은 신진영웅이 더욱더 부러웠다.
“성주 유관성입니다. 이번 용봉대회에서도 용과 봉황처럼 뛰어난 인재들이 발굴되어 영광을 차지하길 바랍니다. 아울러 오늘 이 자리는 관과 무림이 서로 협력하는 의미도 있어 더욱 뜻깊게 생각합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성내 백성들의 편안함입니다. 그 목표를 위해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럼 모두 즐겨주십시오.”
와아아.
짝짝짝.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다음 차례로는 우문호의 축하 인사가 있었다.
그 내용은 의례적인 것으로 어제 흑천방 장사지부에서 있었던 일은 일체 말하지 않았다.
이미 무림맹 총단에 긴급보고가 갔기 때문이었다.
마교와 관련한 사건은 정보 담당인 현무당에서 우선 처리하기 때문에 곧 특별조사단이 내려올 것이었다.
그때까지는 보안이 필요했다.
백자안은 백소영과 설중화와 함께 비교적 평온하게 앉아 있었다.
사실 그로서는 이렇게 단상에 앉아 구경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었다.
그가 사양했지만 우문호, 특히 유관성의 지시로 귀빈으로 참여하게 된 것이었다.
옆자리에 앉은 설중화가 물었다.
“정말 괜찮은가요? 귀면탈 소녀에게 내공을 모두 빼앗겼잖아요? 정말 다른 내공이 있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내공으로 우 대협을 치료하는 것을 보지 않으셨습니까? 오히려 걱정되는 것은 설 대원입니다.”
“저는 괜찮아요. 그때 잠시 기혈이 막혔을 뿐이었어요. 하지만 귀면탈 소녀가 작정하고 살수를 펼쳤다면 죽음을 면치 못했을 거예요. 다행히 사자후를 듣고 그냥 떠났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역시 흡수대법이더군요. 정말 꼼짝할 수 없었습니다. 제게 다른 내공이 없었다면 저 역시 왕해 그자처럼 죽었을 겁니다.”
백자안이 안색을 굳혔다.
사실 운이 따라 목숨을 구한 셈이었다.
백소영이 물었다.
“오라버니! 한데 그 계집이 날 노린 것은 무엇 때문이야? 정말 내가 입고 있는 가죽옷 때문이었어?”
“그런 것 같다. 너도 듣지 않았느냐? 떠나기 전에 가죽을 언급하는 것을. 처음에는 네게 음심을 품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성별도 생각과 다르고 그렇게 말했으니 당연히 가죽옷을 발견하고 빼앗으려 한 것이지.”
“설 언니도 마찬가지로 생각해?”
“그래. 나 역시 마찬가지야.”
“흥! 나쁜 계집이네. 왜 남의 물건을 빼앗으려 해? 불패마왕과 관련이 깊은 것 같은데, 좋은 계집은 아닌 것 같군.”
“내가 보기에는 아직 철이 없어 보였어.”
“철없는 계집이 사람 머리통을 그렇게 터뜨려요?”
“호호. 듣고 보니 그러네. 정말 정체가 궁금하긴 해. 지금으로서는 불패마왕의 딸일 가능성이 높은데, 차차 알게 되겠지.”
설중화가 말을 한 순간.
북소리와 함께 첫 번째 시합이 시작되었다.
둥둥둥!
< [제6장] 흡수대법 2 > 끝
ⓒ 행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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