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적 반로환동-16화 (16/250)
  • < [제6장] 흡수대법 1 >

    [제6장] 흡수대법

    백자안과 천년색문 잔당 백여 명의 대결은 연무장에서 이루어졌다.

    사방에 횃불이 밝혀져 대낮처럼 밝은 가운데 백자안 일행과 흑천방을 비롯한 흑도방파 무사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대결에 앞서 설중화가 함께 싸우려 했으나 백자안이 정중히 거절했다.

    천년색마를 죽인 사람은 바로 자신이었기에 스스로 매듭을 지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대결이 임박하자 걱정되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당시 천년색마 등 천년색문 무사 백여 명을 제거할 수 있었던 것은 무명폭잠공 덕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새로 생성된 무명진기에 의지해야 했다.

    실전무공도 무명검법이 아니라 육합계열 무공을 사용해야 했다.

    모든 게 불리한 조건이었다.

    반면 천년색문 잔당의 무위는 상상 이상이었다.

    날카롭게 벼린 검처럼 한 명 한 명의 기도가 엄정했다.

    ‘어쩌면 천년색문 잔당이 아닐 수 있겠구나. 그때 느껴졌던 색공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살수의 기운이 충만하구나.’

    백자안이 의심을 하였지만 그렇다고 내색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중요한 것은 역시 내 실력이다. 이번에야말로 진정한 실력이 드러나겠구나.’

    백자안이 들고 있던 검을 고쳐 잡았다.

    육합검법을 펼칠 생각이었다.

    그때 천년색문 무사들이 일거에 들이닥쳤다.

    스스슷.

    절도 있고 빠르게 다가오는 검수들.

    쾌검식을 구사하는 듯 속도감 있는 검초들이 사방에서 뿌려졌다.

    모두 백자안의 사혈을 노리는 공격. 하지만 실제적인 위협이 되는 것은 맨 앞에서 검초를 뿌리는 여덟 명 정도였다.

    공간의 제약 때문이었다.

    “탓!”

    백자안이 기합과 함께 빙글 신형을 회전하며 검을 휘둘렀다.

    여덟 명의 목이 그대로 잘려 나가며 피분수가 솟구쳤다.

    순간적인 반응속도에서 백자안이 월등하게 빨랐기 때문이었다.

    허공으로 솟구친 백자안이 아래로 낙하하며 다시 검초를 뿌렸다.

    검기가 빗살처럼 뿌려졌다. 비명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크윽!”

    “으윽!”

    끝이 뾰족한 검기는 화살 모양이었다. 마치 폭우처럼 쏟아져 내린 검기 다발에 천년색문 무사들의 목에 구멍이 뚫린 것이다.

    “놈을 죽여라!”

    천년색문 무사들이 필사적으로 반격에 나섰다.

    암기 공격도 시작되었다. 검초 역시 현란했다. 보는 사람의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검광이 난무했다.

    백자안은 마치 양 떼 무리 속의 호랑이처럼 적진에 들어가 무차별적인 검초를 뿌렸다.

    허공으로 치솟는 수급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일 검에 대여섯 개의 목이 어김없이 날아갔다.

    목이 뚫려 죽는 자도 속출했다.

    간간히 천년색문 무사들의 검이 백자안의 몸을 건드렸으나, 호신강기 덕분에 큰 상처는 입지 않았다.

    다행히 천년색문 무사 중 절정고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 일류에 근접한 무공 수위였다.

    백자안으로서는 위험한 상황이면서도 절대적으로 우세할 수 있었다.

    그렇게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얼마 후 놀랍게도 천년색문 무사 중 생존자는 단 한 명뿐이었다.

    바로 우두머리 무사였다.

    그는 맨 뒤쪽에 서서 전황을 살피고 있었다. 거의 학살에 가까운 결과가 나타나자 매우 당황한 것 같았다.

    “이럴 수가······ 내상을 입었다는 말이 거짓이었던가.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쌍검을 들고 우두머리 무사가 천천히 다가왔다.

    백자안은 무심한 표정이었다.

    한바탕 싸움을 통해 자신감을 가진 그였다.

    마지막 상대를 처치하기 전에 한 가지 확인할 게 있었다.

    “네놈들은 천년색문 잔당이 아니다. 진짜 정체가 무엇이냐? 살수들이냐? 누구의 사주를 받았느냐?”

    “흥! 지금 그게 중요하냐? 동료들의 복수를 하겠다.”

    “배후를 밝히면 목숨을 살려주겠다. 어차피 너는 내 상대가 안 된다.”

    “으음······.”

    우두머리 무사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우리는 천년색문과는 관계없다. 우리는······ 크윽!”

    우두머리 무사가 말을 다 잇지 못하고 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그의 목에는 비수 한 자루가 박혀있었다.

    비수를 날린 사람은 다름 아닌 왕해였다.

    “놈이 헛소리할 것 같아 제가 죽였습니다. 백 무인께서는 괜찮으십니까?”

    “왕 지부장이 저들을 사주한 것이오?”

    백자안이 매서운 눈초리로 왕해를 주시했다.

    왕해가 펄쩍 뛰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놈이 다른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울 의도가 명백했습니다. 아, 물론 저를 지목할 수도 있었겠지만 결단코 저는 관계없는 일입니다.”

    “알겠소. 일단 돌아가겠소.”

    “네. 살펴 가십시오. 우 대협께서도 조리를 잘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일은 모두 저의 불찰입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흥!”

    우문호가 냉소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흑도방파 고수들이 일제히 덤비면 매우 위험했다.

    그가 보기에 백자안도 많이 지쳐 보였다.

    게다가 자신이 당한 독상은 어서 빨리 치료해야 했다.

    그렇게 백자안 일행이 떠나려 할 때.

    귀면탈을 쓴 괴한 한 명이 담장을 넘어 날아왔다.

    “앗!”

    사람들이 다급성을 터뜨리는 가운데 그가 우수를 뻗어 왕해를 가리켰다.

    십장 정도 떨어진 거리였다.

    한데 마치 자석에 이끌린 듯 왕해가 꼼짝도 못 하고 괴한의 손에 끌려가는 게 아닌가. 버텨봤지만 땅바닥에 고랑만 패일뿐이었다.

    “으윽!”

    신음과 함께 왕해의 머리가 괴한의 손에 들어갔다.

    순간 머리가 납작하게 쭈그러지며 그대로 터지고 말았다.

    퍽.

    어이없는 왕해의 최후에 모두 경악했다.

    흑천방 무사들이 괴한을 공격하려던 찰나.

    우문호가 소리쳤다.

    “흡수대법이다!”

    순간 흑천방 무사들이 일제히 동작을 멈추며 벌벌 떨었다.

    나머지 흑도방파 고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치 얼어붙은 사람처럼 꼼짝도 못 했다.

    누가 강제로 제압한 것도 아니었다.

    “불······ 불패마왕!”

    누군가 용기 내어 소리쳤다.

    다들 안색이 창백해졌다.

    불패마왕이 누구던가.

    마교의 교주이자 당대 천하제일인이었다.

    특히 그의 흡수대법은 가공할 정도였다.

    조금 전에는 왕해 한 사람의 기를 흡수해 죽였지만, 마음만 먹으면 수백 명도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털썩.

    누군가 무릎을 꿇었다.

    흑도방파 고수 중 한 명이었다.

    전통적으로 흑도는 사파의 범주에 들어간다.

    따라서 사파의 종주라 할 수 있는 사사천교(邪邪天敎)의 휘하에 드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사사천교는 백 년 이상 강호에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그 때문에 당금 흑도는 별다른 구심점 없이 각자의 세력 확충에 혈안이었다.

    다만 그들 역시 마교의 성세가 강할 때는 그 지배하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중립을 표방하는 흑도세력도 많았다. 하지만 늘 그래왔듯이 절대강자를 두려워하고 그들의 힘에 굴복해왔다.

    당금 무림의 절대강자는 마교주 불패마왕이었다.

    평생 그의 적수는 없었다.

    불패마왕이란 별호는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었다.

    털썩, 털썩.

    무릎을 꿇는 자들이 급속도로 늘어났다.

    무릎을 꿇게 되면 살 수 있다는 생각이 전염병처럼 번져갔다.

    괴한은 묵묵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백자안 일행을 제외하고 사백 명이 넘는 사람이 모두 무릎을 꿇었다.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무릎을 꿇는 것만으로 불안했던 것일까.

    눈물을 흘리며 읍소하는 사람까지 늘어났다.

    하지만 괴한은 여전히 아무 말도 없었다.

    한데 그가 아까부터 백소영을 쳐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그 점이 백자안을 불안하게 했다.

    사실 이전 같았으면 그 역시 불패마왕 소리만 들었어도 오금이 저렸을 것이다.

    하지만 무명심법을 연마한 이후로 부동심이란 것이 생겨나 있었다.

    부동심이란 곧 마음의 평정.

    언제 어디서든 담담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것이었다.

    또한 그것은 깨달음의 기초였다. 무형검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백자안은 백소영의 안전이 위협받자 용기를 내 그녀 앞을 가로막았다.

    백소영을 공격하려면 먼저 자신을 쓰러뜨려야 한다는 무언의 표시였다.

    다만 괴한이 잠재적인 적이라 할 수 있는 왕해를 죽였기에 선공을 가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이대로 떠나줬으면 하는 생각이 컸다.

    우문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평소 무공이라 해도 상대가 안 되는데 중독된 몸으로 불패마왕을 대적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무림맹 장로 출신으로 겁먹은 표정을 지을 수는 없었다.

    “귀하가 정말 불패마왕이오?”

    “······.”

    괴한이 여전히 묵묵부답했다.

    그러면서 계속 백소영 쪽을 바라봤다.

    아니 그녀를 가로막고 있는 백자안을 바라봤다.

    괴한이 우수를 든 것은 바로 그때였다.

    백자안의 신형이 무형의 경력에 의해 옆으로 튕겨 나갔다. 백소영이 왕해의 경우처럼 끌려갔다.

    “아악!”

    백소영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통증을 느꼈기 때문이 아니라 조금 전 죽은 왕해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우문호가 괴한을 향해 일장을 날렸다.

    쏴아아.

    중독되었지만 장사성 제일고수답게 매서운 장력이었다.

    하지만 괴한이 좌수를 흔들자 장세는 소리 없이 사라졌다. 우문호가 피를 뿌리며 뒤로 날아가 쓰러졌다.

    움직임이 없는 것을 봐서 아무래도 정신을 잃은 것 같았다.

    옆으로 튕겨 나간 백자안이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순간적으로 기혈이 막혀 꼼짝할 수 없었다.

    설중화가 들고 있던 검을 그대로 날렸다.

    휘이익.

    와룡대원 중에서도 하급에 속하는 그녀의 무공은 지금까지 외부에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와룡대에 들어와서도 진짜 실력을 보일 기회가 없었다.

    다만 입대 시험을 볼 때 평범한 무공을 보였다는 점만 알려졌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날린 검의 위력은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괴한이 백소영을 끌어당기는 것을 멈추고 신형을 비틀어 이를 피했다.

    여유가 있었지만, 간발의 차였다.

    “어풍비행검(馭風飛行劍)! 남해기인(南海奇人)과 무슨 관계냐?”

    괴한이 성별이 파악되지 않는 괴이한 음성으로 물었다.

    설중화가 대답하지 않고 다시 돌아온 자신의 검을 회수했다.

    그때 백자안이 막힌 기혈을 풀고 괴한에게 달려들었다.

    설중화 역시 합공을 가했다.

    괴한이 말없이 양손을 뻗어 두 사람을 날려 보냈다.

    “으윽!”

    “으윽!”

    역부족이었을까.

    설중화와 백자안이 십여 장이나 날려가 쓰러졌다.

    백소영이 다시 괴한에게 끌려간 것은 그 직후였다.

    “좋구나.”

    괴한이 다시 괴이한 음성을 내더니 겁에 질려 있는 백소영을 잡고 떠나려 했다.

    그때였다.

    백자안이 아까보다 배는 빠른 속도로 날아왔다.

    설중화가 충격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반면, 그는 곧바로 일어나 날아온 것이었다.

    괴한이 흠칫하더니 좌수를 뻗었다.

    백자안이 들고 있던 검이 그대로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백자안이 굴하지 않고 주먹을 내뻗었다.

    바로 육합권이었다.

    무명진기에 바탕을 둔 것이라 그 위력이 남달랐다.

    괴한이 좌수를 펴서 백자안의 주먹을 잡았다.

    백자안이 짜릿한 느낌을 받으며 몸을 떨었다.

    몸속의 기운이 빠르게 빠져나갔다.

    “흡수대법!”

    누군가 소리쳤다.

    그랬다.

    괴한이 다시 흡수대법을 펼친 것이었다.

    가장 먼저 빠져나간 것은 운기토납지기였다.

    흡수대법의 흡수 속도는 가공할 정도라 순식간이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몸속에서 충돌하고 있던 기존 내공과 독 기운, 그리고 새롭게 생성한 무명진기는 빠져나가지 않았다.

    괴한이 흠칫하더니 우장을 들어 백자안의 어깨를 후려쳤다.

    백자안이 신음과 함께 튕겨 나갔다.

    하지만 그 순간 손을 뻗어 백소영을 데리고 갔다.

    괴한이 백소영을 다시 끌어당기려는 순간.

    멀리서 우우우! 하는 사자후가 들렸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혈이 흔들리게 하는 가공할 내공이었다.

    “흥! 그까짓 가죽!”

    괴한의 입에서 갑자기 어린 소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불패마왕인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 그것도 소녀 같았다.

    귀면탈 소녀가 신형을 솟구쳐 떠난 것은 그 직후였다.

    아무도 그녀를 쫓지 않았다.

    백자안이 백소영에게 물었다.

    “소영아. 괜찮으냐?”

    “응. 난 괜찮아. 오라버니는?”

    “심하지 않다.”

    백자안이 씁쓸해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십년 간 쌓은 운기토납지기를 모두 빼앗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무명진기가 남아 있어 큰 타격이라 할 수는 없었다.

    “정말이야? 그럼 우 대협과 설 언니를 봐줘.”

    “알았다.”

    백자안이 우문호부터 치료하기 시작했다.

    설중화가 스스로 천천히 몸을 일으켜 회복운공을 하는 것을 봤기 때문이었다.

    우문호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았다.

    백자안은 무명부록에 있던 해독술을 펼쳐 독을 배출해주었다.

    이후 깨어난 우문호는 설중화처럼 스스로 조식을 취해 상처를 치유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백자안 일행은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장원을 떠나 무림맹 장사지부로 돌아올 수 있었다.

    깊은 밤이었다.

    < [제6장] 흡수대법 1 > 끝

    ⓒ 행호사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