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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적 반로환동-10화 (1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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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장] 흑천사걸

    백자안과 설중화가 산책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였다.

    집에 낯선 사내들이 모여 있었다. 백청과 유씨 부인, 백소영, 백자룡 네 사람이 그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이 보였다.

    사내들은 하나같이 건장한 체구였다. 그 수는 네 명.

    그중 한 명이 백자안을 보고 소리쳤다.

    “귀하가 이집 큰아들인 무림맹 무사 백자안이오? 어서 빌린 돈을 갚으시오. 안 그러면 오늘 집문서를 넘겨야겠소.”

    대한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였다.

    대한들 모두 검을 차고 있었다. 돈을 받으러 온 것이 주목적인 듯 싸울 의사는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입니까?”

    백자안이 백청과 유씨 부인을 바라봤다.

    정확한 사실은 그들에게서 들어야 했다.

    유씨 부인이 안색을 굳혔다.

    “자안아. 모두 내 책임이다. 내가 네 아버지 몰래 돈을 빌렸단다. 이 사람들은 흑천방(黑天幇)에서 왔다.”

    “빚은 없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네가 무관에 다닐 때 빌렸던 돈이다. 원금은 다 갚았는데 이자가 터무니없이 불어나 갚을 엄두를 못 내고 있단다.”

    “갚아야 할 돈이 얼마요?”

    백자안이 흑천방 사내들에게 물었다.

    당장 수중에 돈 한 푼 없는 그였다. 그래도 맹에 복귀하면 포상금으로 은자 천 냥을 받을 가능성이 있었다.

    순간적이지만 포상금을 떠올리고 액수부터 물어본 것이었다.

    “하하하! 역시 마적 떼를 일거에 섬멸한 영웅답구려. 하지만 제아무리 무림맹 무사라도 빌린 돈은 갚아야 하오. 우리 흑천방의 위명은 무림맹에 못지않으니까, 혹시라도 떼먹으려 하면 가만있지 않을 것이오.”

    우두머리 사내가 엄포부터 놓았다.

    사실 그의 말이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흑천방은 흑도 단체 중 대표적 한 곳으로, 주로 고리대금업에 치중하고 있었다.

    돈을 빌리고 싶은 사람은 천하에 널려 있었다. 그 때문인지 흑천방은 천하 각지에 지부를 둘 정도로 성업 중이었다.

    이런 산골 마을까지 손을 뻗고 있는 게 그 증거였다.

    물론 선인촌에 그들 지부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가장 가까운 지부는 호남성 성도인 장사(長沙)에 있었다.

    참고로 흑천방의 총단은 낙양에 있었다.

    겉으로는 합법적인 영업을 내세우고 있어 무림맹도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들이 받는 이자가 터무니없이 많다는 점이었다.

    이는 돈을 빌리는 사람의 다급함을 이용한 것으로, 일단 빌리고 나면 원금보다 이자가 몇 배나 더 많은 경우가 허다했다.

    유씨 부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돈을 빌릴 당시는 이삼 년 전 백자안이 막 무림맹 입맹 시험을 준비할 때였다.

    그때 영웅무관에서 특별 수업이란 것을 해 개별 지도를 해줬다. 그 수련비가 매우 비쌌다.

    백자안은 이를 알고 일찌감치 포기했었다.

    하지만 유씨 부인이 어떻게 알고 그 돈을 마련해주었다.

    물론 그 외에도 돈 들어갈 곳이 많긴 했다.

    대표적인 것이 백청이 중병에 걸렸을 때였다.

    의원 말로는 보약을 먹어야 완쾌할 수 있다고 해 또 적지 않은 돈을 빌리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모두 빌린 돈이 은자 백 냥이었다.

    이후 백자안이 무림맹 무사가 된 후 받은 월봉을 모아 보내준 돈으로 원금을 겨우 갚긴 했다. 하지만 이자가 무려 원금의 두 배인 은자 이백 냥으로 불어나 있었다.

    유씨 부인은 가족들이 걱정할까 봐 그 사실을 숨겼다.

    백자안이 보내주는 돈을 가지고 조금씩 갚으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계약서를 꼼꼼히 살피지 않은 그녀의 잘못도 있었다.

    하지만 계약서를 혼동하기 쉽게 교묘하게 적어놓은 흑천방의 계략에 말려들었다는 게 맞았다.

    “모두 은자 이백 냥이오. 만기가 돌아온 지 제법 되었으니, 오늘 갚지 못하면 집문서를 넘기시오. 우리도 마냥 기다릴 수 없으니 어쩌겠소? 어떻게 하겠소? 계약서를 보여드릴까? 우리는 합법적으로 돈을 빌려주고 원금과 이자를 받고 있으니, 돈을 갚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을 것이오.”

    “지금은 돈이 없소. 포상금을 받게 되면 갚아줄 테니 그리 알고 돌아가시오.”

    백자안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자가 터무니없는 점을 항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일이 더 복잡해질 것은 자명했다.

    포상금으로 받을 은자 천 냥이 없다면 어떻게든 항의를 하겠지만, 그냥 달라는 대로 주고 끝내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우두머리 사내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럴 수 없소. 우리는 정당한 업무를 집행하는 것이오. 일단 집문서를 내놓으시오. 집문서를 저당 잡혀 우리가 받아야 할 돈을 일부라도 받아 갈 테니, 나중에 포상금을 받게 되면 그때 돈을 갚고 집문서를 찾아가면 될 게 아니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이 자리에서 돈을 갚는 것이지만. 후후후!”

    우두머리 대한이 득의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비록 내상을 입었다고는 하나 마적 백 명을 일거에 죽인 사람이라고 해서 속으로 여간 긴장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기회가 왔을 때 돈을 받아내야 하는 게 그들의 임무였다.

    흑천방에는 이렇게 각 마을을 돌며 전문적으로 돈을 받아내는 사람만 수천 명에 달했다.

    특히 이들은 흑천방 내에서도 흑천사걸(黑天四傑)로 불릴 정도로 손꼽히는 자들이었다.

    일신의 무공도 매우 높은 편이었다.

    재산을 강탈한 경우도 무척 많았다.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버리고 재산을 모두 가져가 착복하는 게 그 전형적인 수법이었다.

    백청이 말했다.

    “사실 이 집은 우리 집이 아니오. 수년 전 돈이 필요해 저당을 잡혔었는데, 결국 갚지 못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소. 지금은 다달이 집세를 내고 살고 있는 중이오.”

    “지금 뭐라고 했소?”

    우두머리 사내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백청의 말은 사실이었다.

    어느새 몰려든 마을 사람 중 한 명이 증언해주었다.

    그는 마을 사람 중 가장 부유한 사람이었는데, 백청의 집을 산 장본인이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돈을 받을 때까지 사람을 데려갈 수밖에 없소. 저기 저 소저가 좋겠군.”

    우두머리 사내가 백소영을 가리켰다.

    백자안과 설중화 두 사람이 있었지만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백자안은 내상이 정말 깊은 것 같았고, 설중화는 와룡대원이나 여자였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설중화를 제외한 와룡대원들이 어젯밤 마을을 떠났다는 사실이었다.

    백소영이 소리쳤다.

    “가만 보자 하니까 이놈들이 모두 날강도 같은 놈들이네. 날 잡아가 기루에 팔려는 것이냐?”

    “후후후! 그럴 리가 있겠소? 우리는 계약서대로 집행할 뿐이오. 집문서도 없는데 소저를 데려가야 오라비께서 돈을 마련해오지 않겠소? 계약서를 보여드릴까?”

    우두머리 사내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아까부터 백소영의 미모가 눈에 들어온 것은 사실이었다.

    백자안이 애써 자제하며 말했다.

    “이대로 그냥 돌아가시오. 아까도 말했지만, 은자 이백 냥은 포상금을 받게 되면 바로 갚겠소.”

    “그러지 못하겠다면? 무림맹 무사라고 해서 우리가 봐줄지 알았나? 폐인이 되었다고 들었는데, 과연 우리를 막을 수 있을까? 듣자 하니 마적 떼를 소탕한 것도 네놈 실력이 아니라면서? 내 말이 아니꼬우면 정정당당히 지금 겨뤄볼까? 물론 그 결과에 대해서는 서로 책임을 묻지 않는 조건으로 말이야.”

    우두머리 사내가 내공을 끌어올렸다.

    순간, 그의 기도가 강해지며 태양혈이 더욱 솟았다.

    자신의 무공을 은연중 드러낸 것이었다.

    백자안으로서는 난감한 상황이 또 초래된 셈이었다.

    하지만 우두머리 사내의 눈에서 백소영에 대한 탐심을 느낀 그였다.

    이대로 두면 자신이 떠난 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좋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승복하도록 하지. 설사 내가 죽더라도 맹에서 추궁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반대로 네놈이 죽어도 마찬가지여야 할 것이다. 만약 네놈이 지면 그냥 돌아가서 내가 돈을 갚을 때까지 기다려라. 기한은 일 년이고 그동안 이자가 더 붙지는 않는다. 어떻게 하겠느냐?”

    “후후후! 네가 겁먹을 줄 아느냐? 무림의 관례에 따라 약속하지. 다만 내가 이기면 아까 말한 대로 네 여동생을 데리고 가겠다. 물론 손끝 하나 대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우리 흑천방은 불법적인 일은 하지 않으니까. 어떻게 하겠느냐?”

    “으음······.”

    백자안이 안색을 굳히며 백소영을 봤다.

    백소영이 소리쳤다.

    “좋아. 오라버니를 믿을게. 저놈 혼내줘. 날 보는 눈빛이 아주 더러워.”

    “그래.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설 대원께서 증인이 되어 주시겠습니까?”

    “네. 하지만 그 몸으로 괜찮겠어요? 저자는 일류고수예요.”

    설중화가 안색을 굳혔다.

    그가 보기에 우두머리 사내의 무공은 와룡대원 중에서도 상급 수준이었다.

    객관적으로 볼 때 지금 백자안의 몸 상태로 적수가 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백자안이 대결을 수락한 상태였다.

    더 이상 만류하는 것은 어려웠다.

    백자안 역시 상대가 자신보다 무공이 강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가족들에 대한 무한한 책임감이 있었다.

    따지고 보면 빚을 지게 된 것도 집을 팔게 된 것도 대부분 자신 때문이 아닌가.

    그는 빚이 없는 줄 알고 있었다. 집이 다른 사람 소유가 되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걱정할까 봐 백청과 유씨 부인이 말해주지 않은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무림맹 무사로서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다.

    아무리 일류고수라 하나 상대는 흑도의 인물.

    설사 상대를 죽이더라도 큰 문제는 없었다.

    흑천방에서 무림맹 눈치를 매우 보기 때문이었다. 정정당당한 대결만 벌인다면 그 결과에 대해 따질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육합계열 무공을 사용할 수밖에 없겠군.’

    백자안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여기는 좁으니 공터로 자리를 옮기자.”

    “좋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무림맹 무사가 별거냐? 그것도 구급무사 주제에 가소롭기 그지없구나.”

    우두머리 사내 역시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흑천사걸 중 둘째인 대한이 그에게 넌지시 전음을 날렸다.

    「형님. 놈이 내상을 입은 후에도 와룡대원 한 명을 중상 입혔다고 하던데 괜찮겠습니까?」

    「나도 알고 있다. 문제없다. 분근착골수를 사용하지만 않으면 된다.」

    「그래도 무림맹 소속입니다. 아무리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약속해도 후환이 있을 겁니다. 방주께서 무림맹과는 최대한 분쟁을 만들지 말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괜찮다. 놈을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해야 미인을 얻을 수 있지 않겠느냐? 일단 놈을 쓰러뜨린 후 계집을 데려간다. 이후 때를 봐서 놈의 가족을 먼저 죽인다.」

    「복안이 있으셨군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저 계집의 몸값이 상당할 것 같습니다. 촌장 가족을 죽이는 것은 이전처럼 저희가 맡겠습니다. 마적 잔당이 한 짓으로 위장하면 의심을 사지 않을 겁니다. 후후후! 이렇게 또 한 건 올리는군요. 백자안 저놈은 나중에 어떻게 할 겁니까?」

    「포상금을 받아 은자 이백 냥을 갚으면 향후 내가 기회를 봐서 암살하겠다. 그대로 두면 놈이 분명 가족을 죽인 원수를 찾으려 할 테니까. 저 계집은 팔지 않는다. 첩으로 삼을 것이다. 물론 나중에 싫증이 나면 그때는 팔아야겠지. 서역 노예 상인에게 팔면 최소한 은자 삼천 냥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우두머리 사내, 즉 흑천일(黑天一)이 전음을 날린 후 공터로 걸음을 옮겼다.

    백자안 역시 따라갔다.

    그의 가족을 비롯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몰려간 것은 물론이었다.

    설중화 역시 불안한 표정으로 따라갔다.

    ‘백 무인이 상대의 무공을 너무 과소평가하는구나. 흑도 중에 고수가 얼마나 많은데······ 기회를 봐서 내가 개입해야겠다.’

    < [제4장] 흑천사걸 1 > 끝

    ⓒ 행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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