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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적 반로환동-7화 (7/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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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장] 설중화

    백청의 집 마당에 모여 있는 와룡대원의 수는 대략 삼십 명 정도.

    남녀 비율은 대략 이대 일 정도로, 여자 와룡대원의 수가 열 명이나 되었다.

    무림 후기지수 중 정예답게 다들 영준하고 아름다웠다.

    다만 어디 가도 예외가 있는 법.

    외모가 빼어나지 못한 사람도 몇 명 있긴 했다.

    그중 나쁜 쪽으로 이목을 집중시키는 사람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뚱뚱한 여자 와룡대원이었다.

    다른 여자 대원은 하나같이 날씬했다. 하지만 그 소녀만큼은 뚱뚱했다.

    그녀는 그것이 전혀 부끄럽지 않은 듯 당당한 표정이었다.

    설중화(泄中花).

    그녀의 이름이었다.

    석 달 전 와룡대에 신입무사로 들어온 그녀는 입대 당시 화제의 대상이었다.

    무공은 그다지 특출하지 않았으나 역시 뚱뚱한 체구 때문이었다.

    와룡대 여자 대원 역사상 가장 뚱뚱한 여자라는 말까지 들을 정도였다.

    하지만 신입대원답게 부지런했다. 붙임성도 좋아 빠르게 와룡대 생활에 적응했다.

    하지만 신체적 특성 때문에 그녀를 놀리는 대원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를 추천한 사람이 무림맹 총군사 만박서생(萬博書生)이란 사실이 알려진 후 그런 자는 거의 자취를 감췄다.

    설중화는 얼굴 역시 평범했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매력 있는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눈이었다.

    지극히 맑고 깨끗한 눈빛은 그녀의 마음이 매우 순수하다고 느끼게 하였다.

    그런 그녀의 눈길이 지금 한 사내에게 가 있었다.

    바로 막 방에서 나오는 백자안이었다.

    ‘저 사람이 정말 천년색마를 비롯해 색마 백여 명을 일검에 죽였단 말인가.’

    그녀에게 백자안은 연구 대상인 것 같았다.

    하지만 흥미를 느꼈다고 그녀가 직접 조사할 그런 위치는 아니었다.

    신입대원으로서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나가면 될 뿐이었다.

    백자안에 대해 질문을 던진 사람은 바로 이번 수색작전을 지휘하고 있는 남궁무기(南宮無紀)란 자였다.

    그는 남궁세가주의 차남으로 와룡대 십조 조장이었다.

    총인원이 삼백여 명인 와룡대는 열 개 조로 구성되어 있고, 각 조에는 조장이 있었다.

    조장 위에는 부대주와 대주가 있는데, 현 대주 자리는 공석이었다.

    조만간 신임대주가 부임할 예정이었다. 누가 올 것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귀하가 백자안이오?”

    남궁무기가 다소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수색으로 발견한 것이 없었기에 상부에 올릴 보고서는 백자안 중심으로 작성해야 했다.

    하지만 그 역시 백자안이 마적 떼를 단신으로 처치했다는 데 강한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백자안이 포권한 후 고개를 조금 숙였다.

    “순찰당 소속 구급무사 백자안입니다. 와룡대 대원들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나는 와룡대 십조 조장 남궁무기요. 무사히 깨어나서 다행이오. 우리가 궁금한 것은 정말 백 무인이 천년색마를 죽였냐는 것이오.”

    “운이 좋았습니다.”

    백자안이 담담히 말했다.

    부모님을 비롯해 가족들이 모두 보는 자리였다.

    특히 와룡대원들과 함께 돌아온 백자룡은 형이 깨어난 것을 보고 무척 기뻐하면서도 화가 난 표정이었다.

    그것은 바로 와룡대원들의 백자안에 대한 싸늘한 태도 때문이었다.

    어린 그의 눈에도 무시하고 시기하는 것이 느껴졌다.

    하기야 와룡대원들 입장에서는 백자안이 달가울 리가 없었다.

    지난 석 달 동안 천년색마 일당을 추적해온 그들이었다.

    일개 무림맹 하급무사가 그들을 소탕했다고 하니 허탈한 심정이었다.

    “상부에 보고해야 하니 수고스럽지만 백 무인이 무공을 한 수 보여줬으면 하오. 우리를 이해시킬 무공을 보여주면 더는 귀찮게 하지 않겠소. 오히려 백 무인의 공적을 상부에 보고해 포상금을 포함해 상을 받도록 해주겠소. 지금 막 깨어나서 무리가 따르겠지만, 우리 역시 어서 보고해야 하기에 어쩔 수가 없소이다. 양해를 부탁하오.”

    “죄송합니다. 지금 몸 상태가 좋지 못해 무공 시전이 어려울 듯합니다.”

    백자안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부모님의 기대가 아니었다면 자신이 한 일이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미 기호지세라 인정하는 쪽으로 마음을 굳힌 상황이었다.

    그때 상대적으로 인상이 험악한 와룡대원 한 명이 말했다.

    “조장님. 맥을 짚어보면 간단히 알 일입니다. 내상을 입었다고 해서 내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천년색마를 비롯해 색마들을 일검에 죽이려면 그 내공이 엄청나야 할 겁니다. 진맥을 거부하면 뭔가 구린 구석이 있다는 것이지요.”

    “흥! 왜 우리 오라버니를 몰아세우는 것이죠? 자안 오라버니가 여러분의 공을 빼앗았다고 지금 이러시는 건가요?”

    백소영의 날 선 말이었다.

    그녀는 눈치 백 단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상황 판단이 빠른 편이었다.

    물론 덤벙대는 구석도 있어 간혹 어이없이 상대에게 속아 넘어가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 포상금의 지급 여부에 따라 자신의 인생이 바뀔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녀가 백자안을 적극적으로 변호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소저는 본 맹의 일원이 아니니 빠져주었으면 하오.”

    “흥! 귀하는 누군데 자꾸 이래라저래라 하죠? 저기 계신 조장님께 맡기세요.”

    “나는 부조장 황보충(皇甫忠)이라 하오.”

    “그쪽 이름을 듣고 싶은 게 아니에요. 조장님께 맡기고 당신은 더는 간섭 마세요.”

    “말이 안 통하는 소저구려. 미인이라 내가 참겠소.”

    “흥! 주제에 안목은 있어서······.”

    백소영이 표정을 조금 누그러뜨렸다.

    그녀도 알고 있는 것이다.

    와룡대원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대부분 명문정파 제자들로 평소라면 백자안이나 백소영 같은 사람과 어울리지도 않을 것이었다.

    “오라버니! 왜 말이 없어? 정말 지금은 무공을 보여줄 수 없는 거야?”

    “그래. 너무 무리해 사흘간이나 정신을 잃고 있었는데 어떻게 힘이 남아 있겠니? 조장님께서도 제 맥을 짚어보고 싶어 하십니까?”

    “으음, 그래도 되겠소?”

    남궁무기가 안색을 상기시켰다.

    아무리 상급자라 해도 상대의 맥문을 함부로 짚어보는 것은 문제가 있었다.

    무인의 자존심을 훼손할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었다.

    “네. 짚어보십시오. 다만 저의 내공은 외부에서 감지가 안 되니 별 소용이 없을 겁니다.”

    백자안이 오른손을 내밀었다.

    사실 그의 말대로 무명심법의 내공은 매우 특수해서 외부 감지가 전혀 되지 않았다.

    이는 독 기운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명심법과 충돌을 하고 있어서 그 기운 역시 같은 성질로 변해 있었다.

    백자안은 그러한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서슴없이 맥을 내주려 한 것이다.

    “그럼 실례하겠소.”

    남궁무기가 손을 내밀어 백자안의 맥을 짚었다.

    진맥으로 내공을 알아보는 것은 하나의 의술이었다. 무림맹 무사라면 기본적으로 배우는 것이기도 했다.

    다만 그 정확성은 상대적이었다.

    일반적으로 상대보다 무공이 높아야 더욱더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어떻습니까?”

    황보충이 물었다.

    남궁무기가 안색을 굳혔다.

    “내공이 감지되긴 했소. 하지만 진성 내공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고 운기토납지기 정도 되는 것 같소. 결론적으로 구급무사 중에서도 최하급 수준의 내공이라 할 수 있을 것이오.”

    “그럼 저자가 거짓말을 한 것이군요. 내공이 외부 감지가 안 된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고 우리를 속이려 하다니. 어서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겠느냐? 아무리 포상금에 눈이 멀어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사기를 치려고 하다니. 기만죄를 물어 너를 금마옥에 가두지 못할 줄 아느냐?”

    황보충이 눈을 부라리며 백자안을 노려봤다.

    남궁무기 역시 그 말에 동조하듯 그를 말리지 않았다.

    백자안으로서는 더욱 난감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운기토납 기운 때문에 골치 아파졌구나. 하기야 외부 감지가 되지 않으면 전부 안 되어야 말이 되긴 하지. 이를 어쩐단 말인가.’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다.

    이제 와서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고 말하자니 그것도 문제였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오히려 더 악화하고 있었다.

    혹시나 백자안이 절대고수가 아닌가 해서 신중하던 와룡대원들이 대놓고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조장님. 저자를 일단 제압한 후 신문을 하는 게 좋겠습니다.”

    “천년색문 놈들을 제거한 사람은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격공지력으로 저자의 검을 박살내 놈들을 공격한 것이지요.”

    여러 의견이 제시되었다.

    와룡대의 전통과 성격상 조장이라고 해도 독단적인 결정은 어려웠다.

    남궁무기가 말했다.

    “그럼 일단 저자의 혈도를 제압해 신문하자는 것이 여러 대원의 공통된 의견이오? 혹시 반대하는 분이 있소?”

    일시 정적이 흘렀다.

    와룡대원 중에 반대하는 사람이 안 나오면 전격적으로 백자안을 체포할 것 같았다.

    보다 못한 백청이 한마디 했다.

    “너무한 것이 아닙니까? 자안이가 없었으면 마을 사람들은 모두 죽었을 겁니다. 상은 주지 못할망정 이런 식으로 대하다니.”

    “옳소!”

    “옳소!”

    어느새 몰려온 마을 사람들이 백청의 말을 지지했다.

    그때였다.

    백자안으로서는 구세주 같은 말이 들렸다.

    “저는 반대예요.”

    “설 대원!”

    남궁무기가 의외란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신입대원 설중화는 상급자의 명에 잘 따르는 대표적 대원이었다.

    “무슨 근거로 반대하는 것이오?”

    “세 가지 이유가 있어요. 첫째는 백 무인 저분이 색마들을 처단한 것을 본 증인들이 너무 많아요. 마을 사람들 모두 이구동성으로 증언하는 것을 모두 들었지요.”

    “그 부분은 아까도 언급되었지만 숨은 고수가 있어 격공지력을 날렸다면 가능한 일이오. 상식적으로 얼마 전까지 구급무사였던 자가 갑자기 절대고수가 된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오?”

    “좋아요. 그건 그렇다고 치지요. 둘째는 백 무인의 말대로 외부 감지가 안 되는 내공은 얼마든지 존재해요. 예를 들어 맹주님의 용상반야공(龍象般若功) 역시 외부 감지가 거의 불가능하지요. 백 무인이 그런 내공심법을 남몰래 연마하고 있었다면 그까짓 운기토납 기운이 남아 있었다고 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아요. 상승 내공과 운기토납지기는 다른 부류의 기운이니까.”

    “그것은 억지요. 백 무인이 다른 심법을 연마하고 있다는 증거가 어디 있소? 마지막 세 번째는 무엇이오?”

    “그것은 백 무인이 설사 사칭을 하고 있다고 해도 이를 판단하는 것은 우리 소관이 아니라는 거예요. 논란이 된 사항은 군사부에서 결정을 내려줄 거예요.”

    “흥! 설중화! 총군사님의 추천을 받고 들어왔다고 하더니 결국 군사부 편을 드는 것이냐? 이런 일 하나 우리가 판단하지 못하고 어찌 보고서를 올릴 수 있겠느냐? 뚱뚱해서 판단이 바로 서지 않는 것이냐? 여태까지 고분고분하더니 이게 너의 본색이었군.”

    황보충이 멸시의 눈빛으로 설중화를 바라봤다.

    설중화는 태연했다.

    “황보 대원께서는 말을 가려서 하세요. 사과하지 않으면 총군사께 말씀드려 조처를 하도록 하겠어요.”

    “으음······.”

    황보충이 침음을 발하며 안색을 굳혔다. 여자 대원의 신체적 특성을 비하한 발언이 총군사의 귀에 들어가서 좋을 것은 전혀 없었다.

    “내가 말이 조금 심했소. 사과하겠소.”

    설중화가 생긋 웃었다.

    “좋아요. 자신의 잘못을 알고 인정하는 사람이 발전하는 법이지요. 조장님. 어떻게 하실 건가요? 정말 수백 명의 목숨을 구한 영웅을 모두 보는 앞에서 제압하실 건가요? 잘 생각하세요. 이번 일은 이제 급속도로 소문이 퍼질 거예요. 그동안 천년색마에게 당한 부녀자들이 얼마나 많았나요? 아무런 근거 없이 색마를 제거한 영웅을 모함한다면 조장님을 지탄하는 소리가 커질 거예요. 그것을 감당할 수 있겠어요?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우리 와룡대 단독으로 백 무인을 제압하고 조사하는 것은 오직 대주님만이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대주 자리는 지금 공석이에요. 설사 신임대주님이 부임하더라도 저와 같이 판단하시리라 확신해요.”

    “혹시 신임대주로 어느 분이 오실지 알고 있는 것이오?”

    “알고 있어요. 총군사께서 비밀로 하라고 하셔서 입을 다물고 있지만, 조만간 알게 될 거예요.”

    “으음, 총군사께서 보안 유지를 명하셨다면 더는 묻지 않겠소. 좋소. 설 대원의 의견을 받아들여 백 무인을 체포하지는 않겠소. 다만 조속히 맹에 복귀시켜 군사부의 조사를 받도록 하겠소.”

    < [제3장] 설중화 1 > 끝

    ⓒ 행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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