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적 반로환동-5화 (5/250)
  • < [제2장] 마적 떼를 소탕하다 2 >

    곽휘가 검을 수직으로 세웠다.

    상대는 자신이 상대하기 힘든 절정고수.

    하지만 그 역시 백자안처럼 잠력을 폭발시키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평소라면 이길 수 없지만 죽을 각오로 덤비면 가능성이 없지 않았다.

    혹여 천년색마가 부상을 우려해 몸을 사리면 곽휘가 승리할 수도 있는 것이다.

    천년색마는 시종일관 여유가 있었다.

    ‘이전의 나였다면 약간 조심할 필요가 있었겠지만, 곽휘 저놈이 운이 없군.’

    천년색마가 두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독문장법인 천년색장(千年色掌)을 펼치기 위해서였다.

    백년색마가 급히 말했다.

    “문주님! 저까짓 놈 하나 상대하는데 문주님께서 직접 손을 쓰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사용하시는 격이지요. 대공 성취를 앞두고 자그마한 상처라도 입으신다면 손해가 막심할 겁니다. 놈이 사술을 부릴 수도 있으니, 수하 한 명으로 하여금 시험해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으음, 자네 생각도 일리가 있군. 한번 시험해보도록 해라.”

    천년색마가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났다.

    그때였다.

    백년색마의 눈짓을 받은 천년색문의 무사 한 명이 철퇴를 들고 곽휘에게 달려들었다.

    쐐애액.

    내공이 실린 철퇴가 곽휘의 머리를 향해 내리쳐졌다. 곽휘가 그 자리에 선 채로 뒤로 물러났다.

    스스슷.

    보기에는 단순해 보였지만 마을 사람들 눈에는 순간 이동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빨랐다.

    철퇴가 허공을 가르자, 곽휘가 앞으로 나오며 검을 비스듬히 휘둘렀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쾌검식.

    스팟!

    피분수가 치솟으며 천년색문 무사의 목이 사선으로 잘렸다.

    천년색문 무사 두 명이 반사적으로 나가 검을 휘둘렀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곽휘가 수평으로 검을 휘두르자, 두 사람 역시 몸과 분리된 목이 한 자 정도 떠오른 후 떨어졌다.

    백년색마의 안색이 굳어졌다.

    곽휘의 무공이 상상 이상이었다.

    자신 역시 그를 압도할 자신이 없었다.

    천년색마가 소리치며 앞으로 나왔다.

    “모두 물러나라.”

    천년색문 무사들이 일제히 물러났다. 천년색마가 두 손을 앞으로 내밀며 일장을 날렸다.

    바로 천년색장이었다.

    곽휘가 잠력을 발휘해 무공이 급상승한 것을 알고 곧바로 전력을 기울인 것이었다.

    쏴아아.

    거센 경력이 밀려왔다. 곽휘가 피하지 않고 오히려 앞을 파고들었다.

    검기로 방패를 만들어 몸을 보호한 후  필살의 검초를 뿌리려 한 것이었다.

    하지만 상대의 장세가 너무 강했다.

    가죽 터지는 소리와 함께 검기 방패가 찢어졌다. 그 사이로 장력이 대하처럼 밀려와 복부를 강타했다. 곽휘의 신형이 앞뒤로 출렁인 후 실 끊어진 연처럼 뒤로 날아갔다.

    “관장님!”

    백자룡이 놀라 소리치는 가운데 그의 신형이 바닥에 추락했다.

    마을 사람들이 급히 달려가 부축했지만, 이미 기식이 엄엄한 상태였다.

    칠공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어 곧 죽을 것 같았다.

    “아!”

    “곽 선생님!”

    마을 사람들의 탄식이 터져 나왔다.

    그들의 표정에 깊은 절망감이 감돌았다.

    “후후후! 생각보다 대단한 무공을 지니고 있었다. 명성이 헛되지는 않았군.”

    천년색마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백년색마가 기뻐했다.

    “그래도 문주님께는 상대도 안 되는 놈입니다. 낭인백대고수에 겨우 들어가는 놈이 어찌 무림백대고수에 들어가시는 문주님께 비하겠습니까?”

    “그런가? 하하하. 하지만 방심해서는 안 된다. 놈의 내공이 좀 더 강했다면 검초를 실제 뿌렸을 것이다. 그랬다면 나 또한 부상을 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네. 이제 어떻게 할까요? 남자들부터 모두 죽일까요?”

    “일단 모두 혈도를 제압하라. 아까부터 이상한 기운이 감지되고 있다. 숨은 고수가 있을 수 있다. 그놈부터 찾아내고 작업을 시행한다.”

    “존명!”

    백년색마가 수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천년색문 무사들이 마을 사람들 모두의 혈도를 제압하는 데는 일각도 걸리지 않았다.

    저항이 있었지만 실력 차가 너무 커서 오히려 부상자가 한 명도 없었다.

    백자안 역시 혈도를 제압당했다. 무명폭잠공을 완성하면 해혈을 할 수 있어 반항하지 않았다.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혈도까지 제압된 마당이라 이제는 완전한 무명폭잠공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 대신 일단 성공하면 몸속의 모든 내공을 일각 정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었다.

    다만 그 전에 가족을 포함해 마을 사람들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기를 빌 뿐이었다.

    하지만 세상의 일은 늘 뜻대로 풀리지 않는 것인가.

    천년색마의 말 한마디에 백자안의 몸이 떨렸다.

    “곽휘 저놈은 곧 죽을 것이다. 일단 촌장의 목부터 벤다. 감히 우리와 맞서려 하다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백년색마가 수하를 시켜 백청을 끌고 왔다.

    백청은 당당한 모습을 잃지 않았다.

    “어서 죽여라. 내가 죽으면 내 아들이 반드시 복수해줄 것이다.”

    “아들? 아들의 무공이 강하냐?”

    “내 아들은 무림맹 무사다. 소식을 듣게 되면 반드시 이 아비를 위해 복수할 것이다.”

    “하하하. 우습구나. 그래 무림맹에서 어떤 계급이냐? 설마 장로라도 되느냐?”

    “우리 큰아들 자안이는 작년에 무림맹에 들어갔다. 설사 실력이 모자란다고 해도 반드시 훗날 복수할 것이다.”

    “후후후! 난 또 뭐라고. 장로 정도가 와야 내 상대가 될 것이다. 일개 무사 따위는 백 명이 와도 나를 이길 수 없다. 그리고 내일이 되면 누가 와도 나를 이길 수 없지.”

    천년색마가 옆에서 떨고 있는 백소영을 봤다.

    백소영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 오라버니가 저쪽에 있어요.”

    “뭣이?”

    백청이 쓰러져 있는 백자안을 보고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아! 자안아! 어쩌자고 거기 있는 것이냐? 마지막 희망이 무너졌구나. 원통하다.”

    백청이 눈물을 흘렸다.

    백소영, 유씨 부인, 그리고 백자룡 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그때였다.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혈도가 제압되어 쓰러져 있던 백자안이 천천히 일어나는 게 아닌가.

    그는 백청이 아까 떨어뜨린 검을 집어 든 채 천천히 다가왔다.

    “어떻게 혈도를 푼 것이냐?”

    백년색마가 놀라 소리쳤다.

    천년색마 역시 놀란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네놈이었구나. 이상한 기가 감지된다고 했다. 정말 무림맹 소속이냐?”

    “그렇다. 나는 무림맹 순찰당 소속 구급무사 백자안이다. 네놈들은 이제 죽는다. 무고한 양민들을 해친 죄의 값을 받게 될 것이다.”

    백자안이 검으로 가볍게 원호를 그렸다.

    그것은 바로 팔대무공 중 하나인 무명검법의 일초식 무명천하(無名天下)였다.

    아직 한 번도 시전해본 적이 없지만, 일각이란 제한된 시간 안에 마적들을 섬멸하기 위해서는 모험이 필요했다.

    게다가 지금 백자안의 몸 상태는 일시적이긴 하나 최상이었다.

    번쩍.

    금빛 검광이 눈부시게 검에서 뻗어 나왔다.

    백자안이 들고 있던 검이 그대로 산산조각이 나며 검광과 어우러졌다.

    한데 그 파편들이 부챗살 모양으로 일제히 천년색문 무사들에게 날아가는 게 아닌가.

    파파파팍!

    천년색문 무사들의 비명이 잇달아 터져 나왔다.

    쿵쿵 하는 소리와 함께 그들의 신형이 썩은 짚단처럼 쓰러졌다.

    이마에 파편을 맞은 그들은 강한 충격을 받았는지 쓰러진 채 몸이 두 쪽으로 갈라지고 말았다.

    백년색마와 천년색마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다만 천년색마는 즉사하지 않고 선채로 비틀거렸다.

    이마에 나 있던 붉은 점에 박힌 파편이 햇빛에 비쳐 반짝였다.

    “으으······ 믿을 수······ 없다. 이런 검법이 있다니······.”

    천년색마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쩍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두 쪽으로 갈라졌다.

    쿵.

    그렇게 마적들이 모두 죽었다.

    마을 사람들이 기뻐했다.

    하지만 너무나 충격적이고 무서운 광경이었다. 누구 하나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일시적인 정적.

    백청이 한마디 했다.

    “장하다! 역시 내 아들이다!”

    와아아.

    마을 사람들이 그제야 함성을 질렀다.

    백자안이 사람들의 혈도를 풀어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힘을 모아 쓰러져있는 곽휘에게 내공을 넣어주었다.

    그의 내공은 치유력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다 죽어가던 곽휘의 안색이 돌아왔다.

    스스로 회복운공을 하는 곽휘를 보며 백자안은 가족이 있는 곳으로 갔다.

    “아버지. 어머니. 소자가 너무 늦었습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백자안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쿵.

    * * *

    백자안이 깨어난 것은 사흘 후였다.

    “으으······.”

    “정신이 드느냐?”

    “아······ 아버지.”

    백자안이 천천히 눈을 떴다.

    방 안에는 백청뿐만 아니라 유씨 부인도 있었다.

    “어머니.”

    “그래 어미다. 깨어났구나.”

    백청과 유씨 부인 두 사람 모두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백청이 말했다.

    “몸은 괜찮으냐? 정신을 잃은 지 사흘이나 지났다.”

    “아, 제가 그렇게 오래 누워있었습니까?”

    백자안이 재빠르게 몸 상태를 점검했다.

    무명심법은 자세와 관계없이 운공할 수 있어 빠른 점검이 가능했다.

    ‘예상과 달리 주화입마는 면했구나. 사흘간 자연회복이 되었는지 내공의 소실도 거의 없다. 하지만 내공과 독 기운의 충돌은 더 심해졌다. 여전히 내공을 사용할 수 없을뿐더러, 이제는 무명폭잠공 역시 펼칠 수 없게 되었다. 한 번 더 펼치면 십중팔구 그대로 몸이 터져 죽게 될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무명심법을 처음부터 다시 운공해보면서 그 변화를 살피는 수밖에 없겠구나. 가장 시급한 것은 독 기운을 완전히 내공으로 변환하는 일이다. 그렇게 되면 모든 기운이 하나로 통일되어 자연스럽게 충돌 현상이 사라질 것이다. 팔대무공 수련은 그때로 미룰 수밖에 없겠구나.’

    백자안이 아쉬워했다.

    마적 떼를 일검에 쓸어버릴 때의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었다.

    ‘분명 검과 하나가 되는 느낌이었다. 지존검이 없어서 본래 위력의 일부밖에 발휘하지 못했지만, 그것만으로도 대단했다. 하지만 충돌을 다스리지 못하면 다시는 그 느낌을 맛보지 못하겠구나.’

    백자안이 천천히 몸을 일으킨 후 미소를 지었다.

    부모님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기 위해서였다.

    “어떠하냐? 내상이 깊으냐?”

    백청의 물음에 백자안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잠을 푹 잔 덕분에 완쾌되었습니다. 그러니 안심하세요.”

    “하하하! 그럼 그렇지. 역시 내 아들이다. 언제 그렇게 무공이 높아진 것이냐? 절대고수가 따로 없더구나.”

    “집에 오면서 기연을 만났습니다.”

    백자안이 대답하며 속으로 씁쓸해했다.

    실제 지금 그의 무공 수준은 무저곡에 떨어지기 전과 비슷했다.

    하지만 부모님의 좋아하는 얼굴을 보니 그 말은 할 수 없었다.

    ‘그래도 내공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니 언젠가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백자안이 다시 미소를 지었다.

    “소영이와 자룡이는 어디에 있습니까?”

    “와룡대 무사들을 돕고 있다.”

    “정말 와룡대 무사들이 왔습니까?”

    백자안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와룡대는 무림 후기지수 중 정예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등 명문정파 소속 제자가 대부분이었다.

    와룡대에 들어가는 것은 백자안 같이 아무런 배경이 없는 사람에게는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무공 실력만 있다고 해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닌 것이다.

    물론 예외는 있었다.

    무림맹 입맹 시험에서 일등을 하게 되면 가능했다.

    그것은 수석합격자에게 부여하는 상 중 하나였다.

    그 외는 대부분 인맥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그렇다고 무공이 약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무림의 평판을 의식하기 때문이었다. 각 문파에서는 가장 뛰어난 인재들을 보내는 게 관례가 되어 있었다.

    백자안 역시 와룡대 입대는 꿈도 꾸지 못했다.

    그는 무림맹 하급무사였고 등급은 최하인 구급이었다.

    정기 평가에서 전체 일등을 하게 되면 가능했으나, 낙제를 면하기에 바빴던 게 사실이었다.

    반면 와룡대원은 들어갈 때부터 출셋길이 보장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등급도 칠급부터였다.

    와룡대에서 일정 기간 활동한 후 보직을 받게 되는데 최소한 조장 이상이었다.

    현 무림맹 지휘부 고수 중 절반 이상이 와룡대 출신인 것이 그 증거라 할 수 있었다.

    “어제 와룡대원들이 왔었다. 그들 역시 마적들을 쫓고 있었다고 하더구나. 그래서 잔당이 있는지 근처를 수색 중이다. 우리 집을 거점으로 삼고 있으니 수색을 마치면 돌아올 것이다. 네가 마적들을 일검에 모두 죽였다고 하니 도무지 믿지 않더구나. 나중에 그들이 오면 무공을 좀 보여주어라.”

    “그건 좀······.”

    백자안이 난감해했다.

    ‘골치 아파졌군. 하기야 그대로 믿는 게 더 이상하지.’

    “자안아.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

    “그게 뭡니까?”

    “맹으로 복귀할 때 화산파에 들르도록 해라.”

    “화산파에요? 무슨 일로 말입니까?”

    “그곳에 네 정혼녀가 있다.”

    < [제2장] 마적 떼를 소탕하다 2 > 끝

    ⓒ 행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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