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장] 마적 떼를 소탕하다 1 >
[제2장] 마적 떼를 소탕하다
선인촌을 향해 달려오는 마적 떼.
백여 명의 마적들은 하나같이 여유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오늘 목표로 삼은 선인촌은 무공을 모르는 평범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보통 마적이라고 해도 손쉬운 사냥감이라 할 수 있었다.
하물며 그들은 무공을 익힌 천년색문의 문도들이었다.
물론 지금 그들이 마적 짓을 하고 있으니 엄연히 마적임은 사실이었다.
천년색문의 문주이자 마적 두목인 천년색마는 무심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들떠있었다.
그것은 바로 오늘 비로소 색공을 완성하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그가 연마하고 있는 색공은 천년색문의 개파조사가 창안한 것으로 지금까지 아무도 대성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당대 문주인 천년색마는 각고의 노력 끝에 오늘 드디어 완성을 앞둔 것이다.
‘천년색공(千年色功)만 대성하면 천하에 내 적수는 열 명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천하제일무공을 지녔다는 마교주 불패마왕(不敗魔王)과도 능히 백초는 겨룰 수 있으리라. 후후후!’
천년색마가 탐욕스러운 눈빛을 보였다.
그때였다.
옆에서 말을 달리던 부문주 백년색마(百年色魔)가 말했다.
“문주님! 다 왔습니다. 한데 앞에 사람이 있습니다. 밟아버릴까요?”
“그래?”
천년색마가 앞을 보니 백여 장 앞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바로 백자안과 백소영이었다.
두 사람 중 천년색마의 눈길을 사로잡은 사람은 바로 백소영이었다.
‘천품이다! 저년의 음기를 흡수하면 안전하게 천년색공을 대성할 수 있다.’
천년색마가 껄껄 웃었다.
“하하하! 하늘이 나를 돕는구나. 저 두 명 앞에 모두 멈춰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마적들이 백자안과 백소영 두 사람과 십장 정도 떨어진 거리까지 다가왔다.
백자안과 백소영은 마적 떼가 다가오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특히 백소영은 연신 비명을 질러댔다.
“오라버니! 이를 어째? 진짜 마적놈들이야.”
평소 말괄량이로 소문난 그녀였다. 지금은 두려움으로 인해 사색이 되어 있었다.
옆에 백자안이 없었다면 실신했을지도 몰랐다.
“걱정하지 마라. 내 뒤에 있도록 해라.”
백자안이 담담히 말했다.
이미 반로환동 전에 한번 겪었던 일이었다. 안색을 빠르게 회복하고 있었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바로 천년색마였다.
천년색마의 이마에는 붉은 점이 하나 있었다.
이는 천년색공을 익힌 사람에게 나타나는 특징이었다. 그것으로 인해 백자안은 예전 기억을 되살릴 수 있었다.
‘그래, 저놈이었어. 내게 일장을 날렸던 놈이! 저놈들 모두 무공이 상당해 일반 마적들이 아니었지.’
백자안이 입술을 깨물었다.
마적들은 말 달리는 것을 멈추고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눅이 들만도 했지만 백자안은 여전히 태연했다.
백오십 살까지 살아봤던 사람으로서의 경험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책임의식이었다.
자신이 막지 못하면 가족을 포함해 마을 사람들이 몰살당할 것은 확실했다.
문제는 역시 몸 상태였다.
내공을 사용할 수 없는 몸으로 한 명의 마적도 상대하기 어려웠다.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분명 방법이 있다.’
백자안이 무명비급의 내용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무명비급에는 사실 무명심법과 팔대무공 외에도 부록이란 것이 있었다.
거기에는 진법과 역용술, 도술 등 여러 가지 잡다한 내용이 있었다.
물론 그것들 역시 무명심법이 칠성에 달하지 못하면 주화입마의 위험이 있다고 적혀 있었다.
그래서 한 번도 연습해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백자안의 머릿속에는 그 내용들이 모두 들어 있었다.
‘무명부록(無名附錄)에 수록된 내용 중 지금 그나마 내공 제한을 받지 않고 가능한 것은 단 하나다. 바로 일시 잠력을 끌어내 사용하는 무명폭잠공(無名爆潛功)이다.’
백자안이 눈을 빛냈다.
무명폭잠공은 그야말로 잠력을 이용하는 것으로, 내공과 독 기운이 충돌하고 있는 지금 그것들 역시 잠력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았다.
문제는 후유증이었다.
원래 무명폭잠공은 그야말로 비상시에만 사용하는 것으로 주화입마 위험을 감수해야했다.
복잡한 몸 상태인 백자안의 경우에는 당연히 더 위험했다.
주화입마로 무공을 잃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목숨까지 위태로울 수 있는 것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백자안이 결단을 내리고 무명폭잠공을 일으켰다.
처음 시도해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원리가 유사한 무명심법을 백년 넘게 운공했던 경험이 있었다.
단전이 금세 뜨거워졌다. 하지만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했다.
“하하하! 맹랑한 놈이군! 겁도 없이 우리를 막아서다니!”
백년색마가 껄껄 웃으며 수하들에게 명을 내렸다.
“문주님께서 저 계집을 마음에 들어 하신다. 사내놈부터 죽여라. 계집을 확보한 후 마을로 진입해 모두 쓸어버린다.”
“존명!”
천년색문 무사 한 명이 백자안에게 다가왔다.
다그닥. 다그닥.
말발굽 소리가 마치 저승사자의 방울 소리 같았다.
백소영이 다시 비명을 질렀다.
“아악!”
마을 입구 안쪽에서 종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땡땡땡!
비상 종소리였다.
선인촌 같은 산골 마을에서는 마적 떼의 습격에 대비해 곳곳에 비상종이 비치되어 있었다.
비명을 듣고 나온 마을 사람 한 명이 급히 종을 울린 것이었다.
“마적이다!”
“마적이다!”
마을 사람들의 놀란 목소리가 연이어 터져나왔다.
백년색마가 천년색마를 쳐다봤다.
“문주님! 어떻게 할까요?”
“상관없다. 어차피 독 안에 든 쥐들이니까. 후후후!”
천년색마가 우수를 한번 흔들었다.
그 순간 백소영의 신형이 자석에 이끌린 듯 날아가 천년색마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아악! 이거 놔라!”
백소영이 항거를 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소영아!”
백자안이 다급히 불렀다. 하지만 아직 무명폭잠공을 펼칠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었다.
아무리 빨라도 일각 정도가 더 필요했다.
이 무명폭잠공이란 것이 잠력을 모두 모아 한 번에 발출하는 것이라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천년색마가 당장 백소영을 죽일 것 같지는 않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부녀자들을 현장에서 간살하는 것이 놈들의 특징이었다.
백자안 역시 그 점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한 떼의 마을 사람들이 낫이나 죽창 같은 무기를 들고 다가왔다.
모두 남자들이었다.
그 수는 대략 삼십 명 정도.
그들은 마을을 자체 방어하는 마을 수호대 대원들이었다.
“이놈들!”
대장으로 보이는 초로의 사내가 소리쳤다.
백자안이 그를 보고 놀란 것은 당연했다.
바로 그의 아버지이자 마을 촌장인 백청(白靑)이었던 것이다.
백청의 손에는 장검 한 자루가 들려있었다.
마적들이 마을 입구를 틀어막고 있어 도주할 곳이 없다고 판단한 백청이 사내들을 데리고 나온 것이었다.
마침 집도 가깝고 백청의 회갑연이라 사람들이 대거 모여 있어 빠르게 결집이 되었다.
“아버지!”
천년색마에게 붙잡혀 있던 백소영이 소리쳤다.
백청이 분노한 것은 물론이었다.
“소영아!”
하지만 당장 달려들지는 못했다.
그 역시 무공이라고는 알지 못했다.
“후후후! 네놈이 이년의 아비냐?”
천년색마의 물음이었다.
“그렇다. 어서 내 딸을 놔주지 못하겠느냐?”
“그럴 수는 없다. 혹시 딸이 더 있느냐?”
“없다. 어서 놔주지 못할까?”
“아깝군. 이렇게 순도가 높은 계집은 천하에 열 명도 채 되지 않는데······.”
천년색마가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백소영을 확보한 것만 해도 큰 수확이었다.
“어떻게 할까요? 문주님.”
백년색마의 물음에 천년색마가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하긴? 평소대로 해야지. 일단 마을 남자들을 모두 죽인다. 계집들은 모두 한 곳으로 모아라. 혹시라도 음기가 뛰어난 계집이 더 있을 수도 있으니까. 이전처럼 내가 지목하지 않는 계집은 너희들이 처리해라.”
“감사합니다.”
백년색마를 비롯해 천년색문 무사들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들 역시 색공을 연마 중이었기에 부녀자들의 음기가 필요했다.
백자안은 그들의 대화를 듣고 참았던 분통이 터졌다.
백청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붙잡혀 있는 딸에 집중하느라 아직 백자안을 발견하지 못했다.
백자안 역시 무명폭잠공에 집중하기 위해 굳이 인사하지 않았다.
하지만 천년색문 무사들이 공격을 개시하려 하자 마음이 급해졌다.
무명폭잠공이 불완전하더라도 나서야했다.
백자안이 막 나서려할 때.
마을 안에서 다시 한 떼의 무리가 나타났다.
백여 명이 넘었다.
특히 이번에는 남녀노소 불문이었다.
다들 무기를 지니고 비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을 인솔하고 온 사람은 한 중년인이었다.
곽 선생으로 불리는 그는 마을의 유일한 무관인 선인무관(善人武館)의 관장이었다.
그의 옆에는 관원으로 보이는 십삼사 세가량의 소년이 있었다.
손에 낫을 들고 있는 그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침착했다.
백자안은 그를 보고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 했다.
바로 그의 동생 백자룡이기 때문이었다.
백자룡의 무재는 자신을 뛰어넘을 정도. 이를 안 백청은 이년 전부터 선인무관에 보냈다.
비록 백자안처럼 낙양에 보내지는 못해도 기초 무공을 익히게 하기 위해서였다.
백자룡은 발군의 성취를 보였고, 곽 선생 역시 그를 아꼈다.
“멈춰라. 마적 놈들이 어디 감히 노략질을 하려는 것이냐?”
곽 선생이 내공을 일으켜 소리쳤다.
천년색마가 흠칫했다.
곽 선생 같은 고수가 있을지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마을 사람들 역시 놀라고 있었다.
곽 선생의 내공이 이렇게 강할 줄은 전혀 몰랐던 것이다.
“하하하! 이런 산골 마을에 고수가 있었군. 네놈은 누구냐?”
“나는 곽 선생이라 한다. 네놈들 역시 일반 마적들은 아니구나.”
“잘 보았다. 하지만 마적은 마적이지. 그래 네놈 혼자서 우리를 상대하겠다는 것이냐?”
“그렇다면 어떻게 할 거냐?”
곽 선생이 허리에 찬 검을 풀어 손에 들고 앞으로 나왔다.
마을 사람들이 그를 수호신처럼 받들며 길을 비켜줬다.
그러는 동안 마을에 숨어 있던 나머지 사람들도 입구로 나왔다.
모두 뭉쳐야 한 사람이라도 살아날 수 있다고 뜻을 모은 덕분이었다.
그들을 데려온 사람은 사십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중년부인이었다.
백자안은 그녀를 보고 눈물을 흘릴 뻔했다.
바로 꿈에도 그리워하던 그의 어머니 유씨 부인이기 때문이었다.
‘어머니!’
백자안이 마음속으로 그녀를 불렀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무명폭잠공을 시도했다.
곽 선생 덕분에 시간을 벌수 있어 천만다행이었다.
‘곽 선생이란 저분의 무공이 강해도 마적들 모두를 상대하는 것은 역부족일 것이다. 특히 마적 두목의 무공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보니 대단한 무공을 지니고 있구나.’
백자안이 애써 자제를 할 때.
곽 선생과 천년색마의 대치가 이어지고 있었다.
천년색마의 손에 잡혀 있던 백소영은 백년색마에게 넘어가 있었다.
“후후후! 죽이기 전에 내 진짜 신분을 알려주지. 나는 천년색문의 문주다.”
“천년색마?”
곽 선생이 처음으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큰일 났구나. 고작해야 무공을 배운 마적 정도로 생각했는데, 천년색마라니. 절정고수 반열에 든 고수가 아닌가. 내 무공으로는 역부족이다.’
곽 선생이 긴장하자, 천년색마가 껄껄 웃었다.
“하하하. 네놈의 진짜 정체 역시 밝혀라. 내 비록 강호에서 색마로 불리지만 무림의 법도를 존중한다.”
“내 신분을 밝히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다만 조건이 있다.”
“무엇이냐?”
“내가 이기면 수하들과 함께 돌아가라. 그리고 다시는 마을을 공격하지 마라.”
“좋다. 어서 신분을 밝혀라.”
“내 이름은 곽휘(郭揮)라고 한다. 강호에서는 나를 섬전검객(閃電劍客)으로 부르지.”
“하하하. 역시 예상대로군. 섬전검객이라면 황궁 출신으로 낭인백대무사 중 한 명이 아니던가.”
“그렇다. 이제 시작하지.”
< [제2장] 마적 떼를 소탕하다 1 > 끝
ⓒ 행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