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적 반로환동-3화 (3/250)

< [제1장] 반로환동 3 >

“으으······.”

백자안이 신음과 함께 깨어났다.

무섭게 회전하던 몸은 멈춰있었다.

하지만 가부좌한 자세 그대로였다.

완전히 정신을 차린 백자안이 석실 안을 둘러봤다.

신비한 꽃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그가 모두 흡수한 것이었다.

백자안이 급히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했다.

반로환동한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먼저 눈으로 보이는 육신은 절벽으로 떨어지기 전 23살 때 몸 그대로였다.

내공 역시 엄청나게 증가해있었다.

무명심법 칠성 수준을 단숨에 두 배 이상 뛰어넘은 것이다.

다만 양적 증가라 무형검의 경지는 아니었다.

‘일단 얼굴부터 확인해야겠다. 이전 몸으로 돌아간 것 같은데, 물속에 비춰보는 것이 가장 확실하겠군.’

백자안이 새로운 공간에서 나와 원래 석실로 돌아왔다.

그래봤자 몇 걸음 거리. 놀라운 사실은 그때 발견되었다.

자신의 거처로 사용하던 석실 내부에 있던 침대와 수납장이 모두 사라진 것이었다.

석실 내부 역시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잠을 자던 이곳은 매일 청소를 해서 매우 깨끗했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백자안이 매우 놀랐다.

하지만 외부인의 출입이 있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결국 생각해낸 것은 바로 꽃이 뿜어내던 금빛 기운이었다.

‘그래, 금빛 기운이 침대와 수납장을 모두 소멸시킨 것 같구나. 먼지 역시 그 때문인 것 같고.’

백자안이 품 안에 있던 무명비급을 확인했다.

다행히 비급은 그대로였다.

입고 있던 가죽옷도 그대로였다. 그에게 피해가 간 것은 없었다.

어차피 침대와 수납장은 두고 가려 했던 것이 아니던가.

백자안이 동굴 밖으로 나가려던 그 순간.

갑자기 동굴 전체가 흔들렸다.

우르릉.

굉음과 함께 천장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아까 내가 석벽을 파괴한 것이 기관을 건드렸구나.’

백자안이 급히 동굴 속에서 빠져나왔다.

그 순간, 동굴이 굉음과 함께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휴우! 때마침 깨어나지 못했으면 그대로 깔려 죽을 뻔했다.”

백자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계곡 가장자리로 갔다.

가장자리에는 물이 흐르고 있었다. 샘터도 한 곳이 있었다.

맑고 깨끗한 물이라 백자안이 음식 맛 대신 음미하던 식수였다.

백자안이 샘터로 가서 얼굴을 비춰보았다.

“아! 역시······ 스물세 살 때 몸으로 돌아왔구나. 반로환동을 하게 되면 자신이 간절히 원하던 때의 몸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고 하더니······.”

백자안이 다시 한번 감격했다.

반로환동으로 완전히 몸이 젊어져 이제 천수를 다해 죽을 염려는 사라졌다.

무저곡을 빠져나가 새로운 삶을 살 강력한 이유가 생긴 셈이었다.

하지만 백자안의 안색은 금세 어두워졌다.

가족 생각이 난 것이었다.

‘몸만 젊어지면 뭐 하는가. 사랑하는 가족들은 모두 가고 없는데······.’

백자안은 비로소 깨달았다.

자신이 원한 반로환동은 그저 육신의 젊어짐이 아니라 시간의 회귀였음을.

하지만 그것은 그의 능력 밖이었다.

‘일단 계곡을 빠져나가자. 집하고는 가까운 곳이니 마을에 가서 아직도 집터가 남아 있는지, 묘소는 있는지 알아봐야 한다. 세월이 흘러 어찌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꼭 확인해야 할 일이다. 이후의 일은 그때 가서 결정하자.’

백자안이 천천히 내공을 끌어올렸다.

무명심법 칠성 달성으로 얻은 내공에다가 이번에 얻은 기연까지.

순풍에 돛을 단 듯 그의 내공은 무궁무진했다.

가히 유형검(有形劍)의 최고봉이라 할 만했다.

백자안이 마지막으로 무저곡을 일별한 뒤 천천히 몸을 띄웠다.

바로 육합비였다.

휘휘휙.

바람을 거스르며 올라가는 그.

가죽옷이 팔락거리는 것이 그 압력이 느껴졌다.

사실 무저곡에는 독 안개 말고도 거친 바람이 사시사철 불었다.

비록 127년 전 그를 무저곡에 데려다준 회오리바람 정도는 아니었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금세 휩쓸려버릴 가능성이 매우 컸다.

그렇게 얼마나 올라갔을까.

마침내 독 안개가 보였다.

무심해 보이던 백자안이 안색을 굳혔다.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독 안개의 아래위 폭은 대략 십장 정도.

경공만 제대로 펼칠 수 있다면 그렇게 긴 거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전에도 그랬지만 문제는 내공 발현의 제한이었다.

마치 군자산처럼 안개 속으로 들어온 사람은 내공을 사용할 수 없었다.

‘이번에는 다르다.’

백자안이 독 안개 속으로 들어간 순간.

우려와 달리 내공을 사용함에 아무런 제한이 없었다.

이는 마치 마교의 흡수대법처럼 강한 쪽이 약한 쪽을 끌어당기는 원리와 비슷했다.

무명심법 칠성부터는 기의 밀도가 독 안개와 대등해지기 때문에 내공 제한이 사라진 것이었다.

백자안이 무척 기뻐한 것은 물론이었다.

이대로라면 일각 정도 후 독 안개를 통과할 수 있었다.

한데 중간 부분에 달했을 때 문제가 발생했다.

서로 대등하던 힘의 균형추가 급격히 백자안 쪽으로 기운 것이었다.

신비한 열매를 먹고 내공이 두 배 이상 늘어난 게 그 원인이었다.

원래 백자안은 무명심법 칠성 내공만으로 독 안개를 돌파하려 했다.

아직 열매를 복용하고 생겨난 내공을 자신의 것으로 완전히 흡수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즉, 단전에 두 개의 공간이 생긴 상태였다.

한데 독 안개의 압력을 견디면서 자연스럽게 무명심법의 내공과 새로 얻은 내공이 합쳐져 버렸다.

이렇게 두 내공을 합치는 것은 원래 수년이 걸리는 일이었다.

함부로 섞어버리면 주화입마가 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무명심법은 바다와 같이 모든 기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사실 매우 특이한 내공이라 할 수 있는 신비한 열매의 기운을 받아들여 모두 하나로 만들어버린 것이었다.

백자안으로서는 매우 기뻐할 일이었다.

문제는 그렇게 되자 독 안개의 기운이 급격히 백자안의 몸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점이었다.

독의 종류도 잘 모르는 상황에서 이를 흡수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했다.

특히 영약같이 대부분 몸에 이로운 기운이 아니라 독이었다.

게다가 조금 흡수해보니 그 성질이 매우 차가운 것이 아닌가.

원래 무명십법은 기본적으로 뜨거운 양의 기운이었다.

이는 열매의 기운 또한 마찬가지였다.

한데 음의 기운인 독 안개가 몸속으로 들어오자 격렬한 충돌이 일어났다.

일종의 주도권 싸움이었다.

하지만 제방이 일단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듯이 흡수가 시작되자 멈출 수 없었다.

무리하게 거부하다가는 오히려 주화입마의 위험을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어쩔 수 없구나. 일단 받아들일 수밖에······.’

백자안이 독 안개를 적극적으로 흡수하기 시작했다.

흡수하면서 느낀 것은 독 안개가 단순히 군자산의 특성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지금은 알 수 없지만 뭔가 특수한 힘이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독 안개를 모두 흡수한 백자안이 마침내 절벽 위로 올라섰다.

몸속 기운의 충돌 때문에 진이 빠진 그가 마지막 내공을 쏟아부어 무저곡에서 빠져 나오는데 성공한 것이다.

“휴우!”

백자안이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봉우리 주위를 살폈다.

하지만 너무 기운이 없어 곧바로 주저앉고 말았다.

급히 무명십법을 운공했다.

한데 당장 사용할 수 있는 내공이 전혀 없는 게 아닌가.

모든 내공이 독 기운과 충돌하고 있어 외부로 발현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우려했던 일이 생겼구나. 그저 단순한 독이었다면 몰아내면 되지만, 이 독은 성질이 특수해 내공으로 변환이 가능하다. 내가 심법을 팔성까지 익혔다면 스스로 변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 능력 밖이다. 처음부터 심법을 수련하는 방법이 있겠지만, 어느 세월에 다시 익힌단 말인가.’

백자안이 안색을 굳히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년 넘게 연마한 내공을 전혀 사용할 수 없게 되어 허탈한 심정이 들었다.

하지만 사실 그는 운이 좋은 경우였다.

원래라면 성질이 다른 두 기운이 충돌하면 거의 주화입마에 빠지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무명심법은 비록 양의 기운이긴 하나 종국에는 음양을 초월하는 무형검을 지향했다. 그 때문에 주화입마를 면한 것이다.

그래도 희망은 있었다.

지금이라도 무명심법을 운공하면 어느 정도가 될지 모르겠지만 기존의 내공을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 지금 상태에서 심법을 계속 운공하면 독 기운을 다스리는데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그럼 그 부분만큼 내공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집에 가본 후에 생각하자.’

백자안이 마음을 다스린 후 천천히 산에서 내려갔다.

신기한 것은 이전에 쌓아둔 미약하기 그지없었던 운기토납의 기운은 사용이 가능했다.

그 점이 더욱더 씁쓸하게 만들었다.

‘지금 상태만 보면 완벽히 127년 전으로 돌아왔구나. 가족들도 그대로라면 얼마나 좋을까.’

백자안이 헛된 희망이란 걸 알면서도 왠지 모를 기대를 하며 걸어갔다.

그러다 문득 석실에 있던 침대와 수납장이 사라진 사실이 떠올랐다.

다시 생각해보니 너무나 이상했다.

사실 계곡 안의 모습 역시 상당히 달랐다.

무저곡 안은 사시사철 온화한 곳이긴 하나, 반로환동 후에는 확연히 풍광이 달랐던 것이다.

‘설마······ 아니야. 그럴 리가 없다. 반로환동했는데 시간 회귀까지 가능할 리가. 집에 가보면 알게 되겠지.’

발걸음이 빨라졌다.

* * *

백자안의 고향 집이 있는 선인촌(善人村)은 그야말로 착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산골 마을이었다.

백여 호도 안 되는 작은 마을이었지만, 인심이 후했다. 인정도 많았다.

백자안은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가슴이 설렜다.

그도 그럴 것이 언뜻 봐도 마을의 전경이 옛 모습 그대로였다.

특히 시선을 끄는 것은 마을 입구에 있는 공동우물이었다.

낙양 영웅무관에서 무공을 배울 때도 매년 명절이면 고향에 내려왔었다. 그때 그가 한 일은 공동우물로 와 물을 길어가는 것이었다.

그것도 동생들과 함께.

여동생 백소영(白素英)은 빨랫감도 가져왔고, 막내인 백자룡(白自龍)은 형과 누나를 따라와 어리광을 부렸다.

‘그때가 좋았지.’

백자안이 미소를 띠며 우물을 봤다.

마침 한 소녀가 물을 긷고 있었다.

뒷모습이었는데 매우 날씬했다.

한데 낯이 익었다.

‘설마 소영이?’

백자안이 헛된 기대라고 생각하며 우물가로 향했다.

그때였다.

물을 긷던 백의소녀가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16, 7세 정도 되었을까.

산골 마을에 있기 아까운 절세미인이었다.

백자안은 그녀의 얼굴을 보고 경악했다.

과거로 돌아왔을지 모른다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긴 했었다.

하지만 진짜일 것이라고는 생각 못 했다.

한데 눈앞의 소녀는 바로 자신의 여동생 백소영이 아닌가.

“오라버니!”

백소영이 백자안을 보고 매우 기뻐했다.

“소······ 소영아. 정말 내 동생 소영이가 맞느냐?”

“호호호! 오라버니! 일 년만에 보는데 이렇게 놀리기야? 너무 늦지 않게 잘 왔네. 이제 곧 회갑 잔치가 시작될 거야. 마을 사람들이 다 모여 있어. 옷이 그게 뭐야? 사냥꾼이야? 진짜 웃기네.”

“······!”

백자안이 격동하는 마음을 애써 감추며 침착하려 했다.

“아직 무사하구나. 마적 떼가 오지 않았느냐?”

“마적은 무슨 마적? 무슨 소리야?”

백소영이 의아해했다.

그때였다.

지축을 흔드는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두두두!

백자안이 급히 고개를 돌려보니 자욱한 먼지와 함께 백여 필의 말이 달려오고 있었다.

말 위에는 무장한 사내들이 타고 있었다.

백자안이 놀라 소리쳤다.

“마적 떼다!”

< [제1장] 반로환동 3 > 끝

ⓒ 행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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