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장] 반로환동 1 >
[제1장] 반로환동
<연자에게 이 글을 남긴다.
노부의 이름은 백자안(白自安)이라고 한다.
나이는 올해 150살이다.
나이만 본다면 천수를 누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곳 무저곡에서 127년을 보냈다.
23살에 이곳에 떨어져 홀로 내공을 수련했다.
왜냐고?
그것만이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물과 천년이끼는 무한정 있었지만, 사방은 절벽으로 막혀 있었다.
유일한 출구라 할 수 있는 하늘은 독 안개로 가득했다.
내가 지금까지 익혀온 비급에 적혀 있는 말에 따르면 심법을 칠성 정도 이루면 독 안개를 뚫고 나갈 수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사랑하는 가족을 몰살시킨 마적 떼들에게 당장 복수해야 했기에 조급했다.
하지만 그 말은 사실이었다.
내가 수백 장이 넘는 높이의 허공을 경공으로 날 수 있게 된 것은 심법을 삼성 정도 달성했을 때였다.
그때가 무저곡에 떨어지고 7년이 지났을 때였으니, 내 나이 서른 살이었을 것이다.
칠 년 간 내공만 수련했었다. 비록 삼성 수준이지만 전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절정의 내공을 보유하게 되어 내심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독 안개를 뚫을 수는 없었다.
독 안개에 몸을 접하는 즉시 내공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후로 내공이 높아질 때마다 계속 시도했지만 여전히 실패였다.
그 기간이 모두 합해 127년이었다.
하지만 오늘 드디어 칠성에 달하는 날이 되었다.
내 마음은 이제 허허로울 뿐이다.
내 가족을 포함해 평화롭게 살던 마을 사람들을 몰살시킨 마적 떼 놈들이 아직 살아있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나 역시 이미 천수를 다해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의아해할 수도 있으리라.
백 년이 넘게 내공을 수련했으면 오히려 더 활기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하지만 인간에게는 타고난 수명이 있다.
즉, 아무리 고수라도 영원히 살 수 없다는 말이다.
물론 아직 내가 죽는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능성이 매우 높다. 몸 상태와 느낌이 그렇다.
그래서 혹시 몰라 이 글을 남기는 것이다.
연자여.
두서없이 써 내려간 글이다. 무슨 내용인지 잘 파악되지 않을 것이란 걸 잘 안다.
하지만 고독한 인간의 넋두리라 생각하고 들어줬으면 한다.
기막힌 내 삶을 듣게 되면 그대에게도 참고가 될 것이다.
그럼 이제부터 차분하게 내 과거를 이야기해보겠다.>
“휴우. 부질없는 일이다. 어차피 이곳으로 떨어지면 나와 같은 신세가 될 것을······.”
노인, 즉 백자안이 써 내려가던 글을 멈췄다.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유서처럼 적던 글.
하지만 옛 생각이 떠올라 마음이 오히려 번잡해졌다.
그가 127년째 연마하고 있는 내공심법은 잡념이 없어야 했다.
오늘은 칠성에 다다르는 중요한 날.
오직 이날만을 기다리며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의 생명 또한 오늘이 마지막일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무명심법(無名心法)을 칠성까지 익히는 데 성공해 이곳을 탈출한다고 해도 천수를 다해 곧 죽게 될 것이다. 복수할 대상도 없을 것이고. 이곳을 나가봐야 할 일도 없을 것 같구나. 목숨을 구하는 방법은 반로환동(返老還童)뿐이다. 하지만 그게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백자안이 주저했다.
이제 일주천을 한 번만 더 하면 무명심법의 내공을 칠성 수준으로 완성할 수 있었다.
그가 이곳 무저곡에서 발견한 무명비급에는 심법인 무명심법과 그 외 실전무공이라 할 수 있는 팔대무공(八大武功)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팔대무공을 익히지 않았다.
오직 무명심법만 익혔을 뿐이다.
이 또한 이유가 있었다.
팔대무공의 위력이 너무 강해 무명심법이 칠성에 이르기 전에 연마하면 주화입마된다고 경고하는 말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하늘을 가로막고 있는 독 안개와 비슷했다.
물론 유혹이 있긴 했다.
독 안개를 뚫고 나가기 위해서는 뛰어난 경공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팔대무공 중 하나로 경공술인 무명비(無名飛)를 익히려 했다.
하지만 곧바로 주화입마의 조짐이 생겨 그만두었다.
그래서 이전에 연마했던 경공인 육합비(六合飛)를 펼쳤다.
다행히 무명심법의 화후가 높아지는 만큼 육합비의 위력 또한 강해졌다.
그렇게 해서 처음으로 독 안개까지 날아갈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무명심법을 연마하고 칠 년 째였던 것이다.
참고로 무명십법은 모두 열두 단계로 구성되어 있었다.
일성부터 십이성까지. 하지만 칠성까지가 현실적으로 익힐 수 있는 한계였다.
이는 인간의 수명 때문으로, 무명심법의 특성이기도 했다.
무명심법은 다음 단계로 올라갈 때마다 두 배의 시간이 걸리게 되어 있었다.
한데 첫 단계 일성을 이루는 데 일 년이 걸렸다.
두 번째 단계를 이루는 데는 이 년이, 세 번째 단계는 사 년이, 네 번째는 팔 년, 그다음은 십육 년, 삼십이 년, 육십사 년 이런 식으로 걸리는 것이다.
다만 팔성부터는 무공 최후의 경지라는 무형검 단계로 접어들기 때문에 반드시 두 배의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무형검은 심검의 경지. 찰나의 깨달음으로도 가능했다.
하지만 그 깨달음을 이루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때 하루만 일찍 고향집에 도착했어도 부모님과 동생들을 살릴 수 있었을 텐데, 그놈의 비상 대기령 때문에······.’
백자안이 까마득한 옛일을 떠올리며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당시 그는 무림맹의 하급무사였다.
부친 회갑에 맞춰 휴가를 가려 했었다. 하지만 마교의 발호 움직임으로 갑자기 비상 대기령이 걸리고 말았다.
비록 하루 만에 해제가 되긴 했으나, 그 전까지 집에 갈 수 없었다.
그렇게 하루 늦게 고향 집에 도착했다.
그때는 이미 마적 떼들이 마을을 덮친 후였다.
전날 회갑 잔치가 벌어질 때 백여 명의 마적들이 마을 사람들을 몰살시킨 것이었다.
백자안은 부모님과 동생들의 시신을 보고 울부짖었다. 곧바로 마적 떼들의 소굴로 쳐들어갔다.
하지만 놈들은 보통 마적이 아니었다.
일신에 강한 무공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그 두목은 강호에 색마로 유명한 천년색마(千年色魔)였다.
수하들 역시 색마들로 그들 모두 천년색문(千年色門)이라는 사파의 문도들이었다.
그들은 색공을 연마하고 있어 늘 부녀자들의 음기가 필요했다.
무림맹의 견제로 부녀자 조달이 어려워지자, 이를 타개하기 위해 마적 떼로 위장해 산골 마을을 찾아다니며 간살을 자행했던 것이다.
약탈도 이루어졌다.
남자는 모두 죽였다.
여자는 노소를 가리지 않고 겁탈한 후 음기를 흡수했다.
백자안은 그 사실도 모른 채 분노의 화신이 되어 그들의 소굴을 찾아갔었다.
결과는 처참한 패배였다.
무림맹 무사라고 하나 최하급이었다. 실제 그는 한 명의 마적도 죽이지 못했다.
불행 중 다행인 점은 장풍을 맞고 무저곡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마침 마적 떼 소굴 주위에 괴이한 회오리바람이 불었다. 백자안은 그 바람에 휩싸여 계곡으로 추락했다.
회오리바람은 무저곡 바닥에 도착할 때까지 백자안을 보호해주었다.
계곡 위쪽을 막고 있던 독 안개도 별 지장을 주지 못했다.
의외로 내상도 심하지 않아 백자안은 이를 천운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저곡 어느 동굴 안에서 무명비급을 발견한 후 열심히 연마했던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지금처럼 엄청난 세월이 흐른 상황이었다.
“마음을 비우자. 혹시 모르지 않은가. 기적이 일어날지······ 오직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다.”
백자안이 심호흡을 한 번 했다.
마지막 일주천이 시작되었다.
< [제1장] 반로환동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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