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무슨 연유입니까?
서로를 바라보고 대치하고 있는 장순학과 독마.
그리고 그 뒤로 서 있는 각 오십의 무인들.
어제의 전쟁에 비해서는 분명 적은 인원.
하지만 그 기세는 어제보다 훨씬 더 강렬했다.
“무림맹에서도 대단한 자들이 나온 것 같군.”
마교에 천비대가 나섰다면, 무림맹에서도 그에 준하는 이들이 나섰다.
검은색 무복을 걸친 이들.
이들이 바로 무림맹 무력부대 중 가장 강하고, 가장 은밀한 흑룡대였다.
무림맹주의 명을 따르는 이들은, 이번 싸움에 자원해서 나왔다.
“자. 그럼 시작해 보세나.”
“그럽시다.”
화아아아아아악-
쿠우우우웅우웅-
독마의 몸에서 독무가 뿜어져 나왔고, 장순학의 기운이 주변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엄청난 기운의 충돌.
그리고 그와 동시에 천비대와 흑룡대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타타타탓-
샤샤샤샥-
확실히 다른 움직임을 보이는 이들.
싸움 또한 어제와 다르게 초반부터 팽팽한 것은 물론이고, 무공들 또한 대단했다.
보는 이들이 다 전율이 일 정도의 싸움.
물론 그중에 단연은 역시나 독마와 장순학의 싸움이었다.
쾅-!
둘이 부딪칠 때마다 엄청난 기파가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땅이 터져 오르는 위력.
이런 싸움에도 두 사람의 표정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너무나도 평온한 얼굴로 싸우는 두 사람.
“무림맹주라고 할 만하군.”
독마는 장순학의 실력에 솔직히 놀랐다.
무림맹에서 경계해야 할 무인은 팽중호와 위지철 정도뿐이라 생각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 장순학 또한 그들 못지않았다.
무림맹주라는 자리에 어울리는 힘을 보여 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손쉬울 것이라 들었는데, 전혀 아니군.”
마뇌의 말에 따르면, 이번 싸움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 하였다.
그런데 절대로 쉽지 않았다.
목숨을 내걸어야 할 싸움이었다.
화아아아아아아아악-
치이이이이이익-
점점 더 강해지는 독마의 독무.
주변에 있던 것들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장순학은 그런 짙은 독무 안에서 별다른 움직임 없이 가만히 검을 들고 독마를 노려보고 있었다.
후우우우우우웅-
독마의 독무는 감히 장순학의 주변에는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다.
독무를 밀어내는 장순학의 정순한 기운.
독마의 독무와 장순학의 기운 간의 밀고 밀리는 싸움.
그때 먼저 움직인 이가 있었으니, 바로 장순학이었다.
‘이렇게 시간을 끌어서 손해를 보는 건 나다.’
독마와의 이런 싸움은 장순학에게 득이 될 것이 없었다.
지금 소모하는 내공의 양이 다르니 말이다.
그렇기에 장순학이 먼저 움직인 것이었다.
슈와아아아아아악-
독무를 갈라내며 내뻗어 나가는 장순학의 검.
천하삼십육검의 정수가 담겨 있는 검은 모든 부정한 것들을 베어 내며 독마를 향해 날아갔다.
콰아아앙-!
독마도 이것을 막아 내기 위해 그대로 팔을 내뻗었고, 독마의 손과 장순학의 검이 부딪치며 엄청난 충격이 사방을 덮쳤다.
물론 두 사람은 이 공격을 주고받은 후에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검과 손을 부딪쳤다.
서걱- 서거거거걱-
치이이이이이익-
장순학의 검기에 주변이 잘려 나갔고, 독마의 독기에 주변이 녹아 나갔다.
당연히 이런 공방 속에 두 사람 다 멀쩡하지는 못했다.
독마의 몸에는 상처가 늘어 갔고, 장순학의 몸은 독에 중독되어 시커멓게 죽어 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쿨럭!”
그래도 확실히 우위는 있었다.
장순학의 입에서 피가 왈칵 터져 나온 것이다.
이제는 얼굴까지 당도한 독기.
지금 당장 이 싸움을 멈추고 치료를 하여도 살기 힘든 상태였다.
보통 독이 아닌, 독마의 독기공에 의한 독이었으니 말이다.
“하아아아압!”
장순학도 그것을 알기에 마지막으로 모든 힘을 쥐어짜 냈다.
지금 여기서 자신이 이대로 그냥 죽는다면 흑룡대들 또한 그대로 무너져 버릴 테니 말이다.
적어도 독마와 함께 가야 했다.
천하삼십육검(天下三十六劍). 천하무적(天下無敵).
장순학의 모든 것이 담긴 일 검이었다.
생사경에 오르면서 깨달은 모든 것이 담긴 것.
“하아아아!”
독마도 이 공격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기에 힘을 끌어 올렸다.
독귀탈혼굴.
그것을 지금 펼쳐 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최후의 절기가 서로 맞부딪쳤다.
콰아아아아앙-
이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의 거대한 폭발.
이 폭발에 일순 천비대와 흑룡대의 싸움이 멈추었다.
그리고 모든 시선이 지금 이 폭발의 중앙으로 향해 있었다.
피어오른 흙먼지로 인해서 보이지 않는 상황.
과연 누가 이겼는지를 사람들은 숨을 죽이며 기다렸다.
“쿨럭. 쿨럭. 쿨럭…….”
“대단하구나…….”
장순학의 고통에 찬 기침과 힘이 다한 듯한 독마의 목소리.
휘이이이이이잉-
바람이 불어 흙먼지를 걷어 내어 주었고, 어떤 상황인지를 보여 주었다.
장순학은 온몸이 검게 물든 채로 바닥에 검에 기대어 무릎을 꿇고 있었고, 독마는 그런 장순학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이것만 보아서는 독마의 승리.
“훌륭한 일 검이었다.”
서거거거걱- 털썩-
그런데 멀쩡히 서 있던 독마의 신형이 반으로 갈라지더니 그대로 바닥에 허물어졌다.
장순학의 마지막 일 검에 베인 것이다.
물론 장순학도 살아남을 수는 없었다.
“약속은 못 지키겠군그래.”
털썩-
결국, 장순학의 신형이 바닥에 쓰려졌다.
독마의 독이 이미 그의 내장을 모두 녹여 버린 상태.
더 이상 살아 있을 수가 없는 그였다.
장순학은 마지막에 살아 돌아오겠다는 팽중호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을 자책하며 숨을 거두었다.
“따라가겠습니다.”
흑룡대 무인들이 장순학의 죽음을 보고 모든 힘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장순학이 지금 어떤 마음으로 목숨을 던졌는지를 알았기에, 그들도 그것을 따르려는 것이었다.
자신들이 살지 못할지언정, 눈앞의 천비대는 살려 둘 수 없었다.
서걱- 서걱- 서걱- 서걱-
폭발적인 흑룡대의 힘에 순식간에 천비대가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시간 지속되던 싸움.
그 싸움의 끝은 흑룡대의 승리로 끝이 났다.
하지만…….
“쿨럭!”
“커억!”
그들은 선천 지기까지 모조리 끌어다 썼기에, 결국 피를 토하며 모조리 바닥에 쓰러졌다.
누구 하나 서 있지 못한 전장.
이번 싸움으로 모두가 죽은 것이었다.
아무런 승리자도 없는 끝.
마교도 무림맹도 승리하지 못하였다.
* * *
“제길.”
팽중호는 장순학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이렇게 될 줄을 알았음에도 막지 못한 것이니 말이다.
이겨야 한다는 욕심에 장순학을 죽음에 이르게 만든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제 어찌해야 합니까?”
팽중호에게 다가와 묻는 무림맹 무인.
무림맹주를 잃었으니, 지금 무림맹 전체가 동요하고 있었다.
게다가 자랑하던 흑룡대마저 잃었으니, 더욱 그 동요가 클 수밖에 없었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들 마음을 가다듬으시고, 모든 슬픔은 전쟁이 끝난 후로 미루어 두라고 해 주십시오.”
“예.”
슬픈 일이지만, 지금은 슬퍼할 때가 아니었다.
아직 마교와의 전쟁이 끝이 난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시신은 모두 잘 모셔 두기를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무림맹 무인들이 전장에서 시신을 수습해 우선적으로 한곳으로 모았다.
모든 장례는 전쟁이 끝난 후에 할 예정이었으니 말이다.
“반드시 이기겠습니다.”
팽중호의 눈이 결연하게 가라앉았다.
장순학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이 전쟁은 절대로 질 수 없었다.
“다음은 어떤 방식입니까?”
다음은 세 번째 전쟁.
처음은 삼백 대 삼백, 두 번째는 오십 대 오십이었다.
“백 대 백의 싸움입니다.”
세 번째는 백 대 백의 싸움.
이번이 싸움의 분수령이 될 터였다.
여기서 만약 무림맹이 승리한다면, 사실상 이 전쟁은 승리했다고 보아도 무방할 상황이 될 터였다.
다만 그만큼 마교측도 힘을 쓸 터였다.
‘새로운 이가 나올 것이다.’
마교의 전력에 대해서는 이미 개방이 정보를 입수했다.
마교에서 나올 인물은 이번에 새롭게 나타난 무인들밖에 없다.
처음에 도마, 그다음에 독마가 나왔으니, 이제는 새로운 이가 나올 차례였다.
“채령아. 네 차례다.”
“네. 알고 있어요.”
무림맹에서 나갈 사람은 곽채령.
원래라면 상당히 크게 걱정을 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의 곽채령은 그런 걱정이 필요 없을 정도의 강자.
다만 걱정이 하나 있다면, 마교 측에서 나올 상대의 실력이 미지수라는 것이었다.
어느 정도나 강할지에 대한 정보는 부족했으니 말이다.
“아직 조금 시간이 있으니, 그동안 최대한 준비를 해 보자.”
지금까지 두 번의 전쟁이 다음 날 바로 진행이 되었다면, 이번 전쟁은 오 일 정도의 시간을 가지기로 하였다.
짧은 시간이지만, 무언가를 준비할 시간은 되었다.
“마교의 마뇌가 뵙기를 청해 왔습니다.”
그때 무림맹 무인이 하나의 소식을 전해 왔다.
마뇌의 만남 요청.
“알겠습니다.”
팽중호는 이 요청을 흔쾌히 수락했다.
무슨 이유로 찾아왔는지 꽤나 궁금했으니 말이다.
사락-
임시로 세워진 천막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는 마뇌.
그녀는 단 한 명의 무인만 대동하고 나타났다.
그것도 적지에 말이다.
“도신을 뵙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적당히 인사를 하고, 서로 마주 앉았다.
다른 이들은 모두 물리고, 오로지 두 사람만이 천막에 남았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듣겠습니다.”
“예. 다음 전쟁에 곽채령 소저는 나오지 않았으면 해서 말입니다.”
마뇌의 말에 팽중호가 조용히 눈을 빛내었다.
역시나 마뇌는 곽채령이 다음에 나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그것을 직접 와서 만류를 한다는 말인가?
서로가 적인데 말이다.
“무슨 연유입니까?”
“그녀를 잃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쪽이 채령이를 잃고 싶지 않다?”
“예.”
“설마, 채령이를 그쪽 천마의 짝으로 생각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마뇌가 곽채령을 다음 전쟁에 나오는 것을 만류하는 이유.
그것은 곽채령을 척한준의 짝으로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마뇌는 그녀의 잠재력을 알아본 것이다.
척한준과 곽채령의 사이에서 아이가 나온다면, 분명 대단한 자손이 나올 테니 말이다.
“너무 어이없고, 오만한 말이라고는 생각 안 해 보셨습니까?”
무림맹 본진에 들어와서 곽채령을 척한준의 짝으로 점찍었으니, 선심을 쓰듯 살려 줄 테니 전쟁에 나서지 말라니.
게다가 곽채령은 이미 위지철이라는 짝이 있는 상황.
이것은 너무 자신들을 무시하는 것이 아닌가?
아직 전쟁은 끝이 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다음에 곽채령 소저가 나오면 무조건 죽습니다. 그는 저도 막지 못합니다.”
마교에서 다음에 나올 무인.
그는 마뇌로서도 어떻게 조종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광혈마(狂血魔).
그는 실력은 확실했지만, 너무나 위험성이 큰 자였다.
일단 싸움에 들어서면, 그 어떤 것도 보지 않고 오로지 피를 원하는 광인으로 변하니 말이다.
“쓸데없는 걱정입니다. 못 들은 이야기로 할 테니, 그만 돌아가십시오.”
팽중호는 마뇌의 제안을 볼 것도 없이 거절했다.
“아직 시간은 있으니, 그녀를 위한다면 잘 생각해 보시길.”
“채령이를 위한다면, 더더욱 그럴 수가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배웅은 하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