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화 살아서 오십시오.
전쟁의 처음.
무림맹과 마교에서 삼백 명의 무인이 평원 중앙으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삼백 대 삼백의 싸움.
작은 규모의 싸움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삼백 명을 각자 이끄는 무인 두 사람.
무림맹 측에서는 신검(神劍) 위지철이, 그리고 마교 측에서는 도마(刀魔)가 나섰다.
‘도마라……. 예상과 조금 다르네.’
도마는 팽중호의 예상과 조금 달랐다.
그는 나중에 나올 것이라 생각했으니 말이다.
처음은 젊은 무인 중 하나가 나올 것이라 판단했었다.
‘처음은 무조건 이기고 가겠다는 건데……. 뭐, 덕분에 우리는 더 좋지.’
도마가 처음에 나온 것은 아마 마교가 첫 전쟁에서 무조건 이기겠다는 생각일 터였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이전보다 더 강해져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마교의 생각.
팽중호는 도마가 처음 나온 것이 오히려 득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위지철의 실력이라면, 도마를 이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마교가 얼마나 놀랄지 궁금한데?’
* * *
“위 소협이 처음으로 나가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팽중호의 부탁.
위지철은 당연히 흔쾌히 수락했다.
이렇게 첫 전투부터 나갈 줄은 몰랐지만, 팽중호라면 다 생각이 있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삼백의 무림맹 무인들과 첫 전투에 나선 위지철.
“도마…….”
반대편에 마교도들을 이끌고 나온 도마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대번에 느껴지는 도마의 엄청난 기운.
이 기운에 위지철은 솔직히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이긴다면 큰 힘이 될 수 있다.’
도마 정도의 강자를 상대로 이긴다면, 분명 무림맹에 아주 큰 힘이 될 터였다.
위지철은 그래서 마음이 조금 놓였다.
상대가 너무 약했다면, 사실 조금 실망했을 터였으니 말이다.
도마는 분명 싸워서 이길 가치가 있는 무인이었다.
“도마라고 합니다.”
“위지철입니다.”
두 무인이 간단하게 통성명을 하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 전장에 나선 무인들이 일제히 기운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이제 곧 싸움이 시작될 것이란 걸 느낀 것이다.
“이 이상의 대화는 필요 없겠지?”
“예.”
스릉- 스릉-
도마의 도와 위지철의 검이 뽑혀 나왔다.
그와 동시에 사라지는 두 사람의 신형.
카아아아앙-!
두 사람이 중앙에서 싸우는 것을 시작으로, 육백 명의 무인들이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우와아아아아!!”
“가자아아아!!”
일대 장관.
육백 명의 무인들이 서로를 향해 달려드는 모습은 장관이라고 부를 만하였다.
모두 한가락 실력이 있는 무인들이니, 그 기세가 대단했다.
달려드는 마교와 무림맹의 무인들.
다만, 두 세력이 다른 점이 있었다.
마교 측이 그저 앞만 보고 무질서하게 달려든다면, 무림맹 측은 일정한 형태를 하고 달려든다는 것이었다.
‘대합진(大合陣).’
무림맹이 이번 전쟁에 앞서 준비한 합격진이었다.
가장 큰 골자는 다수의 인원으로 소수의 인원을 상대하는 합격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같은 수.
이 상태라면 이 합격진은 의미가 없을 수 있었다.
“소합진으로 바꿔라!”
마교와 부딪치기 직전.
무림맹의 진형이 바뀌기 시작했다.
소합진(小合陣).
혹시나 있을 상황에 대비해 준비한 합격진.
이것은 적은 수로 다수를 상대할 때 효용이 있는 진이었다.
지금과 같은 숫자에는 대합진보다는 훨씬 더 효용이 있는 것이 이 소합진이었다.
서걱- 푸욱- 촤아아악-
지금 이들 무림맹의 삼백 명은 이미 많이 합을 맞추어 본 이들을 선별한 것.
그러니 매우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마교도들을 베어 나갔다.
일순 우위를 점하는 무림맹.
하지만 그 우위가 길지는 않았다.
“크크큭! 재밌군. 재밌어!”
“크하하하하!!”
마교도들이 갑자기 폭발적으로 힘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 힘에 굳건하던 무림맹의 소합진이 깨지기 시작했다.
“컥!”
“크어억.”
팽팽해진 두 세력 간의 전쟁.
하지만 사람들은 지금 이 전쟁의 승패는 이들에게 달린 것이 아니란 걸 알았다.
지금 이 전쟁의 승패는 중앙에서 싸우고 있는 두 사람.
도마와 위지철에 의해 결정될 터였다.
카아아아아앙- 쾅-!
엄청난 공방.
두 사람은 서로 한 치의 밀림도 없이 막상막하의 싸움을 하고 있었다.
하늘이 떨리고, 땅이 뒤집히는 싸움.
“빨리 끝내고 싶으십니까?”
“물론입니다.”
위지철은 당연히 도마와의 싸움을 빨리 끝내고 싶었다.
그래야 무림맹이 입는 피해를 줄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지금 싸우고 있는 무리맹 무인 중에는 위지철과 안면이 있는 이들이 꽤 많았다.
“그럼 끝내도록 합시다.”
“감사합니다.”
도마도 길게 싸움을 끌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빨리 위지철의 힘을 보고 싶다는 것이 맞을 터였다.
위지철의 진짜 힘이 어느 정도일지 너무나 기대가 되었으니 말이다.
쿠구구구구구구구궁-
갑자기 주변에 거대한 떨림이 전해져 왔다.
이 떨림의 근원은 바로 도마.
한 사람의 몸에서 나온 기운으로 이런 상황이 일어나다니?
상천진원도(傷天振原刀).
이게 도마가 익힌 무공의 힘이었다.
“강하다.”
이 기운을 느낀 위지철이 입을 열었다.
확실히 도마는 강자였다.
그저 이 떨림이 보여 주기 위한 겉치레가 아니었다.
위지철의 내장까지 떨게끔 만드는 진동.
내공의 흐름마저 순탄하지 않게 만들었다.
스윽-
위지철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위지철의 태극신검이 가볍게 한번 움직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위지철 주변의 진동이 씻은 듯 사라졌다.
태극.
이제는 자연스럽게 이것을 펼치게 된 위지철이었다.
“놀랍습니다!”
도마가 위지철의 태극에 깜짝 놀랐다.
자신의 기운이 저렇게 감쪽같이 사라지다니?
직접 보고도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정말로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도마가 그대로 위지철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입가에 맺힌 진한 미소.
지금 이 싸움이 정말로 재미있는 그였다.
쿠구구구- 쿠우웅-
순간 엄청난 진동이 도마의 도에서 터져 나오며, 그대로 위지철에게로 향했다.
위지철의 태극을 찢어 내며 향하는 진동.
생사경.
도마도 이 경지에 도달하였고, 생사경에 도달한 상천진원도의 힘은 그야말로 개세(蓋世)의 힘.
아무리 위지철의 태극이라도 쉬이 무위로 돌릴 수 없는 힘이었다.
아니, 그래야 했다.
그런데…….
슈왁-
도마의 진동이 위지철의 코앞에서 사라졌다.
그대로 완벽하게 씻은 듯이 말이다.
“!!!”
이 모습에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깜짝 놀랐다.
심지어 척한준마저도 놀랐으니, 얼마나 이것이 놀라운 광경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될 만하였다.
“조금 전 신검의 검이 순간적으로 여섯 자루가 되었다.”
이것을 제대로 본 이가 이중 몇이나 될까?
아마 이 전장에서 열을 넘지 않을 터다.
도마의 공격이 위지철에게 닿기 직전.
순간적으로 위지철의 태극신검이 여섯 자루가 되었고, 그 검들이 모두 움직여 도마의 공격을 무위로 돌려 버렸다.
“싸움은 결착이 났습니다.”
척한준의 말처럼 지금 이 싸움은 끝이 났다.
서걱- 털썩-
도마의 몸이 그대로 허물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 앞에 위지철이 도도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위지철의 압도적인 승리.
분명 같은 생사경에 오른 무인이건만, 어떻게 이렇게나 차이가 날 수 있을까?
“소가주님과의 대련 때문에 쉽게 이길 수 있었다.”
위지철이 도마를 생각보다 쉽게 이긴 이유.
그것은 팽중호와의 대련들 때문이었다.
위지철은 그동안 정말 수없이 팽중호와 대련을 해왔다.
무림에서 도신이라 불리는 절세의 도객과 말이다.
천하를 다 뒤져 보아도 이렇게나 많이 절세의 도객과 대련을 해 본 이는 아마 위지철이 유일할 터였다.
이 밑거름이 지금 도마를 이기게끔 해 준 것이다.
‘소가주님에 비하면…….’
도마는 분명 엄청난 강자다.
하지만 팽중호와 비교한다면, 그는 상대적 약자였다.
이미 팽중호의 힘에 익숙해진 위지철이 느끼기에 도마는 확실히 부족했다.
그 어떤 방면으로도 말이다.
탓-
위지철의 신형이 다시금 빠르게 움직였다.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 * *
첫 번째 전쟁은 무림맹의 승리로 끝을 맺었다.
사실상 위지철이 도마에게 승리함으로써 끝이 난 것이었다.
첫 승리를 가져간 덕분에 지금 무림맹의 사기는 더없이 고무되어 있었다.
“다음이 제일 문제입니다.”
하지만 팽중호는 썩 표정이 밝지는 않았다.
첫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정작 다음에 치러질 전쟁이 큰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마교가 두 번째에서 반드시 이기기 위해 나설 것이니 말이다.
가장 위험이 큰 싸움이 남은 것이다.
“누가 나가야 할지…….”
“그럼, 내가 나가겠네.”
팽중호가 두 번째로 누구를 내보낼지를 고민할 때, 장순학이 대뜸 자신이 나가겠다고 하였다.
위험한 일에 무림맹주인 그가 직접 나서려는 것이었다.
“안 됩니다.”
팽중호가 거절했다.
장순학은 무림맹주다.
그의 존재는 분명 무림맹의 사기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칠 터다.
“아니. 내가 나가야겠네.”
웬만하면 팽중호의 말을 들어주는 장순학이지만, 이번만큼은 뜻을 굽힐 생각이 없었다.
팽중호는 그의 이런 뜻을 고스란히 느꼈다.
“……알겠습니다. 다만,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는 남았습니다.”
하지만 전쟁에는 장순학 혼자만 나가는 것이 아니다.
다른 무인들도 함께 나서야 한다.
그런데 이번 전쟁은 분명한 사지.
그런 곳으로 누구를 들어가라 한단 말인가?
“걱정 말게. 이미 다 준비했으니.”
“예?”
준비했다니?
이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
“첫 전쟁이 끝나자마자, 나와 함께할 이들을 모았네.”
장순학은 위지철이 승리하자마자, 미리 자신과 함께 다음 전쟁에 나설 이들을 모았다.
장순학 또한 다음 전쟁이 얼마나 위험할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쉽지 않을 겁니다.”
팽중호가 더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장순학에게 물었다.
이것은 정말로 목숨을 장담할 수 없는 싸움이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구 할 이상으로 죽을 확률이 높았다.
“자네가 마교를 막아 줄 것 아닌가? 나는 그것이면 되었네.”
“종남파는 어쩌시려고 그러십니까.”
“종남파에는 이미 씨앗을 심어 두었네. 내가 없어도 괜찮겠지……. 자네가 잘 크는지 지켜봐만 주게.”
“……그런 소리 마시고, 살아서 오십시오.”
“그래. 그러지.”
“약속하신 겁니다.”
장순학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살아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말이다.
* * *
두 번째 전쟁.
다시금 중앙에 마주 선 두 세력.
이번에는 어제와 조금 달랐다.
단 오십 명의 무인.
오십 대 오십의 싸움이었다.
‘정예전.’
두 번째 전쟁은 바로 정예를 뽑아 치르는 싸움이었다.
지금 무리맹 오십은 장순학이 이끌고 나왔고, 마교 측 오십은 독마가 이끌고 나섰다.
그런데 독마가 이끌고 나온 오십의 무인들이 조금 특이했다.
모두 얼굴에 가면을 쓰고 있었으니 말이다.
“안녕하신가. 나는 독마라고 하네. 이들은 천비대라고 하고 말이네.”
가면을 쓴 마교도들.
그들은 바로 이번에 마교의 새로운 핵심 전력으로 들어오게 된 천비대였다.
천비대는 싸울 때는 얼굴에 가면을 쓰는 전통과 같은 것이 있었기에, 이렇듯 가면을 착용하고 나선 것이었다.
“장순학입니다.”
“클클. 무림맹주가 벌써 나올 줄이야. 재미있게 되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