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의 개망나니-192화 (192/200)

192화 자극하기에 충분할 겁니다.

무림맹이 마교를 맞이하기 위해 떠나기 전날 밤.

무림맹의 밤은 그 어느 때보다 고요하며 뜨거웠다.

다들 가만히 쉬고 있었지만, 그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투기는 뜨거웠다.

팽중호는 그것을 느끼며 흡족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 이런 투기는 필요하지.’

투기가 있다는 것은 싸울 마음이 가득하다는 것.

전쟁에 앞둔 이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마음이었다.

“후. 좋아, 이제 나만 가다듬으면 되겠어.”

팽중호는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홀로 개인 연무장에 섰다.

아무도 없는 혼자만의 공간.

팽중호는 이 공간에서 멸뢰진천도를 손에 들고, 가만히 서 있기만 하였다.

마치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듯 가만히 서서 움직이지 않는 팽중호.

하지만 지금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

쿠르르르릉- 쿠르릉- 콰쾅-

팽중호의 내면에서는 엄청난 뇌성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지금 내면에서 척한준과 싸움을 하는 것이었다.

완벽한 정(靜)의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심상 수련.

주르륵-

그저 심상 수련이건만 팽중호의 몸에서 땀이 흐르고 있었다.

그만큼 지금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는 뜻.

그렇게 한참이나 지났을 때, 드디어 팽중호의 몸이 꿈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겼다.”

그저 심상일 뿐이지만, 싸움에서 승리했다.

물론 지난번에 본 척한준을 토대로 만들어 낸 상상 속의 상대이기에, 아마도 진짜 척한준은 더욱 강할 터였지만 말이다.

“더욱 마음의 칼을 갈자.”

팽중호는 이번에는 실제로 싸움을 하듯이 몸을 움직였다.

상상 속의 척한준과의 대련을 이번에는 동(動)의 상태에서 하는 것이었다.

또다시 땀을 흘리는 팽중호.

물론 늘어난 땀만큼이나 팽중호의 입가에 피어나는 미소가 진해졌다.

“좋아. 그럼 이건 여기까지하고……. 이번에는 심신의 안정을 좀 가다듬어 볼까?”

팟-

순식간에 팽중호의 신형이 사라졌다.

* * *

이세경은 밤이 늦었지만, 잠을 자지도 못하고 의자에 앉아서 가만히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제발 무사하기를…….”

지금 그녀는 팽중호의 무사를 기도하는 것이었다.

내일이면 팽중호가 무림맹을 떠나서 마교와의 싸움에 임한다.

팽중호의 연인으로서 당연히 걱정될 수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는 기도를 드리는 것 뿐이기에, 이렇게 열심히 기도라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제발……. 비나이다…….”

“누구한테 그렇게 빌어?”

“??”

한창 기도를 드리던 이세경은 갑자기 들려온 귀에 익은 목소리에 기도를 멈추었다.

“가가?”

“보고 싶어서 왔어.”

지금 이세경이 머무는 곳에 나타난 이는 바로 팽중호.

팽중호는 무림맹에서 하북팽가까지 달려온 것이었다.

와락-

팽중호를 보자마자 이세경이 와락 그에게 안겼다.

팽중호는 그런 이세경을 마주 가볍게 안아 주며 입을 열었다.

“걱정할 거 하나 없어. 나 못 믿어?”

“믿습니다. 하지만……. 걱정되는 마음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확실히 이세경이 보기에도 이번 싸움은 결코 쉬운 싸움이 아니었다.

팽중호가 강하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지만, 상대도 그만큼 강하다는 것을 들었다.

상인이다 보니 정보에 민감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벌써 상단 중에서는 마교에 줄을 대려는 이들이 생겨날 정도.

이것은 바로 마교의 힘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였다.

그러니 어찌 팽중호가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믿고 기다려 줘. 반드시 살아서 돌아올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믿음의 증표를 받아야겠습니다.”

“증표?”

쪽- 후웁-

이세경의 입술이 팽중호의 입술로 향했다.

그렇게 잠시간을 붙어 있던 둘.

“제 첫 번째 입술을 가져가셨으니, 반드시 오셔야 합니다.”

“하하. 물론이지.”

팽중호와 이세경은 그렇게 아주 잠시간의 대화를 나누었고, 이내 팽중호는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무십니까?”

“아니다. 들어오거라.”

팽중호가 다음으로 찾아간 사람은 아버지인 팽자성.

팽자성 또한 잠이 들지 못하고, 가주실에 앉아서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스리고 있는 중이었다.

“큰일을 나가기 전에 들른 것이냐?”

“예.”

“피곤하지는 않고?”

“이런 거로 피곤하지는 않습니다.”

팽자성 또한 팽중호가 걱정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제 하나 남은 아들이니 말이다.

거기에 더해 앞으로 하북팽가의 흥망을 쥐고 있는 아들이니 더욱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몸 성히 올 것이라 믿으마.”

“예. 이렇게들 다 저를 걱정해 주시는데, 당연히 몸 성히 돌아와야죠.”

“그래.”

팽자성은 빙그레 미소를 지어 주었다.

여기서 자신이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면, 팽중호의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내보인 미소였다.

“네 처소에 가서 조금이라도 자 두는 것이 어떻겠느냐?”

“안 그래도 그럴 생각입니다. 이제는 잠을 좀 잘 수 있을 것 같으니 말입니다.”

“그래. 이만 가 보도록 하거라.”

“예.”

인사를 끝으로 팽중호는 하북팽가에 있는 자신의 처소로 향했다.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처소.

팽중호는 곧바로 처소에 있는 침상에 몸을 던졌다.

“역시 집이 좋긴 좋다.”

무림맹에 있는 처소도 당연히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어찌 집보다 좋을 수 있겠는가?

집이란 존재는 존재만으로도 이렇게나 마음이 편해지는데 말이다.

“으음?”

그때.

팽중호의 처소로 다가오는 수많은 기운들이 느껴졌다.

이 기운들에 팽중호는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정말들…….”

똑똑-

“주군. 주무십니까?”

팽중호가 몸을 일으키자마자 들려오는 소리.

누구인지 대번에 알 수 있는 목소리였다.

“기다려.”

잠깐 기다리라고 한 뒤, 팽중호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눈에 보이는 수많은 하북팽가의 식솔들.

그들 모두가 지금 이곳에 모여든 것이다.

“모두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그들의 가장 앞에서 서 있는 이는 바로 도수.

도수가 대표로 그들을 대신해서 말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무슨 인사?”

“감사하다고, 죄송하다는 인사입니다!”

지금 하북팽가가 이렇게까지 잘되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팽중호의 덕이다.

하북팽가의 모든 식솔들은 그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렇기에 팽중호가 무림의 흥망을 건 큰 싸움에 나서는데 자신들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함에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렇게 인사를 하는 것뿐.

“다들 아시면 되었습니다. 크크.”

“소가주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닌 밤중에 우렁차게 터져 나오는 감사의 인사.

팽중호는 이런 낯간지러운 상황에 장난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뭐 나쁜 기분은 아니네.’

지금의 상황이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조금 기쁘다고 할 수도 있었다.

저들이 자신의 노고를 인정해 준 것이나 마찬가지니 말이다.

“주군! 꼭 돌아오시기를 바랍니다!”

“그래.”

식솔들은 팽중호가 피곤하지 않게 하도록 더 이상의 왈가불가를 하지 않고 다들 자리를 떠났다.

“꼭 이겨야 할 이유가 계속 늘어나네.”

* * *

무림맹의 행렬이 출발했다.

어느새 하북팽가에서 돌아온 팽중호는 행렬의 가장 앞에서 장순학, 위지철과 함께 행렬을 이끌었다.

다들 비장한 표정들을 하고 움직였는데, 그 모습이 흡사 잘 정돈된 군대와도 같았다.

“지금 마교는 어디쯤 오고 있지?”

“예. 이제 곧 처음 준비한 곳에 도달할 겁니다.”

장순학의 물음에 개방 방도가 대답했다.

지금 마교는 무림맹이 첫 번째로 준비한 곳에 도착하기 직전이었다.

무림맹은 최후의 결전을 할 곳이 아닌, 그곳까지 오는 길목에 몇 가지 장치를 해 두었다.

“얼마나 성공할 것이라 생각하나?”

장순학은 옆에 있는 팽중호에게 물었다.

“아마도 큰 효용을 기대하기는 힘들 겁니다.”

“역시 그런가…….”

“하지만 그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할 겁니다.”

아마 준비해 둔 것들로 마교에 제대로 된 타격을 줄 수는 없을 터였다.

그들도 바보는 아니니 말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들을 하느냐?

그것은 그들을 자극하기 위함이었다.

‘분노와 흥분은 눈을 어둡게 하지.’

그들은 이번에 준비한 것들을 겪으면서, 분노하고 흥분할 터였다.

치졸하고 약은 수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피해를 입으면 좋겠지만, 이것만 달성해도 충분했다.

마교는 이것들에 시야가 좁아질 것이고, 또한 과민반응을 하며 스스로를 옭아맬 테니 말이다.

‘이것은 군사라는 자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마뇌가 아무리 대단한 군사라고 하여도, 이런 감정적인 것들까지 조절할 수는 없을 터다.

“그래도 뭐, 좀 크게 당해 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랬으면 좋겠군 그래.”

* * *

마교의 행렬이 산길에서 잠시 멈추어 섰다.

그들은 지금 이곳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뭔가 준비한 게 있나 봅니다.”

척한준이 여유로운 목소리와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그의 기감에 여럿이 걸려들었으니 말이다.

“클클. 약은 수를 준비했군.”

척한준의 주변에 있던 독마가 비웃음을 흘리며 조금 앞으로 나섰다.

본인이 직접 나서서 처리하려는 것이었다.

“부탁드립니다.”

“기다리게.”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천천히 앞으로 나서는 독마.

하지만 그럼에도 주변에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숨어 있다고 능사가 아님을 알 터인데? 나와서 발버둥이라도 쳐 보거라.”

사사사사사삭-

그때 일순 사방의 풀숲이 흔들리기 시작하며, 무언가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암기다!”

“컥. 독. 독이다!”

마교 행렬을 향해 튀어 나간 것은 바로 독과 암기.

사천당가에서 준비한 것들이 튀어져 나간 것이다.

몇몇 마교도들이 이것에 당해 쓰러지기 시작했다.

화아아아아아아악-

“내가 있는데 독을 쓰다니……. 재밌군 그래. 클클.”

독마의 몸에서 엄청난 독기가 뿜어져 나오며 사방을 뒤덮기 시작했다.

그는 지금 자신을 앞에 두고 독을 쓰는 이들이 굉장히 불쾌했다.

감히 독마라 불리는 자신 앞에서 독을 뿌리다니.

사사사사사삭-

하지만 지금 독과 암기를 던진 이들은 미련 없이 몸을 둘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마교도들이 쫓아가려고 하였지만, 그들은 이곳의 지형에 익숙하지 않으니 느릴뿐더러, 작정하고 도주하는 자들을 잡을 수도 없었다.

“정말로 약은 수를 펼치고 있군.”

독마가 인상을 구겼다.

이건 생각보다도 너무나 약은 수였으니 말이다.

“저희를 분노케 할 생각인 듯 싶습니다.”

마뇌가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그녀는 지금 무림맹의 생각을 읽은 것이다.

“우리를 분노하게 한다? 그들이 얻는 것이 무엇이지?”

“저희의 눈을 어둡게 할 생각일 겁니다.”

“클클. 그렇단 말이지? 그럼 그 생각을 좀 바꿔 줘야겠군 그래.”

독마는 지금 다시금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기운들을 읽었다.

그것을 느끼고 섬찟하게 미소 짓는 독마.

그는 무림맹의 얕은 생각을 박살 낼 생각이었다.

조금 수고스럽더라도 말이다.

화아아아아아악- 사아아아아아-

독마의 주변에 지독한 독무가 짙게 깔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독마의 신형이 사라졌다.

“크어어억!”

“쿠와악!”

갑자기 터져 나오는 고통에 찬 비명.

마교도들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이 비명의 출처는 바로 무림맹 무인들이었다.

그들은 지금 갑작스러운 독마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것이었다.

압도적인 강함.

독마는 지금 습격을 가한 무림맹 무인들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의 무인이 아니었다.

퍼엉-!

그때 독마의 공격이 처음으로 누군가에 의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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