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잘 보고 있지?
화아아악- 휘이이이익-
무림맹의 연무장에서 팽중호가 엄청난 기세로 도를 움직이고 있었다.
오호단문도(五虎斷門刀).
그것을 직접 펼치고 있는 중이었다.
처음 펼치는 것이지만, 마치 수십 년은 익힌 듯 막힘없이 펼쳐 내는 팽중호.
‘내가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 많다.’
팽중호가 생각지 못했던 방식의 움직임들이 다수 오호단문도에 존재했다.
역시나 하북팽가를 대표하는 도법 중 하나라고 할만했다.
“채령아. 무슨 일이냐?”
한창 오호단문도를 펼치던 팽중호가 움직임은 멈추지 않은 채로 고개만 돌려 한 곳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팽중호를 바라보고 있는 인영 하나.
바로 곽채령이었다.
“저도 올라가고 싶어요.”
“어디를 산에라도 말이냐?”
“아시면서 그러세요!”
곽채령이 팽중호를 찾아온 이유.
그것은 바로 생사경에 오르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심마에 든 이후 되도록 가벼운 운기만을 하며 지냈다.
그 상태에서 무리하게 수련을 하면 다시금 심마에 빠질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대로 있을 수는 없었다.
‘가만히 있다가 그저 짐이 될 수는 없어.’
그녀는 짐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무림맹에, 팽중호에, 그리고 위지철에 힘이 되고 싶었다.
물론 지금도 충분히 힘이 될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알았다.
생사경에 오르지 못한다면, 제대로 된 힘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생사경에 꼭 오르고 싶었다.
“내가 무슨 생사경에 올려 주는 능력이라도 있는 줄 아냐?”
“그런 거 아니셨어요?”
“……됐다. 심마를 이겨 냈는지부터 보자.”
팽중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곽채령에게 심마를 이겨 냈는지부터 보자고 하였다.
심마를 이겨 내지 못했으면, 팽중호가 무슨 조언을 해 주더라도 소용이 없으니 말이다.
“네!”
스윽-
곽채령이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태극청뢰신장(太極靑雷神掌)을 펼쳐 내며 팽중호에게 달려들었다.
역시나 위력적인 모습.
하지만 팽중호는 지금 곽채령의 공격에서 망설임을 느꼈다.
“아직 못 이겨 냈구나.”
“아니에요!”
더욱 힘을 내어 보는 곽채령.
하지만 지금 곽채령의 태극청뢰신장은 어딘가 부자연스러움이 느껴졌다.
부드럽게 흐르지 못하는 공격.
공방일체의 무공인데 공격이 매끄럽지 못하니, 당연히 수비 또한 매끄럽지 못했다.
팽중호는 지금 막 처음 펼쳐 본 오호단문도로 수월하게 이런 곽채령을 상대했다.
“네가 심마를 이겨 내지 못하면, 가르쳐 줄 수 있는 건 없다.”
심마를 이겨 내는 것은 팽중호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없었다.
물론 이런저런 말은 해 줄 수 있었지만, 심마는 전적으로 본인이 떨쳐 내야만 하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팽중호가 생사경으로 나아갈 수 있는 어떤 조언을 해 주어도, 심마의 벽에 막혀 나아가지 못할 터였다.
아니, 어쩌면 더 큰 심마에 빠져 주화입마에 들어 버릴 수도 있었다.
“지금 심마를 이겨 내. 내일은 없으니까.”
“알겠어요.”
조만간 무림맹을 떠나 마교와 싸울 장소로 출발하게 된다.
가는 길에는 충분한 시간이 없다.
충분한 시간이 있는 것은 지금뿐.
지금 곽채령이 심마를 털어 내야만 하였다.
털썩-
곽채령이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서 가부좌를 틀고 운기행공을 시작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그녀의 모습.
파지지지지직- 파지지직- 파지짓-
청뢰가 그녀의 주변으로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완전히 그녀를 감싸는 청뢰.
순탄하게 휘감던 청뢰가 갑자기 거칠게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다시금 심마에 빠지려고 하는 것이었다.
“위로 올라가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그딴 거에 지면 못 올라간다.”
파지지지지지지직-!! 파지지지지지직-!!
팽중호의 말에 청뢰가 더욱 거칠게 꿈틀거렸다.
완전히 심마에 빠져들 것만 같은 모습.
하지만 팽중호는 그저 지켜보기만 하였다.
“소가주님.”
“가만히 지켜봐 주십쇼.”
“하지만…….”
“이겨 낼 겁니다.”
곽채령의 기운을 느끼고 어느새 위지철이 다가와 있었다.
위지철은 지금 또다시 곽채령이 심마에 빠져들까 걱정하는 모습이었지만, 팽중호는 단호하게 지켜만 보라고 하였다.
지금은 스스로 헤쳐나가야 할 때였다.
물론 만약 여기서 곽채령이 잘못되려 한다면, 팽중호가 나서서 막을 터였지만 말이다.
‘자, 보여 줘라. 너의 재능을.’
곽채령의 압도적인 재능.
위지철과 비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진 그녀다.
이런 심마쯤은 분명히 이겨 낼 수 있을 터였다.
콰지지지지지직-! 콰지지지지지직-!
점점 더 거칠어지고, 거대해지는 곽채령의 기운.
이대로라면 곽채령이 이 힘을 이겨 내지 못할 것 같았다.
“소가주님!”
“채령이의 표정을 보십시오. 위 소협.”
“아……!!”
다급하게 팽중호를 부르며 막으려고 하던 위지철은 곽채령의 표정을 보라는 말에 몸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너무나도 평온한 표정.
그것은 절대로 심마에 빠져든 사람의 표정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위지철은 움직이려던 몸을 멈추고, 팽중호의 옆에 서서 곽채령을 지켜보았다.
“오늘 무림은 또 하나의 생사경 고수를 만날 겁니다.”
곽채령은 그저 심마를 이겨 낸 것뿐이지만, 팽중호는 그것이면 그녀가 생사경으로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지금 곽채령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심마 하나뿐이었다.
그것을 지금 극복했으니, 이제 위로 올라갈 일만 남은 것이다.
파앗-! 파짓- 파지짓- 파직-
거세게 곽채령을 휘감던 뇌기가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이내 아주 미약한 뇌기만이 곽채령을 휘감고 있을 뿐이었다.
그 많던 기운이 사라진 것일까?
아니다.
지금 그 기운들이 전부 곽채령의 몸에 응축되어 들어간 것이었다.
스윽- 번쩍-!
곽채령이 살짝 눈을 뜨자, 엄청난 안광이 터져 나왔다.
주변이 일순 밝아질 정도의 엄청난 안광.
그녀의 눈이 완전히 푸르른 벽안으로 변하여 있었다.
“자, 채령아. 이제 준비가 된 것 같다.”
“무언가…… 무언가 잡힐 것 같아요.”
지금 곽채령은 위지철이 온 것도 모르고, 몸을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방금 심마를 극복하면서 무언가 크게 변하려 한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그것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곽매는 분명 잡을 수 있을 거야.”
“앗! 가가. 언제부터 계셨어요?”
“조금 전에 왔어.”
“자자, 시간이 많지 않아. 애정 행각은 나중에 하자고.”
팽중호의 말에 곽채령은 다시금 자세를 잡고 팽중호의 앞에 섰다.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곽채령의 기운.
팽중호는 미소를 지으며 곽채령을 바라보았다.
“자, 들어와 봐라.”
“넷!”
팟-
곽채령이 다시금 팽중호에게 달려들었다.
심마가 사라졌음일까?
아니면, 더 강해져서일까?
곽채령의 움직임이 좀 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좋아. 그렇지.”
팽중호는 물론 여전히 오호단문도를 펼치며 곽채령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가 이 오호단문도를 계속해서 펼쳐 내는 이유.
그것은 바로 곽채령 때문이었다.
‘채령이가 위로 올라갈 길이 이 오호단문도에 있다.’
지금 곽채령이 펼치는 태극청뢰신장이 위로 올라갈 단서.
그것이 지금 이 오호단문도에 있었다.
곽채령의 태극청뢰신장의 근간은 혼원벽력신장.
그리고 그것과 함께 근간을 이루는 것은 태극공이다.
전혀 다른 묘리를 담은 두 무공을 분명 완벽하게 합쳐 냈지만, 아직 필요한 것이 더 있었다.
‘변화(變化).’
너무나 직선적인 움직임을 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팽중호처럼 완벽히 극강의 길로 가면 다르겠지만, 지금 곽채령은 극강에 더해 부드러움까지 쫓는 중이다.
그러다 보니 확실히 조금씩 부족한 것이 사실.
그렇기에 그것에 더해질 무언가가 필요했다.
‘오호단문도는 그것을 채워 줄 가장 훌륭한 무공이다.’
갑자기 변화를 넣는다면 오히려 위력만 반감이 되는 결과를 가져올 터다.
하지만 오호단문도는 극강의 위력에 변화를 완벽하게 녹여 낸 무공.
이 정도의 변화라면 위력을 절대로 줄이지 않고, 다양성은 더욱더 높여 줘, 곽채령을 생사경의 경지로 올려 줄 터였다.
‘이것을 채령이가 깨달아야 한다는 전제가 깔리지만……. 뭐, 걱정할 거 없겠네.’
팽중호는 지금 곽채령의 두 눈이 오호단문도를 읽고 있다는 것을 보았다.
그렇기에 더욱더 잘 보일 수 있도록 펼쳐 주었다.
곽채령의 머릿속에 각인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잘 보고 있지?”
“네! 잘 보고 있어요!”
계속되는 비무.
아니, 비무라기 보다는 팽중호의 무공 시연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오호단문도의 모든 것을 보여 주는 팽중호.
곽채령은 그것을 눈으로 보고, 몸으로 체득하고 있었다.
“자. 끝이다.”
“감사해요!”
비무가 끝이 났다.
곽채령의 푸르른 벽안이 너무나도 밝게 빛나고 있었다.
아니, 실제로도 지금 곽채령의 몸에서는 청뢰가 흘러나오며, 그녀를 밝게 비추고 있었다.
“그럼 나는 쉬러 간다. 위 소협이 잘 지켜봐 주실 거죠?”
“예. 제가 지키겠습니다.”
곽채령은 아마 이대로 깨달음에 들어갈 것이다.
그러니 그녀를 누군가 옆에서 지켜봐 주어야 할 터.
팽중호는 그 몫은 위지철에게 맡기었다.
누가 뭐래도 두 사람은 연인이니 말이다.
‘이거 세경이나 보고 올까?’
* * *
무림맹의 아침.
연무장에 무인들이 도열해 있고, 그 앞에 팽중호가 거대한 상자를 옆에 두고 서 있었다.
“자. 이게 여러분에게 드릴 단약입니다.”
“오오.”
상자에 든 것은 바로 공청석유로 만들어 낸 단약.
당조윤이 직접 이것을 만들어 내었는데, 사천당가의 모든 것이 녹아든 단약이라고 할 수 있었다.
소림의 대환단을 뛰어넘는 단약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물건.
팽중호는 지금 그것을 이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하는 것이었다.
“한 분씩 앞으로 나와서 받아 가시고,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한 명, 한 명씩 앞으로 나와 팽중호에게 단약을 받아서 갔다.
그렇게 모두가 단약을 받아들고 다시금 자리로 향했다.
“그럼 동시에 섭취하겠습니다.”
“예!”
단약을 동시에 섭취하는 이유.
그것은 지금 이곳에 축기진이 실치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더욱 효율적으로 이 단약의 기운을 흡수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래야 내가 이들의 운기를 도울 수 있지.’
팽중호는 이렇게 이들이 보이는 곳에서 운기를 해야 자신이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들 모두 무림맹 상위 서열에 있는 고수들이지만, 그래도 자신이라면 도움을 충분히 줄 수 있었다.
아주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된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꿀꺽-
단약을 든 이들이 모두 동시에 단약을 삼켰다.
화아아아아아악-
후우우우우우웅-
순식간에 주변에 가득해지는 기운.
그 기운들이 빠져나가기 전에 축기진이 그 기운들을 꽉 붙잡아 두기 시작했다.
“흠. 좋아.”
팽중호는 우선 이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다가 누군가 막히는 것 같다 싶으면 곧바로 달려가 운기를 도왔다.
절대 영역을 뛰어넘은 팽중호다.
기운의 흐름이 보이기에 가능한 도움이었다.
“정말로 이제 준비가 끝이 나 간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사람의 할 일을 다 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리라는 말.
이제는 정말 이 말과 딱 맞는 상황이 되었다.
마교를 상대할 준비는 이제 다 하였고, 하늘의 뜻만 남은 상황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