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의 개망나니-190화 (190/200)

190화 제가 먹지는 않을 겁니다.

달밤 아래의 비무.

팽중호와 위지철은 가볍게 검과 도를 주고받고 있었다.

이것은 힘을 알아보기 위한 비무와는 달랐다.

서로의 무공으로 서로에게 말을 하는 것이었다.

‘이길 수 있습니까?’

‘이길 수 있습니다.’

‘저는 통할 것 같습니까?’

‘분명히 통합니다.’

말 한마디 하지 않았지만, 충분한 대화가 이어졌다.

검과 도를 타고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일까?

두 사람의 비무는 비무라기보다는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듯했다.

너무나 아름다운 연극.

다만, 지금 이것을 보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소가주님. 마지막으로 저와 한 곳만 같이 가 주실 수 있습니까?”

“어디입니까?”

내일 마교를 상대하기 위해 떠나야 하는 지금 이 상황에 어디를 가자고 하다니?

하지만 위지철이 그런 것도 생각지 못할 사람이 아니니, 분명 무언가가 있을 터.

팽중호는 궁금함에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물었다.

“가까운 곳입니다. 제가 발견한 것이 있습니다.”

“발견한 것이요? 알겠습니다. 일단 가죠.”

위지철이 발견한 것이라니?

더욱 궁금증이 차오른 팽중호는 일단 가 보기로 하였다.

탓-

위지철이 앞서 달려갔고, 그 뒤를 팽중호가 따라 달렸다.

둘 다 생사경에 도달한 무인들인 터라, 엄청난 속도로 움직였다.

그렇게 앞서 달리던 위지철이 어느 절벽 앞에서 딱 멈춰 섰다.

“여기입니다.”

“호오?”

절벽 앞에 도착한 팽중호는 대번에 이 절벽에 범상치 않은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위지철은 왜 먼저 찾아보지 않고, 자신을 불렀을까?

“아무래도 저곳에 팽가의 선조께서 계신 것 같아서 말입니다.”

“??”

팽가의 선조가 있다?

팽중호는 위지철이 가리킨 곳을 바라보았다.

절벽의 까마득한 곳에 뚫려 있는 하나의 동혈.

웬만한 이들이라면 보이지도 않을 곳이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자연히 생긴 것처럼 보이는 동혈은 아니었다.

동혈의 주변에 새겨진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가까이서 봐도 눈에 잘 보이지도 않은 아주 작은 문양이지만, 생사경에 다다른 팽중호에게 그런 것은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소 떨어져 있었지만, 마치 코앞에 있는 것처럼 볼 수 있었다.

‘벼락과 호랑이라…… 그렇군.’

그려진 문양은 하북팽가에 그려져 있는 벼락과 호랑이 문양과 똑같았다.

위지철도 그것을 알기에 지금 이렇게 팽중호를 데리고 온 것이었다.

“어쩌다 발견하셨습니까?”

“수련할 곳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팽중호가 하북팽가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위지철은 이곳 무림맹에 남아서 시간을 보내었다.

무당파는 이미 비워 두고 다들 무림맹에 있는 상태였고, 곽채령마저도 이곳 무림맹에 머물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위지철은 제대로 수련할 곳을 찾기 위해 무림맹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이곳을 발견한 것이었다.

“제가 먼저 들어가 볼까 했지만, 아무래도 소가주님께서 먼저 가시는 것이 맞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먼저 들어가셨어도 되었는데…….”

위지철이 먼저 들어갔어도 아무런 문제는 없었다.

이런 것은 먼저 발견한 자가 차지하는 것이 무림의 암묵적인 규율이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위지철은 이것이 하북팽가의 선조가 남긴 것이라 판단하고, 팽중호가 들어갈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아닙니다. 소가주님이 들어가십시오.”

“그럼.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팽중호는 위지철의 배려를 거절치 않았다.

하북팽가와 관련이 되어 있는 것이니 말이다.

탓-

팽중호가 가볍게 발을 굴러 절벽을 타고 올라 동혈로 들어섰다.

역시나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 낸 인조 동굴이었다.

“도(刀)로 깎았군.”

한 사람이 도를 이용해서 깎아 낸 동굴.

팽중호는 동굴을 이리저리 바라보며 안으로 천천히 들어섰다.

기감을 최대로 활성화해 놓아 혹시나 함정이나, 숨겨진 곳이 없는지도 착실히 찾아보았다.

똑- 똑- 똑- 똑-

안쪽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팽중호는 그곳이 도착지임을 느꼈다.

“흐음. 대단하시군.”

물소리가 들려온 곳은 넓디넓은 공동.

혼자서 이 정도 공간을 파내려면 상당한 고생은 물론이고, 그만한 실력 또한 받쳐 주었어야 할 터.

팽중호의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백골이 대단한 고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떤 분이실까.”

백골 앞에 놓여 있는 두 권의 서책.

그리고 그 뒤에 영롱한 빛을 내며 모여 있는 물 한 그릇.

“공청석유군.”

공청석유(空靑石油).

팽중호도 정말 오랜만에 보는 희대의 영약.

그런데 그런 영약이 지금 조금도 아니고, 밥그릇만큼 채워져 있었다.

실로 엄청난 양.

“책부터 볼까.”

팽중호는 공청석유를 건드리기 전에 우선 앞에 있는 책부터 살펴보기로 하였다.

분명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듯 보였지만, 책의 상태는 너무나 깔끔하였다.

가까이서 보니, 백골의 상태 또한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한 상태였다.

“공청석유의 기운이 보호해 주었군.”

공청석유의 기운이 이 공동을 감싸고, 그것이 이 백골과 서책을 보호해 준 듯싶었다.

서책의 겉에는 제목이 쓰여 있었는데, 하나는 무공서, 하나는 일기인 듯싶었다.

“오호단문도?!”

팽중호의 눈길을 확 사로잡는 무공서의 이름.

오호단문도(五虎斷門刀).

정말 오래전에 하북팽가에서 절전된 도법으로, 하북팽가를 상징하는 무공 중 하나였던 무공이 바로 오호단문도였다.

그 위력이 혼원벽력도와 비슷하다고 알려진 절세의 도법.

이 오호단문도가 절전되고, 이것을 대신해 만들어진 도법이 바로 노호진산도였다.

“나도 처음 보는데. 아직 남아 있었다니…….”

팽중호도 오호단문도에 대해서는 이야기만 들었지, 실제로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제는 완전히 소실되어 다시는 보지 못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예상치 못한 곳에서 다시금 찾게 된 것이다.

“일기부터 읽어 보자.”

팽중호는 오호단문도보다 먼저 옆의 일기를 펼쳐 들었다.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왜 오호단문도를 가지고 있었는지가 궁금했으니 말이다.

사락- 사락- 사락- 사락-

일기에 쓰인 내용은 큰 내용은 없었다.

우선 일기의 주인은 오래전 하북팽가의 장로였던 자.

그는 하북팽가를 떠나와 이곳에 홀로 지내며 이 동혈을 만들었는데, 그 이유가 바로 뒤에 있는 공청석유 때문이었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 엄청난 양의 공청석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원래 이 공청석유를 자신이 모두 차지하려다가, 이 동혈이 특수한 곳임을 깨닫고 공청석유를 건드리지 않았다.

이곳은 지금 공청석유가 만들어지는 장소.

이대로 오랜 시일 동안 놓아 둔다면, 많은 양의 공청석유가 모일 터였다.

-이것을 세가에 알리고, 이것을 보호해야 한다.

그래서 이 소식을 하북팽가에 알리기 위해 움직이려던 그는, 떠나기 직전 운기를 하다가 주화입마에 빠지게 된다.

이 동혈에 가득한 기운을 예상치 못하고 운기를 하다가 너무 심취해 버린 탓이었다.

순식간에 기혈들이 모조리 상하고, 내공을 잃어버린 그.

목숨은 건졌지만, 무인으로서의 생명은 끝나 버렸다.

그렇기에 이 동혈에는 들어왔지만, 나갈 방도는 없어져 버린 것이다.

-다행히도 나에게 빈 서책이 있으니, 이야기를 남기게 된 것이다.

그는 평소에도 이런저런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해, 봇짐에 빈 서책을 넣어 다니고 다녔기에 이렇게 마지막 글을 남길 수 있었다.

이 앞에 적힌 오호단문도는 그가 마지막에 얻은 깨달음까지 더해진 오호단문도.

동혈 밖에 새겨진 문양은 하북팽가의 사람이 이 동혈을 발견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가 새긴 것이었다.

“덕분에 이렇게 왔습니다.”

팽중호가 백골을 향해 절을 올렸다.

그는 선조이자, 하북팽가를 위해 이것을 먹지 않고 보호하려던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텁-

일기를 다 읽은 팽중호는 우선 일기와 오호단문도를 바로 품에 챙겼다.

밖에서 위지철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오호단문도는 무림맹으로 돌아가서 읽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릇에 가득 담긴 공청석유를 손에 들었다.

“이렇게 많은 공청석유라니.”

정말 어마어마한 양의 공청석유였다.

지금까지 무림에 등장했던 공청석유를 다 합쳐도 이 양에 못 미치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

마교와의 전쟁에 앞서 이것은 분명 아주 큰 기연이었다.

타탓-

팽중호는 가볍게 발을 굴러 절벽 아래로 몸을 날렸다.

마치 깃털이 떨어지듯 아주 천천히 허공을 유영하며 내려서는 팽중호.

아래에서 팽중호를 기다리던 위지철은 그 모습을 보고 다가왔다.

“어떠셨습니까?”

“좋은 것들을 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위지철과 함께 무림맹으로 돌아가며 팽중호는 동혈에서 얻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위지철은 오호단문도와 공청석유를 얻은 것을 축하해 주었는데, 정말로 순수한 축하를 해 주었다.

공청석유에 대해서는 욕심이 날 만도 한데 말이다.

“공청석유는 직접 드실 겁니까?”

“아니요. 제가 먹지는 않을 겁니다.”

“그럼?”

“나눌 생각입니다.”

지금 위지철이나 팽중호의 경지라면 사실상 공청석유로 내공을 얻는다고 하여도 큰 효용을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영약으로 어떻게 될 경지가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무림맹에 있는 무인들은 달랐다.

그들은 이 공청석유면 상당한 진전을 이룰 수 있을 터였다.

‘아깝지만,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지.’

이 정도 양이라면 그냥 자신이 전부 먹어도 어느 정도는 효력을 볼 수 있을 양이었다.

아니라면, 하북팽가의 무인들에게만 주어도 하북팽가의 힘이 더욱 강해질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무림의 존망이 걸린 위기 상황.

무림이 멀쩡해야 하북팽가도 존속될 수 있는 것이니, 팽중호는 이것을 무림맹의 무인들에게 나눌 생각이었다.

“위 소협 덕분에 저희가 이길 확률이 더 올랐습니다.”

* * *

공청석유를 들고 무림맹에 도착한 팽중호.

팽중호는 이것을 곧바로 사천당가에 맡겼다.

그냥 먹어도 최고의 효험을 보여 주는 공청석유지만, 사천당가에는 공청석유의 효험을 더 증폭시켜 주는 비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청석유를 단약으로 만드는 비법이 말이다.

‘제대로 효과를 볼 수 있는 이들에게만 주어야겠지.’

아무리 많은 양이라지만, 무림맹에 있는 모든 무인에게 먹일 수는 없었다.

그럴 양도 없는 데다가, 이 공청석유의 효과를 제대로 보려면 그래도 일정 수준 이상의 경지는 필요했기에, 팽중호는 무림맹 서열 중 상위 서열에 있는 이들에게 줄 생각이었다.

“금방 나온다고 했으니, 그동안 오호단문도를 살펴봐야겠군.”

팽중호는 공청석유로 만들어 낸 단약을 만들 때까지는 잠시 시간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동안 챙겨 온 오호단문도를 살펴볼 생각이었다.

사락- 사락-

집중해서 오호단문도를 살피는 팽중호.

이내 금방 이 오호단문도에 빠져들어 갔다.

“흐음. 확실히 노호진산도랑은 다르긴 다르네.”

오호단문도에 대한 기록을 가지고 만들어 낸 노호진산도와는 확실히 다른 오호단문도였다.

훨씬 더 다채롭고 훨씬 더 힘이 넘치는 도법.

어떻게 이렇게 만들어 내었을까 싶을 정도로 신묘했다.

극강의 힘에 다양한 변(變)의 묘리가 담겨 있었다.

“그럼 직접 펼쳐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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