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화 부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망설임과 번뇌가 사라진 장순학.
그는 지금 순식간에 깨달음을 얻어, 생사경에 발을 내디디고 있었다.
팽중호는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찬란한 기운이 장순학을 감싸며 빛나고 있었다.
‘정순하다.’
지금 장순학의 주변에 모인 기운은 너무나 정순했다.
마치 선천지기와 같은 정순함.
이것이 순수한 도가 무공의 힘이었다.
그 어느 것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도가의 무공.
‘걱정이 줄었다.’
지금 장순학까지 이렇게 수준이 올라간다면, 마교와의 싸움에서 걱정을 조금 줄여도 될 듯 싶었다.
벌써 생사경에 다다른 무인이 셋이 되는 것이니 말이다.
물론 이것으로 준비가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마교에 어떤 이들이 숨어 있는지 모르니 말이다.
‘분명 새로운 강자들이 나올 터.’
마교가 이렇게 계속해서 절대 고수들을 무작정 소모한 것은, 분명 준비된 것이 있기 때문일 터였다.
그렇지 않고서 그렇게 무식한 일을 벌였을 리 없다.
‘어쩌면 이번에 마교가 세대교체를 하려는 것일 수도 있겠어.’
* * *
마뇌가 생각한 이번 정마대전에서 이루어야 할 계획 중 하나.
그것은 바로 세대교체였다.
이것은 보통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나이가 든 이들이 일선에서 물러나면, 젊은이들이 그 자리를 메워 나가며 말이다.
하지만 마교는……. 아니, 마교가 아니라, 마뇌는 그것을 기다릴 생각이 없었다.
‘새로운 천마 아래에는, 새로운 이들이 있어야 하는 법.’
마뇌는 구시대의 무인들은 새로운 시대의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이런저런 이유와 함께 그들을 팽중호와 무림맹의 손에 사라지게끔 한 것이었다.
‘하지만 모두를 죽일 수는 없지.’
아무리 새로운 이들이 빈자리를 채운다고 하여도, 그들이 아직 채우지 못하는 자리가 있는 법.
그렇기에 전 시대의 인물들 모두를 죽일 수는 없다.
도마와 독마.
이 두 사람은 그렇기에 남겨두어야만 하였다.
‘물론 이것도 승리했을 때의 이야기다.’
이 모든 계획은 마교가 승리했을 때의 이야기.
만약 무림맹에 패배한다면, 많은 것들이 새롭게 짜여야 할 터였다.
마뇌는 이것까지 계획해 두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최후의 수였다.
“마뇌 님. 준비가 끝났습니다.”
마뇌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마교도 하나가 그녀에게 다가와 보고를 하였다.
이제는 슬슬 무림맹을 향해 움직여야 할 시간.
무림맹으로 진격할 준비가 끝이 난 것이다.
“알겠습니다.”
마뇌는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그녀와 동시에 척한준도 모습을 드러내었다.
쿠우우우우우웅-
등장과 동시에 주변을 짓누르는 척한준의 기운.
마교도들은 이 기운에 절로 무릎을 꿇고 허리를 숙였다.
천마(天魔).
지금 척한준은 이 이름에 걸맞은 위엄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 짧은 사이에…….’
마뇌는 척한준의 모습에 작게 미소를 지었다.
소천마에서 천마가 된 이 짧은 시간에 척한준은 또다시 한 발 더 앞으로 나간 것이다.
이대로라면 무림맹을 이기는 것은 어렵지 않을 듯싶었다.
‘팽중호. 그자가 어느 정도인지가 관건이겠어.’
유일한 불안은 팽중호뿐.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의 팽중호라면 문제없겠지만, 그도 분명 더 강해졌을 터다.
그 정도가 어느 정도일지 알 수 없기에 불안한 점은 있었지만, 그것은 지금 고민한다고 알 수는 없는 것.
그렇다면 이 고민은 여기서 멈추는 것이 맞았다.
더 이상은 쓸데없는 고민이 될 뿐이니 말이다.
“자. 출발하도록 합시다.”
“예!”
“예!!”
척한준의 말에 마교도들이 우렁차게 대답했고, 그렇게 마교의 행렬이 진격을 시작했다.
목표는 무림맹이 있는 하북성.
이 정마대전의 끝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 * *
이제 보름 중에서 남은 날은 오(五) 일.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지금 무림맹은 그 어떤 때보다 뜨거운 열기로 달아올라 있었다.
무림맹 무인들 모두가 지금 연무장에 서서 서로의 무공을 봐 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여긴 이게 더 좋을 것 같네!”
“검의 움직임이 조금 느리군.”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모인 무인들이 남은 시간 동안 자발적으로 수련을 시작한 것이다.
짧은 시간이니 큰 의미는 없을 수 있었지만, 이들이 자발적으로 한다는 것과 싸움 전에 몸을 최대한 끌어올린다는 것.
이 두 가지 의미에서는 의미가 있었다.
“맹주님. 당가에서 준비한 것들입니다.”
“진법은 준비가 되었습니다.”
“무기들도 새롭게 들어오는 중입니다.”
그리고 마교를 상대하기에 앞선 준비도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무림맹주인 장순학을 주체로 매일 회의가 이루어지고, 무림맹의 머리인 사마운과 장춘오가 더 나은 상황을 만들기 위해 밤낮으로 노력했다.
모두가 함께하는 노력.
‘이게 이상적인 무림맹이지.’
팽중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무림맹의 모습.
지금 이 모습이 바로 그 모습이었다.
모두가 하나로 합심해서 나아가는 것.
물론 이 모습이 정마대전이 끝나서도 계속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이런 경험이 있으니, 이들은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다시금 이렇게 합심할 수 있을 터였다.
“마교가 움직였다고 합니다!”
급하게 전해진 소식.
이 소식에 일순간 무림맹이 얼어붙었다.
이제 피부로 다가오는 것이다.
마교와의 전쟁이 말이다.
“전력은 어느 정도인가?”
“새롭게 합류한 이들이 대단한 실력자들이라 합니다.”
개방은 이런저런 방법으로 무림에 나와 있는 마교에 대해 정보를 수집했다.
특히나 저번 정마생사회 이후 합류한 이들에 대한 정보를 가장 우선적으로 수집했는데, 사실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마교가 워낙에 내부로 파고들기가 힘들고, 외부 활동 또한 극히 적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최대한으로 모은 정보에 의하면, 이번에 척한준과 함께 새롭게 합류한 마교도들의 수준은 마교 서열 상위권 수준이었다.
결코 쉽게 볼 수 없는 전력이다.
“우리가 여기서 기다리는 것이 맞겠나? 아니면, 움직이는 것이 낫겠나?”
“조금 앞선 곳에 준비해 두었으니, 그곳에서 맞이하는 것이 나을 겁니다.”
장순학의 물음에 군사 사마운이 대답했다.
이미 준비를 끝내 놓은 곳이 있었다.
최후의 결전을 치르기에 가장 좋은 장소.
그곳에서 마교를 기다리면 되었다.
물론 그전에 이래저래 손은 써 두겠지만 말이다.
“그럼 우리도 움직일 준비를 해야겠군.”
“내일 출발하면 될 겁니다.”
“알겠네.”
이미 준비는 끝난 상태.
내일 그저 출발만 하면 되었다.
“우리는 준비가 잘된 것 같나?”
장순학은 모두가 물러나 텅 빈 회의실에 둘만 남은 팽중호에게 물었다.
모든 준비는 마쳤지만, 사실 이것으로 충분한지는 모르겠으니 말이다.
“맹주님. 지금까지 저희가 마교에 항상 이기지 않았습니까?”
“그렇네.”
“그러니 이번에도 이길 겁니다. 반드시 말입니다.”
지금까지 큰 싸움에서 무림맹은 마교에게 승리해 왔다.
그것이 마뇌가 노린 것이든 어떤 것이든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번에도 변치 않을 것이다.
아니, 그렇게 만들 터였다.
“마교보다 저희가 강합니다.”
팽중호는 자신 있게 말했다.
지금의 무림맹은 마교보다 강했다.
그들에게 새로운 이들이 생겼건 어쨌건 말이다.
혈천궁부터 마교까지 상대하며 갈고닦아진 무림맹의 전력은 날카로운 보도와 같은 상태.
특히나 절대 고수들의 성장이 눈이 부실 정도.
절대로 마교의 밑이라고 볼 수 없는 전력이었다.
‘거기에 우리는 준비를 하였다.’
마교 측의 자신감 때문일까?
그들은 알아서 무림맹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향해 오고 있었다.
게다가 준비할 시간까지 주면서 말이다.
그렇기에 무림맹은 미리 준비를 할 수 있었고, 준비한 싸움은 그냥 싸우는 것보다 수 배는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시작하는 것.
팽중호는 이러한 이유들로 이 싸움이 절대로 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다만, 척한준. 그가 문제다.’
마교의 새로운 천마 척한준.
어쩌면 이 싸움의 승패는 자신이 그를 이기냐, 못 이기냐의 싸움이 될 수도 있었다.
직전 정마생사회에서 마주쳤던 그는 괴물이었으니 말이다.
이미 생사경에 올라가 있던 그이니, 지금은 분명 더 높은 경지로 올라섰을 터였다.
‘나도 더 강해졌으니, 분명 싸움은 해 볼 만할 터다.’
팽중호 또한 생사경에 오르고, 몇 발 더 높은 경지로 올라섰다.
그렇기에 척한준과의 싸움에 어느 정도 자신은 있었다.
‘혹여 내가 진다면…….’
다만, 이 싸움에 걸려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 팽중호를 살짝 짓눌렀다.
“고민이 있는가?”
“예?”
“지금 자네 표정이 굳어 있어서 그렇네.”
말을 하다 말고 조금 굳어진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는 팽중호를 보고 입을 뗀 장순학.
“살짝 부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부담? 하하, 자네답지 않군 그래. 자네도 부담이란 것을 느끼는 사람이었군.”
“!!”
장순학의 말에 팽중호는 갑자기 머리를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팽중호가 언제 부담감을 느꼈단 말인가?’
자신은 지금까지 부담감을 가지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자신의 어깨에 많은 것이 달려있다고 생각하니, 지금껏 없었던 부담을 스스로가 만들어서 지고 있는 것이었다.
이것은 분명 싸움에서 자신을 둔하게 만들고, 자신을 망설이게 할 터였다.
“부담이 있으면 우리에게 나누게. 충분히 받을 수 있으니.”
“아니요. 그러실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음?”
“부담은 다 날려 버렸으니 말입니다.”
장순학이 팽중호가 가진 부담을 나눠지겠다고 했지만, 팽중호가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고 답했다.
팽중호는 지금 마음속의 부담을 날려 보냈다.
자신은 반드시 이긴다.
이 생각으로 말이다.
“알겠네. 그럼 우리는 우리가 맡은 일이나 잘하겠네.”
“부탁드립니다.”
각자가 맡은 역할만 충실히 해 주면 이번 싸움은 문제없었다.
* * *
늦은 저녁.
팽중호는 혼자 밖을 나와 아무도 없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별이 총총히 떠 있는 밤하늘은 더없이 아름다웠다.
“흐음. 혼자 이렇게 걷는 것도 나쁘지는 않네.”
사내놈 혼자 청승맞은가 싶지만, 그래도 가끔은 이런 것도 나쁘지 않다 싶었다.
시원한 밤하늘과 밝게 빛나는 별빛.
모든 것들이 마교와의 싸움에 찌들었던 마음을 깨끗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팽중호는 그렇게 한참을 걷고 또 걸었다.
사람들이 있던 곳을 지나고, 어느새 인기척 하나 없는 곳까지 당도한 팽중호의 발걸음.
그리고 그 발걸음은 이내 작은 물웅덩이가 있는 곳에서 멈추어 섰다.
털썩-
팽중호가 그 앞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드러눕자 더 잘 보이는 하늘.
그렇게 누워서 팽중호가 한창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때.
또 하나의 인기척이 나타났다.
“위 소협. 바람이 좋지 않습니까? 별빛도 아름답고 말입니다.”
“예. 정말로 둘 다 좋습니다.”
지금 이곳에 나타난 인영은 바로 위지철.
위지철 또한 바람을 쐬기 위해 나왔다가, 우연히 팽중호를 보고서는 이렇게 따라 걸어온 길이었다.
“소가주님.”
“예.”
“정말 감사합니다.”
“갑자기요?”
“예. 정말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팽중호는 고개를 들어서 위지철을 바라보았다.
반짝이는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이는 위지철.
그 모습에 팽중호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남정네 둘이서 달밤에 이러고 있으면 오해 사기 딱 좋은데……. 뭐, 감사 인사는 되었고, 나중에 감사한 만큼 저한테 열심히 갚으십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