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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의 개망나니-188화 (188/200)

188화 아주 조금 도와드렸습니다.

팽중호는 위지철에게 자신이 막 얻은 깨달음을 보여 주고, 그것을 알려 주기 위해 왔다.

곽채령은 지금 막 심마에 벗어난 상태이기에 안전을 위해 남았고, 팽중호와 위지철은 따로 한적한 공터로 자리를 옮겼다.

이제 두 사람이 마음먹고 싸우려면 공터가 아니면 안 되었다.

두 사람이 싸우면 주변이 휩쓸릴 테니 말이다.

“일단 대련부터 하죠.”

“네.”

위지철의 상태가 썩 좋지는 않지만, 지금의 대련에는 큰 무리는 없을 터였다.

이 대련이 끝나면 위지철의 상태가 좋아질 테니 말이다.

‘위 소협이라면 가능하다.’

위지철이라면 이 대련과 한 번의 조언이면, 생사경의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

그라면 분명히 가능했다.

“자아. 잘 보고, 느끼시기 바랍니다.”

스릉-

팽중호가 멸뢰진천도를 꺼내 들었다.

그와 함께 주변에 자연스레 퍼지는 팽중호의 기운.

위지철은 그 기운에 눈을 크게 떴다.

‘움직일 수 없다.’

지금 움직였다가는 베일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에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이건 이전의 무뢰의 초식과는 차원이 다른 느낌이었다.

어디로 어떻게 움직여도 도망칠 수 없다는 느낌.

무려 위지철쯤 되는 무인이 말이다.

“갑니다.”

“예!”

타탓- 휙-

순식간에 다가와 펼쳐지는 팽중호의 가벼운 횡 베기.

너무나 기초적인 횡 베기였다.

하지만 그 위력은 결코 기초적이지 않았다.

쾅-!

“흡.”

위지철이 태극신검으로 도를 막았는데, 검을 타고 밀려들어 오는 팽중호의 힘이 너무나 강했다.

잘못하면 검을 놓칠 뻔할 정도로 말이다.

그저 기초적인 횡 베기가 맞단 말인가?

“위 소협. 검의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베기와 찌르기입니다.”

“모든 초식이 베기와 찌르기에서 나오는 것 맞습니까?”

“……맞습니다.”

팽중호는 위지철을 몰아붙이면서 계속 질문을 하였고, 위지철은 팽중호의 말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새겨듣기 시작했다.

지금 이것이 자신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함임을 안 것이다.

“근본과 기본. 이것이 탄탄해지면, 자연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해 보겠습니다.”

스윽-

슈와아아아아아악-

무극검이 나타났다.

태극신검과 함께 총 여섯 자루의 검이 팽중호를 향했고, 이 검들이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너무나 평범한 움직임의 베기.

화려함도 특별함도 없는 그저 평범한 베기였다.

카아앙-!!

“좋습니다.”

지금 위지철의 공격에 담긴 힘.

그것은 팽중호가 예상한 대로 훌륭한 힘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부족했다.

이것은 위지철도 느끼고 있을 터.

“다시 가 보겠습니다.”

캉- 카아앙-!! 캉-!!! 카앙-!!!

계속되는 두 사람의 공방.

팽중호와 위지철 두 사람은 마치 삼류 무인들이 싸우는 것처럼, 아주 단순한 공격을 주고받았다.

베기와 찌르기.

이렇게 단순했던 움직임이 점점 더 복잡해지기 시작했고, 그것들이 이내 하나의 형태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초식.

이제 그들의 손에서 초식이 만들어진 것이다.

‘무공이 만들어지는 과정.’

지금 그들은 무공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펼쳐 내고 있었다.

무공의 근간부터 시작해서 말이다.

“자. 어떠십니까? 무언가 보이는 것이 있으십니까?”

“…….”

팽중호의 물음에도 위지철은 대답이 없었다.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위지철의 두 눈.

‘되었다.’

팽중호는 위지철이 지금 무아에 빠져들었고, 깨달음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었다.

이대로라면 그는 생사경에 도달할 터였다.

스윽- 쾅-! 카가가강-! 쾅-!!

위지철의 검들이 이제는 무한대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길이나, 크기가 늘어나기도 하였고, 허공을 날아 이기어검의 묘를 보여 주기도 하였다.

상대방에게는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검법.

하지만 그런 공격도 팽중호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결국 이 모든 것이 베고, 찌른다는 것이니. 막지 못할 이유는 없지.’

스으으윽-

그때 위지철의 무극검들이 갑자기 모습을 바꾸기 시작했다.

위지철의 오른손에 들린 태극신검으로 합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여섯 자루의 검이 이제는 한 자루가 되었다.

단 한 자루의 태극신검.

“합일(合一)이라……. 이것 참…….”

무극검들을 하나로 합일했다.

그렇다면 무극검의 묘와 이기어검은 포기한 것일까?

아니다.

‘저 검이 그 모든 것을 담고 있다.’

하나이자 여럿이다.

지금 저 검은 언제든지 무엇으로도 변할 수 있었다.

‘지금이라면…….’

팽중호는 위지철을 더욱 끌어올릴 생각이었다.

완전한 깨달음으로 갈 수 있도록 말이다.

-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벽력(霹靂).

생사경의 깨달음을 담은 벽력이 펼쳐졌다.

심지어 손속에 사정을 두지도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위력이라는 것.

번쩍-

쿠르릉- 콰가가가가가각-

빛과 같은 빠르기로 대지를 가르며 나아가는 벽력.

그런데 그런 벽력이 위지철의 앞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이 엄청난 도격이 멈추다니?

- 무극만변신공(無極萬變神功). 태극(太極).

위지철 앞에서 딱 멈춘 땅의 틈.

위지철은 그 앞에서 한 손에 태극신검을 든 상태로 고고하게 서 있었다.

지금 위지철은 태극의 묘리로 팽중호의 벽력을 완전히 파훼해 버린 것이다.

보고도 쉬이 믿기 힘든 광경.

팽중호는 이 모습에 만족의 미소를 지었다.

“걱정은 말고, 깨달음에 들어가십시오.”

끄덕-

팽중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가부좌를 틀고 앉는 위지철.

그렇게 위지철은 깨달음에 들어섰고, 팽중호는 그 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태극이라……. 완전히 사람을 헛헛해지게 만드는 초식이군.”

벽력을 완전히 무위로 돌려 버린 태극.

누구라도 이런 상황을 겪으면 어이가 없을 터였다.

평생을 갈고닦은 초식이 완전히 무위로 돌아가 버리는데 말이다.

“다만, 이것만으로는 안 된다.”

지금 태극의 초식은 무당파 묘리의 극의를 담고 있었다.

극유와 이화접목의 끝.

하지만 이것으로는 적을 벨 수 없다.

지금 위지철에게는 상대를 베어 낼 초식이 필요했다.

상대는 마교이니 말이다.

“이미 답은 가지고 있으니, 분명 깨달으실 터지.”

위지철에게는 이미 이것을 해결할 답이 주어져 있다.

하북팽가에서 곽채령과 함께 만들어 내고 배운 수많은 팽가의 무공.

그것이 녹아 있는 그의 무극만변신공은 아마 해답을 내놓을 터였다.

사아아아아아-

위지철의 몸에서 심상치 않은 기의 바람이 휘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공중으로 떠오르는 그의 몸.

어느 정도 허공에 떠오른 그의 몸에 빛이 반짝이고, 푸르른 뇌기까지 휘감기 시작했다.

쩌저저적- 파사사사사사-

위지철의 피부가 갈라지고, 그것들이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환골탈태.

그것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었다.

“역시 상처 걱정은 안 해도 됐다니까.”

곽채령을 구하느라 입었던 상처를 신경 쓰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팽중호는 위지철이 무조건 깨달음을 얻어 위로 올라갈 것이라고 확신했고, 그렇다면 환골탈태를 이룰 터였으니 말이다.

“이제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면 되겠어.”

이제 남은 것은 위지철이 눈을 뜰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는 것뿐.

아마 오래지 않아서 눈을 뜰 터였다.

스윽- 번쩍-

아니나 다를까.

잠시의 시간이 흐르자 위지철이 감았던 눈을 떴다.

주변이 순간 밝아질 정도의 안광이 그에게서 터져 나왔다.

스윽- 스윽- 스윽-

위지철은 자리에서 가만히 일어나서는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보고, 주변을 이리저리 바라보기 시작했다.

“어떻습니까? 새로운 경지는?”

“모든 것이 새롭습니다.”

“하하. 축하드립니다.”

위지철은 지금 이 새로운 몸과 감각이 조금 적응이 되지 않았다.

조금 전과는 다른 세상을 보는 듯했으니 말이다.

“저……. 소가주님.”

“예.”

“제 검을 한번 봐 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위지철은 태극신검을 들고 팽중호 반대편의 평원을 바라보고 섰다.

팽중호는 위지철의 조금 뒤에서 팔짱을 낀 채로 그것을 지켜볼 준비를 하였다.

‘어떤 것일까? 기대가 된다.’

위지철이 보여 줄 검이 무엇일지 기대가 되었다.

지금까지 위지철은 계속해서 상상을 뛰어넘는 것들을 보여 줘 왔다.

그러니 분명 이번에도 그런 것을 보여 줄 터였다.

무인으로서 어찌 기대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스윽- 처억-

검을 들어 앞을 겨누는 위지철.

그리고 그의 입이 작게 열렸다.

“무극(無極).”

아무런 변화도 없어 보이는 주변.

하지만 팽중호는 지금 눈을 찢어지라 크게 떴다.

그에게는 보인 것이다.

‘모든 것이 반으로 나뉘었다.’

공터이기에 아무것도 베이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팽중호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위지철의 앞에 있는 모든 것이 반으로 나뉘었다.

흩날리던 바람마저 반으로 나뉜 세상.

“소가주님. 어떻습니까?”

“알면서 물으시는 거죠? 대단합니다.”

팽중호는 저 공격을 자신이 막아 낼 수 있을까를 고민했는데, 답은 쉽지 않다였다.

‘내가 막으려 한다면, 아마도 막지 못하게끔 검이 변할 터다.’

위지철의 무극은 아마 앞을 막아서는 것에 따라서 그 모습을 변화할 것이다.

무극만변.

그것이 가능한 무공이었고, 그것이 가능한 사람이 바로 위지철이었으니 말이다.

“위 소협. 좀 더 어울리다 가시겠습니까?”

“좋습니다.”

* * *

팽중호는 위지철과의 대련을 마치고, 다음으로 만날 사람을 찾아갔다.

“왔는가?”

“예. 맹주님.”

팽중호가 다음으로 만날 사람은 바로 장순학이었다.

장순학 또한 생사경의 끝자락을 잡은 무인.

그도 위지철과 마찬가지로 충분히 생사경에 완전히 발을 디딜 수 있었다.

그 또한 그럴 능력이 있는 사람이니 말이다.

“위 소협의 기운이 달라졌더군. 자네가 도와준 것인가?”

“아주 조금 도와드렸습니다.”

“그런가? 그럼 나도 좀 도와주겠나?”

“물론이죠.”

장순학 또한 더 위로 가고 싶었다.

그도 무인이니 말이다.

“자네가 본 천하삼십육검은 어떤 검인가?”

장순학은 곧바로 팽중호에게 물음을 던졌다.

처음으로 돌아가 천하삼십육검을 다시 돌아본 장순학에게 하나의 의문이 들었다.

‘천하삼십육검은 어떤 검인가? 내가 가는 길이 맞는가?’

갑자기 든 의문.

자칫하면 심마에 빠져들 수도 있는 의문이었다.

그렇기에 장순학은 섣불리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올곧고 웅혼하며 정직한 검입니다. 그리고……. 정의롭습니다.”

“정의롭다?”

“예. 일검, 일검에서 그것이 느껴집니다. 상대를 죽이기 위한 검이 아니라, 상대를 계도하기 위한 검이라는 게 말입니다.”

팽중호가 본 천하삼십육검은 상대를 죽이기 위한 검법이 아니었다.

어쩌면 구파일방에 있는 도가(道家) 문파들의 검이 대부분 이럴 터였다.

그중에서 종남파의 천하삼십육검은 정의와 계도를 담고 있었다.

이것은 장순학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내가 그것을 잊고 있었군.”

장순학이 잊고, 놓치고 있던 것.

마교를 이겨야 한다는 생각에 잠겨, 천하삼십육검이 탄생한 근원적 이유에 대해 잊고 말았다.

“맹주님께서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길이라면, 그것이 맞는 길입니다.”

“그런가……. 고맙네. 내가 가는 길이 옳다면, 망설일 이유는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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