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의 개망나니-182화 (182/200)

182화 여기가 버틸까 모르겠네.

빨리 달리다 보면 주변을 놓치게 된다.

무조건 빠른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팽중호는 이세경의 말에 이것을 깨달았다.

지금 자신의 혈도가 회복되지 않는 이유.

그것은 지금까지 너무 빠르게 가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너무 앞만 보았다.’

강해져야만 한다는 생각에 오로지 앞만 보며 빠르게 달렸다.

그렇기에 놓친 것들이 너무나 많았고, 그것이 쌓이고 쌓이다가 지금 이렇게 드러난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나를 되돌아볼 때다.’

이세경이 다시금 떠나고, 혼자 자리에 남은 팽중호.

팽중호는 가만히 누워서 자신을 차근차근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되는 운기와 명상.

보통의 운기는 가부좌를 틀고 하겠지만, 지금의 팽중호에게 그런 것은 상관없었다.

심지어 달리는 와중에도 운기를 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저, 하북팽가를 다시 일으키겠다는 것에서, 시작이었지.’

새로운 몸으로 다시금 정신이 들었을 때.

그때는 그저 하북팽가를 다시 예전의 성세만큼 다시 일으키겠다는 생각만 하였다.

자신의 업보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그 일이 점차로 커지기 시작했고, 결국 작금에 이르러서는 마교를 쓰러트려야 하는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터무니없을 정도로 빠르게 일이 진행되었다.’

지금의 상황까지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을 정도로 모든 일들이 연속해서 터져 나왔다.

마치 누군가 이렇게 일을 준비해 놓은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런 거스를 수 없는 일들의 파도 속에서, 하북팽가를 지키기 위해 자신은 그저 끊임없이 강해져 왔다.

‘내 모든 무공의 근간을 돌아봐야 한다.’

지금 팽중호는 자신이 수많은 기연과 무공들이 이리저리 뒤섞여 근간과 멀어졌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익힌 모든 무공의 근간.

‘혼원벽력신공과 혼원벽력도.’

바로 이 두 가지 무공이 바로 자신의 근간이었다.

아니, 어쩌면 하북팽가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팽중호는 이것을 다시금 복기하기로 하였다.

파지지직- 파짓- 파지직-

누워있는 팽중호의 몸에 뇌기가 휘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대로 팽중호의 몸이 침대에서 떠올랐다.

마치 그대로 하늘로 승천하려는 듯한 모습.

‘그래 혼원벽력신공은 원래 이런 무공이었지.’

팽중호는 허공에 몸이 떠 있는 와중에도 쉬지 않고 혼원벽력신공에 대해 궁구했다.

혼원벽력신공은 극강을 추구하는 내공심법.

압도적인 뇌기의 힘으로 상대를 찍어 누르는 것이 이 혼원벽력신공이었다.

‘그래. 혼원벽력신공에는 본래 잔재주는 없었지.’

극강.

혼원벽력신공은 오로지 이것 하나로 무림에서 손꼽는 신공이라 불렸다.

그런데 지금 너무나 많은 무공들이 합쳐져 있기에, 이 극강의 길에서 조금 벗어나 있었다.

‘다시 원류로 돌아가 보자.’

팽중호는 지금 가장 순수한 혼원벽력신공의 구결을 따라 운기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그가 만들어 왔던 것이 아닌, 하북팽가에 전해지는 그대로의 혼원벽력신공.

팽중호도 꽤 오랜만에 이 구결대로 운기를 하는 것이었다.

파지지지직- 파지지지직-

거침없이 팽중호의 몸에서 튀는 뇌기.

지금의 이 뇌기는 가장 순수한 뇌기였다.

그리고 이 뇌기들은 지금 거침없이 팽중호의 몸속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거칠고 막힘없는 움직임.

‘그래. 이거지.’

팽중호는 이 모습에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다.

이것이 바로 혼원벽력신공이었다.

빠르게 강해지겠다는 생각 때문에 잠시 잊었었다.

‘혼원벽력신공은 그것으로 이미 충분하다.’

쿠르르릉- 쿠릉- 쿠르르르릉-

뇌성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고, 그리고 놀랍게도 회복되지 않았던 혈도들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아니 혈도가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몸이 새롭게 변하고 있었다.

생사경.

그 지고한 경지에 다다라, 다시 환골탈태가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후우.”

팽중호의 입에서 나오는 긴 숨.

팽중호는 지금 스스로가 생사경에 올라섰음을 느꼈다.

모든 것이 다르게 보이고 느껴졌으니 말이다.

마치 절대 영역이 계속해서 펼쳐져 있는 듯했다.

“하하. 이제 누워 있을 필요 없겠네.”

팽중호는 그대로 밖으로 몸을 움직였다.

너무나 가벼운 몸.

마치 구름을 타고 다니는 신선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몸이 가벼웠다.

“나오셨습니까?”

“음? 위 소협?”

팽중호가 밖으로 나가자, 위지철이 그 앞에 서 있었다.

지금 무림맹에 있어야 할 위지철이 왜 하북팽가에 있단 말인가?

“소가주님이 계신 곳이 심상치 않다고, 꼭 살펴봐 달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며칠이 지났습니까?”

“사흘이 지났습니다.”

팽중호가 깨달음에 들어 선지 사흘이 지났다.

그동안 팽중호는 몰랐지만, 지금 팽중호가 있던 곳 주변이 뇌기와 뇌성으로 휩싸인 채로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평범치 않은 상태로 말이다.

이세경은 이것을 보고 곧바로 위지철에게 연락을 넣었다.

혹시나 팽중호가 잘못되는 것일지도 몰랐으니 말이다.

‘괜찮습니다.’

그렇게 연락을 받고 도착한 위지철은, 단번에 지금 팽중호가 깨달음에 있다는 것을 알아채었다.

그래서 이세경을 안심시킨 후, 직접 이곳에서 팽중호의 호법을 자처한 것이었다.

혹시나 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말이다.

“새로운 곳에 도달하신 것입니까?”

“그렇게 되었습니다.”

“얼른 뒤따르겠습니다.”

“급하실 필요 없습니다. 조금 돌아오셔도 충분히 따라오실 겁니다.”

팽중호는 살짝 위지철에게 언질을 주었다.

급하지 말고, 천천히 돌아오라고 말이다.

그에 위지철의 표정이 조금 움찔하였다.

무언가를 느낀 것이다.

하지만 아직 확실치는 않을 터.

“저는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무림맹에서 뵙죠.”

위지철은 무림맹에서의 할 일이 남아 있었기에, 우선 곧바로 무림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팽중호의 실력을 확인하고 싶다는 열망이 가득한 눈빛을 남긴 채로 말이다.

‘아직은 돌아볼 것들이 많으니…….’

팽중호는 자신과 비무를 하고 싶다는 위지철의 열망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에 응해 줄 수가 없었다.

아직 되돌아볼 것이 자신에게 많이 남아 있었으니 말이다.

급하게 가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

‘아. 아닌가? 이미 충분히 급하게 온 것인가?’

천천히 돌아보겠다고 했는데, 생사경의 경지에 도달했다.

돌아보는 것이 오히려 더 빠르게 앞서가는 길인 것이었다.

“그럼 우선 오랜만에 연공실로 가 볼까.”

팽중호는 자신의 연공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참으로 오랜만에 오는 개인 연공실.

그동안 보수를 다 해 놓았는지, 아주 깔끔한 상태였다.

“좋아. 우선 다시 한번 더 되돌아보자.”

팽중호는 우선 혼원벽력신공을 다시 한번 더 복기하기 시작했다.

파지지지지직-

그저 한번 혼원벽력신공을 운기했을 뿐인데, 강렬한 뇌기가 몸을 타고 돌았다.

현경의 경지에 도달해 무뢰(無雷)가 되어 사라졌던 뇌기가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순수한 혼원벽력신공만이 남았다.”

지금까지 익혔던 무공과 모든 영약의 기운이 혼원벽력신공으로 움직였다.

팽중호는 이 혼원벽력신공을 계속해서 운기하고 또 운기했다.

큰 줄기를 따라 거침없이 몸을 질주하는 강렬한 뇌기.

“이런 뇌기를 조절하려 했으니, 혈도가 상했지.”

천마와의 싸움 이후에 혈도가 상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혼원벽력신공은 본래 큰 줄기를 따라 뇌기를 움직이는 무공.

그런데 그것을 여러 무공과 합치다 보니, 수많은 혈도의 줄기를 이용하게 되었고, 거기에 더해서 세밀하게 움직이려고 하니, 혈도가 이 강렬한 뇌기들을 감당하지 못하고 상하고 만 것이다.

“그럼. 이제 혼원벽력도를 살펴볼까?”

하북팽가의 근간을 이루는 또 다른 무공.

바로 혼원벽력도.

이제는 그것을 다시 되돌아볼 때였다.

이 혼원벽력도도 혼원벽력신공만큼이나 많이 변하였으니 말이다.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본래 혼원벽력도는 낙뢰단봉부터 천뢰멸혼까지 총 아홉 초식.

팽중호는 이 초식들을 내공 없이 펼쳐 보았다.

끊임없이 부드럽게 이어지는 초식들.

하지만 팽중호는 이내 움직임을 멈추었다.

“흠. 역시 혼원벽력도는 수정해야겠어.”

혼원벽력신공은 원류를 그대로 쓴다면, 혼원벽력도는 수정이 필요했다.

지금 자신이 하는 것은 깨달았던 것을 버리고 처음으로 가는 것이 아닌, 처음을 돌아보고 놓쳤던 것을 다시금 상기하자는 것.

깨달음을 통해 당연히 변하는 것을 버릴 필요는 없었다.

만약 혼원벽력신공도 변화가 필요했다면, 그랬을 테니 말이다.

“초식은 딱 세 초식만 있으면 되지.”

솔직히 아홉 초식은 너무 쓸데없이 많았다.

세 개의 초식이면 충분했다.

이미 두 개의 초식은 만들었다.

벽력과 멸혼.

그러니 하나의 초식만 더 있으면 되었다.

“그런데 여기가 버틸까 모르겠네.”

팽중호는 연공실을 쓰윽 둘러보았다.

지금 가진 힘으로 초식을 펼쳐 내면, 이 연공실이 버티지 못할 터였다.

아마도 그대로 터져나갈 터.

그래도 나름의 추억이 깃든 곳이자, 세가의 돈으로 만든 곳인데, 부술 수는 없지 않은가?

탓- 슈와아아아아악-

팽중호는 우선 자리를 옮기기 위해 밖으로 나서서 가볍게 발을 굴렀다.

아주 가볍게 발을 굴렀을 뿐인데, 주변의 풍광이 엄청난 속도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축지법을 쓴 듯한 가공할 속도.

눈 깜짝할 새에 하북팽가에서 멀리 떨어진 공터에 도착했다.

“여기면 사람도 없고 딱 맞겠어.”

스릉-

팽중호가 멸뢰진천도를 손에 들었다.

확실히 생사경에 도달한 후에는 멸뢰진천도를 들었을 때 느껴지는 감촉도 달라졌다.

“벽력부터 시작해 볼까.”

파지지지지직-

팽중호의 몸에 뇌기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뇌신지체(雷神之體).

화경의 뇌신지체와는 차원이 달랐다.

지금 이 뇌신지체는 절대 영역의 힘까지 담고 있었으니 말이다.

-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벽력(霹靂).

번쩍-! 쿠르르르릉-

서걱- 콰가가가가가가각-

빛이 번쩍이고, 뇌성이 터져 나옴과 동시에 그대로 땅이 갈라졌다.

팽중호의 앞으로 끝없이 길게 나 있는 틈.

“이 정도일 줄은…….”

지금 이 위력은 팽중호도 놀랐다.

이전에도 충분히 엄청났지만, 지금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극강.

정말 그 말이 어울리는 모습.

“멸혼은……. 저기가 좋겠다.”

팽중호가 이번에는 멸혼을 펼쳐 낼 대상을 찾았다.

멀지 않은 곳에 보이는 끝없이 높은 절벽.

팽중호는 곧바로 그 앞으로 가서 섰다.

-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멸혼(滅魂).

툭-

퍼석- 파사사사사사사삭-

가볍게 절벽을 찌르는 팽중호.

그리고 그대로 절벽이 가루가 되어 흩날리기 시작했다.

거대한 절벽에 뚫린 엄청난 크기에 반대편이 보일 정도로 깊은 구멍.

쿠구구구구구궁-

그 구멍 때문에 절벽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 멸혼 또한 팽중호의 예상을 벗어날 정도의 위력을 보여 주었다.

“어이쿠.”

팽중호는 무너지는 절벽을 피해 멀찌감치 자리를 옮겼다.

이것으로 벽력과 멸혼은 점검이 끝이 났다.

원류로 돌아가 극강의 힘을 내뿜는 혼원벽력신공으로 펼치는 혼원벽력도는 제 옷을 찾은 듯 아주 딱 맞았다.

“이제 남은 것은 새로운 초식이군.”

이제부터 펼칠 것은 새로운 초식.

아니, 사실 새로운 초식은 아니었다.

이미 혼원벽력도에 있는 초식이나 마찬가지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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