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화 또 가져온 거야?
천마는 입가의 피를 닦아 내고, 곧바로 천마검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마검을 따라 움직이는 천마강기.
그리고 그 천마강기들은 이내 검의 형태를 이루기 시작했다.
마치 위지철의 무극검과 같은 것들.
어느 정도는 움직일 수 있으니, 자유자재로 움직이지는 못한다는 것만이 다를 뿐, 오히려 위력 자체는 무극검보다 한 수 위라고 볼 수 있었다.
‘천마멸우.’
이전에 팽중호에게 보여 주었던 그 초식이 다시금 펼쳐진 것이다.
물론 이번에는 상대를 죽이겠다는 마음을 담아서 말이다.
그렇기에 훨씬 더 강렬한 위력이 담긴 천마멸우.
팽중호는 이 천마멸우를 아주 차분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후우우…….”
길게 내뱉는 숨.
팽중호는 지금 천마의 천마멸우가 쇄도하는 중임에도 계속해서 가만히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천마멸우가 팽중호에게 작렬하기 직전.
-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멸혼(滅魂).
팽중호의 신형이 사라졌다.
말 그대로 사라진 팽중호.
“흡!”
천마는 팽중호의 신형이 사라진 곳에 작렬하려던 천마멸우를 급히 거둬들였다.
천마의 두 눈에는 다급함이 가득했으니, 지금 천마는 본 것이었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팽중호의 엄청난 공격을 말이다.
‘막아도 큰일이 나겠군.’
천마는 지금 팽중호의 공격을 그대로 막아서는 안 됨을 간파했다.
하지만 피할 시간은 없었다.
아니, 피할 수도 없을 터였다.
슈와아아아아악- 화르르르르륵-
천마강기로 만들어진 벽이 그대로 팽중호의 앞을 막아섰다.
천마신벽(天魔神壁).
천마신공의 수비 초식.
그 어떤 공격이라도 이 벽을 뚫을 수는 없지만, 지금 팽중호의 공격은 달랐다.
천마는 이것을 알았기에, 천마신벽만으로 끝을 내지 않았다.
“정말 다 짜내야 하는군.”
화르르르르륵-
천마의 왼손에 타오르는 천마강기.
그리고 그것은 곧바로 하나의 검이 되었다.
“검마의 검은 사실 이 천마신공을 본 후에 나왔거든.”
마교에 있는 모든 무공의 정점에 있는 무공인 천마신공.
검마는 천마와의 대련에서 이 천마신공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고, 그것을 토대로 만들어 낸 것이 바로 강기의 검이었다.
그러니 이 천마신공으로 만들어 낸 검이 원류라고 할 수 있었다.
퍼석-!
역시나 천마의 예상대로 천마신벽은 순식간에 그대로 뚫려 버렸다.
먼지처럼 사라져 버리는 천마신벽.
물론, 이것은 이미 예상한 일이기에, 천마는 곧장 왼손의 또 다른 검으로 막아 냈다.
콰카가가가가가가각-!!
엄청난 힘과 힘의 격돌.
‘이것인가. 이것이 검마를 베어 낸 그 초식이군.’
천마는 지금의 부딪침으로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이 초식이 바로 검마를 죽음에 이르게 한 공격이라는 것을 말이다.
검을 타고 전해져 오는 힘.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걸었음에도 온몸이 그대로 부서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는 천마다. 이렇게 쉽게 질 수는 없지.’
자신은 천마라는 자리에 있다.
그러니 절대로 쉽게 당해줄 수는 없었다.
지금 이곳에는 마교도들이 있으니 말이다.
-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멸우(天魔滅雨).
천마가 막는 것을 포기하고, 자신 또한 그대로 초식을 내질렀다.
푸욱- 푹- 푹- 푹-
팽중호의 몸에 꽂히는 천마멸우의 초식.
이 공격에 팽중호의 멸뢰진천도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정확히 천마의 가슴팍 앞에 닿아있는 상태로 멈춘 멸뢰진천도.
이렇게만 봐서는 명명백백한 천마의 승리였다.
“역시 천마인가…….”
“도신도 그에게는…….”
천마의 승리에 망연한 표정을 짓는 무림맹 사람들.
무림의 마지막 희망인 팽중호가 졌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거 상당히 아픕니다.”
팽중호가 입가에 피를 흘리며 입을 열었다.
팽중호를 찌른 천마의 검들은 지금 사라진 상태였다.
하지만 이미 온몸이 피로 물든 팽중호.
상당히 심각해 보이는 상처들.
“이 정도군.”
천마는 자신의 가슴팍 앞에서 멈춰 있는 팽중호의 멸뢰진천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에, 주변 사람들은 싸움의 승패가 정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순간.
퍼석- 파스스스스스스-
천마의 몸이 마치 모래처럼 부서져 내렸다.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할 광경.
그리고 연무장 위에는 오로지 팽중호만이 멸뢰진천도에 몸을 기댄 상태로 남아 있었다.
“이, 이긴 건가?”
“천마를 이겼다고?”
팽중호의 승리.
온몸이 피에 물들어 있었지만, 어찌 되었건 마지막에 서 있는 사람은 팽중호였다.
스윽- 처억-
잠시 멸뢰진천도에 기대어 쉬고 있던 팽중호가 몸을 일으킨 뒤에, 하늘 위로 멸뢰진천도를 들어 올렸다.
“우와아아아아!!!”
이 모습에 무림맹측과 지켜보던 사람들의 입에서 열화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도신 팽중호가 천마를 이긴 것이다.
이것은 분명 무림의 역사에 기록될 만한 일.
그것을 직접 목도했으니, 소리가 터져 나와올 수밖에 없었다.
“소가주님. 괜찮으십니까?”
“안 괜찮습니다. 크큭.”
위지철이 재빠르게 다가와 팽중호를 부축해 주었다.
사실 지금 팽중호는 서 있는 것조차 힘든 상황이었다.
천마에게 공격당한 상처는 결코 얕은 상처가 아니었다.
거기에 더해서 내상까지 아주 크게 입었다.
잘못하면 힘을 모두 복구하지 못할 수도 있을 만큼 말이다.
‘이겼다!’
위지철과 함께 연무장을 내려가면서, 팽중호는 속으로 기쁨의 소리를 내질렀다.
천마를 이긴 것이다.
전생에선 이기지 못했던 천마를 말이다.
이것으로 자신이 강해졌다는 확답을 받은 것이었다.
그러니 어찌 기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이런. 조금 늦은 것 같군요.”
그렇게 팽중호가 속으로 기뻐하고 있을 때.
팽중호의 귀에 익숙한 듯 낯선 목소리가 하나 들려왔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었지만, 팽중호의 고개가 자연스레 목소리의 주인을 향해 움직였다.
“다시 뵙습니다. 팽중호 님.”
“그러게나 말입니다. 소천마님.”
* * *
소천마(小天魔) 척한준.
그는 지금 막 정마생사회가 열리는 곳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는 곧바로 느낄 수 있었다.
천마이자 자신의 아버지가 졌다는 것을 말이다.
그 일을 이루어낸 이가 눈앞의 팽중호였다.
“역시나 대단하십니다.”
척한준은 지금 순수하게 팽중호에게 감탄했다.
아버지인 천마가 죽었다는 것은 척한준에게 큰 슬픔은 아니었다.
무인으로서 마교도로서 팽중호와 같은 무인에게 죽었다는 것은, 오히려 기뻐할 일이니 말이다.
“혹시 지금 싸우실 겁니까?”
팽중호가 척한준을 향해 힘겹게 입을 뗐다.
지금 척한준과 함께 나타난 젊은 마교도들.
만약 그들이 지금 갑자기 싸움을 하려고 한다면, 아주 큰 일이 될 터였다.
팽중호는 제발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물어본 것이었다.
“하하. 사실 그러고 싶지만…… 몸 상태를 보니, 다음으로 미루어야 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최고의 상태에서 싸우고 싶으니 말이지요.”
팽중호에게는 다행히 척한준은 지금 싸울 생각은 없었다.
사실상 척한준의 목표는 팽중호와의 싸움이지, 무림 정복은 큰 관심사가 아니었다.
지금 팽중호가 크게 다쳐있는 상태.
이런 상태인 팽중호의 목을 베는 것은 척한준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짓이었다.
“오늘은 이렇게 짧게 인사하지만, 다음에는 제대로 끝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기대에 부응해 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새로운 천마님.”
“하핫.”
소천마 척한준은 천마가 쓰러진 지금부터 새로운 천마가 되었다.
이제는 소천마 척한준이 아닌, 천마(天魔) 척한준이었다.
“돌아가지요.”
“예.”
척한준의 명령에 마교도들이 일제히 대답하고는 모두 떠나기 시작했다.
“저들을 이대로 보내 주어야 합니까? 쫓아가서 지금 당장…….”
그때 무림맹 측 누군가가 마교도들을 이대로 보내야 하냐고 물어왔다.
지금 저들의 뒤를 친다면, 분명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 같았으니 말이다.
천마가 사라진 마교.
어쩌면 지금 이곳에서 정마대전을 끝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절대로 안 됩니다. 지금 저들을 공격하면, 우린 다 죽습니다.”
팽중호는 절대로 공격하지 말라고 말하였다.
만약 척한준과 새로운 마교도들이 나타나지 않았으면 모를까, 지금 그들이 나타난 시점에서 그들을 건드리면 무림맹의 필패였다.
척한준을 막을 무인도 없을뿐더러, 새로운 마교도들 또한 엄청난 고수였으니 말이다.
“일단은 그래도 오늘의 승리를 만끽하며 좀 쉽시다. 피곤하니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이래저래 생각할 것들이 남았지만, 팽중호는 일단 쉬고 싶었다.
지금 정신을 붙잡고 있는 것조차 너무나 힘겨웠으니 말이다.
위지철도 이것을 알았기에, 이래저래 묻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참았다.
* * *
정마생사회에서 무림맹이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이에 대한 소식이 무림을 들끓게 했다.
거기에 더해서 천마를 이긴 도신의 위업까지.
무림이 들끓을 수밖에 없었다.
‘정마대전은 곧 끝이 날 것이다.’
무림의 수많은 이들은 정마대전이 무림맹의 승리로 끝이 날 것이라 떠들어대었다.
천마가 죽은 시점에서 싸움은 끝난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 소식을 들은 팽중호는 콧방귀를 뀌었다.
“흥. 이제부터가 전쟁의 시작인 것을.”
지금부터가 정마대전의 진짜 시작이었다.
새로운 천마 척한준을 필두로 한 마교는 절대로 만만치 않을 터다.
아니 전보다 더 강하다고 해도 될 터.
“으윽. 어서 몸부터 회복해야 하는데.”
팽중호는 쉴 수 없다는 생각에 누워 있던 침상에서 일어나 몸을 움직이려 하였지만,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았다.
천마와의 싸움에서 입은 상처가 쉽게 낫지 않는 탓이었다.
천마신공으로 상처를 입어서 그런 듯싶었다.
벌컥-
“가가. 아직 움직이지 말라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팽중호가 누워 있는 방에 들어온 이는 바로 이세경.
그녀는 팽중호가 다쳐서 돌아온 후로 틈이 날 때마다 옆에서 간호하고 있었다.
“이대로 가만히 누워 있기만 하기에는…….”
“아직 움직이지 말라고 분명 의원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예…….”
마치 절대 고수와 같은 압도적인 이세경의 박력에 팽중호가 조용히 다시금 침상으로 몸을 눕혔다.
그러자 이세경이 그런 팽중호의 옆으로 다가와 보따리 하나를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또 가져온 거야?”
“이건 어제랑 다른 겁니다.”
이세경의 보따리에 있던 물건.
그것들은 모두 몸에 좋다는 영약들이었다.
하나같이 상당한 값을 자랑하는 구하기 힘든 영약.
이세경은 그런 영약을 지금 팽중호가 온 날부터 매일같이 챙겨 왔다.
“이제 그만 먹어도…….”
“다 드셔야 합니다. 싫으시면 이렇게 다치지나 마시길.”
“알았어. 다 먹을게.”
조금은 고압적인 말투와 다르게 걱정 가득한 이세경의 두 눈을 보고, 팽중호는 두말없이 영약을 입으로 가져갔다.
사실 지금 이세경이 가져다준 영약 덕분에 생각보다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다만, 이런 와중에도 문제는 몇몇 혈도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천마에게 당한 상처 때문이 아니다. 도대체 뭐가 문제지?’
회복되지 않는 혈도.
이것은 상처에 의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왜 이런 상태가 되었는지는 팽중호 자신도 전혀 짚이는 것이 없었다.
“너무 빨리 가려고만 하면 놓치는 것도 생기고, 부작용도 생기는 것입니다. 너무 빨리 회복하려는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가끔은…….”
“아! 그렇구나! 고마워, 세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