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화 직접 나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도마(刀魔).
마교십마 중 가장 젊은 무인.
검마는 그를 보고, 그에게 부족한 것은 아주 조금의 시간과 경험일 뿐, 그것만 채워지면 자신을 넘는 것은 일도 아니라고 말하였다.
그만큼 대단한 무인인 도마.
그는 이번 마교의 무림행에 폐관에 나오자마자 합류한 상태였다.
이번 폐관에서 그는 큰 깨달음을 얻어 왔는데, 스스로 검마를 넘어섰다고 자부할 수 있을 정도의 성과를 얻은 그였다.
‘팽중호라……. 대단하다.’
권마를 이긴 팽중호를 본 도마의 솔직한 감상.
만약 자신이 이번에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면, 아마도 권마와 똑같이 완벽한 패배를 맞이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의 자신이라면 조금 다를 수 있었다.
권마처럼 패배하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같은 도객과의 맞대결이라니, 이거 너무 흥분되는군,’
도마는 팽중호가 자신과 같은 도객이라는 것이 너무나 기뻤다.
마교에도 도를 쓰는 무인은 분명 많이 있다.
하지만 최상위 서열에는 도객은 도마가 유일했다.
그렇기에 언제나 그는 조금 외로웠는데, 이곳 무림에서 지금 팽중호라는 절세의 도객을 만난 것이니 기쁠 수밖에 없었다.
“도마. 이길 수 있겠나?”
천마가 도마를 향해 물었다.
팽중호를 이길 수 있겠냐는 질문.
원래 천마라면 이런 질문은 하지 않았을 사람이다.
하지만 이번 대결의 중요함을 알기에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솔직히 이길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도마는 솔직히 말했다.
쉽게 지지 않을 수는 있어도, 분명 이길 수 있을 상대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만큼 팽중호는 강했다.
“하지만 제가 그의 팔 하나는 가져오겠습니다.”
“하하. 도마가 팔 하나인가…….”
천마가 허허롭게 웃었다.
도마는 천마도 인정한 마교의 신성(新星)이자, 고수.
그런 도마가 팔 하나가 전부란다.
그리고 솔직히 그것 또한 성공할지 미지수.
“이번 비무에는 내가 나가지.”
“예?”
갑자기 천마가 생사회에 나가겠다니?
천마의 말에 도마는 물론 옆에 서 있던 마뇌도 깜짝 놀랐다.
천마가 직접 비무에 나가는 것은, 이번 정마생사회에서 계획되지 않은 일이었으니 말이다.
“뭘 그렇게 놀라지? 어차피 내가 나가는 것이 제일 낫지 않은가?”
“그것은 그렇지만…….”
“내가 질 것이라 생각하는 건가?”
“그럴 리 있겠습니까?”
“하하. 이럴 때는 거짓말을 못 하는군.”
자신이 질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는 마뇌의 대답에 천마가 쓰게 웃었다.
마뇌는 지금 자신과 팽중호가 싸운다면, 팽중호가 이길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여기서 지는 게, 계획에 더 어울리지 않나?”
“……그렇습니다.”
마뇌는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다.
분명히 여기서 도마가 생사결에 나서서 죽는 것보다, 천마가 생사결에 나서서 팽중호에게 죽는 것이 훨씬 더 그녀의 계획에 적합했다.
이미 천마가 이 사실을 알고 있으니, 마뇌는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여기서 거짓을 말해 봐야 먹히지 않는 것을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 내가 나가는 것으로 하지. 도마는 후에 마교를 부탁하겠네.”
“알겠습니다.”
천마가 도마 대신 비무에 나서려는 이유 중 하나.
그것은 바로 마교의 미래를 위해서였다.
사실 지금 마교는 이미 큰 타격을 입었다.
마교의 최상위 서열 무인들은 물론이고, 서열에 든 수많은 마교들이 지금 목숨을 잃었으니 말이다.
만약 이대로 마교가 무림맹과의 싸움에서 이긴다고 하더라도, 다시금 예전의 힘을 되찾으려면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할 터.
천마는 그렇기에 도마라는 걸출한 무인을 살려 두려는 것이었다.
그가 있는 것만으로도 마교가 다시금 힘을 찾는데 많은 시간이 줄 테니까.
“좋아. 내가 아들에게 해 주는 처음이자 마지막 선물이 되겠군. 내일 비무가 끝이 나면, 천마의 자리는 한준이에게 넘겨주도록.”
“예.”
천마는 내일 비무가 어떻게 되던 천마의 자리에서 물러날 생각이었다.
이제 새로운 시대에 넘겨주고 말이다.
* * *
권마와의 비무를 끝내고 숙소로 돌아온 팽중호.
팽중호는 도착과 동시에 곧바로 운기에 들어갔다.
지금 권마와의 대결에서 입은 내상이 결코 작지 않기 때문이었다.
‘쓰읍. 아주 다 진탕이 났네.’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었다.
아마 오늘 하루는 꼬박 운기만 해야 할 듯싶었다.
휘이이이이이잉-
팽중호를 휘감는 기의 바람.
팽중호는 이 기의 바람을 느끼며, 깊은 명상에 빠져들어 갔다.
운기를 하면서 권마와의 싸움을 다시 한번 더 복기했다.
쉽게 이긴 것 같지만, 쉬운 싸움은 결코 아니었고, 팽중호에게 많은 생각을 심어 준 싸움이었다.
‘절대 영역으로 모든 것을 보았지만, 제대로 베어 내지 못했다.’
권마의 마지막 공격.
무뢰를 닮은 그 공격은 절대 영역을 통해 모든 것을 보았지만, 제대로 베어 내지 못하고 내상을 크게 입어 버렸다.
자칫 잘못했으면, 오히려 베어 내지 못하고 역으로 당할 수도 있었다.
권마를 상대로 이런 수준이라면, 앞으로의 싸움이 많이 힘들 터였다.
‘정말 부족함이 끝없이 드러나는구나.’
이미 무림에 적수가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하지만 아직도 부족함은 계속해서 나타난다.
물론 팽중호는 이것이 싫지는 않았다.
계속 더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이니 말이다.
‘다음은 도마가 나올 터. 그는 분명 권마보다 강하다.’
팽중호가 예상하기로 다음 상대는 도마.
그는 권마보다 서열이 높은 것은 물론이고, 아까 보았을 때 그가 가진 기운이 남다르다는 것 또한 느꼈다.
이 운기와 함께 내상을 치유하는 것은 물론이고, 또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준비는 되어 있다.’
팽중호 또한 지금까지 위지철과 곽채령을 도와주면서 많은 깨달음을 적립해 두었다.
이제 그것을 꺼내어 쓸 때였다.
‘앞으로 나간다.’
팽중호의 몸에서 광채와 뇌기가 어우러지고, 기의 바람이 몸을 휘몰아치며 그것들이 하나로 합쳐져 팽중호의 몸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들이 수없이 반복되고 또 반복되기 시작했다.
다음 날 해가 뜰 때까지 말이다.
* * *
마지막 정마생사회의 아침.
이날은 정말로 사람들로 주변이 발 디딜 틈이 전혀 없었다.
정말 무림에 있는 모든 사람이 모인 것과도 같이 모인 사람들.
마지막이 될 정마생사회를 보기 위함이었다.
“아주 많이도 왔구만.”
팽중호도 지금 이만큼 많은 사람을 한 곳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사람들이 내뿜는 열기에 주변이 다 뜨거울 정도.
팽중호는 그런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연무장 중앙으로 나섰다.
처억-
중앙에 선 팽중호는 주변을 쓱 둘러보고는 마교 측을 바라보았다.
도마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스윽-
마교 측에서 팽중호의 예상과 다른 사람이 일어났다.
“처, 천마?”
“천마가 나오는 건가?”
“이럴 수가!”
마교 측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서는 인물.
바로 천마였다.
천마의 움직임에 주변이 시끄러워졌다.
어쩌면 당연했다.
마교의 수장인 천마가 직접 움직이는데 다들 놀라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천천히, 오연한 걸음으로 연무장으로 나오는 천마.
그는 어제 마뇌와 이야기한 대로 지금 도마를 대신해 비무에 나서는 것이었다.
자신의 강함을 조금도 숨기지 않고 나서는 천마.
그런 천마를 바라보는 팽중호의 미간이 조금 일그러졌다.
‘천마가 나와? 이건 예상 밖인데……. 쓰읍.’
천마가 비무에 나서는 것은 팽중호의 계산에 없었다.
도마와 천마는 가진 힘의 급이 다르다.
게다가 천마와는 얼마 전에 직접 부딪혀 보지 않았는가?
‘잘못하면 여기서 반병신이 될 수도 있겠어.’
천마라도 질 것이라고는 생각지는 않았다.
다만, 멀쩡하게 이길 것이라는 장담은 할 수가 없었다.
정말 모든 것을 걸고 싸워야 이길 수 있는 상대였다.
‘여기서 밑천을 다 내보여야 한단 말이지…….’
아직 마교에는 소천마가 남아 있다.
그런데 여기서 지금 밑천을 전부 내보여야 할 상황이 벌어졌다.
만약 천마를 멀쩡하게 이긴다고 하더라도, 득보다 실이 많은 싸움이 될 수 있었다.
‘그래도 우선 이겨야지.’
이것은 생사결.
어차피 지면 죽는 것이다.
밑천이 전부 드러나건 어쨌건, 일단은 이겨야 그다음이 있는 것이었다.
“천마께서 직접 나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하하. 나도 몰랐지.”
“천마 자리는 넘겨주시는 겁니까?”
“그렇지……. 그런데 어째 내가 질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군.”
“그럴 리가요.”
“누구와 아주 비슷하군 그래.”
천마는 지금 대회에서 마뇌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둘 다 자신이 질 것이라고 판단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마교의 교주이자, 마교 서열 일(一) 위였던 자신이 질 것으로 판단하다니.
분명 아주 좋은 기분만은 아니었다.
“나는 이 천마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저도 무림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스릉-
천마가 허리춤의 천마검을 뽑아 들었다.
그가 검을 뽑아 들자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천마에게로 향했다.
이들 중 거의 대다수가 천마를 처음 보는 것은 물론, 천마신공을 처음 보는 것이니 말이다.
화르르르르륵-
천마강기가 천마검에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 모습에 사람들의 눈이 더욱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이 다시금 모인 곳.
그곳은 바로 팽중호였다.
“바로 본론입니까?”
“그래.”
“이것 참…….”
스릉-
팽중호가 멸뢰진천도를 꺼내어 들었다.
벽력을 펼치기 위해서는 도갑에 멸뢰진천도를 넣어 두어야 했는데 말이다.
“그 짧은 시간에 더 강해졌군.”
“더 위로 가야 해서 말입니다.”
천마는 대번에 팽중호가 지난번 대련 때보다 강해졌음을 알아보았다.
“그래. 그럼 어서 보고 싶군.”
“보고 후회는 하지 마십쇼.”
“그럴 리가.”
팽중호의 눈이 황금안(黃金眼)으로 변하고, 기운 또한 변하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본 천마의 천마강기도 더욱 활활 타올랐다.
-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벽력(霹靂).
번쩍-
팽중호의 멸뢰진천도가 움직였다.
아니, 이미 움직인 뒤였다.
쿠르르릉-
카가가가가가각- 쾅-!
천마가 서 있던 곳에서 엄청난 굉음들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뒤로 밀려나는 천마의 신형.
“크큭. 미쳤군. 미쳤어.”
입가를 비틀며 미소를 짓는 천마.
그런 천마의 입에서는 가느다란 핏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었는데, 이것은 그가 지금 내상을 입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단 일격.
단 일격으로 지금 팽중호는 천마에게 내상을 입힌 것이다.
‘손이 찢어지고, 기혈이 뒤틀렸다.’
그저 한 번의 공격을 막은 것뿐인데, 손아귀가 찢어지고, 몸의 기혈이 조금 뒤틀렸다.
방금 팽중호의 일격에 담긴 힘 때문이었다.
마치 하늘이 짓누르듯 무겁고, 세상 그 어떤 것보다 빨랐으며, 공격을 막았음에도 엄청난 진동이 몸 안으로 전해져 왔다.
마치 정말로 벽력이 자신에게로 떨어진 것만 같은 충격.
천마는 이전 대련에서 팽중호가 자신에게 보여 주었던 것을 완벽히 완성했다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정말 그야말로 벽력이군 그래.”
“덕분에 더 완벽하게 완성했습니다.”
확실히 팽중호는 천마와의 대련이 있었기에 이 벽력을 완성해 낼 수 있었다.
단세, 진천, 곡세.
이 세 초식을 완벽히 하나로 합쳐서, 정말 하늘에서 떨어지는 벽력과 같은 초식을 만들어 낸 것이다.
“좋아. 그러면 나도 이대로 있을 수는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