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보류해 두겠습니다.
다시금 시작된 정마생사회.
지금의 비무는 그 어느 때보다 사람들의 이목이 쏠려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드디어 도신(刀神) 팽중호가 나서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마교 측에서도 권마(拳魔)가 나선다.
이 둘의 대결이니만큼, 이목이 쏠리는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
“다녀오겠습니다.”
“예.”
“다녀오세요.”
팽중호가 다녀오겠다고 말하자 위지철과 곽채령이 고개를 끄덕이며 잘 다녀오라 말해 주었다.
두 사람 다 크게 팽중호를 걱정하지는 않는 얼굴.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비무에 나서는 사람이 팽중호였으니 말이다.
두 사람은 팽중호를 절대적으로 믿었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천천히 연무장 중앙으로 걸어 나가는 팽중호.
모든 시선이 그에게 집중됐다.
심지어 마교 측 모든 인물의 시선까지 말이다.
숨 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요해진 주변.
그 와중에 팽중호의 사뿐한 발걸음 소리만 주변에 울려 퍼졌다.
처억-
연무장 중앙에 딱 자리를 잡은 팽중호.
그 오연한 모습에 일순 다들 침을 꿀꺽 삼켰다.
“도신…….”
누군가의 입에서 홀린듯 도신이란 별호가 흘러나왔다.
연무장 중앙에 서 있는 팽중호의 모습은 그야말로 위엄이 넘쳤다.
‘흠. 좋아. 이 정도는 보여 줘야지.’
팽중호는 지금 일부러 주변에 기운을 내뿜고 있는 중이었다.
사람들에게 존재감을 각인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지금 주변에 지켜보고 있는 수많은 사람.
그들에게 도신 팽중호라는 이름을 각인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야 이 정마생사회가 끝난 후에도 저들이 자신을 영원토록 기억할 테니 말이다.
“흘흘. 좋은 기세구나.”
사박- 사박- 사박- 사박-
너무나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가오는 초로의 노인.
새하얀 백발과 백미가 너무도 어울리는 노인이었다.
그 모습에, 사람들은 이 노인이 누구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권마다!”
그랬다.
이 초로의 노인이 바로 마교 서열 오 위의 강자인 권마였다.
어쩌면 평범하게 볼 수 있는 모습.
하지만 그의 몸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기운은 그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 주고 있었다.
쿠우우우우우우웅-
마치 팽중호가 무뢰진천을 펼친 것처럼 주변을 압박하는 권마의 기운.
확실히 보통 무인이었다면, 이 압박에 이미 전의를 상실했을 터였다.
“안녕하십니까.”
“그래.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확실히 신수가 훤하구나.”
“하하. 감사합니다.”
목숨을 걸고 싸우는 생사결을 할 사람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평범한 대화.
물론 대화만 평범할 뿐, 둘 사이에선 보이지 않는 기세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둘은 동시에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만만치 않다.’
사실 팽중호는 권마보다 상위 서열인 검마를 이긴 상태.
그보다 밑의 서열인 권마 정도는 당연히 이기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권마는 검마에 비해 밑이라 할 수 없는 실력자였다.
그 이유는 바로 권마가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 주었기 때문이었다.
권마의 나이가 있었으니, 후배인 검마에게 자리를 내어준 것이다.
실상 검마보다 권마가 더 강하다고 할 수도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무공을 갈고닦은 사람이니 말이다.
“그럼 우리 이제 슬슬 시작해 보세나.”
“예.”
서로의 실력이 범상치 않다는 것은 파악이 끝났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실제로 부딪쳐 싸우는 것뿐.
스릉-
팽중호의 멸뢰진천도가 뽑혀 나오고, 권마는 자연스레 손을 앞으로 내뻗었다.
서로의 준비 자세.
그것만으로 이미 연무장은 긴장감으로 꽉 들어찼다.
누군가 살짝 건드리기만 하여도 터질 듯 팽배한 긴장감.
툭-
그때, 갑자기 어디선가 바닥에 무언가를 떨어트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게 신호라도 된 듯 팽중호와 권마의 신형이 동시에 움직였다.
쾅-! 콰쾅-! 쾅-! 콰콰쾅-!
사람들의 눈에는 두 사람의 신형은 보이지 않고, 강렬한 파공음과 기파가 터져 나가는 것만이 보일 뿐이었다.
지금 둘의 모습을 정확히 볼 수 있는 사람은 이 연무장에서도 많지 않았다.
그만큼 엄청난 수준의 격돌.
“하북팽가의 도법이 이 정도까지 강할 줄이야.”
“뭐, 무공도 좋은데, 제가 잘난 탓이죠.”
“흘흘. 그것도 맞는 말이지.”
이런 엄청난 공방 속에서도 팽중호와 권마는 대화를 나눌 만큼 여유로웠다.
지금 이것은 그들의 전력을 다한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본격적인 싸움에 앞선 몸풀기 정도라고 하면 되었다.
“몸은 좀 풀린 것 같은데, 이제 진짜 힘을 보여 주겠나?”
“물론이죠.”
쿠우우우우우우웅-
쿠구구구구구구궁-
“헙!”
“허억!”
갑자기 천지 사방을 압도하는 엄청난 기운이 두 사람에게서 동시에 터져 나왔다.
지켜보던 사람들이 이 기운에 다들 기겁을 할 정도.
이제 진짜 두 사람의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팽가의 무공이 혼원벽력도였나……?”
“맞습니다.”
“맞군. 내 무공은 벽력파악권이라 하네.”
벽력파악권(霹靂破岳拳).
권마가 평생을 익혀온 무공의 이름이었다.
어쩌면 혼원벽력도와 매우 결이 비슷한 무공.
그렇기에 지금 권마는 조금 더 피가 끓어 올랐다.
그것을 깨부수고 싶기 때문이었다.
파지지지직-
권마의 주먹에 뇌기가 번뜩였다.
그리고 이 모습을 본 팽중호의 눈이 번뜩였다.
“정말 피가 끓게 해 주십니다.”
팽중호도 피가 끓어 올랐다.
권마와 마찬가지로 상대의 무공을 깨부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철컥-
다시금 도갑으로 돌아가 멸뢰진천도.
권마는 이것만 보고도 지금 팽중호가 얼마나 위험한 무공을 펼치려 하는지를 느꼈다.
그렇기에 그도 만반의 준비를 시작했다.
쿠르르르르릉-
권마의 주먹에서 울리는 뇌성.
그 주먹에서 느껴지는 힘이 범상치 않았다.
그것은 초식을 준비하는 팽중호에게도 여실히 느껴졌다.
씨익-
팽중호는 그 힘에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더욱더 피가 끓게 해 주었으니 말이다.
“가네.”
“예.”
쾅-
엄청난 진각과 함께 공간을 격하며 달려드는 권마.
그리고 그와 동시에 권마의 주먹이 뻗어 나왔는데, 거대한 뇌격이 팽중호를 덮쳐 오기 시작했다.
보는 이들의 몸이 다 저려 올 정도의 위력.
물론 팽중호도 그저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벽력(霹靂).
번쩍- 콰르릉-
그대로 권마의 뇌격을 가르며, 권마까지 가르기 위해 나아가는 팽중호의 벽력.
그런데 그 벽력이 권마의 앞에 도달했을 때, 권마가 손으로 잡자마자 벽력은 그대로 소멸해 버리고 말았다.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
“호?!”
“흘흘. 노부의 잔재주가 어떤가?”
“잔재주라기에는 너무 대단한 재주 아닙니까?”
지금 권마가 보여 준 것.
권마는 그것을 잔재주라고 하였지만, 결코 잔재주 같은 것이 아니었다.
‘이래서 위 소협이 나오면 무조건 질 것이라고 한 거군.’
권마의 손에 순식간에 소멸해 버린 기운.
권마는 손에 닿은 기운을 자신의 기운으로 정확히 상쇄시켜서 소멸시킨 것이다.
만약 위지철이 무극검을 사용했다면, 권마에게 모조리 소멸당했을 터였다.
‘그 찰나에 정확히 내공을 내뿜어 상쇄시켰다.’
권마는 벽력에 손이 닿는 그 찰나에 정확히 같은 양의 내공을 내뿜어 벽력을 상쇄시켰다.
이것은 정말 오랜 수련과 실력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
역시 권마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다시 해 보세.”
“후우.”
팽중호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지금 눈앞의 권마는 수를 모두 숨기고 이길 수 있는 자가 아니란 것을 다시금 느꼈다.
-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벽력(霹靂).
번쩍- 콰르르르릉-
커다란 벽력이 다시금 팽중호에게서 펼쳐져 나왔다.
다만, 조금 전과는 달랐다.
더욱더 거대한 뇌성.
순간 세상이 멈추고, 그대로 권마의 몸이 반으로 잘린 듯한 착시가 보였다.
서걱- 촤아아아악-
그리고 그와 함께 권마의 오른팔이 잘려 나갔다.
권마는 그런 자신의 오른팔을 커진 눈으로 가만히 바라보았다.
“내 힘으로도 감당치 못한 건가.”
권마는 자신의 오른팔이 잘린 이유를 단번에 알아차렸다.
방금과 같이 내공을 내보내 상쇄시키려 했지만, 자신이 가진 힘 이상이 팽중호의 벽력에 담겨 있었기에 상쇄시키지 못하고 팔이 잘려 버린 것이었다.
권마인 자신이 가진 힘보다 훨씬 더 강한 힘.
아직 젊디젊은 무인이 그런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흘흘. 적수를 잘못 만났군. 재밌어.”
팔이 잘린 상황이건만, 권마는 웃었다.
자신의 최후를 맞이하기에 어쩌면 최고의 상대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하북팽가의 벽력이 천하제일이라 해도 되겠어.”
“그건 좀 더 보류해 두겠습니다.”
“흘흘.”
쿠콰카카카카카카칵-
권마의 기운이 폭발할 정도로 강하게 터져 나왔다.
동귀어진하겠다는 각오로 모든 힘을 다 끌어올린 것이었다.
그리고는 그는 남은 왼팔로 팽중호를 향해 제자리에서 주먹을 내뻗었다.
이전과 같이 뇌기가 번뜩이지도, 뇌성이 울리지도 않은 권마의 주먹.
하지만 팽중호는 지금 이 일 권이 얼마나 위험한 공격인지 느낄 수 있었다.
‘무뢰와 같다.’
팽중호의 무뢰와 같은 공격.
권마의 일권이 공간을 우그러트리며 팽중호를 향해 다가왔다.
시이이이잉-
팽중호의 두 눈이 황금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절대 영역.
팽중호의 절대 영역이 발휘가 된 것이다.
같은 절대 영역이건만 위지철이나 곽채령과는 조금 달랐다.
‘보인다.’
팽중호의 절대 영역은 두 사람보다 한 단계 더 위의 경지.
지금 팽중호에게는 기운의 움직임 하나하나까지 모두 보였다.
권마의 공격이 한눈에 들어왔고, 곧바로 그 공격을 향해 멸뢰진천도를 내뻗었다.
“흡!”
물론 모든 것이 보인다고, 권마의 공격을 쉽게 파훼할 수는 없었다.
팽중호는 멸뢰진천도를 타고 들어오는 엄청난 거력에 절로 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결국 팽중호는 권마의 공격을 베어 내었다.
“나쁘지 않은 생이었다.”
“나중에 지옥에서 뵙겠습니다.”
서걱-
권마의 몸이 베였다.
그대로 허물어지는 권마의 신형.
팽중호는 멸뢰진천도를 도갑에 집어넣고는 몸을 돌려 무림맹 측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마치 주변에 보란 듯이 천천히 걷는 팽중호.
상처 하나 없이 깔끔한 팽중호의 모습에 사람들은 모두들 놀라고 또 놀라고 있었다.
마교의 권마를 상대로 상처 하나 없이 승리하다니?
도신 팽중호라는 이름을 온 천하에 떨친 것이다.
‘속이 다 뒤틀렸군.’
물론 멀쩡한 겉모습과는 다르게 지금 팽중호의 속을 크게 뒤틀려 있었다.
그 권마를 상대했는데, 어떻게 완전히 멀쩡할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팽중호는 일부러 조금도 티를 내지 않았다.
강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지금 당장 빨리 숙소로 달려가고 싶은 것을 참고, 이렇게 보란 듯이 천천히 걷고 있는 것이었다.
“역시 소가주님입니다.”
팽중호가 돌아오자 위지철이 곧바로 팽중호에게 다가왔다.
그러곤 팽중호의 안색을 쓱 살펴보더니, 자연스레 기운을 팽중호에게 흘려넣어 주었다.
지금 팽중호가 내상을 입었음을 알아본 것이다.
“감사합니다. 위 소협.”
“아닙니다.”
그렇게 속이 조금 진정된 팽중호는 몸을 돌려 마교 측을 바라보았는데, 누가 당해도 웃거나 별다른 반응이 없던 마교도 지금 권마의 압도적인 패배는 예상치 못했는지, 상당히 동요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물론 그 와중에 세 명의 사람은 이런 상황을 예상했다는 듯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지만 말이다.
‘천마와 마뇌…… 그리고 한 명은 도마(刀魔)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