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화 무엇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위지철은 곽채령을 숙소에 눕힌 뒤에 잠시간 지켜보다가, 팽중호를 찾아갔다.
그가 오늘 준다던 숙제.
그것이 무엇인지 너무나 궁금했다.
“자, 일단 앉으십쇼.”
“네.”
팽중호는 우선 위지철을 자리에 앉게 한 뒤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일 있을 비무에서 위 소협에게 드릴 숙제는……. 강기의 검만으로 이기시라는 겁니다.”
“태극신검은 쓰지 말라는 이야기십니까?”
“예. 맞습니다.”
팽중호가 위지철에게 내건 숙제.
그것은 바로 강기로 이루어진 검으로만 비무를 하라는 것이었다.
팽중호에게 배워 만들어 낼 수 있는 강기의 검.
분명 아주 뛰어난 것이지만, 사실상 태극신검에 비할 것은 아니었다.
위지철 무공의 주는 분명 태극신검으로 펼쳐지는 무극만변신공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 태극신검을 쓰지 말라니?
“그 검을 완벽하게 다루셔야 천마를 이길 수 있습니다.”
팽중호의 말에 눈을 빛내는 위지철.
천마를 이길 수 있다.
이 말이 지금 위지철의 눈을 빛나게 하였다.
“정말 가능합니까?”
“물론입니다.”
“알겠습니다.”
위지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이렇게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몸을 좀 움직여야 할 것 같았다.
“분명 위 소협에게 아주 뜻깊은 비무가 될 겁니다.”
“예.”
그렇게 위지철이 팽중호의 숙소를 벗어났다.
혼자 남은 팽중호.
팽중호의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얼마나 놀라운 것을 볼까?”
곽채령에게서 놀라움을 보았다.
그렇다면 위지철에게서도 당연히 놀라움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곽채령보다도 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위지철이니 말이다.
“강기의 검……. 그것이 위 소협을 생사경으로 올려 줄 것이다.”
검마에게서 처음 보았던 강기의 검.
팽중호는 이것이 위지철을 생사경의 경지로 이끌어 줄 것이라 생각했다.
단순히 강기로 검을 만든다고 생사경이라는 지고한 경지에 다다를 수는 없다.
하지만 이것을 만들고 유지하고 쓰면서 얻는 깨달음이 그를 생사경의 경지로 올려 줄 터였다.
그리고 그것은 위지철이 천마를 이길 수 있게끔 해 줄 것이다.
“내일 비무 기대가 되네.”
* * *
다음 날 아침.
어김없이 정마생사회가 시작이 되었다.
어제보다 더욱 많은 이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는데, 그것은 신검(神劍) 위지철이 나온다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위지철이 무림에서 가지는 무게를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잘하고 오십쇼.”
곽채령은 아직까지 누워 있는 상태.
팽중호가 위지철에게 미소와 함께 잘하라고 응원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어제 말씀드린 것, 기억하고 계시죠?”
“물론입니다.”
스윽-
위지철이 허리춤의 태극신검을 풀었다.
그리고는 그것을 팽중호에게 내밀었다.
“아예 맡기고 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제가 지키고 있겠습니다.”
검객이 검을 남에게 맡긴다는 것.
그것은 절대적인 신뢰가 있지 않다면 절대로 하지 않는 일이었다.
게다가 보통 검도 아닌, 무당파의 신물인 태극신검이지 않은가?
이것은 그만큼 위지철이 팽중호를 믿는다는 뜻이었다.
‘자신이 있다는 거군.’
그리고 또 하나.
위지철이 팽중호에게 검을 맡긴 것은 지금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이었다.
태극신검이 없어도, 강기의 검만으로 비무에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말이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위지철이 비무대 위로 걸어 나가자, 사람들의 눈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그리고는 이내 다들 무언가를 찾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위지철을 이리저리 살펴보기 시작했다.
“검이 없는데?”
“정말일세, 이게 무슨…….?”
사람들은 지금 위지철이 검을 들고 오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신검이라 불리는 검객이 검을 들지 않고 비무대에 오르다니?
이것은 비무를 포기한다는 소리나 마찬가지 아닌가?
스윽- 처억-
위지철이 그렇게 연무장 중앙에 섰다.
조용해진 주변.
그리고 이내 마교 측에서 한 명의 인영이 연무장 위로 나타났다.
허공을 표홀하게 가로지르며 나타난 중년인.
“하핫! 안녕하신가!”
너무나 쾌활하고 활기찬 목소리의 중년인.
화려한 옷에 그에 어울리는 수려한 외모는 그를 아주 호감 가게 보이게끔 해 주었다.
겉모습만 봐서는 풍류를 아는 협객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사람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무림에서 신검이라고 불리는 청년과 검을 섞을 수 있다니, 이거 영광이네.”
“예.”
“아, 참. 내 소개를 안 했군. 나는 마교에 몸을 담고 있는 신풍검마(迅風劍魔)라고 하네.”
마교 서열 십삼(十三) 위 신풍검마.
그는 마교에서도 호쾌한 성격으로 유명한 자였다.
그리고 그런 성격만큼이나 그의 검법도 아주 호쾌한 것으로 유명했다.
그는 원래 마교 서열 십 위 내인 마교십마(魔敎十魔) 중 한 명이었는데, 이번에 십삼 위로 내려오게 된 무인이었다.
“그런데 검은 어디에다 두었나?”
“여기 있습니다.”
슈와아아악-
순식간에 위지철의 손에 검이 나타났다.
그 모습에 주변에 지켜보던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갑자기 텅 빈 손에 검이 나타나니까 놀라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호? 전에 검마 님에게 봤던 것 같군.”
신풍검마는 검마가 강기로 검을 만드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단번에 알아보았다.
“좋아. 검은 있으니……. 사양 않고 가겠네.”
“물론입니다.”
신풍검마가 기세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휘이이이이이잉-
그를 휘감는 바람.
신풍검마라는 그의 이름과 너무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탓-
신풍검마가 먼저 움직였다.
바람과 함께 달려오는 신풍검마.
순식간에 위지철의 앞에 도착한 신풍검마의 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캉- 카캉- 카카각- 카칵-
그런데 보통의 검법과는 달랐다.
검만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검집까지 이용하는 일종의 쌍검술이 펼쳐져 나왔다.
‘검집을 이용한다니?’
신풍검마를 상대하는 위지철의 눈이 반짝 빛났다.
검집을 이용하는 무공은 위지철도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검집을 이용한다니?
분명 흔치 않은 무공이었다.
카각- 칵- 캉- 카캉-!
쉬지 않고 계속되는 엄청난 연격을 보여 주는 신풍검마.
마치 몰아치는 바람과 같은 연격이었다.
위지철은 이 연격에 공격할 틈을 찾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흐음. 내 무공 구경은 끝이 난 것 같은데……. 이제 자네 무공을 보여 주지 그러나?”
하지만 신풍검마는 알고 있었다.
지금 위지철이 공격할 틈을 찾지 못해서 막고만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말이다.
그는 지금 자신의 공격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평가를 당하는 중인 것.
물론 신풍검마는 이것이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상대가 그만큼 강자라는 것은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스윽-
위지철이 드디어 앞으로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그저 한 걸음일 뿐인데, 갑자기 주변의 공기가 달라졌다.
쿠우우우우우우웅-
주변을 압박하는 엄청난 기운.
위지철은 지금 팽중호의 무뢰진천의 수를 펼쳐 낸 것이다.
그리고
슈와아아악-
“헛!”
“허?!”
위지철의 다른 손에 검이 하나 더 나타났다.
양손에 들린 강기의 검.
무극만변신공(無極萬變神功). 무극검(無極劍).
위지철이 만들어 낸 강기로 이루어진 검의 이름.
그리고 이 검은 끝이 없다는 이름처럼 정말 끝없는 변화를 보여 줄 수 있었다.
검의 형태가 자유자재로 변함은 물론이고, 검에 담긴 묘리마저 자유자재로 변하였다.
카가각- 카칵- 서걱- 촤악-
결국 신풍검마의 몸에 상처가 났다.
솟아오르는 핏줄기.
“흡!”
신풍검마가 순간 뒤로 몸을 빼었다.
거리를 벌리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슈와아아악- 서걱- 촤아아아악-!
투욱-
순식간에 위지철의 무극검이 늘어나면서 다시금 신풍검마를 베었다.
바닥에 떨어진 신풍검마의 왼팔.
신풍검마는 급히 팔을 지혈하며 피를 멈추었지만, 이미 떨어진 팔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까지 늘어나기도 하는 건가?”
떨어진 팔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상태로, 위지철을 바라보며 묻는 신풍검마.
조금 전 검이 늘어나서 자신을 베어 온 수.
그것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컸다.
단순히 그저 검이 늘어난 것이라면, 이렇게 팔이 잘리지는 않았을 터다.
“무공에 한계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 하하하! 그렇군! 맞는 말이네!”
한계는 없다고 말하는 위지철의 말에 신풍검마가 크게 웃었다.
그는 지금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지금이 자신의 생의 마지막임을 느꼈지만, 그래도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이 크게 기쁜 그였다.
“좋아. 자! 가겠네!”
한쪽 팔로 다시금 달려드는 신풍검마.
그의 입가에는 즐거운 미소가 가득했는데, 그 미소만큼이나 그의 발걸음마저 가벼웠다.
휘이이이이이잉-
신풍검마의 몸을 휘감는 거대한 바람.
그는 지금 목숨을 걸고 모든 힘을 끌어올린 것이었다.
일전과는 완전히 다른 기세.
방금 얻은 깨달음까지 더해진 그의 기세는 입이 벌어질 정도로 대단했다.
“후.”
이 기세에 맞서서 위지철도 더욱 기운을 끌어올렸다.
쿠구구구구구구궁-
더욱더 강력한 힘으로 주변을 짓누르는 압박.
그리고 위지철의 눈이 벽안(碧眼)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곽채령과 같은 절대영역에 들어선 것이다.
“가네!!”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신풍검마가 달려들었다.
위지철의 압박 때문에 운신이 쉽지 않을 텐데도 엄청난 움직임을 보여 주었다.
폭풍과도 같은 신풍검마의 움직임.
그런 신풍검마의 폭풍 한가운데로 위지철이 달려들었다.
그저 보이는 것만으로는 마치 불길에 달려드는 불나방 같은 모습의 위지철.
하지만 결과는 결코 그렇지 않았다.
슈와아아아아악- 카가가가각-
위지철의 무극검 두 자루가 신풍검마의 모든 기운을 모두 흘려버렸다.
단 하나의 바람도 위지철에게 닿지 못했다.
서걱- 촤아악-!! 털썩-
그리고 신풍검마의 가슴팍이 베였다.
바닥에 그대로 무릎을 꿇는 신풍검마.
“하하하! 아주 좋은 마지막이었네! 고맙네!”
“저야말로 감사드립니다.”
“…….”
신풍검마가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그의 얼굴에는 아직 진한 미소가 남아 있었는데, 그가 정말로 즐거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스윽-
위지철은 쓰러진 신풍검마에게 정중한 인사를 건넨 뒤, 연무장을 벗어났다.
비무에서 승리한 위지철.
하지만 지금 위지철의 표정은 무언가 복잡해 보였다.
“만족스럽지 않으십니까?”
“무언가……. 무언가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팽중호는 위지철의 표정을 바라보며 만족스럽지 않았냐고 물었다.
사실 지금 이 표정은 팽중호가 바란 표정이었다.
태극신검없이 처음으로 행한 비무.
여기서 만족을 느끼지 못해야, 위지철이 더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무엇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하하, 그럼 오늘 하루 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
고민 가득한 표정으로 돌아가는 위지철.
팽중호는 그런 위지철의 뒷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내일은 또 다른 위 소협을 보겠군.’
사실 지금 신풍검마와의 비무도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강기의 검을 두 자루를 만들어 내지를 않나, 그것을 자유자재로 이용하지를 않나…….
게다가 상처 하나 없이 상대를 이겨 버렸다.
이것만 보아도 지금 위지철이 얼마나 강해졌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위지철은 그 상태에서 또 위로 올라가려는 것이다.
아마도 내일이면 오늘보다 더욱 괴물 같은 위지철을 볼 수 있을 터였다.
지금 위지철이 하는 고민, 그것이 그를 정상으로 올려 줄 테니 말이다.
‘나도 게으를 수 없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