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화 완전히 다른 수준일 테니 안 되겠지.
괴살마조(怪殺魔爪).
마교 서열 십칠(十七) 위.
그는 오랫동안 서열 십칠위에 머물러 있는 무인이었다.
더 올라가지도, 더 내려가지도 않고, 오로지 십칠 위를 지키는 자.
때문에 그의 실력에 대해서는 마교에도 정확히 아는 자가 없었다.
분명 십칠 위 이상의 실력인데, 그가 그 이상으로 가지 않으려 했으니 말이다.
어찌 되었건 그런 실력의 괴살마조인데, 지금 곽채령에게 완전히 압도당하고 있었다.
퍼억- 퍽- 퍼억- 퍽-
기이하게 꺾이며 곽채령을 공격해 오던 괴살마조의 팔이 곽채령의 장법에 모조리 튕겨져 나갔다.
괴살마조의 눈에 당황의 기색이 진하게 나타났다.
자신의 공격을 이렇게나 쉽게 막아 내다니?
“카악!”
흐으으으으으-
괴살마조가 괴이한 소리와 동시에 양손에서 날카로운 기운을 마구 내뿜기 시작했다.
그를 지금에 있게 만들어 준 귀혼구령조(鬼魂救靈爪)가 펼쳐진 것이다.
눈에 보이는 날카로운 기운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귀신과 같은 기운이 더욱 무서운 무공.
이건 결코 쉽게 막아 낼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다.
파지지지직- 파지지지직- 팟-
괴살마조의 공격이 다가오는 동안 곽채령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을 휘감고 있던 청뢰가 갑자기 사라졌다.
마치 더 이상 내공을 운용치 않은 것처럼 씻은 듯 사라진 그녀의 청뢰.
그리고 그녀의 두 눈이 청뢰와 같은 벽안(碧眼)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시이이이이잉-
곽채령의 귀에만 들려오는 기이한 소리.
그리고 이 소리와 함께 지금 곽채령에게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열렸다.
초감각.
아니, 이것은 보통의 초감각과 달랐다.
그것을 더욱 뛰어넘은 단계.
‘미쳤군.’
팽중호는 지금 곽채령이 어떤 상태인지 알아보았다.
초감각을 넘어선 그 이상의 단계.
팽중호도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은 단계인데, 곽채령이 단 하루 만에 그 단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절대영역(絶對領域).’
팽중호가 붙인 이름.
지금 곽채령의 주변의 영역은 완벽히 곽채령의 감각에 들어서 있을 터다.
‘어떻게 이용할지 지켜보자.’
팽중호는 곽채령과 괴살마조의 비무에 다시 집중했다.
곽채령이 이 절대영역으로 어떤 것을 보여 줄지 기대가 되었다.
스윽-
곽채령이 한 발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괴살마조의 공격에 아무런 대비도 없이 뛰어드는 꼴인 모습.
지켜보던 이들 모두가 소리조차 내지도 않은 상태로 집중하며 곽채령을 바라보았다.
다들 지금 곽채령이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것이다.
파짓- 파지짓- 파짓- 파팟-
괴살마조의 공격이 곽채령에게 닿을 때마다 잠깐씩 청뢰가 번뜩였다.
그리고 그대로 곽채령의 몸을 지나쳐 흘러 나가 버렸다.
괵채령은 최소한의 움직임만을 취하며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는데, 그 어떤 공격 하나도 곽채령의 몸을 건드리지도 못했다.
“카아악!”
하지만 괴살마조도 보통의 무인이 아니다.
마교 서열 십칠 위의 절대 고수.
지금 곽채령이 만만치 않다는 것은 잘 알았기에, 그도 모든 힘을 끌어올렸다.
숨이 막혀 올 정도의 기운이 주변을 뒤덮기 시작했다.
엄청난 이 기운은 게다가 보통 기운도 아니었다.
‘마기다.’
마기(魔氣).
마교의 무인들의 대부분은 마기를 쓰는 마공을 익히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 전부가 마공을 쓰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마교는 마공에 관해서 따로 제재는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웬만한 것은 다 허용이 되는 곳이었다.
괴살마조가 익힌 귀혼구령조는 본래의 뿌리가 마공인 무공.
그렇기에 당연히 마기가 가득할 수밖에 없었다.
‘일부러 마기는 쓰지 않고 있었군.’
괴살마조는 일부러 평소에는 마기를 끌어올리지 않았다.
아니, 끌어올릴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이 맞을 터였다.
마기를 쓰지 않아도 충분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곽채령은 마기를 쓸 수밖에 없는 수준의 상대.
“너를 인정한다.”
괴살마조는 곽채령을 자신의 맞수로 인정했다.
신서린을 이겼다고는 하여도, 사실 자신보다는 밑이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괴살마조는 스스로의 실력에 자신이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하루 사이에 무슨일이 있던 것인지, 아니면 본래의 실력을 숨겼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곽채령은 분명 자신과 싸울 만한 자격이 있는 무인이 되어 있었다.
그런 상대에게 힘을 감추고 싸운다는 것은 어불성설.
그렇기에 지금 그는 정말 오랜만에 마기까지 모조리 끌어올린 것이었다.
사사사삭- 사삭- 사사사삭-
흐으으으으으-
마기까지 끌어올린 괴살마조의 귀혼구령조가 다시금 펼쳐져 나왔다.
마기가 더해진 진짜 귀혼구령조.
곽채령의 온 사방을 뒤덮은 귀신의 형상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을 저리게 만들었다.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무공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이것을 완전히 모두 피하거나 흘려 낸다는 것은 불가능할 터였다.
팟-
곽채령의 신형이 그대로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금 나타난 곳은 괴살마조의 바로 등 뒤.
곽채령의 신형이 나타남과 동시에 괴살마조의 귀혼구령조도 사라졌다.
파지지지지짓- 파앗-!
갑자기 우뚝 서 있던 괴살마조의 몸에서 뇌기와 동시에 피가 터져 나왔다.
투우욱-
그대로 무릎을 꿇으며 쓰러지는 괴살마조.
사람들은 지금 그 짧은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를 몰라 서로를 바라보며 묻기에 바빴다.
“어떻게 된 건가? 자네는 봤나?”
“나, 나도 못 봤네. 자네는 보았을 줄 알았는데.”
지금 이곳에서 곽채령의 움직임을 제대로 본 이가 아마 열이나 될까?
그만큼 지금 곽채령의 움직임은 빠르며 신묘했다.
‘정말 제대로 쓰고 있구나.’
팽중호는 곽채령이 지금 절대 영역을 아주 제대로 활용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조금 전 괴살마조의 엄청난 공격을 모조리 피하고 흘려 냄과 동시에, 괴살마조의 가슴팍에 태극청뢰신장을 정확히 적중시켰다.
‘조금의 군더더기도 망설임도 없었다.’
너무나도 빠르고 유연한 곽채령의 움직임.
그것은 모든 것을 보고 듣고 느낀 자가 아니라면 결코 보일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곽채령은 괴살마조의 공격 모든 것을 알아보고 태극청뢰신장으로 흘려 낸 것이다.
‘태극청뢰신장마저도 더 성장했다.’
절대 영역과 동시에 태극청뢰신장마저도 더 성장했다.
엄청난 내공을 잡아먹던 태극청뢰신장이 절대 영역을 통해, 딱 필요한 정도의 내공만 쓰도록 바뀐 것이다.
‘흠. 이러면 더 싸워도 될 것 같기는 하지만……. 다음 상대는 지금과 완전히 다른 수준일 테니 안 되겠지.’
사실 지금이라면 곽채령이 더 생사회를 계속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무지막지한 내공을 소모한다는 단점을 극복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마교 측에서도 이제 다른 수준의 무인이 나올 것이라는 점이었다.
더 이상의 패배는 그들 입장에서도 자존심이 크게 상하는 문제일 테니 말이다.
“저 잘했죠?”
“그래.”
“잘했어. 곽 매.”
팽중호와 위지철이 동시에 곽채령을 칭찬했다.
지금의 곽채령은 정말로 칭찬을 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 말이다.
휘청-
두 사람의 칭찬에 웃던 곽채령의 신형이 갑자기 순간 휘청했다.
덥썩-
위지철이 그런 곽채령을 덥썩 안았다.
정신을 잃은 듯 두 눈을 감고 있는 곽채령.
큰일이 난 것 같아 보였지만, 위지철과 팽중호는 곽채령의 모습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피로가 한 번에 왔군.”
“그런 것 같습니다.”
지금 곽채령이 쓰러진 이유.
그것은 절대 영역 때문이었다.
절대 영역은 한순간에 엄청난 양의 정보가 들어온다.
그런 것을 갑자기 모두 이용하였으니 당연히 머리와 몸에 피로가 쌓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금 대련이 끝나고 긴장이 풀리면서 그 피로가 갑자기 찾아왔고, 곽채령은 정신을 잃듯 쓰러진 것이었다.
“그럼 채령이는 이만하는 것으로 하고, 내일부터는 위 소협이 나서 주셔야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곽채령의 다음으로 정마생사회 비무에 나설 사람은 위지철.
팽중호는 위지철은 사실 걱정도 하지 않았다.
위지철에게는 오히려 기대가 더 컸다.
‘도대체 어떤 모습을 보여 줄까?’
위지철은 지금 자신의 턱밑까지 쫓아왔다.
솔직히 지금 만약 위지철과 대련을 한다면, 절대로 쉽게 이길 수는 없을 터였다.
적어도 팔 하나는 주거나, 최소한 주화입마 직전까지 내상을 입는다고 봐야 했다.
그만큼 강한 위지철이었다.
“일단 오늘은 이만 돌아가죠. 위 소협은 이따가 저한테 따로 오시면 됩니다.”
* * *
마교가 있는 신강.
그곳에서 일곱 명의 무인들이 마교를 빠져나와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천마 척한준과 그를 따르는 천비대(天秘隊)였다.
“지금 무림에서 재미있는 일이 있다던데.”
“예. 생사회라는 것을 하고 있습니다.”
척한준은 느긋하게 움직이며 주변에 있는 천비대에게 현 무림에 대해 이것저것 질문을 던졌다.
천비대는 마교의 숨겨진 집단으로, 오로지 천마와 소천마만 따르는 이들이었다.
그들의 무력은 당연히 마교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강했으며, 그 외에도 정보 수집 등 수많은 방면에서 천마와 소천마를 보좌하였다.
“흐음……. 나도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차피 조만간 싸우시게 될 것입니다.”
“그래. 가장 맛있는 것은 마지막에 먹는 법이지.”
척한준과 천비대는 말을 주고받으면서 더욱 속도를 올려 달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점으로 사라지는 그들의 신형.
그들의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모습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은 그렇게 빠르게 움직이는 와중에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으며, 자세 또한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마치 길을 천천히 걷는 듯한 상태이지만, 움직임은 마치 날아가는 화살만큼이나 빠른 그들이었다.
“그런데 검마께서 지셨다고 했던가?”
“맞습니다. 팽중호에게 지셨습니다.”
“하하. 그 검마께서 지시다니, 이건 좀 놀랍군.”
척한준이 아는 검마는 정말 강한 사람이었다.
솔직히 이전의 자신이라면 승리를 자신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그런 검마가 졌다니?
물론 그 상대가 팽중호라는 이야기에 수긍이 갔다.
무림에서 검마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팽중호말고는 없을 테니 말이다.
“얼마나 더 강해지셨을까?”
척한준은 팽중호가 얼마나 더 강해졌을지가 너무 기대되었다.
사실 지금 그가 이렇게 무림에 나서는 가장 큰 이유는 팽중호 때문이었다.
그와의 싸움을 기대하면 나서는 것이었다.
“이 힘이 얼마나 통할지가 궁금하군.”
“소천마께서 쉽게 이기실 겁니다.”
“아니, 분명 아주 힘든 싸움이 될 거야.”
척한준은 자신의 검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팽중호와 싸우기 위해 강해졌다.
그리고 지금 이 힘이 지금 얼마나 그에게 통할지가 궁금했다.
천비대 대운은 척한준이 손쉽게 이길 것이라고 했지만, 척한준은 고개를 저었다.
절대로 쉽게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아주 아주 치열하고 힘든 싸움이 될 터였다.
씨익-
“기대가 너무 되는군.”
척한준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와 함께 척한준의 몸에서 자연스럽게 기운이 뿜어져 나왔는데, 그 기운이 이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거대했다.
덜덜덜덜덜-
함께 달리던 천비대가 몸을 다 벌벌 떨 정도의 기운.
“소, 소교주님.”
“아, 이런 미안하군.”
천비대의 말에 척한준이 기운을 거두어들였다.
그리고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그 속도가 조금 전보다 훨씬 더 빨라져 있었다.
척한준의 기대만큼 발걸음이 빨라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