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한 가지 숙제가 있으십니다.

화르르르르륵-

주변 공간을 모조리 태우는 천마강기.

팽중호는 이것을 보고 조용히 마른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진짜 죽을 수도 있겠어.’

힘을 좀 내야 막을 수 있다고 했는데, 이건 좀 내서 막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진짜 힘을 내야 막을 수 있을 수준.

이것으로 이미 가벼운 대련은 아니게 되어 버렸다.

“내가 이래서 마교 사람이랑 대련이 싫다니까.”

불평을 늘어놓으면서도 팽중호는 천마의 공격을 막을 준비를 했다.

검마를 쓰러트린 멸혼의 초식이면 분명 막아 낼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 그 초식을 쓸 생각은 없었다.

이건 기회였으니 말이다.

무뢰단세, 무뢰곡세, 무뢰진천을 합칠 아주 좋은 기회.

파팟- 번쩍-

팽중호의 눈에서 뇌기와 빛이 동시에 번뜩였다.

키에에에에에에엥-

그리고 더욱더 크게 울기 시작하는 멸뢰진천도.

주변에 범상치 않은 기운이 퍼지기 시작했다.

지금 팽중호와 천마, 두 사람의 기운이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었다.

물론 이 둘의 대치에 주변은 완전히 박살이 나고 있었지만 말이다.

파사사사사사삭-

퍽- 퍼퍽- 퍼버벅-

주변이 초토화되고 있었지만, 두 사람은 한치의 미동도 없이 서로를 견제하고만 있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곧바로 상대의 공격이 들어올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첨예한 대립.

푸드득-

이 대립은 하늘을 나는 새 한 마리에 의해 깨졌다.

천마의 천마강기가 검의 형태를 하더니 이내 팽중호의 모든 방위를 점한 상태로 그대로 쏟아져 내렸다.

천마신공(天魔神功). 천마멸우(天魔滅雨).

이건 천마가 얻은 깨달음으로 스스로 새롭게 만들어 낸 초식.

이 가득 뒤덮은 검 하나, 하나가 모두 천마신공의 정수를 받은 검이었다.

단순히 받아 낼 수 있는 초식이 아니었다.

스윽- 철컥-

주변이 온통 천마강기로 뒤덮인 지금.

팽중호가 갑자기 멸뢰진천도를 다시금 도갑에 집어넣었다.

갑자기 도를 다시금 집어넣다니?

그것도 내공을 가득 머금은 상태인데 말이다.

이대로 싸움을 포기한 것일까?

“세상을 가르고, 세상을 울리고, 하늘을 떨게 하는 힘. 그것이 바로 벽력이다.”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벽력(霹靂).

사실 팽중호는 이 깨달음에 다다른 상태였다.

다만, 이것을 펼쳐 낼 계기가 필요했을 뿐.

번쩍- 콰르릉-

순간 팽중호의 도갑에서 빛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뒤이어 들린 천둥소리.

순간 주변의 모든 것이 멈춘 듯했다.

팽중호를 향해 쇄도해 오던 천마강기도 모두 멈추었다.

천마의 움직임도 멈추어 있었고 말이다.

“아주 좋아.”

영원과 같던 찰나의 시간이 흐르고, 천마의 입에서 짧은 평이 나왔다.

짧은 평이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평이었다.

지금 팽중호가 보여 준 초식.

그것은 정말 훌륭했다.

스윽-

천마는 자신의 가슴팍을 바라보았다.

피부까지는 닿지 않았지만, 옷은 확실히 베어져 있었다.

‘얼마 만이지?’

자신의 몸에 다른 이의 무공이 닿은 것.

그것은 정말 아주 오래전 자신의 어린 꼬마 시절을 제외하고는 없는 일이었다.

모든 힘을 다한 대련이 아니라지만, 옷이 베였다.

그것도 상대는 자신의 아들과 같은 나이의 젊디젊은 무인.

씨익-

천마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몸에 전해져 오는 가느다란 떨림.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무인으로서의 떨림이었다.

“자, 조금 더 해 보자고.”

“하아, 이것 참.”

팽중호는 지금 천마 덕분에 벽력을 완성시켰다.

분명 고마워해야 할 일이지만, 지금 솔직히 그런 생각은 들지도 않았다.

그만큼 천마에게 혹사당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계속 갑니다.”

“그래.”

* * *

천마와의 대련이 끝난 것은 해가 완전히 넘어간 저녁.

팽중호는 녹초가 되어서 숙소로 돌아왔다.

옷은 너덜너덜해졌고, 몸은 제대로 말을 듣지 않는다.

‘천마는 천마다.’

검마를 넘어섰을 때.

사실 팽중호는 조금 자신감이 있었다.

이 정도라면 천마라도 문제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오늘 직접 부딪쳐 본 천마는 확실히 달랐다.

‘천마신공.’

무림의 오랜 역사 속에서 언제나 첫손에 꼽히는 개세의 무공.

무공이 가진 힘 자체가 달랐다.

분하지만 혼원벽력신공보다 몇 수는 위에 있는 무공이었다.

‘그래도 이길 수는 있다.’

무공 자체의 힘은 깨달음으로 얼마든지 메꿀 수 있었다.

여러 가지 기연도 함께했고 말이다.

모든 힘을 전부 다 쏟아붓는다면, 아마 천마라도 이길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소천마. 그가 문제다.’

천마와 대련을 끝내고 돌아오기 직전.

천마가 팽중호에게 한마디 말을 해 주었다.

‘내 아들은 나보다 더 강하다.’

천마의 아들이라면, 소천마를 말하는 것.

그가 천마보다 더 강하다?

팽중호는 마뇌가 말했던 천마성이라는 말이 떠오르면서, 속으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큰 산 뒤에 더 큰 산이 있다니.’

천마를 여차여차 이긴다고 하여도, 그 뒤에는 소천마가 남아 있는 것이다.

지금보다 더 강해져야만 할 이유가 생긴 것이다.

도저히 쉴 틈이 없었다.

‘나 혼자 천마를 상대하고, 소천마까지 상대를…….’

혼자서 둘 모두를 상대해야 한다?

분명 절대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보통 무인도 아니고, 천마와 소천마이니 말이다.

똑똑-

“소가주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예. 들어오십쇼.”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위지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팽중호는 지금 막 씻은 후였기에 위지철을 들어오라고 하였다.

스으윽-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는 위지철.

위지철은 지금 팽중호가 밖을 나갔다 왔다는 것을 알고 찾아오는 길이었다.

“어디를 다녀오셨습니까?”

“천마를 만나고 왔습니다.”

“예?”

위지철의 눈이 대번에 놀람으로 번뜩였다.

천마를 만나고 왔다니?

적의 수장을 지금 만나고 왔다는 것인가?

“한바탕하고 왔습니다.”

“강합니까?”

한바탕했다는 말에 위지철이 순간 눈을 빛내며 물었다.

팽중호가 천마와 싸우고 왔다는 뜻이었으니 말이다.

천마가 얼마나 강한지에 대해 듣고 싶었다.

“강합니다.”

“저와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흠……. 천마가 더 강합니다.”

“역시…….”

천마가 더 강하다는 팽중호의 말에 위지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아직까진 제 실력이 부족한 것이다.

“그런데 위 소협이 이길 수도 있습니다.”

“예?”

“이번 생사회가 끝나고 저랑 같이 폐관 수련 좀 하시면, 천마를 이기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입니까?”

“예. 정말입니다.”

팽중호는 지금 천마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간파했다.

그리고 지금 위지철이 조금만 더 노력한다면, 천마를 이길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 나 혼자 둘을 상대할 필요는 없지.’

팽중호는 위지철을 보기 전까지 혼자서 천마와 소천마를 상대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딱 위지철을 보니, 그럴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위지철에게 자신이 깨달은 모든 것을 공유하면, 분명 그가 천마를 상대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위 소협이면 가능하다.’

위지철이 강해지면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무리수를 안고 갈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었다.

위지철은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끔 할 재능이 있었다.

짧은 시간 안에 말도 안 될 성장이 가능한 사람이었다.

“그보다 채령이는 괜찮습니까?”

“예. 오히려 더 투지를 불태우고 있습니다.”

팽중호는 천마와 소천마의 문제는 우선 뒤로 접어두고, 당장 생사회를 해야 하는 곽채령의 상태에 관해 물었다.

사실 이런저런 계획도 여기서 만에 하나라도 지게 된다면 전부 틀어지는 것이었다.

곽채령 또한 무림맹에 없어서는 안 될 무인이었으니 말이다.

“채령이는 내일 한 명만 더 이기면, 바로 비무를 멈추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위 소협이 감사할 게 뭐가 있습니까?”

“하하…….”

애초에 곽채령은 딱 두 번의 비무만 하게끔 하려고 생각했다.

그녀를 못 믿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무공이 그 이상의 대련은 힘든 무공이기 때문이었다.

태극청뢰신장은 강력한 위력을 보이는 만큼 많은 내공을 소모했는데, 지금 곽채령에게는 이 태극청뢰신장을 계속해서 펼칠 만한 내공이 없었다.

영약을 많이 먹어서 최대한 늘렸다지만, 그것에도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그다음에 위 소협이 나가실 건데……. 거기서 한 가지 숙제가 있으십니다.”

“어떤 숙제입니까?”

“내일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위지철은 어떤 숙제인지는 모르겠지만, 팽중호가 내일 가르쳐 주겠다고 하니, 오늘은 일단 이만 돌아가기로 하였다.

천마와 싸우고 온 팽중호가 몹시 피곤할 터이니, 더 이상 이렇게 이야기 나누는 것은 폐가 된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그럼. 내일 다시 뵙겠습니다. 소가주님.”

“예. 들어가십쇼.”

위지철이 돌아가고 혼자 남은 팽중호.

팽중호는 가만히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들어갔다.

오늘 있었던 천마와의 대련.

그것을 다시금 생각해 보기 위함이었다.

‘벽력……. 이것을 더 완벽하게 만들어야 한다.’

천마와의 대련에서 이것을 완성했지만, 이제 막 형태만 완성한 수준.

또 다른 초식인 멸혼과 같이, 아직은 가야 할 길이 멀었다.

이것을 더 완벽하게 갈고 닦아야, 소천마를 상대할 수 있을 터였다.

* * *

다음 날 아침.

곽채령의 두 번째 비무가 시작되었다.

어제보다 훨씬 더 결연한 표정으로 연무장에 선 곽채령.

그런 곽채령의 상대로 반대편에 한 중년인이 나타났다.

마른 몸에 아주 큰 키를 가진 중년인은 마치 말라비틀어진 고목을 연상케 했다.

절대 평범하지 않은 모습.

그가 보통 고수가 아니라는 것을 겉모습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었다.

“괴살마조(怪殺魔爪)다…….”

스스로의 별호로 소개하는 중년인.

목소리마저도 마치 말라비틀어진 고목처럼 갈라진 목소리였다.

“곽채령이에요.”

몸이 흠칫 떨릴 만한 괴살마조의 모습이지만, 곽채령은 더없이 차분한 눈과 모습을 하고 있었다.

‘쉽지는 않은 상대지만, 지금의 채령이라면 이길 수 있다.’

곽채령의 모습을 지켜본 팽중호는 곽채령의 필승을 예상했다.

지금의 곽채령은 달랐다.

단 하루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도, 완전한 무인의 얼굴이 되어 있었다.

‘오늘 세상은 압도적인 재능의 천재라는 것을 보겠군.’

팽중호가 인정한 압도적인 재능의 천재 두 명 중 한 명이 바로 곽채령이었다.

오늘 그것이 세상에 드러날 듯싶었다.

“위 소협. 조심하셔야겠습니다.”

“어떤 것을 말입니까?”

“혹시나 한눈팔면……. 아시죠?”

“그럴 리가 없으니, 걱정 없습니다.”

팽중호는 오히려 긴장되어 보이는 위지철의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해, 시답잖은 말을 건네었다.

위지철은 곽채령의 상대가 만만치 않음을 보고 긴장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곽채령을 믿는 것과 걱정되는 것.

그것은 분명 다를 수밖에 없었다.

휘이이이잉-

그때 연무장 위로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이 곽채령을 훑고 지나갔고, 그것과 동시에 비무가 시작되었다.

“비무를 시작하십시오!”

탓-

비무의 시작과 동시에 곽채령이 튀어 나갔다.

괴살마조는 이런 곽채령의 움직임에도 멀뚱히 서 있기만 할 뿐이었다.

키만큼이나 기다란 팔을 늘어트리고 가만히 있는 모습.

파지짓- 파팟-

괴살마조의 앞에 도착한 곽채령의 손에 청뢰가 터져 나오며, 태극청뢰신장이 펼쳐져 나왔다.

씨익-

그리고 그런 곽채령의 공격을 보고는 괴살마조가 섬찟한 미소를 지었다.

“불나방 같구나.”

말과 동시에 괴살마조의 팔이 기이하게 움직이더니, 달려드는 곽채령에게 쇄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