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얼마나 달라졌는지 보자.
팽중호는 곽채령과 신서린의 싸움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승부가 결정된 마지막 순간.
팽중호는 보았다.
곽채령의 손가락에서 뻗어 나오는 청뢰를 말이다.
‘탄지공이라……. 그래. 세경한테 탄지공을 가르친 게 채령이라고 했었지.’
이세경에게 탄지공을 가르친 사람이 바로 곽채령이다.
곽채령은 팽중호도 인정한 재능의 천재.
그녀라면 얼마든지 무공을 새롭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하북팽가 성무각의 각주라는 자리를 그래서 준 것이니 말이다.
‘탄지공과 아주 잘 어울리는군.’
지금 곽채령의 태극청뢰신장은 어쩌면 장법보다 지공에 더 울리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청뢰가 담긴 탄지공의 위력은 팽중호조차 깜짝 놀랄 정도였으니 말이다.
털썩-
신서린이 바닥에 쓰러졌다.
몸 안에 들어온 청뢰가 그녀의 속을 전부 헤집어 놓은 탓이었다.
아마 제대로 움직이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터였다.
“제가 이긴 거죠?”
“곽채령 승!”
꼭 상대의 목숨을 끊을 필요는 없다.
상대가 더 이상 움직일 수만 없어도 승리다.
이렇게 곽채령은 나름 손쉽게(?) 첫 승리를 할 수 있었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승리한 곽채령은 빠르게 연무장을 벗어나, 무림맹 측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위지철은 힐끔 곽채령의 얼굴을 보더니 곧바로 꽉 안아 주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고생한 연인을 안아 주는 것으로만 보이지만, 이것에는 다른 의미도 있었다.
“우욱.”
“괜찮아……. 괜찮아.”
지금 곽채령은 속이 전부 뒤집힌 상태.
위지철은 그녀의 입가에 흐르는 피를 마교에게 보이지 않게 함과 동시에, 안은 상태로 그녀에게 내공을 흘려보내 그녀를 돕고 있었다.
“오늘 비무는 여기까지니, 슬슬 돌아가서 쉽시다.”
목숨이 걸린 생사회이니만큼 연속해서 계속 비무를 진행하지 않는다.
하루에 단 한 번의 비무.
그렇기에 이 생사회를 무림맹이 받아들인 것이었다.
이 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 당연히 이 비무가 성사되지 않았을 터였다.
“아까 그 폭발은 확실히 위험했다.”
“맞아요. 그럴 줄은 몰랐거든요…….”
어느 정도 몸을 회복한 곽채령에게 팽중호가 좀 전의 비무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신서린이 곽채령을 떼어 놓기 위해 순간적으로 터트린 불길.
그것은 솔직히 꽤 위협적인 공격이었다.
옷을 그을리는 것으로 막아 낸 듯 보였지만, 사실 곽채령은 이미 그때 크게 내상을 입었다.
최대한 멀쩡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과하게 내공을 써서 몸을 보호한 탓이 컸다.
“다음 상대도 어떤 무공을 펼칠지 모르니까, 항상 준비해야 해.”
“네.”
곽채령이 눈을 굳게 빛내며 대답했다.
마교도들의 무공 중에는 상식을 벗어난 것들이 존재한다.
그에 따른 준비는 분명 해 두어야 했다.
‘채령이라면 걱정 없지.’
팽중호는 곽채령이라면 준비하는 데 걱정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한 번 겪어 본 일을 두 번 겪을 무인은 아니니 말이다.
그리고 지금 옆에 위지철도 있고 말이다.
“그럼 난 이만 가 볼게.”
“네. 소가주님.”
“들어가십시오.”
팽중호는 두 사람만의 시간을 보내라고, 전각을 빠져나왔다.
위지철이 곽채령의 회복을 도와주며, 무공에 대한 조언들도 잘해 줄 터였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밖으로 나온 팽중호는 천천히 주변을 걸었다.
아직까지 사람들이 많은 주변.
하지만 그 누구도 팽중호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스으으윽-
지금 팽중호는 교묘하게 기척을 지운 채로 움직이기에, 사람들에게 눈에 띄지 않는 것이었다.
게다가 머리에는 깊은 죽립까지 썼고 말이다.
그렇게 자유롭게 사람들 사이를 움직이는 팽중호.
정마생사회 덕분에 몰린 사람들 때문에 지금 이 주변은 호황.
먹을 것도 살 것들도 아주 많았다.
그리고 또 하나.
“자자. 어디가 이길지 돈을 걸어 보십쇼!”
정마생사회의 결과를 걸고 하는 도박도 횡행했다.
팽중호는 슬쩍 그 도박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돈뭉치를 하나 앞으로 내밀었다.
“무림맹 전승에 전부.”
“무림맹 전승에요? 알겠습니다.”
팽중호가 건넨 돈을 받아들고 돈을 세더니, 목패에 무언가를 적어서 팽중호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이 목패가 돈을 걸었다는 증표였다.
“그럼. 이만.”
“감사합니다!”
볼일을 끝낸 팽중호는 곧바로 도박장을 떠났다.
아무리 기척을 지웠다지만, 혹여 사람이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멀찍이 떨어져 인적이 없는 곳까지 온 팽중호.
그런 팽중호의 바로 뒤에 웬 인영이 하나 나타났다.
“안녕한가?”
“처음 뵙겠습니다. 천마님.”
지금 팽중호의 뒤에 나타난 인영의 정체는 바로 천마였다.
천마는 팽중호가 도박장에 들르기 전부터 팽중호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팽중호는 그것을 느끼고, 이렇게 인적이 드문 곳으로 발걸음을 향한 것이었다.
“무슨 일로 저를 따라오신 것입니까?”
팽중호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천마가 이리저리 말이나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란 걸 알았으니 말이다.
“좋군. 잠깐 검이나 섞어 볼까 해서 왔지.”
천마가 팽중호를 따라나선 이유.
그것은 팽중호와 무공을 논해 보고 싶어서였다.
천마는 이번 생사회에서 자신이 팽중호와 싸우지 못할 것임을 알았다.
하지만 이대로 그냥 팽중호를 놓칠 수가 없었다.
무인으로서의 본능이 싸우라고 아우성치고 있었으니 말이다.
“제가 거절한다면 그냥 돌아가실 겁니까?”
“아니.”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당당히 아니라고 말하는 천마.
팽중호는 그 모습에 고개를 절레 저었다.
“알겠습니다.”
어차피 이대로 돌아갈 위인이 아닐뿐더러, 그가 싸우고자 한다면 싸울 수밖에 없다.
‘마교 쪽 사람들이 다들 막무가내인 게, 윗물이 이래서 그런 거겠지.’
지금까지 팽중호가 만난 마교도들은 전부 이런 식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천마도 예외는 없었다.
아무래도 천마가 이러니, 그 밑에 있는 마교도들도 전부 이런 모양인 듯싶었다.
“조금 자리를 옮길까요?”
“그래.”
인적이 없는 곳이라지만, 그래도 멀지 않은 곳에 사람들이 있다.
천마는 잠깐 검이나 섞어 보자며 가볍게 말했지만, 결코 가벼운 대련은 아닐 터였다.
생각해 보라, 상대가 천마다.
천마와 가볍게 검을 섞는 것 자체가 가능하겠는가?
분명 주변이 완전히 초토화가 될 터였다.
스윽-
팽중호와 천마의 신형이 동시에 사라졌다.
연기처럼 사라진 두 사람의 신형.
그런데 둘의 신형이 사라지고, 잠시 뒤 그 자리에 하나의 인영이 나타났다.
“흐음. 팽중호의 힘을 제대로 측정해 볼 수 있겠어.”
여기에 나타난 인영은 바로 마뇌.
그녀는 천마가 팽중호를 만나러 따로 나갈 것임을 알았기에, 천마의 뒤를 따라나섰다.
아마 천마는 자신이 따라오는 것을 알고 있었겠지만, 티를 내지 않고 그냥 두었을 것이다.
자신이 무얼 하려는지 알고 있으니 말이다.
“이번 생사회가 끝나는 대로 소천마님과 천비대를 부르거라.”
“예.”
마뇌의 말에 텅 빈 허공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그리고는 하나의 기척이 나타났다가 곧바로 사라졌다.
“무림맹이 조금만 더 힘을 내주길.”
* * *
정마생사회가 펼쳐지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
주변에 나무 몇 그루가 전부인 공터에 팽중호와 천마가 마주 섰다.
“얼마나 힘을 쓰실 겁니까?”
“음……. 칠 할 정도만 쓰지.”
“칠 할이나 쓰십니까?”
“사실 모르겠어. 싸워 보면서 결정하지.”
“후우.”
천마의 칠 할은 다른 이들과 차원이 다르다.
천마신공.
이 무공은 분명 여타 무공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절대의 무공이니 말이다.
그리고 또 문제는 그가 힘을 칠 할만 쓴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었다.
흥이 오르면 분명 가진 힘을 다 쏟을 터다.
“자아. 시작해 보자고.”
스릉-
천마가 먼저 검을 꺼내어 들었다.
묵색으로 빛나는 검.
팽중호의 멸뢰진천도와 같은 신장운철로 만들어진 천마검의 등장이었다.
그저 하나의 검일 뿐인데, 검에서 거대한 힘이 느껴졌다.
스릉-
팽중호도 멸뢰진천도를 손에 쥐었다.
순간 주변의 공기가 바뀌었다.
그저 서로의 무기를 꺼내어 든 것일 뿐인데 말이다.
“오게.”
천마가 선공을 양보했다.
물론 팽중호는 사양하지 않았다.
꺼지듯 사라진 팽중호의 신형이 천마의 앞에 나타났다.
캉- 카카캉- 캉- 캉-!
가볍게 주고받는 공방.
물론 둘 입장에서 가벼운 것이고, 다른 이들이 본다면 천지가 뒤흔들릴 공방이라고 생각했을 터다.
둘 다 여유로운 표정이었는데, 지금 서로의 힘을 가늠해 보고 있는 중이었다.
‘다르군.’
‘천마는 천마다.’
두 사람은 이 공방으로 서로를 인정했다.
압도적인 강함을 느낀 것이다.
특히나 천마는 눈을 반짝 빛내었다.
팽중호의 강함은 그가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강함이었으니 말이다.
“제대로 가 보자고.”
콰아아아아아아아-!
천마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기운.
천마신공이 이제 드디어 펼쳐지려는 것이었다.
“어이쿠.”
키이이이이이이잉-!
천마신공에 맞서 혼원벽력신공을 끌어올렸다.
곧바로 울음을 터트리는 멸뢰진천도.
‘마지막이 생각나는군.’
팽중호는 전생의 마지막이 떠올랐다.
홀로 마교가 진격해 오는 곳에 들어가, 호기롭게 천마와 싸웠던 기억.
물론 허망하리만치 손쉽게 천마에게 당했지만 말이다.
‘이번 생은 얼마나 달라졌는지 보자.’
이번 생은 다르다.
현경을 넘어선 생사경.
그곳을 바라보는 중이니, 분명 전생과는 다를 터였다.
어쩌면 지금 천마와의 대련은 이것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쿠우우우우우웅-
무뢰진천이 주변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호?”
이전보다 더 강해진 무뢰진천의 압박.
이것은 천마의 흥미를 이끌기에 충분한 힘을 보여 주었다.
팔을 움직이기가 힘들 정도의 압박이었으니 말이다.
콰아아아아-!!!
화르르르르르륵-
천마가 더욱 힘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그의 검과 몸에서 천마강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주변의 모든 것을 불태우는 천마강기.
무뢰진천의 기운마저도 불태워 버렸다.
키이이이잉-!
쾅-! 카아앙-! 캉-!!
천마강기에 맞서 팽중호의 무뢰진천이 변하였다.
멸뢰진천도가 움직이는 대로 무뢰진천이 함께 움직였다.
그러니까 지금 팽중호의 멸뢰진천도에 무뢰진천의 힘이 담겨 있는 것이었다.
무뢰단세, 무뢰곡세, 무뢰진천.
세 가지 초식을 다음 단계로 넘기기 위해 하나로 다시금 합치는 중이었다.
무공을 나누고, 다시 합치고, 다시 나누고, 다시 합치는 과정.
어찌 보면 굉장히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더욱 상승의 단계로 가기 위해서는 거쳐야만 하는 과정이었다.
무공에는 끝이 없으니, 이 과정은 아마 평생을 두고 반복될 터였다.
“지금 깨달음의 길목에 있군.”
“하핫. 맞습니다.”
천마는 지금 팽중호를 보고, 깨달음의 길목에 있다는 것을 알아보았다.
아직은 완성되지 않았지만, 아마 아주 작은 계기만 있다면 곧바로 완성될 터였다.
“그걸 완성하면 더 재미있어지겠군 그래.”
천마가 눈을 강하게 빛내었다.
그리고 그 빛만큼이나 천마의 천마강기가 더 강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천마는 지금 팽중호의 깨달음을 위해 힘을 보여 주려는 것이었다.
“이걸 막으려면 힘 좀 내야 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