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싸우기 딱 좋은 날씨네.
팽중호는 이세경과 하루 동안 온전히 시간을 보내었다.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에 대해, 그리고 앞으로 있을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생사회에서 또 희생하실 생각입니까?”
이세경은 팽중호가 생사회에서 또다시 스스로를 희생하려고 한다 생각했다.
지금까지 그가 무림을 위해 희생한 일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런데 지금 또 무림을 위해 생사회에 나서려는 것이었다.
무림을 위해 팽중호가 필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너무나 많은 희생을 하는 팽중호가 이세경은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희생이라……. 그건 아니고, 투자라고 하자고. 이 정마대전이 끝나면 투자한 만큼 돌려받을 테니까.”
“……그럼 저는 믿고 투자금을 계산하겠습니다.”
“물론이지.”
만약 정마대전에서 무림맹이 패한다면, 팽중호가 말한 투자라는 것은 단 하나도 회수할 수 없다.
하지만 이세경은 패배한다는 전제는 깔아 두지 않았다.
팽중호라면 반드시 이길 테니 말이다.
“그런데 세경이 어떤 무공을 배웠어?”
팽중호는 이세경이 어떤 무공을 익혔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자신이 직접 가르쳐 준 것은 없으니 말이다.
“음……. 보여 드리겠습니다.”
“오, 그래. 나야 좋지.”
자연스레 발걸음을 팽가에 있는 연무장으로 향했다.
해가 지고 달과 별이 떠 있는 야심한 시각이기에, 연무장은 텅 비어 있었다.
둘만의 연무장.
나름 운치가 있었다.
“무기는 없는 것 보니까, 권장각(拳掌脚)일거 같은데 맞아?”
“음……. 아닙니다.”
“아니라고? 호오. 어떤 무공인지 기대되는걸?”
“호호. 막상 하려니 조금 부끄럽습니다.”
이세경은 말과 함께 자세를 잡았다.
무림에서 도신이라고 불리는 팽중호 앞에서 무공을 보이려고 하니, 조금은 부끄러워지는 그녀였다.
스윽-
부끄럽지만, 이세경은 곧바로 자세를 잡았다.
제대로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니 말이다.
자신이 배운 무공을 말이다.
‘오?’
팽중호는 그저 이세경이 자세를 잡는 것일 뿐이었지만, 속으로 아주 작게 감탄을 하였다.
그녀의 자세가 나름 깔끔했기 때문이었다.
무공을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탓- 타탓- 탓-
가볍게 발을 움직이며 이세경이 팽중호에게로 살포시 달려오기 시작했다.
달려오는 자세마저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그녀.
그리고 팽중호의 지근에 도달한 그녀의 손가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슉- 팡-
그녀의 손가락에서 기운이 튀어나오더니, 그대로 팽중호의 어깨 쪽으로 날아왔다.
물론 팽중호는 가볍게 손으로 그것을 막았는데, 조금 전보다 훨씬 더 놀랐다.
“탄지공을 익혔어?”
“네.”
탄지공(彈指功).
보통의 지공(指功)은 너무나 가까이 붙어서 펼쳐야 하기에 이런저런 제약이 많다.
이런 것을 보완한 경지가 바로 탄지공이다.
손가락에서 내공을 쏘아,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도 지공을 펼치게 해 주는 것.
그래서 지공을 익힌 이들은 모두 다 탄지공의 경지에 다다르기 위해 노력한다.
‘결코 쉬운 경지가 아닌데.’
탄지공의 경지까지 가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다.
특히나 이제 막 무공을 익힌 이세경이 가기에는 더더욱이 말이다.
그런데 그녀는 지금 너무나 수월하게 탄지공을 펼쳐 내고 있었다.
‘내공은 그동안 먹은 영약이 도움이 되었다지만, 탄지공에 대한 이해는……. 재능이군.’
이세경은 신조상단의 부상단주의 자리에 있으면서, 몸의 건강을 위해 여러 가지 영약들을 먹어 왔다.
그것들이 그녀의 몸속에 쌓여 있다가, 그녀가 내공심법을 익히면서 내공으로 바뀌었을 터다.
그러니 그녀는 무공을 배운 기간에 비하면, 말도 안 될 만큼의 막대한 내공을 가지고 있었다.
탄지공은 기본적으로 내공을 쏘아 내는 것이니, 당연히 일정 수준 이상의 내공을 요구했는데, 그런 점에서 이세경은 합격점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내공만 있다고 탄지공을 펼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몸 밖으로 내공을 쏘아 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으니 말이다.
탄지공은 검기를 내뿜는 것과 비슷한 이치.
적어도 일류 이상의 실력을 가져야만 펼칠 수 있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서 지공은 무공 중에서 섬세한 무공으로 꼽힌다.
잠깐 익힌다고 펼칠 수 있는 무공이 아니란 소리다.
재능.
이세경은 분명 무인으로서의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아마 무공을 배웠어도 훌륭한 수준의 무인이 되었을 터였다.
아마도 화경의 경지까지는 어렵지 않게 도달했을 것이다.
“그런데 무공은 누구한테 배운거야?”
이세경이 아무리 재능이 있더라도, 스승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면, 이렇게 빠르게 성취를 보이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하북팽가에 많은 무인들이 있지만, 최고수들은 모두 무림맹에 있는 형국이다.
“곽 소저에게 배웠습니다.”
“채령이? 지금 세가에 없는데?”
이세경이 말한 곽 소저는 바로 곽채령.
하지만 곽채령은 지금 하북팽가에 없고, 무림맹에 머무르고 있다.
이세경의 무공을 봐 줄 시간이 없었다.
“저에게 무공서랑 설명을 한 번 해 주셨습니다.”
“한 번…….?”
“예. 외운 다음에 혼자서 계속해서 틈틈이 수련하였습니다.”
“하하! 대단한데?!”
팽중호는 정말로 대단하다는 표정으로 이세경을 바라보았다.
이세경은 지금 단 한 번 본 것을 모두 기억한 후에, 혼자서 그것을 떠올리며 수련한 것이다.
한 번 보고 모두 외웠다는 것도 대단했지만, 그것을 기억해 혼자 수련했다는 것이 더 대단했다.
“정말로 조금만 지나면, 큰일 날 수도 있겠는걸?”
“호호. 기대하십시오.”
지금 팽중호의 말은 그저 빈말은 아니었다.
정말로 시간이 흐르면, 위협(?)을 느낄 만큼 이세경의 실력이 향상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아마도 꽤 고달픈 혼인 생활이 되지 않을까란 걱정이 절로 들었다.
‘차라리 무공을 더 이상 익히지 못하게 하는 게 낫지 않을까?’
* * *
정마생사회(正魔生死會).
정파를 대표하는 무림맹과 마도를 대표하는 마교 간의 생사를 건 비무회.
이 정마생사회가 열리는 곳은 호북성.
바로 제갈세가가 있던 자리에서 열리게 되었다.
하북성으로 터를 옮긴 제갈세가가 있던 자리.
웬만한 전각들은 모두 철거되고, 넓디넓은 연무장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어쩌면 비무회를 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사람이 정말 많이도 왔군 그래.”
“그러게나 말일세. 이렇게 사람이 많아서야 원……. 뭐가 보일지 모르겠네.”
지금 이 정마생사회가 열리는 주변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어쩌면 지금 이 정마생사회가 정마대전의 향후 향방을 볼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무림인들은 물론, 상인과 상단들, 그리고 심지어 관(官)까지도 모여든 상태였다.
지금 이 정마생사회가 얼마나 주목도가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저기 무림맹이다!”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사람들의 고개가 한쪽으로 일제히 돌아갔다.
저 멀리서 다가오는 하나의 행렬.
그 행렬의 마차에는 맹(盟)이라 쓰인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무림맹(武林盟).
그 행렬이 지금 이 정마생사회의 장소에 도착한 것이었다.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사람들이 많이 모일 것을 알았기에 무림맹은 보란 듯이 그들의 위용을 보이며 천천히 연무장으로 들어섰다.
그들의 움직임에 따라 길이 열리며, 무림맹은 수월하게 연무장의 중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처억- 덜컥-
무림맹 무인들이 자리에 멈추어 서고, 그와 동시에 마차들의 문이 동시에 열렸다.
그리고 마차에서 가장 먼저 내리는 하나의 인영.
“싸우기 딱 좋은 날씨네.”
“도신이다!!”
“패, 팽중호!!!”
가장 먼저 나타난 인영의 정체는 바로 팽중호였다.
긴장감이라고는 조금도 없어 보이는 팽중호의 모습.
사람들은 그런 팽중호를 바라보기 위해 고개를 저마다 빼 들었고, 몇몇은 그런 팽중호를 바라보며 놀라서 소리를 지르고는 하였다.
도신(刀神) 팽중호.
현 무림 제일 고수인 그가 나타났으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흠. 사람이 정말 많이 오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팽중호의 뒤를 이어 나타난 인영.
바로 위지철이었다.
위지철은 지금 주변에 있는 수많은 인파를 보며 조금 놀라고 있는 중이었다.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이 몰릴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신검이다!”
신검(神劍) 위지철.
이번에 위지철에게 새로이 붙은 별호였다.
무림맹 서열 이(二) 위의 절대 고수이자, 팽중호와 비해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 무인.
당연히 신검이라는 별호가 붙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가가한테, 사람들이 반할까 봐 좀 걱정되네요.”
위지철의 바로 옆에 서있는 한 명의 여인.
사람들은 여인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내 무언가 떠올랐는지, 눈을 크게 뜨고는 놀라 소리쳤다.
“청뢰신장 곽채령!”
“무림맹 최고 전력이 모두 왔군 그래!”
위지철의 바로 옆에 있는 여인.
바로 청뢰신장(靑雷神掌)이라 불리는 곽채령이었다.
팽중호나 위지철에 비해서는 늦게 알려졌기에, 그녀를 알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 최근 무림에 퍼진 그녀의 인상착의와 위지철을 가가라고 부른 것 때문에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는 것이었다.
도신 팽중호, 신검 위지철, 청뢰신장 곽채령.
무림맹 서열 일(一), 이(二), 삼(三) 위가 모두 이곳에 나타난 것이다.
무림맹 최고 전력이자, 어쩌면 무림맹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자들.
이 정마생사회에 무림맹이 어떤 각오로 왔는지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아직 마교에서는 안 왔나?”
“아마 곧 도착할 겁니다.”
“그들이 무림에 온 손님이니까, 우리가 먼저 와서 맞이하는 게 맞겠지. 뭐.”
팽중호를 필두로 한 무림맹 행렬은 먼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정마생사회가 성사된 후에 미리 이곳을 정비해 둔 상태.
무림맹이 앉을 자리는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저기! 온다!”
무림맹 무인들이 자리에 앉아 잠시간 기다리고 있을 때.
가장 멀리에 있던 한 사람이 크게 소리를 쳤다.
그의 목소리를 따라서 저 멀리 바라보니, 하나의 행렬이 지금 이곳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묵색으로 칠해진 거대한 크기의 팔두마차를 필두로 다가오는 행렬.
그 행렬에 아무런 깃발도 보이지 않았지만, 여기 있는 모든 이들은 저 행렬이 누구의 행렬인지 알 수 있었다.
“마교…….!!”
“마교가 왔다!!”
마교(魔敎).
그저 이름만으로도 무림에 공포를 주는 이들.
그들이 지금 직접 이들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줄조차 맞지 않는 제멋대로인 행렬이지만, 그들이 내뿜는 위용은 무림맹 이상이었다.
그 누구 하나 투기를 숨기지 않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주 작정들을 하고 왔네. 기대되게.”
마교의 행렬의 지켜보던 팽중호가 입가에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꺼내었다.
지금 마교의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싸우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는 상태.
그들의 투기가 지금 팽중호의 호승심을 자극하고 있었다.
침착하고 냉정함을 유지하려고 하지만, 팽중호도 무인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지금 그의 이런 호승심을 특히나 자극하는 하나의 기운이 있었다.
턱- 덜컥-
마교의 행렬이 멈추었고, 가장 앞에 있던 팔두마차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문으로 한 명의 중년인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저 모습을 드러낸 것만으로도 주변을 짓누르는 엄청난 위엄을 내뿜는 중년인.
사람들은 누가 누구인지 알려 주지 않았지만, 자연히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천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