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화 자주 못 와서 죄송합니다.
마교의 본대.
그곳에도 당연히 반으로 나누어졌던 절반의 마교도들이 패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다.
하지만 그들은 패배했다는 소식에도 조금도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들은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싸울 가치가 있긴 있군 그래.”
무림맹이 싸울 가치가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싸우다가 죽은 것.
마교도에게 그것은 영광 중 하나이니 슬퍼할 필요는 없었다.
“그보다 마뇌.”
“예. 교주님.”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했지?”
“호남성입니다.”
지금 마교가 있는 곳.
그곳은 바로 호남성이었다.
빠르게 움직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막는 자들이 없었으니 생각보다는 움직임이 빨라졌다.
“한준이 그 녀석은 언제 온다고?”
“아마 수일 내로 도착할 겁니다.”
“그럼. 그때 맞춰 움직이면 되겠군.”
“예. 그러면 될 것 같습니다.”
“그보다 생각보다 너무 심심하군 그래.”
천마 척산주의 말처럼 지금 마교의 진격은 너무나 따분했다.
그 어떤 방해도 없이 지금 이곳에 도착했으니 말이다.
덕분에 지금 마교도들이 모두 척산주처럼 따분해하고 있었다.
싸우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였으니 말이다.
“마뇌 자네에 대한 원망도 크더군.”
“호호. 알고 있습니다.”
지금 이런 작전을 실행한 마뇌 여연홍에 대한 원망도 슬슬 나오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싸우고 싶었으니 말이다.
여연홍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전부 포기할 줄은 몰랐는데.’
여연홍은 무림맹이 어느 정도는 포기하고 움직일 것이란 예상은 하였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뒤로 물러날 줄은 몰랐다.
정말 무엇하나 남기지 않고 물러났다.
‘무림맹에도 군사가 있을 테니 그렇겠지.’
자신만 머리를 쓰는 것은 아닐 터.
무림맹에도 머리를 쓰는 군사가 존재할 터다.
아마 그가 이런 계책을 내었을 것이다.
‘살짝 틀어졌지만, 어차피 대세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다.’
일은 살짝 틀어졌지만, 어차피 대세에 지장은 없다.
언제까지 싸움을 미룰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결국에는 싸움을 하게 되어 있었다.
“당장 그들에게 달려들 수는 없으니, 그래도 불만을 사그라들게 만들 방법을 하나 제시할까 합니다.”
“뭔가?”
조만간 크게 싸울 터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저들의 불만을 모른 척하면서 묻어 두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무림맹 무인들을 초청해서 생사회(生死會)를 여는 겁니다.”
“생사회?”
“예.”
“저들이 그걸 받아들이겠나?”
지금 무림맹과 마교는 전쟁 중이다.
그런 와중에 생사회를 열자며 초대를 한다고 저들이 응할 리가 없었다.
“분명히 받아들일 겁니다.”
여연홍은 무림맹이 생사회를 반드시 받아들일 것이라 확신했다.
왜냐하면 저들에게도 아주 좋은 기회이니 말이다.
최소한의 피해로 자신들의 사기를 꺾을 수 있는 기회.
게다가 생사회를 하는 동안 시간도 벌 수 있을 것이고 말이다.
‘팽중호라면 이걸 받아들일 것이다.’
지금까지 여연홍이 지켜본 팽중호는 사람을 잃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잘하면 피해 없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생사회이니, 팽중호라면 반드시 수락할 것이다.
“그래……. 뭐, 그럼 마뇌가 잘 진행해 보게.”
“예.”
척산주의 허락을 받은 여연홍.
그녀는 곧바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선 무림맹으로 보낼 서신을 작성하는 것을 시작으로 말이다.
* * *
무림맹에 도착한 마교의 서신.
이것 덕분에 무림맹의 대회의가 다시금 열렸다.
“마교의 함정일 수 있습니다! 거절해야 합니다.”
“맞습니다. 저들의 간악한 술수가 분명합니다.”
마교에서 보내온 서신의 내용.
그것은 무림맹과 마교의 생사회를 열자는 것이었다.
이 내용에 많은 이들이 마교의 술수라며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소리를 높였다.
하긴, 누가 생각하더라도 그들이 갑자기 이런 제안을 해 오니 이렇게 생각할 만하였다.
“아니요. 가야 합니다.”
그때.
팽중호가 가야 한다고 말을 꺼내었다.
팽중호의 한마디에 일순 회의장이 고요해지고, 모든 시선이 그에게 보였다.
지금 무림맹에서 팽중호의 입지를 보여 주는 것이었다.
“적의 함정인 걸 알면서 간단 말입니까?”
“함정이 아니라, 저희에게 아주 좋은 기회입니다.”
“기회요?”
“그렇습니다. 그들을 전력을 손쉽게 줄일 수 있는 기회 말입니다.”
팽중호는 지금 마교의 이 생사회 제안이 기회라는 것을 느꼈다.
‘분명 마교 내부적으로 안달이 났을 것이다.’
마교도들의 습성을 알고 있다.
그들은 싸움이라는 것에 미쳐 있는 이들.
그런데 지금 무림에 나와서 제대로 싸워 보지 못했으니, 그들은 분명 내부적으로 지금 안달이 나 있을 것이다.
이 생사회는 그것을 해소하기 위한 마교의 방편일 터.
그렇기에 이 생사회는 기회였다.
‘그들의 상위 서열을 손쉽게 제거할 수 있는 기회다.’
그들이 제안한 생사회는 일대일의 생사결.
물론 어떤 이들이 나올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분명 마교에서 높은 서열의 무인들이 나올 터였다.
그들과 아무런 방해 없이 일대일로 생사결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좋은 기회가 아니겠는가?
그들을 미리 죽인다면, 후에 있을 전쟁에서 그만큼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진다면, 반대로 독이 될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그때 누군가의 물음.
분명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무림맹 무인이 생사결에서 반드시 이긴다고 장담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만약 이 생사결에서 무림맹 무인들이 대거 패한다면, 전력을 크게 잃는 것이었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방식만 조금 바꾸면, 딱 셋만 있으면 되니까요.”
“예?”
저들이 요청한 생사회다.
그러니, 무림맹 측도 무언갈 요구할 권리는 있다.
팽중호는 이 권리로 생사회의 방식을 조금 바꿀 생각을 했다.
“승자가 계속해서 싸우는 방식으로 가면 됩니다.”
생사결에서 승리한 이가 계속해서 싸운다.
이것이면 무림맹 측에서 많은 무인이 나설 필요가 없다.
팽중호, 위지철, 곽채령 이 셋만 나서면 된다.
다만, 정말 죽을 때까지 계속 싸우게 할 수는 없으니, 혼자서 싸울 수 있는 최대 횟수만 정하면 되었다.
이렇게 한다면, 분명 손쉽게 마교의 전력을 줄일 수 있을 터였다.
“저들의 힘을 모르지 않습니까?”
또 다른 문제가 하나 나왔다.
바로 지금 마교 전력의 힘을 정확히 모른다는 것.
팽중호와 위지철, 곽채령의 힘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교의 힘을 정확히 모르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만에 하나라도 저 셋 중에 한 명이라도 진다면, 무림맹으로서는 너무나 심대한 타격을 입는 것이니 말이다.
“저들도 저희를 모르지 않습니까? 그리고……. 제가 저들의 힘을 아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팽중호에게는 지금 마교 최상위 서열들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입력되어 있었다.
그것을 알기에 이렇게 자신 있게 생사회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쪽에서 천마가 직접 나오지 않는 한, 질 일은 결코 없다.’
지금 위지철과 곽채령의 실력이라면, 마교의 최상위 서열이 나오더라도 충분히 이길 수 있었다.
“혹시 다른 의견이 있으신 분은 말씀해 주십시오.”
“…….”
더 이상의 의견은 없었다.
“그럼. 생사회를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 * *
대 회의가 끝이 난 후.
팽중호는 오랜만에 하북팽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교와의 생사회를 하기 위해 떠나기 전에 잠깐 얼굴을 비출 생각인 것이었다.
“소가주님을 뵙습니다!”
팽중호가 팽가에 들어서자 다들 밝은 얼굴로 팽중호에게 인사를 건네어 왔다.
팽중호는 그들의 인사를 하나하나 다 받아 주고, 우선은 가주실을 찾아갔다.
집에 왔으면 부모님에게 인사를 먼저 드리는 것이 도리이니 말이다.
“오랜만에 보는구나.”
“자주 못 와서 죄송합니다.”
“무림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이니 나는 괜찮다.”
팽자성은 팽중호가 무림의 안녕을 위해 동분서주 바쁘다는 것을 알았기에 서운하지 않았다.
다만, 그저 자주 얼굴을 보지 못하는 것이 조금 아쉬울 뿐.
“별일은 없었지요?”
“그래. 여기가 별일이 있겠느냐?”
팽중호 덕택에 지금 하북팽가는 아주 평온한 상태였다.
지금 누가 감히 도신 팽중호가 소가주로 있는 하북팽가를 건드리겠는가?
충분한 본보기들도 있었는데 말이다.
“별일이 없어 다행입니다……. 그럼…….”
“자. 나한테 인사는 이만 되었으니, 빨리 나가 보거라. 널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이 있지 않느냐?”
“아! 하핫……. 알겠습니다.”
팽중호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자 팽자성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이만 나가 보라고 말을 하였다.
지금 이 하북팽가에서 가장 팽중호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이 한 명 있었으니 말이다.
팽중호는 그 말뜻을 알아듣고, 멋쩍게 웃으며 가주실을 벗어났다.
그리고 그의 발걸음이 향한 곳.
“세경아. 오랜만이야.”
“…….”
바로 이세경이 있는 곳이었다.
팽중호가 와서 인사를 하는데도 아무런 눈길도 주지 않는 이세경.
그녀가 지금 얼마나 단단히 화가 나 있는지 보여 주는 것이었다.
“그동안 정말 바빠서 그랬어. 이거 봐. 너 주려고 내가…….”
탁-
붓을 들고 무언가를 쓰던 이세경이 탁 소리가 나게 붓을 내려놓았다.
그 소리에 무언가 변명을 하려던 팽중호의 입이 멈추었다.
“소가주님. 정말 오랜만에 뵙습니다.”
항상 가가라고 부르던 이세경이 팽중호를 소가주님이라고 불렀다.
매우 딱딱하고 경직된 부름.
팽중호는 이 부름에 지금이 보통 일이 아니란 걸 뼈저리게 느꼈다.
“내가 미안해.”
“무엇이 미안하십니까?”
“내가 너무 소홀했지?”
“……그것 때문이 아닙니다.”
“응?”
스윽-
지금까지 가만히 앉아 있던 이세경이 자리에서 일어나 팽중호의 바로 앞에 딱 섰다.
조금 전까지 차갑기 그지없던 눈이었는데, 지금 자세히 보니 그녀의 두 눈에는 물기가 가득했다.
“어째서 그렇게 위험한 일을 하시면서, 제게 이야기 한번 해 주시지 않는 것입니까? 다른 이를 통해 그 소식을 전해 들은 저는 얼마나 마음이 불안하고 애가 탔는지 아십니까?”
이세경이 화가 난 이유.
그것은 팽중호가 오랜만에 얼굴을 비추어서가 아니었다.
팽중호가 바쁜 몸이란 것은 그녀도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녀가 화가 난 것은 다름이 아니라 팽중호가 이번에 마교와 싸우러 섬서성으로 향할 때, 그녀에게 아무런 말도 해 주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팽중호가 이미 섬서성으로 팽중호가 떠났을 때야 그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혹여나 팽중호가 잘못될까 봐 몇 날 며칠을 혼자 전전긍긍 불안해했다.
“그리고 왜 저에게는 아프다고 말해 주시지 않는 것입니까? 저는 왜 이런 것들을 남에게 들어야 하는 것입니까?”
또 이세경이 팽중호에게 화가 난 이유.
그것은 섬서성에 돌아온 팽중호가 그녀에게 보낸 서신에는 팽중호가 부상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팽중호 입장에서는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기에 그랬을 테지만, 이세경 입장에서는 이런 팽중호의 일들을 남을 통해 듣는 것이 너무나 화가 났다.
자신이 그렇게나 미덥지 못한가 싶었으니 말이다.
“내가 신경 쓰지 못해서 미안.”
“이번 한 번만 용서해 드리겠습니다. 다음부터는 절대로 용서치 않을 겁니다.”
“응. 알겠어.”
이세경은 사실 준비한 말들이 더 많았지만, 팽중호를 보자 그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사실 팽중호가 지금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바쁜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투정도 그저 답답한 마음에 그랬던 것일 뿐이었다.
“저도 최근에 무공을 배우고 있으니, 조심하셔야 할 겁니다.”
“하하. 이거 큰일 나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