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조금만 다듬으면 된다.
팽중호가 위지철에게 전하려고 하는 것.
그것은 바로 검마와의 싸움에서 보고 느낀 것이었다.
“똑같지는 않겠습니다만……. 위 소협이라면 보시면 저보다 더 잘하실 겁니다.”
스릉- 스으윽-
팽중호는 한 손에 멸뢰진천도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강기로 만든 도를 만들어 쥐었다.
검마가 보여 주었던 그것을 재현해 낸 것이다.
“강기로 만든 것입니까?”
“맞습니다.”
역시 위지철은 한 번에 알아보았다.
하긴 위지철이 못 알아보는 것이 이상한 것일 터였다.
“자, 한번 잘 보십쇼.”
팽중호가 검마가 펼쳤던 것과 최대한 유사하게 움직였다.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강기로 이루어진 도.
위지철은 그 모습을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바라보고 있었다.
“자아. 어떠십니까?”
“……잠시만, 잠시만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위지철의 눈이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 팽중호의 모습이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는 탓이었다.
깨달음.
그것이 지금 일어나는 중이었다.
그걸 알기에 팽중호는 흔쾌히 위지철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한 시진, 두 시진, 세 시진…….
생각보다 길어지는 위지철의 깨달음.
하지만 팽중호는 꿈쩍도 않고 위지철 옆에서 그를 기다렸다.
그가 언제 깨어날지 모르기에 기다리는 것이었다.
스윽-
그리고 해가 완전히 넘어가 사방이 어둠에 완전히 잠긴 시간.
위지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아아아악-
위지철의 오른손.
그러니까 어깨를 다친 손에 갑자기 하나의 검이 나타났다.
조금 전 팽중호가 보여 주었던 강기로 이루어진 검이었다.
쉬익- 쉭- 쉬이이익-
휙- 휘이익- 휙- 휙-
위지철이 태극신검까지 손에 들고 허공에 쌍검술을 펼쳐 내고 있었다.
막힘없이 움직이는 위지철의 쌍검.
다친 팔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리고 팽중호는 그 옆에서 그가 움직이는 것을 놓치지 않고 지켜보았다.
‘이것은 위 소협에게 딱 맞는 무공이다.’
검마의 무공은 위지철에게 너무나 딱 맞는 무공이었다.
지금 무극만변신공(無極萬變神功)을 만난 강기의 검은 그 어느 것으로도 변하며, 그 어느 곳으로도 움직일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지는 태극신검의 움직임.
지금의 위지철이라면, 검마와 거의 대등한 수준까지 보여 줄 수 있을 터였다.
“후우.”
위지철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아직까지 마치 꿈을 꾸는 듯한 위지철의 두 눈.
하지만 이내 곧 밝음을 되찾았다.
“제가 잘했습니까?”
“물론입니다. 아주, 아주 훌륭했습니다.”
“항상 이렇게 소가주님께 받기만 해서 죄송합니다.”
“하하하. 그럼 마교를 쓰러트리고 갚으시면 됩니다. 그때부터 저는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쉴 거니 말입니다.”
마교와의 정마대전이 끝나면, 팽중호는 정말 하북팽가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안 하고, 편하게 놀고먹을 생각이었다.
이미 어느 정도 계획은 다 짜 놓은 상태.
마교를 쓰러트린다는 것만 해결하면 되었다.
“그런데 깨달음을 얻으셨으니 써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새롭게 깨달음을 얻었으면, 그것을 직접 써 보는 것이 인지상정.
“그런데 제가 몸이 썩 좋지 않아서, 저 대신 위 소협과 대련할 사람을 불렀습니다.”
“??”
지금 팽중호는 검마와의 싸움에서 입은 내상이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였다.
사실 그 당시 내상을 당한 후, 완전히 낫지 않은 상태로 싸움을 계속했기에 내상이 더 깊어진 탓이었다.
지금 자칫 위지철과 대련을 했다가는 내상이 도질 수도 있는 상황.
그래서 팽중호는 자신 대신 대련할 사람을 불렀다.
“가가. 저예요.”
“아!”
지금 이곳에 나타난 인영.
바로 곽채령이었다.
팽중호가 주변에 있던 무인에게 곽채령을 불러 달라고 부탁해서 그녀가 온 것이었다.
지금 무림맹에서 팽중호, 위지철 다음가는 고수.
위지철의 대련 상대로 그녀보다 좋은 상대가 있겠는가?
“곽 매랑 대련은 조금…….”
위지철은 곽채령을 곽 매라 불렀는데, 지금 대련을 조금 망설였다.
대련이라면 마다하지 않는 그가 말이다.
“제가 다칠까 봐 그러시는 거죠?”
“맞아.”
위지철이 곽채령과의 대련을 망설이는 것.
그것은 곽채령이 다칠까 봐서였다.
새롭게 깨달은 무공의 위력이 아직 어느 정도인지 위지철도 짐작지 못하고 있는 실정.
혹시나 곽채령이 크게 다칠까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가가는 저를 너무 무시하시네요.”
“그, 그것이 아니라…….”
“저도 무인이고, 고수예요. 그런 걱정은 절 무시하는 거라고요. 지난번에도 그러시더니…….”
“미안.”
곽채령의 말에 위지철이 수긍했다.
곽채령도 어엿한 무인이자, 무림맹 서열 삼 위의 절대 고수였다.
그녀는 분명 위지철이 걱정할 수준은 넘어선 무인이었다.
지난번에 이 일로 왈가왈부하지 않기로 하였는데, 위지철은 걱정에 그것을 잠시 잊었다.
“자자. 사랑싸움은 거기까지 하시고, 연무장에 가서 가볍게 대련이나 해 봅시다.”
팽중호의 말에 위지철과 곽채령의 볼이 동시에 빨갛게 달아올랐다.
두 사람은 지금 팽중호가 옆에 있다는 사실을 까먹고 있었던 것이었다.
팽중호는 씨익 웃으며, 두 사람을 데리고 연무장으로 향했다.
늦은 시간이기에 텅 빈 연무장.
두 사람이 대련을 하기에 최적의 상태였다.
“소리는 제가 차단할 테니, 마음껏 싸워 보십쇼.”
팽중호가 주변에 기막을 넓게 펼쳤다.
지금은 대부분이 잠이 든 시간.
당연히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게 만드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검마와의 차이를 봐 둬야 한다.’
팽중호가 굳이 두 사람의 대련을 지켜보는 이유.
그것은 지금 두 사람이 검마에 비해 어떤지를 알기 위해서였다.
아직 마교에는 최상위 서열의 무인들이 다수 남아 있었다.
그런 그들을 팽중호 혼자서 모두 상대하기란 솔직히 불가능에 가까웠다.
‘천마와 소천마……. 둘은 내가 막아야만 한다.’
게다가 팽중호가 반드시 상대해야 할 두 사람.
천마와 소천마.
이 둘을 상대하면 몸이 성할 리가 없을 터.
그럼 남은 마교도들은 다른 이들이 상대해 주어야 한다.
‘지금 위 소협, 채령이, 그리고 맹주님을 제외하면 솔직히 최상위 서열의 마교도를 상대할 사람이 없다.’
저 셋을 제외하고는 아직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무림맹 서열 오(五) 위에 있는 이와 사(四) 위인 장순학과의 차이는 상당히 컸으니 말이다.
정마대전이 이미 시작된 지금.
새롭게 다른 무인을 경지로 끌어올리기에는 시간이 넉넉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미 경지에 오른 이들을 더 끌어올리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장순학의 강함은 이미 창마와의 싸움에서 파악했다.
위지철과 곽채령의 강함만 파악해 보면 되었다.
“곽 매. 조심해.”
“가가도 조심하세요. 안 봐드릴 테니까요.”
스릉- 사아아악-
파지직-
위지철은 태극신검과 함께 강기의 검을 꺼내어 들었고, 곽채령도 곧바로 청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무극만변신공(無極萬變神功)과 태극청뢰신장(太極靑雷神掌).
두 사람이 함께 완성한 두 무공이 지금 격돌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탓- 탓-
동시에 서로에게 달려드는 두 사람.
혼인을 약조한 연인이라기에는 너무나 살벌한 공방을 주고받기 시작하는 둘.
땅이 뒤집히고 하늘이 놀랄 만한 위력의 공격들을 아무렇지 않게 서로를 향해 내뻗었는데, 팽중호는 그 모습에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부부싸움이라도 나면, 남아나는 것이 없겠군.’
괜한 실없는 생각.
물론, 이런 생각 중에도 둘의 움직임은 놓치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점점 더 거칠어지는 두 사람의 움직임.
둘은 대련 중인 지금도 계속해서 조금씩 성장해 나가고 있었다.
‘아직 부족하다.’
둘은 분명 강했지만, 아직 부족했다.
팽중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곽 매. 제대로 해 볼까?”
“괜찮겠어요?”
“물론.”
팽중호의 귀에 들려오는 두 사람의 대화.
그리고 그와 동시에 두 사람의 기세가 일변했다.
마치 지금까지의 대련이 그저 몸풀기였다는 듯이 엄청난 기세를 뿜었다.
“호?”
팽중호는 지금 진짜로 놀랐다.
두 사람이 모든 힘을 내지 않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지금 보여 주는 수준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파지지지직- 쾅-! 카아앙-!
곽채령의 청뢰가 무차별적으로 위지철을 때렸다.
팽중호가 쳐 놓은 기막이 흔들릴 정도의 엄청난 위력.
그런데도 위지철은 제자리에 서서 차분하게 곽채령의 공격을 모두 막아 내었다.
쌍검술을 처음 펼치는 것일 텐데도, 위지철은 완벽하게 쌍검술의 묘리를 살리고 있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곽채령의 공격을 막고만 있던 위지철이 드디어 공세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콰지지지직- 콰각- 쾅-! 촤아아악-
갑작스레 바뀐 위지철의 공세를 곽채령은 최대한 부드럽게 흘려보내려 하였는데, 순간적으로 바뀐 위지철의 공격에 흘려보내지 못하였다.
뒤로 쭈욱 밀려난 곽채령.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그녀가 아니었다.
파짓- 파지직- 파지지지직-
곽채령의 온몸이 청뢰로 둘러싸였다.
마치 팽중호가 보여주었던 뇌신지체와 같은 모습.
물론 위력은 완전히 달랐지만 말이다.
현경의 경지에 도달해 얻은 곽채령의 뇌신지체는 차원이 달랐다.
파직-
곽채령의 신형이 사라졌다.
그리고 나타난 곳은 위지철의 바로 머리 위.
그 위에서 곽채령의 태극청뢰신장이 위지철에게 내리꽂혔다.
콰아앙-!!!
연무장이 깊게 파여 버릴 정도의 위력.
그런데 그 가운데 위지철이 서 있는 곳은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먼지 한 톨 묻지도 않은 상태로 고고하게 서 있는 위지철.
“마교는 문제없겠다.”
지금 위지철을 바라보며 팽중호는 마교 최상위 서열을 상대하는 것에 있어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방금 위지철이 곽채령의 공격을 막은 방법.
‘이기어검을 만들어 내다니.’
지금 위지철의 손에 강기의 검이 들려 있었고, 허공에 또 다른 강기의 검이 또 하나 떠 있었다.
강기로 이루어진 검을 하나 더 만들어 내어 그것을 이기어검으로 움직여 곽채령의 공격을 막아 낸 것이다.
팽중호가 보여 준 것을 응용해 그 이상을 지금 보여 주었다.
압도적인 재능.
또다시 위대함을 느끼게 해 주는 위지철이었다.
“가가. 역시 대단해요!”
“곽 매가 더 대단해.”
서로를 대단하다며 치켜세워 주는 두 사람.
팽중호는 이 모습에 괜히 이세경이 보고 싶어졌다.
“위 소협은 확실히 대단하신 게 맞고, 채령이 너는 나랑 따로 특훈을 좀 해야겠다.”
“네에?!”
위지철은 이제 더 이상 팽중호가 무엇을 가르칠 것은 없었다.
이제부터는 위지철 스스로가 나아가는 것만 남은 것이다.
다만, 곽채령은 아직 가르칠 것이 남아 보였다.
지금 보여준 모습은 분명 대단했지만, 분명 더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재능이 곽채령에게는 있었다.
‘아주 조금만, 조금만 다듬으면 된다.’
곽채령이 방금 보여 준 뇌신지체.
거기에 초감각의 활용법만 조금 더해 주면 지금보다 배는 더 강해질 수 있었다.
곽채령은 지금 초감각은 익혔지만, 그것에 대한 활용을 잘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마, 자신이 조금만 봐 주면 곽채령은 찰떡같이 알아듣고 곧바로 위로 올라갈 터였다.
“위 소협. 제가 채령이를 좀 굴려도 괜찮으시죠?”
“……부탁드립니다.”
곽채령이 팽중호에게 특훈을 받는다면 얼마나 힘들지 잘 알지만, 위지철은 그게 그녀를 위한 길이란 것을 알았기에 부탁한다고 말하였다.
그녀가 싸우기로 한 이상, 강해지는 것이 그녀가 살아남을 확률을 올려 주는 것이니 말이다.
“크크크. 채령아. 내일부터 기대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