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결코 막을 수 없었다.
순식간에 주변에 있던 무인들이 쭈욱 물러났다.
지금 팽중호와 검마를 위한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었다.
서로를 죽고 죽이는 전쟁이지만, 그전에 이들은 무인.
현 무림에서 가장 강한 무인 둘의 대결을 지켜보고 싶었다.
검마(劍魔)와 도신(刀神).
그저 별호만으로도 가슴을 뛰게 만들 자들이었다.
스윽-
서로 마주 보고 가만히 서 있는 팽중호와 검마.
정말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지만, 지금 주변의 공기는 바람조차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스릉-
팽중호의 멸뢰진천도와 검마의 검이 동시에 뽑혀 나왔다.
그러자 분위기가 일변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그대로 베일 것 같은 예기가 주변을 휩싸기 시작했다.
지켜보던 이들은 숨을 쉬는 것조차 조심하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자네가 먼저 오게.”
“예. 사양치는 않겠습니다.”
탓-
팽중호가 먼저 움직였다.
팽중호가 이렇게 선공에 나서는 것.
그것은 분명 흔치 않은 일이었다.
키이이이이이이잉-
멸뢰진천도가 울음을 터트렸다.
팽중호는 처음부터 전력을 다할 생각이었다.
아니,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될 상대였다.
눈앞에 있는 검마라는 무인은 말이다.
카아앙- 카앙- 카카카캉-
초진동을 머금은 멸뢰진천도로 펼쳐지는 무뢰(無雷).
검마는 일격들을 막아 내며, 입가에 아주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생각했던 것 그 이상의 힘을 팽중호가 보여 주었으니 말이다.
“하하! 오늘 죽을 수도 있겠군!”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을 너무나 즐겁게 내뱉는 검마.
하지만 실제로 검마는 지금 너무나 즐거웠다.
“자자, 길게 싸울 필요는 없으니, 가진 힘을 다 내 보게.”
“알겠습니다.”
키이이이이잉-
쿠구구구구구구궁-
-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무뢰진천(無雷振天).
초감각을 극한까지 끌어올리고, 무뢰진천의 초식을 펼쳤다.
주변을 완전히 짓누르는 거대한 압박.
‘오싹하군.’
검마는 이 압박감에 피부가 오싹해짐을 느꼈다.
몸이 다 저려 오는 압박.
내공의 운용 자체도 힘들 정도였다.
카캉- 카카캉- 카캉- 캉-!!!
이 무뢰진천의 압박 속에서 이루어지는 싸움.
하지만 검마는 이전과 별다른 차이 없이 팽중호의 공격을 막아 내고 있었다.
“대단하십니다.”
“과찬이네.”
팽중호는 지금 자신의 무뢰진천이 검마에게 제대로 통하지 않음을 느꼈다.
무려 초감각까지 활성화한 상태임에도 말이다.
“초감각. 자네도 그것에 들어섰군 그래.”
검마가 팽중호의 무뢰진천을 수월하게 흘려 낼 수 있는 것.
그것은 그도 초감각을 쓸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검마는 훨씬 더 예전부터 초감각을 익혀 온 이.
어쩌면 팽중호보다 더 능숙하게 초감각을 사용할 터였다.
-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무뢰단세(無雷斷世).
카아아앙-!!
순식간에 팽중호의 무뢰단세가 펼쳐져 나왔다.
지금까지 이것을 제대로 막은 이가 누가 있던가?
하지만 검마는 검을 이것으로 수월하게 막아 내었다.
“흡!”
아니, 수월하게 막아 낸 것은 아니었다.
검마는 지금 이 일격에 손은 물론 속이 다 떨려 왔다.
“나도 이렇게 있을 수는 없지.”
“계속 그렇게 계셔도 됩니다만.”
“하하. 겸손은 하지 말게.”
스윽-
드디어 검마가 앞으로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그가 공세를 취하는 것이다.
검마의 검에 강기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또 놀라운 광경 하나.
“이 검은 좀 조심하게.”
검마의 왼손에 검이 하나 더 나타난 것이다.
오로지 강기로만 이루어진 검이 말이다.
‘강기로 검을 만들어?’
물론 팽중호도 강기로 도를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보다 굉장히 비효율적인 일이었다.
그 형태를 유지하는 것 만에도 엄청난 내공과 집중력이 요해지니 말이다.
‘저건 단순히 강기로 만들어 낸 검이 아니다.’
팽중호에게는 보여졌다.
지금 검마의 손에 들린 강기의 검이, 그냥 단순하게 강기로만 검의 형태를 한 것은 아니란 걸 말이다.
“보는 게 다가 아니니 조심하게.”
검마의 두 개의 검이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팽중호는 초감각을 극한까지 발휘하며 검마의 공격을 기다렸다.
절대로 조금의 방심도 할 수 없었다.
카캉- 캉- 카카캉- 캉-!
서걱- 핏-
그렇게 검마의 공격을 막아 나가던 팽중호에게서 무언가 베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왼쪽 팔이 베여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큰 상처는 아니지만, 그래도 꽤 피가 흥건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팽중호가 상처를 입었다?
분명 지금까지는 없던 일이었다.
‘조금만 늦었으면 팔이 잘렸다.’
팽중호가 급하게 몸을 틀지 않았다면, 아마 그대로 팔이 잘려 나갔을 공격이었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말이 이것이군.’
조금 전 검마의 공격.
강기로 이루어진 검이 갑자기 길이지는 것은 물론이고, 갑자기 휘어서 들어왔다.
형태만 검일 뿐.
강기로 이루어진 것이니, 검마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저 검이 아니다.’
강기로 이루어진 검은 분명 위협적이지만, 초감각이라면 피하지 못할 공격은 아니었다.
문제는 검마가 들고 있는 진짜 검에서 펼쳐져 나오는 공격이었다.
그의 깨달음이 담긴 검은 확실히 달랐다.
아무리 초감각으로 알아내었다고 해도 피할 시간조차 없을 정도였다.
“팔이 잘릴 뻔했습니다.”
“피할 줄 알았네.”
검마는 팽중호가 자신의 이 일검을 피할 줄 알았다.
그라면 분명히 피할 수 있었다.
물론, 이렇게까지 쉽게 피할 줄은 몰랐다.
피는 꽤 나지만, 결코 깊은 상처가 아니다.
검마의 생각보다 훨씬 얕은 상처인 것이다.
“이제 숨긴 걸 다 꺼내어 보게나.”
“후우.”
팽중호가 깊게 숨을 내쉬었다.
팔은 이미 지혈을 마친 상태.
움직이는 것에도 큰 문제는 없었다.
슈와악-
갑자기 팽중호의 모든 기운이 사라졌다.
마치 아무것도 있지 않은 듯 텅 비어 버린 팽중호.
주변을 짓누르던 무뢰진천의 압박도 모조리 사라진 상태이었다.
공(空), 무(無).
지금 팽중호를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이었다.
“이것 참…….”
다른 이들은 팽중호의 지금 모습을 보고 의아해했지만, 검마는 눈을 빛내었다.
지금 팽중호가 보여 주려는 경지.
그것은 분명 현경의 경지 그 이상이었다.
검마조차도 이제 막 문 앞을 보기만 한 경지 말이다.
“이 일 합에 끝이 나겠군.”
검마가 말과 함께 모든 힘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검마는 팽중호와 반대로 정말 폭발적인 기운을 뿜어내었다.
종남산 전체가 떨어 울릴 정도로 거대한 기운.
지금 이것만 봐서는 검마의 압승이 예상되는 상황.
“갑니다.”
“고맙네.”
팽중호의 말에 검마가 고맙다고 말하였다.
지금 팽중호의 경지를 볼 수 있다는 것에 고마운 것이었다.
사악-
팽중호가 사라졌다.
빠르게 움직인 것도 아니고, 숨은 것도 아니고, 정말 말 그대로 사라졌다.
사악-
그리고 그에 맞추어 검마도 사라졌다.
그렇게 서로 사라졌던 두 사람은 처음 서 있던 정반대의 방향에서 다시금 나타났다.
지금 주변에 있는 이들 중 이 둘이 어떻게 부딪쳤는지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름이 뭔가?”
“멸혼(滅魂)입니다.”
“어울리는 이름이군.”
퍼석-
마지막 말과 함께 갑자기 검마의 신형이 가루가 되어 버렸다.
마치 모래로 만든 인형이 부서지듯 말이다.
“쿠와아아악!”
물론 팽중호도 멀쩡할 수가 없었다.
팽중호가 입에서 엄청난 양의 피를 내뱉었다.
그리고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지금 팽중호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상태에 다다랐다.
‘동귀어진 당할 뻔했다.’
하마터면 검마와 함께 죽을 뻔하였다.
마지막 최후의 일격을 서로 나눌 때.
검마의 두 검이 미묘한 시간차를 두고 동시에 팽중호를 노려왔다.
강기로 이루어진 검은 팽중호의 사방을 모두 봉쇄해 버렸고, 그의 진짜 검은 그대로 팽중호의 목을 노려 왔다.
어떻게 보면 참으로 단순한 방법.
하지만 그것을 펼치는 이가 검마라는 점.
그리고 그것에 담긴 힘이 상상을 벗어나 있다는 점이 문제였다.
‘멸혼이 아니었다면, 결코 막을 수 없었다.’
멸혼(滅魂).
원뢰멸혼의 초식이 깨달음을 통해 바뀐 것.
사실상 마지막 최후의 초식이지만, 어떻게 보면 새로운 시작의 초식이라고 봐도 되었다.
현경 그 너머의 경지로 가는 시작 말이다.
‘생사경(生死境).’
어쩌면 그저 무림에 전설로만 전해져 오는 경지다.
사실상 있는지조차 의문인 전인미답의 경지.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경지였고, 팽중호는 이 경지에 살짝 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멸혼은 그곳에 다다라서 펼치는 초식이었다.
그렇기에 그 대단한 검마를 이길 수 있던 것이었다.
다만, 아직 완전히 그 경지에 다다른 것이 아니기에 이렇듯 반발도 크게 오는 것이지만 말이다.
‘오늘을 기점으로 더 강해질 수 있다.’
방금 검마와의 대결로 팽중호는 이 생사경에 완전히 올라설 줄을 하나 잡았다.
만약 지금 살아서 돌아갈 수 있다면, 분명 크게 앞으로 나갈 수 있을 터였다.
“고생했네……. 그리고 고맙네. 이제 내가 맡을 테니, 뒤에서 몸조리나 하고 있게나.”
쓰러져서 간신히 숨만 내쉬고 있는 팽중호를 누가 번쩍 안아 들었다.
바로 장순학.
팽중호와 검마의 대결을 지켜보던 그가 팽중호를 보호하기 위해 달려 나온 것이었다.
지금 팽중호가 어떤 상태인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팽중호는 부탁한다는 말을 하고는 무림맹 무인들이 있는 곳 가장 뒤쪽에서 몸을 추스르기 시작했다.
아무리 팽중호라도 쉬이 낫기는 힘들 정도의 크나큰 내상.
한동안은 전력에 보탬이 되지 못할 터였다.
“자, 그럼 이제는 내 복수를 좀 시작해 보겠네.”
팽중호가 물러난 자리에 장순학이 섰다.
장순학은 지금 사실 눈앞의 마교도들에게 상당히 분노하고 있는 상태였다.
저들이 마음대로 이 종남파를 유린했으니 말이다.
“도신이 아니라도, 재밌는 자가 있군 그래.”
“우리도 날뛰어 보자고.”
마교도들은 검마가 팽중호에게 져서 죽었음에도 조금도 주눅이 들거나 하지 않았다.
아니, 그들은 오히려 더 투기를 올리고 있었다.
그런 엄청난 싸움을 보았으니, 피가 끓어오르는 탓이었다.
“너희는 오늘 살아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이곳을 되찾을 것이다.”
물론 지금 피가 끓어오른 것은 마교도들 뿐이 아니었다.
무림맹 무인들도 지금 모두 피가 끓어올라 있었다.
그들도 무인이니 당연했다.
“크하하하!! 어서 싸우자고!”
“죽을 때까지 싸워 보자고!”
거침없이 달려드는 마교도들.
무림맹 무인들은 그 모습을 보고는 침착하게 두셋씩 조를 짜기 시작했다.
지금 무림맹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당연히 마교도들에 비해 힘이 부족하다.
그래서 착안한 것이 바로 합격(合格)이었다.
두셋씩 한 몸처럼 움직여 마교도를 상대하는 것.
수에서 우위를 점하는 무림맹이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카캉- 서걱-! 캉-! 서걱-!
“쿠웨엑!”
“끄억!”
주변이 순식간에 수라장이 되었다.
무림맹 무인들은 침착하게 마교도들을 상대했지만, 그들의 뛰어난 실력과 기상천외한 무공에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서로가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지속되고 있었는데, 그때 누군가 이 균형을 깨기 시작했다.
“감히 종남을 침범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정혼검신 장순학.
그가 모든 힘을 발휘하며, 거침없이 마교도들을 베어 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