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손에 딱 맞습니까?
팽중호는 지금 곽채령과의 대련을 끝내었다.
위지철에 이은 곽채령과의 대련.
“후아.”
팽중호가 크게 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팽중호라도 조금은 힘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냥 무인들도 아니고, 현경에 오른 무인들과의 대련이니 말이다.
“다음에 또 해요!”
“그래.”
곽채령은 바닥에 주저앉아서 다음에 다시 대련을 하자고 하였다.
패배했지만, 활활 불타고 있는 두 눈.
‘다음에는 더 힘들겠군.’
곽채령은 계속해서 강해질 터다.
다음 대련은 분명 더 힘들어질 터였다.
그리고 문제는 지금 불타는 눈을 하고 있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는 것이었다.
“저도 다음에 부탁드리겠습니다.”
어느새 곁으로 다가와 곽채령을 일으켜 준 위지철이 불타는 눈으로 팽중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위지철, 곽채령 이 둘은 당장 지금보다도 강해질 것이다.
이 정도라면 분명 아무리 마교의 최상위 서열과 싸운다고 해도 쉽게 지지는 않을 터였다.
“그보다 위 소협.”
“예.”
“내일 당장 시간 되십니까?”
“예?”
“검. 구하러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대련 중에 위지철의 검이 부러졌다.
마교가 언제 다시금 무림으로 진격해 올지 모르는 상황.
한시라도 빠르게 준비하는 것이 맞았다.
검 없이 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솜씨 좋은 야장을 압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내일 떠나기로 약속을 한 뒤, 셋은 다시금 무림맹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돌아온 무림맹에는 손님이 와 있었다.
“안녕하신가. 오랜만이네.”
무당파 장문인인 현로검(賢路劍) 장청흠.
그가 도착해 있었다.
듣기로는 위지철을 찾아와 기다리고 있다고 하였다.
“저를 찾으셨습니까?”
“그래. 전해 줄 것이 있어서 왔다.”
“무엇을…….”
“자, 받거라.”
장청흠이 위지철에게 무언가를 건네었다.
일견 보기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검 한 자루였다.
“이, 이것은…….”
“그래. 태극신검이다.”
태극신검(太極神劍).
무당파에 전해져 오는 신기로, 장문인들에게만 전해져 오는 검이었다.
더하여 세상 그 어떤 신검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은 그런 절세의 보물.
그러니 위지철이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이것을 왜 저에게 주십니까?”
“지금 무당파에 너보다 그 검에 어울리는 사람이 있느냐?”
“하지만 이것은 장문인께서…….”
“그 검을 꼭 장문인만 가지라는 법도가 있더냐? 내가 알기로 무당에 그런 법도는 없다.”
장청흠의 말처럼 무당파에 태극신검을 장문인만이 들어야 한다는 법도는 없다.
다만 의례 암묵적으로 그렇게 해 왔을 뿐.
“무림의 안녕과 무당파의 안녕이 훨씬 더 중요한 일 아니냐? 그 검을 처음 드셨던 조사께서도 이런 상황에는 이렇게 하라고 하셨을 것이다.”
“장문인…….”
위지철은 가만히 태극신검을 바라보았다.
이 검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는 알고 있다.
무당파의 현재이자 미래.
그런 자가 드는 것이 이 태극신검이었다.
‘무겁다.’
검 자체가 무겁지는 않다.
다만, 이 검이 가지는 의미가 무거울 뿐이었다.
“너라면 충분히 들 수 있다.”
위지철의 생각을 읽었을까?
장청흠이 위지철에게 조용히 말하였다.
이 말을 들은 위지철이 조심스레 태극신검을 검집에서 빼내어 보았다.
스릉-
너무나 맑은소리와 함께 검집을 빠져나오는 검신.
그저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는 모습.
하지만 검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범상치 않았다.
‘아름답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전해져 내려오는 검임에도 작은 흠집조차 없다.
매끈하게 뻗은 검신은 아름답다는 말이 절로 나오게끔 했다.
“지켜 보겠습니다.”
“그래.”
위지철은 태극신검을 허리춤에 찼다.
그리고 장청흠은 다시금 무당파로 돌아갔다.
그는 이것을 위지철에게 직접 전하기 위해 온 것이었으니 말이다.
“검은 새로 구하러 가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팽중호가 태극신검을 받은 위지철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내일 검을 새롭게 만들 생각이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손에 딱 맞습니까?”
“아주 딱 맞습니다.”
태극신검은 마치 원래 손에 맞춰 만든 듯, 위지철의 손에 딱 맞았다.
“한번 움직여 보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예.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새로운 검.
당연히 움직여 봐야 했다.
고수라면 들고 있는 무기가 무엇이든 능숙하게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생사가 갈리는 아주 적은 간극에서는 어떤 무기를 들고, 얼마나 익숙한 무기를 들었느냐에 따라 생사가 갈리게 된다.
그렇기에 무기를 쓰는 무인이라면 자신의 무기를 연인과 같이 잘 알고, 수족과 같이 잘 부릴 줄 알아야만 하는 것이다.
“뭐 합니까? 갑시다.”
“예? 아! 예.”
팽중호의 말에 조금 의아해하던 위지철이 대답했다.
지금 팽중호는 기꺼이 태극신검의 상대가 되어 주겠다는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팽 소가주님.”
“고마우면, 나중에 하북팽가에 갚으시면 됩니다.”
* * *
“준비가 끝났나?”
“예.”
마교의 거대한 대전.
그곳에 지금 수많은 이들이 모여 있었다.
모두 마교 서열 최상위의 무인들.
“마뇌. 어떻게 움직일지 일러 보라.”
“알겠습니다.”
천마 척산주의 말에 마뇌 여연홍이 대답하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작전에 대해 쏟아져 나왔다.
물론 제대로 듣는 이가 많지는 않았다.
‘어차피 작전이란 것을 따를 이들이 아니지.’
마교의 무인들은 대체로 말을 잘 듣지 않는다.
그것은 여연홍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것까지 전부 염두에 두고 지금 이 작전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사실 작전이랄 것도 없다.’
어쩌면 이것은 작전이랄 것도 없었다.
그저 어느 곳으로 누가 움직이는가에 대한 것일 뿐이니 말이다.
다만, 그녀는 가장 최적의 장소에 가장 최적의 무인을 보내는 일을 하였다.
이들이 가장 최적의 상태로 제대로 싸울 수 있도록 말이다.
“마뇌는 우리가 승리할 확률이 몇 할이나 된다고 생각하는가?”
그때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검마가 마뇌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마 지금 이곳에서 가장 마뇌의 작전을 제대로 듣고 있던 이 중 하나일 터였다.
“팔 할을 봅니다.”
“팔 할이라……. 생각보다 높지 않군 그래.”
승률 팔 할.
이게 낮은 수치란 말인가?
하지만 검마가 생각하기에는 이건 분명 낮은 수치였다.
검마의 생각에는 구 할 아니…… 십 할에 가까웠으니 말이다.
“팽중호 그 친구 때문인가?”
“호호. 맞습니다.”
여연홍이 무림맹에 이 할이나 준 것.
그것은 온전히 팽중호 때문이었다.
그 하나가 무림맹의 승률 이 할을 차지하는 것이었다.
“이번 무림행은 꽤 재미있겠군.”
“분명 재미있으실 겁니다.”
여연홍의 말에 다른 마교 무인들도 미소를 지었다.
그들에게 작전은 주어지지 않았다.
그저 지금 이 무림행에서 있을 싸움이 재미있을지, 없을지가 중요할 뿐.
“소교주께서는 근데 어디에 계신가?”
지금 이 대전에 유일하게 없는 이.
바로 소교주인 척한준이었다.
이런 자리에 그가 없다니?
“작은 깨달음을 하나 정리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호오? 그사이에 또?”
“예.”
척한준이 지금 이곳에 오지 않은 이유.
그것은 그가 새로운 깨달음을 하나 얻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충분히 괴물같이 강한 그가, 또다시 깨달음을 얻었다니?
확실히 놀라울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럼 우리가 먼저 움직이겠군.”
“그렇습니다.”
“좋은 일이군. 우리가 더 많이 싸울 수 있다는 거니까.”
척한준이 나중에 움직이고, 자신들이 먼저 움직인다는 말에 마교 무인들은 오히려 좋아했다.
그들에게 싸움의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진다는 뜻이었으니 말이다.
정말 하나같이 싸움에 미친 자들임은 분명했다.
“자, 그럼. 움직여 보자.”
“예!”
“예!”
천마가 움직여 보자는 말을 꺼내었고, 마교 무인들이 모두 저마다 힘차게 대답했다.
드디어 마교의 움직임이 시작된 것이다.
신강에 자리 잡은 거대한 힘.
그 힘이 무림을 향해 진격을 시작했다.
* * *
엄청난 긴장감이 감도는 무림맹 대회의장.
지금 무림맹에 급보가 전해졌기에 그러했다.
“마교가…… 마교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마교의 움직임.
이전처럼 일부가 움직인 것이 아니라, 마교 전체가 움직이는 것이었다.
이것은 곧 정마대전(正魔大戰)의 시작.
당연히 긴장감이 감돌 수밖에 없었다.
“군사. 그들이 가장 먼저 어디로 움직일 것 같습니까?”
무림맹주인 장순학이 군사인 사마운에게 물었다.
당연히 무림맹도 마교의 움직임이 있기 전에 많은 준비들을 하였다.
가만히 앉아서 그들이 쳐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건 아니다.
“이번에는 아마도 사천을 향해 움직일 것입니다.”
“허어!”
사천성.
가장 많은 거대 무림 문파가 모여 있는 곳.
아미파, 청성파, 사천당가.
이들뿐만 아니라, 다른 문파들도 무수히 많았다.
그러니 마교가 첫 정복지로 선택하기에는 이만한 곳이 없었다.
사천을 평정한다면, 순식간에 무림맹의 이 할은 점령하는 것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럼 어서 사천성에 무인을 보내야 하지 않겠소?”
“아니요. 그러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사천성은 그들에게 내어 줄 것입니다. 이미 사천성에 계신 분들과는 이야기해 두었습니다.”
사마운은 애초에 사천성에서 마교와 싸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많은 문파들의 반대가 있었지만, 결국 대의를 위한 일이라는 말로 그들을 설득했다.
하지만 그래도 문제는 있었다.
“그곳이 비어 있는 동안 마교뿐 아니라, 도적들이 날뛰지 않겠소?”
사천성에는 사도 문파들도 상당히 많이 존재한다.
그런 그들이 지금과 같은 상황을 가만히 두고 보지는 않을 터다.
분명 빈 곳이라고는 해도, 얻을 것이 없나 들어가서 패악을 부릴 터였다.
“이미 모든 것들을 다 옮기고 있습니다.”
“당가의 물건들도 옮기고 있단 말이오? 위험하지 않겠소?”
각 문파에 있는 신물이나, 무공서들은 모두 이곳 무림맹으로 옮기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도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사천당가였다.
워낙에 옮길 것이 많은 것은 물론이고, 옮기기 쉽지 않은 것들도 많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취급 자체가 위험한 것들도 많았다.
그렇기에 이 행렬을 노리는 이들이 분명 하나둘이 아닐 것이다.
“그건 팽 대협께서 나서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아!”
팽중호가 직접 나선다는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나선다면 문제는 없었다.
지금 여기 있는 이들이 다른 것은 몰라도, 팽중호의 실력만큼은 완전히 신뢰했으니 말이다.
“자.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 * *
사천당가에서 출발한 행렬.
사천당가의 수많은 암기와 독, 그리고 수많은 무공과 제조법이 실린 행렬이었다.
사천당가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움직이는 만큼 정말 삼엄한 경비가 이루어지며 행렬이 움직였다.
그리고 그런 행렬의 제일 앞에 있는 마차.
그곳에는 지금 팽중호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렇게 함께 움직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죠.”
지금 팽중호와 함께 마차를 타고 있는 여인이 한 명 있었는데, 바로 당조윤이었다.
원래는 사천당가의 소가주인 당세홍이나 가주인 당정학과 함께 마차를 타고 움직일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당조윤과 마차를 함께 타게 되었다.
물론, 이건 어쩌다 보니 그런 것은 아니고, 철저히 당정학과 당세홍에 의해 계획된 일이었다.
“그런데 이 마차 상당히 좋은 것 같습니다.”
사천당가의 계획을 아는지 모르는지, 팽중호는 지금 타고 있는 마차에 감탄했다.
지금껏 팽중호가 수많은 마차를 타 보았는데, 이처럼 편하고 좋은 마차는 처음이었다.
“세가에서 특별히 고안해 만든 마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