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심장이 뛰고, 오싹하다.
팽중호, 위지철, 곽채령이 무림맹에서 멀리 떨어진 평원에 섰다.
주변이 나름 깔끔했는데, 이유는 이미 팽중호가 와서 수차례 다져 놓은 탓이었다.
팽중호가 지형 자체를 바꿔 버린 것이다.
“자, 위 소협. 한번 제대로 해 봅시다.”
“예.”
긴말이 뭐가 필요하겠는가?
팽중호와 위지철이 각자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러자 순간 주변에 불던 바람도 멈추었다.
스윽-
옆에 서 있던 곽채령이 살짝 뒤로 몸을 날렸다.
둘의 대련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곽채령까지 뒤로 물러나고, 둘만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먼저 오십시오.”
팽중호가 자연히 선공을 양보했다.
위지철은 사양하지 않고, 곧바로 팽중호에게로 달려들었다.
무극만변신공(無極萬變神功).
그것이 지금 위지철의 검에서 펼쳐져 나왔다.
이제 막 깨달음을 얻었을 때보다 훨씬 더 발전된 무극만변신공.
정말 수없이 모습을 변화하며 팽중호를 몰아치는 위지철의 검.
‘혼이 다 빠지는 기분이군.’
위지철의 공격은 정말 혼이 다 빠질 지경이었다.
어떻게 막아 내도 순식간에 모습을 바꾸며 뚫고 들어온다.
-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무뢰진천(無雷振天).
팽중호가 이제 공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지난번 위지철을 무릎 꿇렸던 무뢰진천.
주변 공간에 엄청난 압박이 가해지기 시작했다.
사아아아아아악-
하지만 이전과는 달랐다.
무뢰진천의 압박이 위지철의 몸을 비켜나기 시작했다.
지금 위지철은 몸의 내공을 밖으로 내보내며 팽중호의 무뢰진천을 흘려 내는 것이었다.
말은 쉽지만, 결코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닌데 위지철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 일을 해내고 있었다.
‘좋아. 그럼 좀 더 최선을 다해 볼까?’
키이이이이이잉-
멸뢰진천도가 울음을 내기 시작하고, 팽중호가 초감각의 상태에 들어섰다.
능숙함을 넘어 완성의 단계에 들어선 초감각은 또 새로운 세상을 보여 주었다.
몸과 머리로 전해지는 수많은 정보들.
이것을 제대로 활용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팽중호는 이제 이것을 완벽히 사용할 수 있었다.
쿠구구구구구구궁-
그리고 주변의 무수한 선.
이것들 또한 이제 더더욱 완전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내공을 통해 무뢰진천을 흘려 내던 위지철을 다시 압박하기 시작하는 팽중호.
“흡.”
위지철은 갑자기 거세진 압박에 깜짝 놀랐다.
위지철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은 압박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놀람도 잠시.
위지철도 곧바로 이것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위지철 또한 모든 힘을 다 내고 있던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역시. 팽 소가주님이다.’
위지철은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팽중호를 보며,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팽중호는 확실히 달랐다.
많이 따라왔다고 생각하면, 더 멀리 도망가 있다.
그렇기에 위지철은 팽중호가 고마웠다.
그가 자신의 목표가 되어 주니 말이다.
그가 있기에 지금 이만큼이나 자신이 강해질 수 있었다.
“변함에 끝이 없으니, 세상 그 무엇도 되지 못할 것이 없더라.”
위지철의 말.
그리고 그 말과 동시에 위지철의 기운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위지철은 지금 무극만변신공의 극의를 꺼내 드는 것이었다.
쿠구구구구구구궁-
그리고 순간 주변을 압박하기 시작하는 위지철의 기운.
“하…… 하하하하!!! 하하하하하!!!! 정말 대단합니다!!”
“과찬이십니다.”
팽중호는 지금 위지철이 뿜어내는 압박에 눈을 크게 뜨고 시원하게 웃었다.
지금 위지철이 보여 주는 이것.
‘무뢰진천이다!’
그랬다.
지금 위지철은 팽중호의 무뢰진천을 똑같이 펼쳐 내고 있었다.
이것이 지금 말이 된단 말인가?
팽중호가 무뢰진천의 초식을 가르쳐 준 적이 없는데, 그것을 똑같이 펼쳐 내다니?
‘미치겠군.’
위지철 때문에 이런 감정이 든 것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지금은 정말 진짜로 놀라고 또 놀랐다.
변하는 것이 그치지 않고, 그 무공을 그대로 따라 한다니.
이건 무림 역사에 없을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물론, 깨달음이 다르니, 조금 다르지만…….’
지금까지의 깨달음이 다르다.
그렇기에 똑같은 무공이라고 하여도 달라진다.
확실히 위지철의 무뢰진천은 분명 팽중호의 것과는 조금 달랐다.
아마 초감각의 차이도 있을 터였다.
“그럼 다시 제대로 해 봅시다.”
팽중호는 몸을 묵직하게 누르는 위지철의 압박에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몸을 움직였다.
철마를 상대할 때와는 조금 다른 느낌의 무인으로서의 피가 끓어올랐으니 말이다.
‘심장이 뛰고, 오싹하다.’
강자와의 목숨을 건 싸움이 아닌, 쉬지 않고 자신을 쫓아오며 강해지는 이를 보며 느끼는 흥분과 오싹함.
지금 위지철과의 대련에서는 그런 것이 느껴졌다.
캉- 쾅- 카카캉- 쾅-! 콰앙-!
두 사람이 부딪칠 때마다 터져 나가는 주변.
스치기만 해도 목숨이 날아갈 살벌한 공격이건만, 두 사람의 얼굴에는 지금 미소가 가득했다.
그만큼 지금 이 대련을 둘 다 즐기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아직도 멀었구나.”
그리고 이 둘을 지켜보는 곽채령은 눈을 떼지도 않고 조용히 말을 읊조렸다.
서열 삼 위라는 엄청난 업적을 이루어 낸 그녀다.
무려 정혼검신 장순학을 누르고 오른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 그런 그녀가 보기에도 팽중호와 위지철은 몇 단계 위에 존재하는 괴물들이었다.
아직 자신의 수준이 멀고도 멀었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파지지지직-
그저 대련을 지켜보는 것뿐인데, 곽채령의 두 손에 뇌기가 일렁였다.
그만큼 지금 보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마음이 동요한다는 것이었다.
팅- 챙강-
그때.
싸움의 끝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위지철의 검이 동강이 나 버린 것이다.
“이런. 졌습니다.”
위지철의 검이 동강이 난 이유.
그것은 팽중호의 무공을 따라 했기 때문이었다.
초진동이 기본이 된 팽중호의 무공.
아무리 현경의 힘으로 막아 낸다지만, 멸뢰진천도와 같은 검이 아니라면 버틸 수는 없었다.
“검은 새로 하나 하러 같이 가시죠.”
“알겠습니다.”
팽중호는 새로운 검을 위지철에게 약속했다.
그렇게 끝난 두 사람의 대련.
팽중호는 이번에는 멀리 떨어져 있는 곽채령을 바라보았다.
너도 대련을 하겠냐는 눈빛.
끄덕-
곽채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대련을 하고 싶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위지철이 팽중호에게 인사를 하고는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곽채령이 팽중호의 앞에 섰다.
벌써 곽채령의 두 눈에 빛나는 푸른 뇌기.
싸울 준비가 만반인 상태였다.
태극청뢰신장(太極靑雷神掌).
위지철이 무극만변신공을 완성했다면, 곽채령은 태극청뢰신장을 완성했다.
그녀는 이것으로 장순학을 이긴 것이다.
‘압도적인 강함과 부드러움.’
위지철과 함께 만들어 내고 함께 완성한 태극청뢰신장은 강하고 부드러웠다.
위지철의 무공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는데, 이 태극청뢰신장은 강함과 부드러움이 동시에 펼쳐졌다.
때에 따라 바뀌는 것이 아니라, 공방일체로 동시에 펼쳐진다는 것이었다.
‘그때의 비무는 정말…….’
팽중호는 무림맹 서열을 정할 때의 기억을 더듬었다.
곽채령과 장순학의 싸움을 말이다.
* * *
곽채령과 장순학.
이 싸움의 승자는 열이면 열이 모두 장순학의 승리를 예상했다.
곽채령이 놀라운 실력을 보이며 갑자기 등장했지만, 정혼검신이라 불리는 장순학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할 테니 말이다.
“장순학이네.”
“곽채령입니다!”
연무장에 마주 선 두 사람.
다른 이들은 장순학의 압승을 예상하지만, 세 사람은 달랐다.
팽중호, 위지철, 장순학.
특히 장순학은 곽채령과 마주 서고 직접 느끼고 있었다.
그녀가 결코 자신의 아래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시작하세.”
“네!”
장순학의 선공 양보.
결코 실력이 위라서가 아니라, 무림에서의 지위 때문이었다.
파지지지지직-
대련의 시작과 동시에 곽채령의 손에 청뢰(靑雷)가 터져 나왔다.
일견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곽채령의 청뢰.
타탓-
곽채령이 가벼운 몸놀림으로 장순학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펼쳐지는 그녀의 장법.
강맹한 위력의 장법에 장순학이 연신 뒤로 밀려났다.
쾅- 쾅- 쾅- 쾅-! 쾅-!
점점 더 강해지는 곽채령의 공격.
수비만 하던 장순학은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 공세를 취했다.
펼쳐져 나오는 천하삼십육검.
짧은 시간에 펼쳐 낸 것이지만, 그 위력이 결코 약하지는 않았다.
파지지지지지직-
하지만 곽채령은 이 장순학의 공격을 보고도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그대로 계속해서 공격해 들어오는 곽채령.
이 모습에 오히려 장순학이 조금 놀랐다.
이대로라면 그대로 곽채령에게 검이 작렬할 것이고, 그렇다면 크게 다칠 수도 있었다,
“조심하시게!”
하지만 어차피 이미 검을 거두기에도 늦었다.
그리고 곽채령쯤 되는 무인이 아무런 생각 없이 이럴 일은 없을 터.
장순학의 검은 계속 뻗어 나갔다.
투욱- 파지직-
곽채령은 쇄도하는 장순학의 검을 한쪽 손으로 그대로 흘려 내었다.
너무나도 부드럽게 흘러나가는 장순학의 검.
그리고 남은 한 손은 그대로 장순학에게로 향했다.
“대단하군!”
쾅-! 촤악-
물론 장순학도 현경의 경지에 오른 무인.
곧바로 검을 거두어들이고, 곽채령의 손을 막아 내었다.
뒤로 약 일 장 정도 밀려난 장순학.
곽채령이 뻗은 공격의 위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좋네. 계속 가네!”
“네!”
장순학이 즐겁다는 듯이 소리쳤다.
그는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아주 천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에게서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
그가 얼마나 지금 곽채령과의 대련을 즐기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었다.
우우우우웅-
장순학은 이제 진짜 천하삼십육검을 펼칠 준비를 하였다.
주변을 가득 채우는 웅혼한 기운.
이 모습에 지켜보던 무인들이 조금 놀랐다.
‘저 소저가 도대체 얼마나 강하기에…….’
곽채령이 도대체 얼마나 강하길래 장순학이 진심을 다한단 말인가?
물론 이런 이들의 의문은 금방 해소가 되었다.
곽채령이 엄청난 실력을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파짓-
곽채령의 두 눈이 푸른 뇌기로 번쩍였다.
다만, 그녀의 양손에 무섭게 휘돌던 청뢰는 이제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힘이 약해져서 없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은 지켜보던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주변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달라졌으니 말이다.
“갈게요!”
“그러게.”
치짓-
눈으로 좇을 수도 없었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곽채령의 신형이 장순학의 코앞에 도달했다.
마치 곽채령이 청뢰 그 자체가 된 듯싶었다.
콰카카카카카카캉-
연무장이 이대로 모조리 뒤집혀 버릴 것만 같은 공방.
한참을 그렇게 공방을 주고받았는데, 두 사람 모두 조금의 상처도 없었다.
막상막하의 실력.
그런데 상황이 조금 묘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저벅-
장순학이 조금씩 뒤로 물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더 빠르게 물러나는 장순학.
그런 장순학의 발이 어느새 연무장 끝에 도달했다.
그리고.
“내가 졌네.”
장순학이 패배 선언을 하였다.
충격적인 결과.
이 결과에 사람들은 모두 벙찐 표정을 하였다.
그리고 팽중호도 속으로 조금 벙쪘다.
‘싸우는 도중에 강해졌다.’
아마 팽중호 말고도 장순학도 느꼈을 것이다.
그렇기에 장순학이 순순히 패배 선언을 한 것일 테고 말이다.
지금 곽채령은 장순학과 싸우는 와중에 계속해서 성장해 버렸다.
그야말로 괴물 같은 재능.
‘위 소협과 채령이 사이에서 나오는 아이가 궁금해질 지경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