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구경 좀 하겠습니다.
“그럼 지켜볼까?”
팽중호는 마교도를 두 사람에게 맡겨 놓고, 뒤에서 몸을 추스르고 있는 고단종의 옆에 섰다.
“왜 혼자 나오셨습니까?”
“화산의 기개를 보여 주기 위해서 나왔네.”
“혼자 나서신다고 아무도 기개를 알아주지 않습니다.”
“…….”
“오히려 화산의 힘이 약해지는 것을 초래할 뿐입니다.”
고단종은 팽중호의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그의 말이 전부 맞았으니 말이다.
“뭐, 그래도 덕분에 화산에 저들이 오기 전에 미리 막을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고단종이 먼저 뛰쳐나간 덕에, 화산파에 머물다가 온 것이 아니라, 곧바로 이곳에 올 수 있었다.
저들이 움직이기 전에 먼저 이들을 공격할 구실을 얻은 것이다.
“자, 일단은 쉬시면서 저 두 사람의 실력을 함께 보도록 하죠.”
“저 두 사람만으로 괜찮겠는가?”
“물론입니다.”
고단종은 걱정이 들었다.
팽중호의 강함에 대해서는 잘 알았지만, 천부중과 남궁천세의 강함에 대해서는 잘 몰랐으니 말이다.
하지만 팽중호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팔 위와 구 위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그래도 무림맹 서열 팔 위와 구 위다.
지금 눈앞에 있는 마교도들에게 질 수준은 결코 아니었다.
“그럼, 저도 앉아서 구경 좀 하겠습니다.”
털썩-
팽중호는 그대로 고단종의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았고, 그때 천부중, 남궁천세와 마교도들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 * *
천부중과 남궁천세는 눈앞의 마교도들을 쓰윽 둘러보았다.
‘강하다……. 하지만 강해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앞뒤가 맞지 않는 말.
하지만 지금 두 사람에게는 이 말보다 딱 맞는 말이 없었다.
마교도들을 분명 하나같이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절대로 질 것 같지 않다.’
그들은 강했지만, 그들에게 질 것이라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자신감.
그것이 지금 두 사람에게 아주 충만했다.
지금까지 수련한 것과 팽중호에게 오는 길에 받은 정신 무장이 바로 이 자신감의 원천이었다.
“자, 싸울 거면 나오시길.”
천부중이 마교도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팽중호의 강함에 잠깐 주춤거리던 그들은 새로운 상대의 등장에 술렁이기 시작했다.
“너희 둘이 우리를 상대하겠다고?”
마교도 중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팽중호는 인정했지만, 이 둘은 인정치 못하겠다는 표정을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한참이나 젊은 두 무인이 자신들을 막겠다고 나섰으니 당연했다.
이건 자신들을 무시하는 것이었다.
다만, 저 뒤에서 너무나 여유롭게 있는 팽중호가 조금 신경이 쓰였다.
팽중호 정도 되는 이가 아무런 이유 없이 이들에게 맡기고, 저렇게 편하게 쉬고 있을 일은 없으니 말이다.
“말이 긴 건 실력에 자신이 없어서 그런 건가?”
천부중의 날 선 말.
이 말에 앞서 나섰던 마교도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다.
“하, 좋다. 그럼 실력을 보여 줘야지. 나에게 자비를 기대하지 마라.”
싸움을 한다면 상대가 누구든 최선을 다하는 것이 마교의 방식.
마교도는 기운을 일으키며, 허리춤에 차고 있던 두 자루의 낫을 동시에 꺼내어 들었다.
쌍겸(雙鎌).
분명 무림에서 보기 쉬운 무기는 아니었다.
스윽-
쌍겸을 든 마교도를 상대하기 위해 천부중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자연스레 남궁천세가 뒤로 빠져 주었다.
마교도와 천부중의 일대일 대결.
주변 다른 마교도들도 나서지 않고, 그저 지켜볼 요량인 듯 가만히 서 있었다.
아마도 실력을 대충 가늠해 볼 생각인 듯싶었다.
“간다!”
마교도가 참지 않고 곧바로 천부중에게 쇄도했다.
쾌속한 움직임과 그에 어울리는 현란한 쌍겸의 움직임.
순식간에 천부중의 사방을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꽤 괜찮군.”
꽤 괜찮다.
마교도의 공격을 본 천부중의 평가였다.
분명 눈을 어지럽히는 현란함은 있었다.
하지만 천부중의 눈에는 아직 어설픈 것들이 확실히 보였다.
사라락- 사락- 사라라라락-
순식간에 주변을 가득 메우는 수많은 매화.
마교도의 쌍겸은 이 매화에 둘러싸여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압도적인 화려함.
거기에 더해진 짙은 매화향은 사람의 후각마저 어지럽히고 있었다.
촤아아아아아악-
그대로 마교도의 온몸이 매화에 꿰뚫렸다.
바닥에 쓰러지는 마교도.
호기롭게 나서던 모습에 비해 너무나 처참한 최후.
“흐음.”
그런데 지금 이 모습을 만들어 낸 천부중은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자신의 검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 쉽다.’
자신의 공격이 너무나도 쉽게 상대에게 닿았다.
최근 들어 단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느낌.
다시 생각해 보니, 당연히 그럴 만했다.
무림맹에서 최근 천부중이 상대했던 무인은 바로 팽중호와 위지철이었으니 말이다.
‘괴물들만 상대하다 보니, 잊고 있었나 보군.’
팽중호와 위지철은 상상 이상의 괴물들.
어쩌면 이 무림의 규격에 벗어난 이들이었다.
그런 그들과 매일 대련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현실적인 감각을 잊고 있었던 듯싶었다.
‘나는 강해졌다.’
지금으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은 강해졌다.
“자, 다음…….”
“아니. 다음은 내 차례지.”
천부중이 자신감을 가지고 다음 상대를 찾을 때.
뒤로 물러나 있던 남궁천세가 앞으로 나서며, 천부중을 막았다.
천부중이 한 번 싸웠으니, 이제는 자신의 차례였다.
‘나도 확인해 보고 싶다.’
남궁천세는 지금 천부중과 마교도의 대련을 보고, 무인으로서의 피가 끓어올랐다.
천부중과 자신은 함께 동고동락한 사이이자, 서로가 서로의 경쟁자이다.
그런 천부중이 이런 힘을 보여 주었는데,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좋아.”
천부중도 지금 남궁천세의 마음을 알았기에 순순히 뒤로 물러나 주었다.
서로 자리를 바꿔선 천부중과 남궁천세.
“대단한 실력들을 갖추고 있군그래.”
마교도들 사이에서 훤칠한 모습의 중년인이 한 명 앞으로 나섰다.
기다란 창을 든 그는, 몸에서 강렬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는데, 확실히 보통 실력자가 아님을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내 상대가 자네인가? 제대로 해 보세나.”
정중한 말투와 다르게 그의 몸에서는 거칠고 거친 투기가 마구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만큼 지금 그가 싸우고 싶다는 것을 뜻하는 것일 터.
쿠우우우우우우웅-
하지만 지금 싸우고 싶은 것은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마주 선 남궁천세 또한 엄청난 기운을 숨기지 않으며 내뿜고 있었으니 말이다.
“해 봅시다.”
스릉-
스윽-
남궁천세가 검을 꺼내어 들고, 마교도가 창을 앞으로 내 쥐었다.
그리고 서로가 동시에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말이다.
카캉- 캉- 카캉-! 캉-!
서로 쉬지도 않고 엄청난 연격을 주고받는 둘.
그런데 연격을 주고받는 두 사람의 얼굴이 꽤 달랐다.
“큭.”
남궁천세의 얼굴은 더없이 평온한 반면, 창을 쥔 마교도는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리며 고통에 젖어 있었으니 말이다.
‘약하다.’
지금 마교도의 공격을 막으며 남궁천세의 머릿속에 든 생각이었다.
분명 뛰어난 연격과 힘을 보여 주는 마교도지만, 남궁천세가 느끼기에 그의 공격은 약했다.
아직 힘을 다하지도 않았는데, 상대가 힘들어하고 있었다.
캉-!! 카아앙-!!!
남궁천세는 점점 더 힘을 올리기 시작했고, 그럴수록 마교도는 계속 뒷걸음질 치며, 입에서는 피를 토해 내기 시작했다.
그저 남궁천세의 공격을 막는 것에도 내상을 입는 것이었다.
스윽- 캉-! 서걱-
남궁천세가 무적제왕검을 제대로 펼쳐 내었고, 그대로 마교도의 창과 함께 그를 반으로 갈라 버렸다.
너무나도 부드럽게 상대를 베어 버리는 남궁천세.
그의 무적제왕검이 어떻게 변하였는지를 잘 보여 주었다.
그리고 그가 얼마나 강해졌는지를 증명하였고, 말이다.
‘이게 내 힘인가?’
남궁천세는 지금 자신의 힘에 놀랐다.
이렇게까지 손쉽게 상대를 베어 낼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었으니 말이다.
“자자, 아직 싸움 안 끝났습니다. 집중들 하십쇼.”
자신들의 힘에 아직 얼떨떨해하는 천부중과 남궁천세를 향해 팽중호가 입을 열었다.
그들이 어떤 마음인지는 팽중호도 충분히 알았다.
그렇기에 혹시나 그 힘에 취하지 않도록, 적당한 때에 상황을 인지시켜 주며 그들에게 경각심을 준 것이었다.
“예.”
“후웁.”
두 사람은 팽주호의 말에 검을 다시 꼬나쥐고는 남아 있는 마교도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제 마교도들도 두 사람을 절대 허투루 보지 않았다.
두 사람이 얼마나 강자인지는 방금 싸움으로 충분히 알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번엔 내가 나서지.”
“아니, 내 차례다.”
“하! 당연히 내가 나설 때가 아닌가?”
마교도들은 저마다 자신이 먼저 나서겠다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눈앞에서 다른 이들이 당하는 것을 보았는데도, 조금도 위축이 되거나 하지 않은 그들의 모습.
아니, 오히려 지금 그들의 눈은 투지로 활활 불타고 있었다.
어서 싸우고 싶다는 강한 열망과 함께 말이다.
‘확실히 싸움에 미쳐 있기는 하군.’
팽중호를 비롯한 남궁천세, 천부중, 고단종의 머릿속에 동시에 든 생각이었다.
마교도들은 확실히 싸움이란 것에 미쳐 있는 자들이었다.
“아니, 내가 먼저 나선다.”
그때 마교도 무리 가장 뒤쪽에서 사태를 가만히 지켜만 보던 한 중년인이 앞으로 나섰다.
그가 움직이자 이리저리 중구난방으로 떠들던 마교도들이 전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가 가는 길을 터 주었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마교도들이 열어 준 길 사이로 걸어 나오는 중년인.
탄탄하며 거대한 몸에 꿈틀거리는 근육들과 온몸에 가득한 흉터들이 인상적이었다.
그가 나오는 것을 보고, 자리에 앉아 있던 팽중호가 몸을 일으켰다.
‘저자라면 내가 나서야지.’
다른 이들이라면 몰라도, 지금 앞으로 나서는 이는 자신이 맡아야만 했다.
그는 그런 수준의 고수였으니 말이다.
천부중과 남궁천세가 지금 감당하기에 쉽지 않은 이였다.
“두 분의 싸움은 죄송한데, 잠깐 뒤로 미뤄야 할 것 같습니다.”
팽중호가 천부중과 남궁천세를 뒤로 물렸다.
두 사람은 팽중호의 말에 순순히 뒤로 물러나 주었다.
그가 이러는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테니 말이다.
“안녕한가. 나는 철마라고 한다.”
“팽중호라고 합니다만……. 그보다 서열이 몇 위나 되십니까?”
“팔 위.”
마교 서열 팔(八)위 철마(鐵魔).
지난번에 팽중호가 싸웠던 교마 보다도 하나 높은 서열의 무인이었다.
마교 최상위 서열의 절대 고수.
확실히 지금 천부중과 남궁천세가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교마를 이겼다던데, 사실인가?”
“예, 뭐. 제가 이겼습니다.”
팽중호의 대답에 철마의 두 눈이 반짝인다.
교마는 자신 바로 밑에 서열의 강자.
그런 교마를 이겼다고 하니, 어찌 기대되지 않겠는가?
“좋아. 좋아.”
철마가 곧바로 몸을 풀며 투기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좀 전의 마교도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엄청난 투기.
과연 마교 서열 팔 위라고 할 만하였다.
‘우리라면 이기지 못했을 것 같다.’
그리고 뒤에서 이 철마를 지켜보던 천부중과 남궁천세는 바로 왜 팽중호가 자신들을 뒤로 물리게 하였는지 이해했다.
조금 전의 승리로 한껏 자신감이 고무되어 있는 상태임에도, 철마를 보니 이길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바로 들었으니 말이다.
자신들을 살리기 위해 뒤로 물린 것이었다.
“그럼 시작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