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먼저 갑니다.
화산파(華山派).
구파일방 중에서도 단연 손에 꼽는 거대한 문파.
무당파와 함께 검으로는 단연 무림제일문을 논하는 곳.
매화(梅花)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문파.
매화를 닮은 화려한 검법과 깎아지는 화산을 닮은 힘 있는 검법이 공존하는 화산파.
그리고 그들의 내공심법인 자하신공.
내공에 향기를 담는 자하신공은 분명 무림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굉장히 특이한 내공 심법이었다.
그리고 이런 자하신공으로 펼쳐지는 매화칠십이검(梅花七十二劍)은 무림에서도 손에 꼽는 절세의 검법으로 불리기에 충분한 상승의 검법이었다.
이런 엄청난 화산파가 지금 꽤 다급하고 소란스러워져 있었다.
“마교도들이 이제 코앞까지 왔다고 합니다.”
“허어! 무림맹에서는 언제 지원 병력이 온다고 합니까?”
“우리 화산이 언제부터 무림맹에 의지했습니까? 우리 힘으로도 충분합니다. 저희가 먼저 나서서 공격해야 합니다.”
화산파의 장로들이 각각 소리치기 시작했다.
무림맹을 기다리는 쪽과 스스로의 힘으로 충분하다는 쪽으로 의견이 나뉘었다.
둘 다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는 소리였다.
안전하게 무림맹의 지원 병력을 기다리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
하지만 지금 이곳은 대 화산파.
구파일방의 수좌를 다투는 곳이니 당연히 스스로의 힘으로도 충분하다는 자신감을 가질 만하였다.
“마교는 혈천궁보다 더한 자들입니다. 무림맹을 기다리는 게 맞습니다.”
“맞소. 괜히 큰 피해를 자초할 필요는 없소.”
다시금 무림맹을 기다리는 것으로 의견이 기울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우리 화산이 이리 겁쟁이가 되었단 말이오!”
그때 한 장로가 크게 소리를 내질렀다.
화화검(火花劍) 고단종.
그는 화산파 내에서도 성정이 불같기로 유명한 장로였다.
물론 불같은 성정만큼 실력도 뛰어났기에, 그는 화산파에서 꽤 입지가 있는 인물이었다.
“고 장로. 진정하시지요.”
“지금 진정하게 되었소! 에잇!”
쿵-
고단종이 거칠게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화산파의 장로들과 장문인이 조금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고 장로가 혼자 뛰쳐나가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허허……. 그러게 말입니다.”
고단종이라면 충분히 가능했다.
그라면 지금 당장 화산파를 뛰쳐나가 마교도가 있는 곳으로 가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막는다고 들으실 분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것이 가장 문제지.”
고단종이 애초에 말을 들을 사람이었다면, 지금 당장 뛰쳐나가 그를 잡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절대로 말을 들을 인물이 아니었다.
유일하게 장문인의 말조차 듣지 않는 이였으니 말이다.
“일단 고 장로님은 후에 다시 설득하기로 하고, 무림맹에서는 누가 온다고 하였습니까?”
어수선해진 분위기를 넘기고, 다시금 본론으로 돌아왔다.
지금 화산파에 중요한 것은, 무림맹에서 과연 어떤 지원 병력이 오느냐였다.
마교를 막아야 하는 만큼 아무나 와서는 도움이 되지 않을 테니 말이다.
“도신과 남궁세가의 소가주, 그리고 부중이가 온다고 합니다.”
“오! 그렇습니까?”
“도신이 직접 온답니까?”
팽중호가 온다는 소리에 일순간 장로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도신 팽중호라면 확실히 믿을 수 있는 든든한 아군이니 말이다.
마교도들이 와도 그가 온다면, 문제없었다.
“게다가 이번에 신성으로 올라선 부중이와 남궁세가 소가주까지 온다니, 아주 확실한 전력이 될 것입니다.”
천부중과 남궁천세 모두 무림맹에서 상위 서열을 차지했다.
이제는 위지철과 함께 무림의 신성으로 불릴 정도가 되었으니, 당연히 아주 확실한 전력이었다.
“그래도 그들에게만 맡길 수는 없으니, 우리도 준비를 합시다.”
“예. 바로 매화검수들 중에 추리겠습니다.”
그렇게 회의가 마무리되어 갈 때쯤.
“고 장로님께서 홀로 사문을 벗어나셨습니다!”
회의장에 문도가 들어와 다급하게 말을 전하였다.
고단종이 심상치 않은 모습으로 화산파를 벗어난 것을 보고, 급하게 일을 알려 오는 것이었다.
“이런!”
“벌써 나가다니!”
“어찌한단 말입니까?”
“하아…….”
고단종을 이대로 그대로 혼자 가게 놓아 둘 수도, 그렇다고 지금 당장 무인들을 꾸려 쫓아가기도 문제였다.
이 일을 고민하고 있을 때, 또 다른 소식이 들려왔다.
“무림맹의 마차가 도착했습니다!”
* * *
팽중호와 천부중, 그리고 남궁천세가 화산파에 들어섰다.
팽중호는 정말 오랜만에 와 본 화산의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이 산속에 이렇게 지었다는 것이 신기했지.’
어마어마한 화산파의 규모.
팽중호가 가본 구파일방 중 가장 규모가 크고 화려한 곳이 바로 이곳 화산파였다.
과거에도 이 화산파의 규모에 놀랐었는데, 지금 다시 와 본 화산파는 그때보다도 더욱 거대해져 있었다.
화산은 산세가 결코 평탄하지 않은 곳.
그런 곳에 이런 규모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은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
그만큼 화산파의 힘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였다.
“어서 오십시오! 화산파를 이끌고 있는 구홍문이라 하오.”
화산파 장문인 구홍문.
그가 지금 가장 앞서서 팽중호 일행을 맞이했다.
“안녕하십니까. 하북팽가의 소가주. 팽중호입니다.”
“남궁세가의 소가주. 남궁천세입니다.”
팽중호가 가장 먼저 인사를 하고, 그 뒤에 남궁천세가 차례로 인사를 하였다.
천부중이야 본래 화산파의 제자이니, 특별나게 인사는 할 필요는 없었다.
“이렇게 훌륭한 영웅들께서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래라면 성대하게 대접을 함이 마땅하나, 때가 때인지라 이점을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평상시라면 팽중호 정도의 인물이 화산파를 방문하면, 성대하게 자리를 마련해 대접할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코앞에 마교도들이 들이닥쳐 있는 상황.
이럴 때 성대한 자리를 할 수는 없기에 미리 양해를 구하는 것이었다.
“하하,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보다 무슨 일들이 있으십니까?”
팽중호는 애초에 성대한 잔치는 바라지도 않았기에 그런 것은 상관없었다.
그보다 지금 화산파가 뭔가 어수선하다는 것이 신경이 쓰였다.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것이었다.
“흐음 그것이…….”
구홍문은 숨길 것도 없으니, 곧바로 지금 상황을 팽중호에게 알려 주었다.
장로 중 한 명이 화산을 나갔는데, 아마도 마교도들이 있는 곳으로 갔을 것 같다는 것을 말이다.
“혼자서 가셨단 말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흠. 그럼 바로 구하러 가야겠습니다.”
“아닙니다. 분명 돌아올 것이니, 일단 피로부터 푸시지요.”
“혹시 모르는 일이니, 따라나서 보겠습니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팽중호가 움직이겠다고 말을 하자, 구홍문은 겉으로는 아니라고 하였지만, 내심 그가 움직여 주기를 바랐기에 괜찮겠냐고 물었다.
뛰쳐나간 고단종은 화산파에서 꽤 중요한 인물이었으니 말이다.
“자, 그럼 움직여 봅시다.”
“좋습니다.”
“바라던 바입니다.”
팽중호는 당연히 천부중과 남궁천세를 대동해 움직일 생각이었다.
이번 싸움은 그들에게 자신감과 실전 경험을 주기 위함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지금 이 두 사람은 아마 당장이라도 싸우고 싶은 상태일 터였다.
‘마차에서 나름대로 정신 무장을 시켰으니 말이야.’
팽중호는 마차에서도 이 두 사람에게 정신 무장을 시켰다.
오는 길이 바쁘니 따로 수련을 위해 시간을 할애할 수는 없었다.
다만, 마차 안에서 나름 이런저런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싸움 전에 정신 무장도 확실하게 해 두었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화산파를 다시금 내려가는 길에는 천부중이 가장 앞장섰다.
아무래도 화산파에 살았던 그이니, 이 주변 지리를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천부중의 인도로 화산을 벗어나, 빠르게 움직이는 세 사람.
구홍문이 화산파의 다른 무인들을 붙여 주겠다고 하였지만, 팽중호가 거절했다.
어차피 그들은 도움이 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괜히 사상자를 늘릴 필요는 없다.
채챙- 챙- 채채챙- 챙-
화산파를 벗어나 달린 지도 한참.
멀리서 희미하게 무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먼저 갑니다.”
팟-
팽중호가 말을 마치고 곧바로 먼저 몸을 날렸다.
일단은 고단중을 살려야 하니 말이다.
* * *
화산파를 벗어난 고단중은 곧바로 마교도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는 혼자서 그들을 이길 것이라 생각지는 않았다.
다만, 자신이 이렇게 나섬으로써 화산파의 기개를 보여 줄 생각이었다.
설령 죽더라도 말이다.
“으응? 넌 뭐냐?”
고단중이 화산파 근처에서 노숙을 하고 있는 마교들의 앞에 나타나자, 바닥에 대충 드러누워 있던 마교도들이 넌 뭐냐는 눈빛으로 고단종을 바라보았다.
고단종은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
“나는 화산파의 고단종이다.”
“응? 화산파?”
“근데 혼자 왔어?”
화산파라는 말에 그제야 조금 관심을 보이는 마교도들.
물론 수십이나 되는 그들 중 몇 명만이 관심을 보일 뿐이었다.
“혼자 무슨 일로 왔대?”
“너희와 싸우러 왔다.”
“오? 그래? 그거 잘됐네.”
마교도들은 싸우러 왔다는 고단종의 말에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그들에게는 고단종이 왜 혼자 왔는지는 중요하지도 않았다.
그저 싸울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할 뿐.
“자, 그럼 누가 상대할래?”
“제일 가까운 제가 하겠습니다.”
곧바로 고단종과 싸울 상대를 정하는 마교도들.
그들은 애초에 합격할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고단종이 혼자 왔으니, 일대일로 상대할 생각이었다.
스윽-
그리고 그런 고단종을 상대하기 위해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단종 제일 가까이에 있던 무인.
누워 있던 그가 일어났는데, 꽤 튼튼한 체격인 고단종 보다도 머리 두 개는 더 큰 키의 거한이었다.
“나는 서열이……. 기억이 안 나는군. 이름은 궁평이라고 한다.”
궁평.
그는 마교 서열에 있는 강자였지만, 그런 것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기에 기억하고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가 서열에 있는 강자라는 것은 분명했고, 지금 앞에 있는 고단종만큼 강하다는 것도 분명했다.
쿵-
궁평은 들고 있는 무기로 바닥을 내려찍었다.
거대한 궁평만큼이나 거대한 무기.
그것은 바로 곤(棍)이었다.
소림에서나 볼 수 있는 무기로, 흔히 볼 수 있는 무기는 아니었다.
특히나 더욱 대단한 것은, 궁평의 곤이 통째로 철로 만들어졌다는 것이었다.
과연 저걸 들고 휘두를 수 있을까 싶은 모습.
스릉-
고단종이 검을 빼 들었다.
그는 상대가 한 명이니 기회라고 생각했다.
상대가 한 번에 덤빈다면, 승산은 없겠지만 일대일 승부라면 해 볼 만하니 말이다.
“화산의 힘을 보여 주마.”
“좋아. 꼭 보여 달라고.”
탓-
고단종이 먼저 달려들었다.
그의 검에서 자하신공이 더해진 단매검(斷梅劍)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단매검(斷梅劍).
화산파의 수많은 검법들 중에서도 단연 첫손에 꼽히는 공격적인 검법.
다만, 익히기가 매우 까다로움은 물론, 제대로 전승이 이루어지지 않아. 지금까지 이것을 제대로 익힌 이가 거의 없었는데, 고단종은 우연한 기회로 이 단매검의 전승을 이어받게 되었고, 단매검이 그의 성정과 맞았는지, 단숨에 이 단매검을 완숙의 경지까지 익힌 이였다.
그렇기에 고단종이 화산파에서 중요한 인물인 것이었다.
만약 고단종이 사라지면, 화산파에서 단매검의 맥이 끊겨 버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사악- 사아악- 사악-
아주 날카로운 검기가 궁평을 향해 날아갔다.
자색에 짙은 매화향을 머금은 검기.
이 모습은 보통 화산파의 검법과 같아 보였다.
하지만 이 단매검은 결코 다른 화산파 무공과는 같지 않았다.
“헛?”
고단종의 검기를 막아 내려던 궁평의 입에서 놀라움의 헛바람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