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화 외우기 힘들지 않으십니까?
무림맹에서 서열을 정리하기 위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최소 절정 이상의 무인들만 참가한 싸움.
원래는 모든 무인이 참여하는 것이 맞겠지만, 시간이 부족하기에 절정 이상의 무인만으로 범위를 줄였다.
덕분에 이 서열 전쟁은 더 치열해졌다.
서로 실력이 비슷한 이들끼리 싸우는 경우가 많았으니 말이다.
캉- 캉- 카아아앙- 캉-!
무림맹의 연무장에서 쉬지 않고 무기와 무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져 왔다.
서열 백 위까지는 부상이 걸려 있다는 소식에 더욱 치열한 싸움이 진행되고 있는 탓이었다.
서로가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죽어라 싸웠으니 말이다.
“아주 잘 되어 가고 있군.”
팽중호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지금 상황을 바라보았다.
생각한 대로 지금 이 서열 정하기가 잘 되어 가고 있었다.
무인들이 보다 높은 서열을 위해 죽어라 싸우고 노력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자, 그럼 나도 움직여 볼까?”
팽중호도 이 서열 싸움에 참여했다.
모두가 공평해야 맞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팽중호도 공평하게 똑같이 참여하는 것이었다.
“아미파의 혜선이라 합니다.”
“하북팽가의 팽중호입니다.”
이번 팽중호의 상대는 아미파의 여고수.
그녀의 얼굴에는 지금 긴장이 가득했다.
어쩌면 당연했다.
지금 그녀의 앞에 있는 무인이 바로 도신이라 불리는 팽중호이니 말이다.
그 어떤 무인이 그 앞에서 긴장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자자. 너무 긴장은 하지 마시고, 있는 힘껏 오시면 됩니다.”
“네!”
팽중호의 말에 검을 다부지게 잡으며 달려드는 혜선.
빠르면서도 장중한 그녀의 움직임은 그녀가 초절정의 실력은 넘었다는 것을 느끼게끔 해 주었다.
확실히 보기 드문 뛰어난 실력자였다.
‘다만, 보완할 건 많군.’
팽중호가 보기에 보완할 것들이 많이 보였다.
짧은 대련으로 그것들을 다 고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몇 가지 정도는 알려 줄 수는 있었다.
캉- 카캉- 캉- 카카캉-
팽중호에게 연신 검을 찔러 넣는 혜선.
팽중호는 별다르게 반격하지 않고, 그녀의 공격을 막아 내기만 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공격을 찔러 넣는 혜선이지만, 점점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이상하다.’
지금 혜선은 자신의 공격이 묘하게 틀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어딘지 모르게 공격이 쉽지 않고, 공격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다.
공격만 하는 데 힘이 들다니?
“자, 계속해 보십시오. 될 때까지.”
혜선의 귓가에 들려오는 팽중호의 목소리.
이 목소리에 혜선은 무언가를 깨달았다.
지금 이것은 팽중호가 자신에게 가르침을 주는 것이라고 말이다.
“하앗!”
혜선은 힘찬 기합과 함께 다시금 검을 움직였다.
이 묘하게 힘든 느낌.
이것이 바로 혜선이 펼치는 검로의 약점이었다.
팽중호는 지금 그래서 그녀가 그것을 보완할 수 있도록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좋습니다. 좀 더 빠르게 움직여 보십시오.”
“합!”
팽중호의 말에 혜선이 더 빠르게 검을 움직이며, 거칠게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조금 전보다 훨씬 더 날카로워지고, 빨라진 공격.
그녀가 지금 이 와중에 진화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하아아앗!!”
최후의 일격을 내지르는 혜선.
이 공격에 팽중호가 미소를 지었다.
깔끔하며 군더더기 없는 공격.
이 짧은 시간에 장족의 발전을 이루어 낸 공격이었다.
스윽- 캉-
챙- 챙- 채채채챙-…….
팽중호가 멸뢰진천도로 가볍게 혜선의 검을 허공으로 날렸다.
혜선의 기세에 비해서는 허망한 결과.
하지만 혜선의 두 눈은 실망으로 물들어 있지 않았다.
밝게 빛나는 그녀의 두 눈.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혜선이 팽중호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지금 팽중호가 그녀에게 베푼 것.
그것은 무인으로서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팽중호는 미소를 지으며 혜선을 바라보았다.
‘더 강해질 거다.’
혜선은 여기서 분명 더 강해질 것이다.
“자, 그럼 다음은 누구더라…….”
잠깐의 운기 시간 후 다시금 서열을 정하기 위한 대련이 시작된다.
혜선을 이긴 팽중호의 다음 상대.
“접니다. 소가주님.”
“하하, 벌써 위 소협입니까?”
팽중호의 다음 상대는 바로 위지철이었다.
일순 주변의 모든 시선이 두 사람에게로 집중되었다.
도신(刀神) 팽중호와 뇌류신검(雷流神劍) 위지철의 대련.
무림에서 가장 강한 두 무인으로 봐도 무방한 두 사람의 대련이었다.
당연히 주목이 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잠시 있다가 하세나.”
“그러세나.”
무인들은 저마다 서로 합의해 대련을 멈추었다.
지금 팽중호와 위지철의 대련을 지켜보기 위해 말이다.
스으으윽- 우르르르-
주변에서 치열하게 진행되던 모든 대련이 멈추었다.
그리고 지금 이 연무장 위에는 단 두 사람.
팽중호와 위지철만이 남아 서 있었다.
“이렇게 공식적으로 대련은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예. 소가주님과 이렇게 대련은 오랜만입니다.”
서로를 바라보며 대화를 하는 두 사람.
가벼운 대화지만, 둘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서로가 대련할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소가주님.”
“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물론, 저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스릉- 스릉-
팽중호의 멸뢰진천도와 위지철의 검이 동시에 뽑혀 나왔다.
최선을 다해 임하려는 두 사람.
이 대련이 얼마나 치열해질지 짐작할 수조차 없었다.
“지지 않겠습니다.”
“봐드리지 않습니다.”
팟-
위지철이 먼저 움직였다.
순식간에 팽중호의 근처에 도달한 위지철.
그의 검이 곧바로 푸르른 뇌강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이내 뇌호의 모습으로 변한 뇌강은 팽중호를 잡아먹기 위해 거침없이 쇄도했다.
뇌호등천류(雷虎登天流)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키이이이이이잉-
이 뇌호에 맞서서 팽중호의 멸뢰진천도가 울기 시작했다.
거침없이 다가오던 뇌호가 무언가 벽에 막힌 듯 갑자기 움직임이 멈추었다.
콰가가가가가각-
팽중호의 무뢰곡세가 펼쳐진 것이다.
이제 무뢰곡세의 수준은 일가를 이룬 정도.
공격과 수비 모두 완벽하게 해낼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팽중호에게는 이 무뢰곡세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무뢰단세(無雷斷世).
서걱-
위지철의 뇌호가 정확히 반으로 잘렸다.
이 모습에 위지철의 눈이 잠시 꿈틀했다.
‘반응하지 못했다.’
뇌호등천류의 강점이라면, 공수의 전환이 자유롭다는 것.
그런데 미처 공수를 전환하기도 전에 뇌호가 잘려 버렸다.
현경에 도달한 위지철이 반응조차 하지 못한 것이다.
“아직입니다.”
물론 위지철은 지금 모든 것을 보여 준 것이 아니다.
천부중과 남궁천세를 가르치며 깨달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 * *
“나오겠군.”
“그래.”
지금 팽중호와 위지철의 대련을 지켜보던 천부중과 남궁천세는 위지철의 기세가 바뀌어 가는 것을 보고 지금부터가 진짜 대련의 시작임을 느꼈다.
그들은 지금까지 위지철과 수련을 계속했다.
두 사람은 몰라보게 강해졌는데, 그렇게 강해진 두 사람보다 더 몰라보게 강해진 사람이 하나 있었다.
‘위지철 저 괴물 놈.’
위지철은 정말 엄청난 속도로 강해지고 또 강해졌다.
위지철을 따라잡으려던 두 사람이 다 의자가 꺾일 정도로 말이다.
지금까지 보여 준 위지철의 움직임은 그저 몸풀기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부터 위지철의 진짜 실력이 나오기 시작할 것이다.
스으윽-
위지철의 기세와 함께 자세가 변했다.
노도와 같던 기세가 고요한 바다처럼 변하고, 굳건한 중단세의 자세에서 자유로운 하단세의 자세로 변했다.
“나왔군.”
“저게 얼마나 팽 소가주님께 통할지 궁금하군.”
위지철의 저 모습.
천부중과 남궁천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드디어 위지철의 새로운 깨달음이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다.
두 사람은 이것이 과연 얼마나 팽중호에게 닿을지 궁금했다.
그렇기에 팽중호와 위지철에게서 두 눈을 단 한시도 떼지 않았다.
* * *
“그사이에 도대체 또 무슨 깨달음을 얻으신 겁니까?”
“결국 모든 무공은 하나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핫……. 이것 참.”
팽중호는 위지철에게 또다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위지철의 기세와 자세에서 그가 몇 발짝 더 강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정말 쉬지 않고 강해지는 위지철.
‘어쩌면 그 백린성인가 뭔가가 내가 아닌 건 아닐까?’
팽중호는 마뇌가 말했던 백린성이 혹시 위지철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위지철은 천재 중의 천재였다.
“그래서 이름은 뭐로 하셨습니까?”
“그것이……. 채령이가 지어 줬습니다.”
“채령이가요?”
“예.”
곽채령이 무림맹에 왔을 때, 함께 있던 그사이에 위지철은 곽채령에게 깨달음을 그녀에게 보여 주었다.
그리고 그것을 본 곽채령은 곧바로 무공의 이름을 지어 주었는데, 위지철은 그 이름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곧바로 그 이름을 무공에 붙였다.
“무극만변신공(無極萬變神功). 이게 이름입니다.”
뇌호등천류에서 다시 한번 더 진화한 무공.
지금까지 위지철이 익힌 모든 무공이 하나로 합쳐진 무공이었다.
끝없이 변화하는 무공.
“이름을 너무 자주 바꾸셔서 외우기 힘들지 않으십니까?”
“그래서 이제는 바꾸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하하.”
팽중호와 위지철이 가볍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물론 그런 대화와는 다르게, 조금 전보다 훨씬 더 분위기는 팽팽해져 있었다.
“그러면 어떤 무공인지 볼까요?”
“확실히 보여 드리겠습니다.”
위지철은 이 무극만변신공을 아직까지 제대로 펼쳐 본 적은 없었다.
이것을 제대로 받을 상대가 거의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오늘은 제대로 펼치기에 아주 좋은 기회였다.
상대가 팽중호였으니 말이다.
스윽-
위지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볍게 움직이는 것 같았는데, 오히려 조금 전보다 훨씬 더 빠르게 팽중호의 앞에 나타났다.
팽중호마저 조금 놀랄 정도로 빠른 움직임.
카캉- 카카캉- 캉- 카카캉-
거침없이 팽중호를 밀어붙이는 위지철.
이것은 지금 팽중호가 그저 막아만 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팽중호가 밀려나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움직일 때마다 위 소협의 움직임이 변한다.’
팽중호의 움직일 때마다, 순간순간 위지철의 움직임이 함께 변하였다.
가장 팽중호가 까다로울 수 있는 움직임으로 말이다.
쾌(快), 강(强), 중(重), 유(柔), 환(幻)…… 등 모든 검의 묘리가 위지철의 검에 담겨 있었다.
‘검마를 처음 보았던 그때가 떠오르는군.’
지금 위지철에게서 검마를 처음 보았을 때 그가 보여 주었던 그 움직임이 연상되었다.
물론 검마의 깨달음과는 조금 다르겠지만, 결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검으로 담을 수 있는 모든 묘리를 담고서, 그것을 상황에 맞게 순식간에 변화에 펼쳐 내는 위지철.
그는 이제 일대 종사의 반열에 다다른 것이다.
-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무뢰단세(無雷斷世).
크그그그그극- 콱-
아니나 다를까 위지철은 팽중호의 무뢰단세를 이번에는 훌륭하게 흘려 내었다.
게다가 거기에 더해진 무뢰곡세의 음공마저도 기의 막을 쳐서 훌륭하게 막아 내고 있었다.
‘이거, 나도 밑천을 꺼내지 않으면 안 되겠군.’
무뢰단세와 무뢰곡세.
이 두 가지로도 지금의 위지철을 이길 수는 있을 터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를 죽인다고 가정할 때.
대련에서 그를 이기려면 지금 이 두 가지로는 불가능했다.